아랍어: حرب الخليج الثانية
영어: The Gulf War

개요

걸프전은 페르시아만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미국 주도의 34개국이 참전했으며 이라크쿠웨이트 침공 및 병합에 반대하면서 일어났다.

미국입장에서는 압도적인 승리로 거둔 성공적인 전쟁으로 평가받는다. 속전속결로 이라크군 전력을 완전히 압도해서 쳐부쉈고, 미군의 희생은 극히 적었다. 이라크군이 몇만의 사상자가 났다고 추정되는 것에 비해 미군은 불과 백여명에 사상자가 났다. 교환비는 거의 몇백:1 정도에 해당한다. 이 정도의 교환비라면 이건 거의 전쟁이라고 보기보다는 일방적 학살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미국의 전투기나 탱크는 거의 일방적으로 이라크군의 전력을 학살수준으로 파괴했다. 사실 지구최강인 미국을 상대로 게릴라전도 아니고, 탱크나 전투기와 같은 풀스케일 전면전으로 막으려고 했던 후세인이 무모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군 전력을 다 박살 내 놨으니 후세인 체재가 머지않아 무너질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미국의 예상과는 달리 이라크군 전력을 박살났음에도 후세인정권은 이후 10여년 이상 계속 이어졌고, 결국 이라크전쟁에서 후세인을 붙잡고 사형 시키고 나서야 후세인정권이 무너졌다.

클라우비츠 전쟁론에서 상대방 정권을 무너뜨리려면 국방력을 박살내라고 했기에 여기에 입각해서 미국은 이라크군을 박살냈다. 하지만 후세인 정권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후 미국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려면 그 핵심인 독재자 개인을 제거 생포 혹은 암살하는 식으로 작계를 바꿨다.

이전의 전쟁에서는 공군이나 항공전력이 화력 지원등에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 했던 것에 반해. 걸프전에는 항공전력이 전쟁에 승패를 결정짓는 주인공과 같은 역할을 했기에, 현대전에 패러다임을 바꾼 전쟁으로 평가 받는다.

걸프전에서 너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고 미군의 피해는 적었기에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개전을 하고 실패 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라크 전쟁도 걸프전 만큼 개전 초반에 압도적으로 이라크 군을 쳐 부쉈지만, 이쪽은 이후 걸프전 처럼 빠르게 목표를 달성해서 치고 빠지는 게 아니라 지리한 전후 안정화와 게릴라전이 수반되는 미군입장에서 늪과 같은 전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