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책(金策, 1903년 8월 14일~1951년 1월 31일)은 일제시대 조선의 공산주의 독립운동가와 교육자로 활동하였다.
김책은 일제시대에 중국과 소련 일대에서 공산주의 계열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이후 소련으로 건너가 소련 군사조직에서 활동했다.
당시 일본군을 피해 항일무장세력이 만주와 소련 지역에서 활동헀다.
(공산주의자들은 순수한 독립운동을 했다고 보기 힘들다.
원래 사회주의는 세계단일정부를 지향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은 독립 운동 같은 거에 관심도 없이 그냥 빨갱이 나라 만드는 데 경주하고 있었는데,
스탈린이 지금은 식민지에서 반파쇼 제국주의 운동을 우선하라는 지령을 내려 그때부터 독립운동을 가장한 빨갱이 운동을 한 것이다.
이들은 비적이나 마적떼와 같은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
해방 직전에는 소련군과 함께 활동하다가 1945년 해방 이후 북한으로 들어왔으며, 이후 북한의 군사, 정치 조직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김일성도 무진장 신뢰했고 2인자라는 소리도 들었다.(사실 2인자는 매우 위태로운 자리인데, 김책은 1951년 6.25 때 비교적 젊은나이에 빨리 죽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딴게 김책공업대학(북한 굴지의 공업 명문대학이다. 김일성종합대학이랑 라이벌 학교 취급 받기도 한다.)이고
김책시(김책의 고향인 성진을 이렇게 지명을 바꿨다.)도 있다.
북한에서는 사람 이름을 딴 학교나 지명이 여러개 있다.
그 중에서는 남한에서 간첩질을 한 사람(간첩이지만 남한사람이다 김종태 해주사범대학이 그것. 김종태는 통혁당 사건으로 처형되었다.
이런데도 좌파들은 통혁당 등 모든 간첩사건이 조작이란다.)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