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이썬 폼위한(ໄກສອນ ພົມວິຫານ, 1920년 12월 13일 ~ 1992년 11월 21일)은 라오스의 군사 지도자이자 정치인으로, 현 라오스의 집권 정당인 라오스인민혁명당의 창당자이자 라오스인민혁명당의 당군인 라오스인민군의 설립자이다. 그는 빠텟라오의 지도자이자 라오스왕국의 삼왕자 중 하나인 쑤파누웡과 더불어 라오스 적화통일을 주도한 인물로, 라오스인민공화국 제2대 국가주석을 지냈다.

생애

원래 그는 프랑스령 인도지나연방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월남인이고 어머니가 라오스인이기 때문에 '응우옌 까이 쏭(Nguyễn Cai Song / 阮凱山)'이라는 월족식 성명을 본명으로 삼았고, 라오스식 이름인 '까이썬'은 그의 이름인 '까이 쏭'에서 따왔다. 이후 장성하여 대학생 때 공산주의자가 되었고, 하노이에서 동료이자 훗날 라오스 적화통일의 3인자인 누학 품싸완과 함께 호지명의 인도지나공산당에 가입하여 그가 주도하던 대프항쟁에 참여했다.

라오스내전

인도지나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폼위한은 인도지나공산당의 라오스인 당원들을 규합하여 라오스 왕실의 사생아이자 빠텟라오 지도자인 쑤파누웡과 연대하여 라오스 왕정의 전복을 시도했다. 6~70년대에 발발한 월남전에서는 월맹 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어 자유왕정에 맹공을 가했고, 1975년 월남패망으로 자연스럽게 자유왕정도 라오스인민군과 빠텟라오에 의해 무너지면서 폼위한은 라오스를 적화통일시켰다.

집권기와 사망

실권을 쥔 폼위한은 쑤파누웡을 명목상 국가주석으로 내세우고 위권을 행사했다. 우선 싸왕왓타나 국왕을 비롯한 왕족들과 반공 정치인들을 재교육 수용소로 보내 정치보복을 단행했고, 라오스인민군에 비협조적이었던 친왕정 소수민족들을 학살했다. 이후 쑤파누웡을 퇴임시키고 차기 국가주석에 올라 장기 집권을 실시했고, 중국의 흑묘백묘책과 월남의 도이머이를 따라한 시장 개방 정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재임 중 돌연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