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일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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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제9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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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jpg
고이즈미 준이치로
小泉 純一郎
직책 일본 제87대 내각총리대신
(2001.4.26 ~ 2003.11.19)
←전임후임→

일본 제88대 내각총리대신
(2003.11.19 ~ 2005.9.21)
←전임후임→
일본 제89대 내각총리대신
(2005.9.21 ~ 2006.9.26)
←전임후임→

출생일 1942년 1월 8일
출생지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시
부모 (부)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
자녀 차남 고이즈미 신지로
학력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제학부(학사)
정당 자유민주당

개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동안 수많은 총리가 단명한 후에 처음으로 장기집권한 총리이다.

생애

1942년 1월 8일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일본 방위청장을 역임한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1962년에 게이오기주쿠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하여 1967년에 학교를 졸업했다. 정치인 집안출신이라 손쉽게 공천을 받아 1969년에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훗날 일본 총리가 된 자유민주당 후쿠다 다케오[1]의원의 비서로 일하다가, 다시 1972년에 중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후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대장성(현 일본 재무성) 정무관, 정무차관, 후생성 대신, 우정성 대신을 역임하는 등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2001년 4월 26일에 일본 내각총리대신에 취임하였다.

총리시절

경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이전과 이후의 총리들과 달리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인은 경제였다. 고이즈미 집권 기간 일본의 경제는 상당히 좋은 성과를 냈다. 그런데 고이즈미 집권 기에 경기를 회복시킨 방식은 희한하게도 훗날 같은 당의 아베 신조가 일본 경제를 살린 방법과 정반대다. 2012년에 집권하여 2020년까지 일본 총리를 역임한 아베 신조정부에서 국채를 발행하여 재정지출을 늘리고(확대재정정책), 중앙은행에서 엔화를 찍어내어(통화정책) 경제의 총수요를 늘려 경기를 회복시키는 방법을 썼다. 반면에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총리직에 재임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취한 방식은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이고 방만한 공기업을 민영화하여, 민간의 수요창출을 늘리고 공급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방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작은 정부와 민간 주도 경제를 구현하고자 했던 일본 총리는 아직까지도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유일하며, 일찍이 민간기업의 역할이 컸던 미국 등을 제외하고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정책을 펼친 지도자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야당은 커녕 여당인 자유민주당의 기존 노선과도 상이한 정책을 펼쳤기에, 이러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의 정책은 여당인 자유민주당 내에서도 상당한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우정개혁

한국의 우정사업본부와 같은 역할을 하던 우정성을 기업화한 다음 민영화하였다.

외교

대북정책

고이즈미 내각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으나 북한이 다수의 일본인을 납치 감금했다는 사실을 접하고부터는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당시 북한의 최고 권력자인 김정일은 2002년 9월 17일 평양에서 열린 고이즈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대남(對南) 공작 기관이 열세 명의 일본인을 납치하였는데, 여덟 명은 죽었고 다섯 명이 살아 있다."[2]는 이야기를 꺼냈다. 이 내용이 일본에 알려지자 일본인들은 엄청난 공분에 휩싸였다. 한 달 가량 후인 2002년 10월 15일 납북되었던 일본인들이 열흘 후에 북한으로 돌아간다는 조건 하에 일본에 귀국[3]하였는데 이때 고이즈미 총리 및 아베 신조 관방장관 등으로 이루어진 고이즈미 내각은 이 일본인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으며, 이 납북 일본인들의 가족까지 일본으로 송환하라며 북한을 압박했고 결국에는 자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그동안 '북한이라는 불량집단의 놀음에 놀아나 재일교포 북송등을 자행했던 기존 정권들과 달리 고이즈미 내각은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이미지를 주었으며 여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아베 신조는 고이즈미의 뒤를 이은 차기 총리가 되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