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행군(苦難의 行軍)은 1994년 김일성 사망 후 나라의 경제사정이 극히 어려워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며 김정일이 내놓은 당적 구호로서, 1996년 신년공동사설을 통해 제시되었다.[1] 이 기간에 대규모의 아사자가 발생했다.


북한에서는 이때 양들은 다 죽고, 여우들만 살아 남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체재에 순응하고 국가를 믿고 배급에 의지하던 정직한 사람들은 다 죽고, 장마당 등 자구책으로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 걸 하는 사람들만 살아 남았다는 것.


세월호로 비유하면 지금 있는 곳에 그대로 있어라 라고 방송 대로 한 애들은 다 죽고, 도리어 그 말을 듣지 않고 갑판 위에 올라간 애들이 더 많이 살아 남은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런 게 국가적으로 진행된 게 북한이다.


이때부터 사회주의 경제 배급제 시스템이 무너지고, 사회주의에서 금지된 장마당 초보적 시장이 들어서게 된다.


고난의 행군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장마당 세대라고 하는데, 이 세대는 국가로부터 무언가를 받아 본 적이 없기에, 그전 세대에 비해 체재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고 한다.

고난의 행군이 온 것은 북한 사회주의 경제체재의 자체적 문제 모순점에도 원인이 있지만, 1990년도 초반 동구권이 무너진게 결정적이다. 애초에 1970년대 북한 경제가 최전성기였을 때도 결국 소련과 동구권 나라들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는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북한을 지원할 나라가 거의 사라진 것이 컸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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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 기간에 사망한 김일성의 시신 영구보존을 위한 금수산태양궁전 건설에 동원된 북한 노동자들.

고난의 행군은 북한에서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부터 2000년 무렵까지 사이에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 김정일이 주민들의 희생을 강요하던 일을 말하며, 이 기간에 일어난 최악의 식량난으로 수십만 또는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아사하였다.

1988년의 서울 올림픽에 맞대응하기 위해 북한은 1989년 7월 평양에서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2]을 무리하게 개최하여 외화를 탕진하고, 이어 소련과 동구 공산권의 붕괴로 이들 국가로부터 받던 원조가 중단되고[3], 자연재해와 정책 실패 등으로 인해 극심한 경제난에 처하게 된다. 이 기간에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하는데, 김정일이 적대계층을 말살하기 위해 고의로 방치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경제난 속에 막대한 비용을 들여 사망한 김일성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금수산태양궁전을 초호화판으로 짓는 등의 무리한 일을 벌인 것도 사태 악화에 한몫했다. 또 그동안 배급체제에 익숙해져 자생능력이 없던 주민들이 갑자기 배급이 끊어지자 독자적으로 식량을 확보할 방법이 없었던 것도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2010년 11월 22일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센서스를 바탕으로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1996~2000년)' 시기 실제에 근접한 아사자 수는 33만여 명이다.[4][5]

통계청이 2010년에 발표한 '1993~2005 북한 인구추계'에 따르면 고난의 행군(1996~2000) 시기 초과 사망은 33만 6천 명, 출생 손실은 9만 9천 명으로 추산됐다.
통계청은 북한의 식량난이 진행이나 회복이 비교적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슬로우 모션 기근'으로, 초과 사망은 1994~2005년까지 12년 간, 출생 손실은 1995~2004년까지 10년 간 지속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 기간으로 확대하면 초과 사망은 48만 2천 명, 출생 손실은 12만 8천 명이다.

그러나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赤旗)'의 평양 특파원을 지낸 하기와라 료(萩原遼, 1937~2017)[6]는 《김정일의 숨겨진 전쟁》(2004년)[7][8]이란 책에서 아사자 수는 300만명이며, 김정일이 고의적으로 굶어 죽게했다고 주장한다.[9]

황장엽의 아사자 수 추정도 하기와라 료의 추정치와 비슷하다.

북한은 식량난으로 95년에 50만명, 96년에 1백만명이 아사했다. 작년까지 모두 3백50만명이 굶어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난의 행군은 슬로건이기도한데 1938년 말 ~ 1939년 초 김일성이 이끄는 유격대가 만주에서 혹한과 굶주림을 겪으며 100여 일간 행군한 데서 유래했다.[1]

고난의 행군에서 정작 지도자는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았고 독재치하의 북한국민이 받았다. 독재사회의 잔혹함을 보여주는 셈.

김대중의 햇볕정책으로 기사회생한 김정일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고난의 행군 기간에 김정일 정권은 거의 붕괴 위기로 내몰렸으나, 때마침 남한에 김대중이 집권하여 소위 햇볕정책을 펼치며 막대한 대북 지원을 해주어 김정일이 기사회생했다고 한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김대중이 5억불 가까이를 불법으로 비밀송금 해준 것도 김정일의 회생에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