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고려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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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jpg
공민왕
恭愍王
직책 고려 31대 국왕
(1330년 5월 23일 ~ 1374년 10월 27일)
←전임후임→
묘호 없음
시호 고려 인문의무용지명열경효대왕(仁文義武勇智明烈敬孝大王)

공민왕(恭愍王)

왕(王)
기(祺) → 전(顓)
생몰기간 (양력)1330년 5월 23일 ~ 1374년 10월 27일
재위기간 (양력)1351년 ~ 1374년 10월 27일

고려의 31대 국왕이다. 젊었을 때는 원나라에 볼모로 있다가 귀국하여 고려의 왕이 되어, 충자 돌림 왕에서 벗어나 원의 국력이 약해지자 반원 정책을 피고 쌍성총관부 등을 탈환하지만, 자기 친위 미소년 부대인 자제위였던 홍륜에 의해 살해 당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간 왕이었다.

왕 노릇을 그나마 제대로 한 마지막 고려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아들인 우왕 때는 이성계가 쿠데타를 일으켜 이후는 이성계 천하가 되니,

옆에 그림에서 보이듯 노국공주와의 로맨스가 매우 유명하다.

노국공주가 죽고 실의에 빠진 공민왕에게 노국공주와 닮은 반야라는 여성을 신돈이 소개시켜 주고 반야와의 사이에서 차기왕인 우왕을 낳았는데, 이성계와 일파들은 우왕은 공민왕이 아니라 신돈과 반야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라고 우왕과 창왕을 폐위시키고 정통성을 부정하는 식의 프로파간다를 전개했다.

어떤 사람들은 후대에 의해 기록적으로 쉴드를 못받은 케이스로 보기도 한다.

지금 전해지는 고려사나 고려사절요를 편찬한 것은 조선이었기 때문에. 고려 말기에 해당하는 공민왕을 조선에서 쉴드 쳐 줄 이유가 별로 없다.

게다가 조선입장에서는 전왕조를 부정해야 고려를 무너뜨리고 집권한 조선왕조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측면도 있었기에,

자제위를 시켜 후궁을 범하게 한다던지 이런 내용은 진위여부를 떠나서 이런 막장 엽색행위에 대한 서술이 그대로 나온다. 만약 이런 사실이 있었다 치더라도 고려왕조가 이어졌다면, 정사의 기록에서 이런 내용이 들어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공민왕 때는 외적으로도 원나라가 약해지면서 북쪽에서는 홍건적이 고려를 침입하고 남쪽에서는 또 왜구가 들끓었던 시기였다.

이성계나 최영 등이 권신이 된 것도 이를 진압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