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유일사상 10대 원칙(勞動黨唯一思想10大原則)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노동당의 강령이다. 서문을 제외하고 모두 10조 65항으로 구성되어 있다.[1]

노동당 유일사상 10대 원칙

북한에서는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이라고 한다.[2]

북한십계명으로 평가 받고 있다.[3]

북한의 사실상의 헌법으로서 조선노동당 당규약을 뛰어넘어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의 3대 세습을 정당화하며 북조선인민공화국은 김일성 가계의 사유물이며 국가적 종교로서 기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노동당 유일사상 10대원칙에 이해를 돕기

주민들의 행동-삶 일상적으로 규율
북한 주민들의 사고와 행동, 삶을 일상적으로 규율하는 최고의 규범은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이다.
북한에도 헌법과 법률이 있고, 그보다 상위 규범인 노동당 규약이 있지만 주민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규율하는 것은 이 10대원칙이다. 때문에 북한 사회에 진정한 변화가 일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주요 잣대도 이 원칙에 어떤 변화가 생기느냐를 지켜보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북한 주민들은 원고지 50쪽 분량의 이 10대원칙을 완전히 통달해야 할 뿐 아니라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지켜야 한다.
10대원칙의 제3조 6항에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배지),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수령님을 형상한 미술작품, 수령님의 현지교시판, 당의 기본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신문에 실린 김일성의 사진 한 장도 잘못 다루면 정치범 취급을 받게 된다.
북한의 공식 문건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이 잡지·출판물 등에 기고한 글에서도 반드시 김일성(김정일) '교시'를 인용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역시 10대원칙의 조문에 근거한 것이다. 10대원칙 제4조 7항은 "보고, 토론, 강연을 하거나 출판물에 실린 글을 쓸 때에 언제나 수령님의 교시를 정중히 인용하고 그에 기초하여 내용을 전개하며 그와 어긋나게 말하거나 글을 쓰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10대원칙의 제5조 1항은 "김일성동지의 교시를 법으로, 지상의 명령으로 여기고…"라고 규정하여 김일성(김정일)의 말(교시)이 곧 법이자 어길 수 없는 지상 명령임을 밝히고 있다. 10대원칙은 또 김일성에 대한 충실성을 기본 척도로 하여 간부들을 평가하고 선발 배치하여야 한다(제9조7항)고 명기하고 있다.
현재의 10대원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지명(1974.2)된 이후 그가 주창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주체사상화)" 과업 추진과 함께 발표(1974.4.14)됐다.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은 북한 주민들을 일상적으로 규율하는 최고의 규범으로 공식적으로는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원칙'(이하 10대원칙)이라 불린다.
유일사상체계는 전당을 수령의 혁명사상만이 유일적으로 지배하게 하고 수령의 유일적영도밑에 전당이 하나와 같이 움직일 것을 요구하는 수령의 사상체계, 영도체계이다. 
유일사상체계의 핵심적 요지는 수령의 혁명사상으로 당을 무장시켜 어떤 다른 사상도 용납하지 않으며, 수령을 중심으로 하는 당의 사상의지 및 행동의 완전하고도 무조건적인 통일을 이루어 수령 외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하며, 수령의 혁명사상을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고 유일적 영도밑에 혁명사업과 건설사업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주장에 의하면 유일사상체계의 확립은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위한 근본요구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4년 2월 당선전일꾼강습회에서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 하자!"는 전투적 구호를 내세워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주체사상)로 일색화한다는 전투적 강령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온 사회를 주체사상으로 일색화한다는것은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사상, 김일성주의를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하여 우리 혁명을 전진시키며 김일성주의에 기초하여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하고 완성해나간다는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다시 말하여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한다는 것은 모든 사회성원들을 다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한 참다운 김일성주의자로 만들며 김일성주의의 요구대로 사회를 철저히 개조하여 공산주의의 사상적요새와 물질적요새를 점령하는 것(김정일, "온 사회를 김일성주의화하기 위한 당사상사업의 당면한 몇가지 과업에 대하여",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3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7, pp.2~3.)"이라고 김 위원장은 부연설명하고 있다. 
10대원칙은 실질적으로 북한을 지배하는 원리가 되고 있다. 당이 법과 인민 위에 있고, 수령이 당위에 군림하는 북한 체제에서 10대원칙은 모든 북한사회를 움직이는 지침이 되고 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는 수령의 사상체계와 영도체계로 나뉘어 지는데 수령의 사상체계는 당 안에 오직 하나의 사상, 수령의 혁명사상만이 있고 그밖에 어떤 다른 사상도 허용하지 않는 사상의 일치성을 말한다. 
당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성원들이 오직 수령의 혁명사상을 신념화, 신조화하고 그대로 사고하고 행동할 때 당 안에 수령의 사상체계가 섰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수령부터 각 인민까지 결국 수령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수령의 영도체계는 당 안에 오직 수령의 명령에 의해서만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혁명적 규율에 기초한 행동의 일치성이다. 
당을 이루고 있는 모든 성원들과 모든 당조직들이 수령의 교시를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무조건적으로 집행하는 혁명적 규율과 질서에 따라 한결같이 움직일 때 수령의 영도체계가 섰다고 말한다. 
수령의 사상체계와 영도체계는 10대원칙에 그대로 반영되어 주민생활뿐만 아니라 소년단, 청년동맹, 직총, 농근맹, 여맹 등 각종 단체와 당의 행동지침이 되고 있다. 이는 10대원칙이 주체사상과 유일사상체계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요약해서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1960년대 초 북한은 김일성 단일지배체제가 확립되어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안정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1961년부터 1964년까지의 중소분쟁의 와중에서 북한은 초기에 중국을 지지함으로써 소련과의 관계가 악화되었고, 소련의 경제원조 중단은 북한의 경제계획에 큰 차질을 초래했다.
1966년 10월 제2차 당대표자회에서 제1차 7개년계획(1961~1967)을 3년간 연장하게 되었다. 또한 1966년 시작된 중국의 문화대혁명시 홍위병들은 김일성 주석을 수정주의자라고 비난하였고, 이에 맞서 북한은 문화혁명을 '좌경' 혹은 '교조주의'라고 거부함으로써 북·중 관계가 긴장됐다. 
이밖에도 쿠바 미사일위기와 중국·인도간의 국경분쟁에서 소련이 보인 대응을 보고 북한은 소련에 의존하는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갖게 됐다. 특히, 한·일 국교정상화(1965)를 미국의 아시아 침략의 일환으로 파악한 북한은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
김일성 주석은 6·25전쟁을 거치면서 연안파무정소련파의 대부인 허가이,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계를 차례로 숙청했다. 1956년 4월 23일에서 29일까지 열린 제3차당대회를 계기로 김 주석은 확고부동한 당의 주도권을 확보하게 됐다.
김주석은 1956년 6~7월에 걸쳐 1957년부터 실시하기로 한 제1차 5개년 계획에 필요한 원조를 요청하기 위해 동유럽순방을 마치고 순방의 성과를 청취하기 위해 8월 당전원회의를 소집했다. 이 회의에서 김두봉(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최창익(당 정치위원 겸 부수상), 윤공흠(상업상), 서휘(직업총동맹 위원장), 이상조(주 소련대사), 이필규(내무성 부상), 장평산(제4군단장, 중장, 이상 연안파), 박창옥(당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부수상), 김승화(건설상), 김재욱(농업성 부상) 등은 김일성 1인독재체제를 비판하고 김일성 주석을 축출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김 주석의 축출에 실패하여 오히려 윤공흠, 서휘, 이필규 등은 김일성 계열의 반격을 받아 중국으로 망명한 후 출당처분을 당했으며, 최창익, 박창옥 등은 중앙위원직을 박탈당했다. 이것이 북한에서 말하는 소위 '8월종파사건'이다. 
중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윤공흠 등의 출당처분이 취소되고 최창익과 박창옥은 중앙위원에 복직했으나, 김 주석은 이를 계기로 '반종파투쟁'에 박차를 가하여 연안파소련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가했다. 
김 주석은 1956년 말부터 1957년 초까지 당증교환사업을 통하여 일반당원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을 전개하였으며, 중국과 소련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1958년까지 김두봉, 오기섭, 박창옥, 최창익 등을 포함한 연안파소련파들을 완전히 제거했다. 
8월 종파사건으로 야기된 반종파투쟁의 결과 반김일성파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됐고 확고부동한 단일지배체제를 확립하는데 성공했다. 김 주석은 1956년 이전까지는 당내부사업에 소홀하였으나 8월종파사건을 계기로 자신이 직접 당사업을 지도하게 됐다.
북한 지도부는 중소분쟁과 경제계획의 차질 등 내부적 요인이 아닌 국제적 요인으로 1966년 10월 12일 체제 정비의 일환으로 당중앙위원회 제4기14차 전원회의에서 당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어 15차 전원회의(1967.5.4~8)에서는 권력핵심층 내에 퍼져있는 반유일사상체계 움직임을 감지하고 갑산파를 비롯 일단의 노동당 간부들을 대거 숙청한다. 
숙청의 이유는 이들이 혁명전통을 비방하고 사상교양사업을 방해하였으며, 당내에 부르주아사상, 수정주의사상, 봉건유교사상, 교조주의, 사대주의, 종파주의, 지방주의, 가족주의와 같은 온갖 반당반혁적사상을 퍼뜨려 유일사상체계확립을 저해하였다는 것이었다.
1969년 초 북한권력핵심부에서는 또 한번의 대대적인 숙청이 전개됐다. 숙청 대상자는 김 주석의 항일 유격대 출신인 민족보위상 김창봉, 대남총책 허봉학, 인민군 총참모장 최광 등 군 수뇌부로서 이들은 유일사상체계확립에 반대하다가 숙청 당했다. 이를 계기로 군에 대한 당의 통제가 더욱 강화됐다.
국외적으로는 중소분쟁과 경제계획의 차질, 국내적으로는 '8월 종파사건'에서부터 1969년 군부파의 숙청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김일성 주석이 당내부사업을 직접 관장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로 부상한 시기와 일치하면서 북한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고 김일성 유일체제의 확립과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을 위해 김일성 유일사상체계확립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했다.
갑산파의 숙청이 진행된 1967년 당중앙위 제4기 15차 전원회의를 전후한 시기는 공교롭게도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부상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유일사상은 주체사상의 정립과 수령론의 형성과 더불어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을 위한 것과 동시에 이론적 정립이 이루어졌다. 
김 위원장이 유일사상체계확립에 박차를 가하던 1968년 말 김위원장은 군부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을 마무리짓고 1969년 초 유일사상체계확립을 추진하면서 수령이 당을 대체하는 작업을 추진했다. 김 위원장은 유일사상을 바탕으로한 유일지도체계확립을 추진하면서 유일지도체계의 이론적 바탕이 되는 혁명적 수령관을 제시했다.
1974년 2월 당중앙위원회 제5기8차 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은 정치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면서 공식적인 후계자로 추대됐다. 김위원장이 후계자로 지명된 후 가장 중요한 과제는 그의 지도를 뒷받침하는 체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그는 당의 유일적 지도체제 확립문제를 내세웠다. 
김 주석의 권위를 바탕으로 자신의 지도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것과 김주석의 권력과 권위를 강화시키는 것은 곧 자신의 권력기반을 확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김정일 지도체제수립의 정당성을 유일사상체계확립에 두었다. 1974년 4월 14일 김 주석의 62회 생일 전날 김 위원장은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을 공포했다.
그는 이날 "전당과 온 사회에 유일사상체계를 더욱 튼튼히 세우자"라는 제목으로 '중앙 당 및 국가, 경제기관, 근로단체, 인민무력, 사회안전, 과학, 교육, 문화예술, 출판보도부문 일군들' 앞에서 연설했다(김정일, "전당과 온 사회에 유일사상체계를 더욱 튼튼히 세우자",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하여' 3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7).
그는 이 연설에서 "우리 당과 혁명 발전에서 일어나고있는 이러한 력사적전환과정을 더욱 촉진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겠습니까?"라고 질문을 제기하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는 사업에 힘을 집중하여야 하겠습니다.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세우기 위한 투쟁을 더욱 강화하는것은 온 사회에 김일성주의화를 위한 근본요구"라고 강조했다.
북한은 수령이 개척한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하며 완성해 나가는 것은 '당의 유일지도체제를 확고히 세우는 것'이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위업을 고수하고 빛나게 계승발전시키며 우리 혁명위업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결정적 담보'라고 설명한다.
북한은 1980년대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동당을 실질적으로 지배함에 따라 당의 유일사상체계를 후계자 김정일의 지도체제로 내세우는 가운데 이를 김정일 후계체계 구축에 적극 이용했다.
'10대원칙' 중 2~5항은 ▲신격화 ▲절대화 ▲신조화 ▲무조건화로 집약되는 '충실성의 4대원칙'이다. 이 원칙은 북한주민이면 누구나 암송해야 하는 생활속의 실질적인 규범이다. 북한 주민들은 형식상 최고규범이라 할 수 있는 당규약이나 사회주의헌법 및 기타 법조항에 대해서는 초보적인 지식도 없지만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은 일상적인 행위준칙으로서 각 조항을 꿰고 있다. 
실제로 북한주민들을 일상적으로 규율하는 규범도 일반 법령, 법규가 아니라 바로 이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이다. 
'충실성의 4대원칙'은 일반 주민이 보편적으로 암송하고 실천해야 하는 행동준칙이다.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소년단에서 청년동맹으로 올라갈 때 '충실성의 4대원칙'을 반드시 암송해야 가맹을 허용할 정도로 엄격히 교육, 통제하고 있다.
'10대원칙'의 3항의 세칙 중 "6)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수령님을 형상화한 미술작품, 수령님의 현지교시판, 당의 기본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북한에서는 종이가 부족해 노동신문이 가장 좋은 담배용지로 사용된다. 그런데 실수로 김 부자 사진이 실린 면을 찢어 말아 피워 위의 규정을 어겨 문제가 제기되어 신세를 망치게 되는 골초들도 한 두 명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1999년 12월 5일 평양의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린 '2000년 평화친선 음악회'에 참가한 댄스그룹 젝스키스와 핑클은 북한을 방문하기 전 관객을 향해 손가락을 뻗는 동작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단단히 교육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왜냐하면 관객들의 대부분이 가슴에 김일성 배지를 달고 있어 이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김일성 주석에게 삿대질을 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큰 불경에 속하기 때문이다.

노동당 유일사상 10원칙에 대한 시각

김정은이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 을 39년만에 개정했다.ⓒkonas.net
달라진 북한의 '노동당 10대원칙'

'켄 고스 국장: 김정은 정권이 10대 유일사상에 강력히 연계된 것은 앞으로 북한이 과감한 경제 개혁 등에 나서는 데 스스로 수갑을 채운 형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스 국장은 1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이같이 우려하면서 핵문제와 관련해서도 북한은 국제사회의 바람과는 반대로 더욱 핵보유국 입지를 강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개정 전 10조 65항에서 10조 60항으로 축소 통합된, 새 원칙의 3조 4항에는 ‘백두산 절세 위인들’이라는 표현이 추가됐고 10조 1항은 ‘김일성 김정일의 위업을 대를 이어 끝까지 계승 완성해야 한다’로 바뀌었습니다. 개정 전 1조 3항과 4항에 있던 ‘프롤레타리아 독재정권’과 ‘공산주의’라는 표현은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이번 개정이 김 제1위원장으로의 권력 세습을 정당화하고 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입니다. 지난해 4월 헌법을 개정하면서 서문에 ‘핵 보유국’을 명기한 것과 연장선상에 있는 조치라며 10대 원칙은 모든 주민들이 외워야 하는 것인 만큼 김 제1위원장의 지도력을 추앙하게 만들려는 의도라고 풀이했습니다.'

'북한 김정일이 세습독재를 명문화하기 위해 김일성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며 1974년에 만든 ‘당의 유일사상체계확립의 10대원칙’이 김정은의 손에 의하여 39년만에 개정됐다고 자유북한방송이 18일 전했다. 소식통은 “각 기관기업소의 비서들은 당 회의를 하면서 도당으로부터 20부씩 받은 책자를 당원들에게 배포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현하지 못하는 일부 사람들은 책자를 받아들고 ‘헌법보다 더 높은 10대원칙 종이 질이 이게 뭐야’고 비난한다”고 전했다. '

한국 기독교계의 주체사상의 이해

기독교가 왜 주체사상의 이해를????? [5] 북한의 수령과 기독교의 하나님을 1대1 대응해서 해석하는 이 어처구니 없음. 저작권만 아니면 싹다 긁어 와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북한에도 종교의 기능을 감당하는 것이 있으며, 그것이 바로 주체사상입니다. 주체사상은 이론적인 철학을 넘어서, 북한에서 국가종교로서 기능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북한은 종교의 무풍지대가 아니라 열풍지대이며, 우리 시대에 가장 왕성히 작동하고 있는 국가종교의 보유국입니다. 다만, 우리가 종교에 대해서 그리스도교, 유교, 불교 등의 전통종교만을 종교라 인정하는 협소한 이해 때문에 주체사상국가종교라는 사실을 선뜻 인정하지 못했을 뿐이고, 종교의 가르침을 믿는 신앙(belief)과 주체사상의 가르침을 믿는 신념(belief)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습니다.


주체사상의 제1계명은 ‘수령’을 절대화하고, 수령의 사상인 ‘주체사상’으로 온 사회를 일색화하고, 이 사업을 ‘대를 이어’ 지속하며, 한반도 전체와 전 세계에서 주체사상이 승리할 때까지 싸울 것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그리스도교가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해야 한다는 복음 전파의 사명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주체사상의 제3계명은 수령숭배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수령의 절대화에 대한 주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수령의 절대적인 권위와 위신에 사소한 흠집이라도 내려 하는 모든 세력은 ‘현대 수정주의’로 대표되는 ‘온갖 원쑤들’인 사악한 적대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온갖 원쑤들’과의 비타협적 투쟁이야 말로, 수령숭배심의 척도가 된다는 것입니다.

주체사상의 제3계명은 실제 수령숭배에 있어서 지켜야 할 행동지침을 세부항목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령의 모습을 형상한 모든 작품들을 정중히 모시고, 철저히 보호하며, 주체사상을 학습하기 위한 모든 거점들을 엄숙히 꾸미고, 관리를 잘하며, 철저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명들은 그리스도교가톨릭 전통에서 성상이나 성화, 감실을 중심으로 한 성당을 거룩하게 여기는 것과, 개신교 전통에서 성경책이나 예배당을 잘 관리하는 것과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개정된 계명을 살펴보면, 절대화의 대상이 김일성,김정일 등 선대 수령들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당’이 첨가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카리스마의 제도화라는 측면에서, 현재 조선로동당의 최고 수뇌인 당대 수령의 절대화까지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노동당 유일사상 10대원칙 적용 사례

북한 주민들은 원고지 50쪽 분량의 이 10대원칙을 완전히 통달해야 할 뿐 아니라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지켜야 한다.

10대원칙의 제3조 6항에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초상화, 석고상, 동상, 초상휘장(배지), 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신 출판물, 수령님을 형상한 미술작품, 수령님의 현지교시판, 당의 기본구호들을 정중히 모시고 다루며 철저히 보위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노동신문에 실린 김일성의 사진 한 장도 잘못 다루면 정치범 취급을 받게 된다. '

위와 같이 10대 원칙의 제 3조 6항으로 오토 웜비어가 북한에 의해 고문당하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김정일과 김정은의 조화를 훼손치 못하고 보존 처리하고 있다.

오토 웜비어

  • 2016년 3월 16일 최고재판소는 미국 정부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추종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심단결의 기초를 허물어버리기 위해 관광 명목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입국하여 엄중한 반공화국 적대 행위를 감행한 혐의로 국가전복음모죄를 적용하여 오토 웜비어에게 로동교화형(징역형) 15년을 선고했다.[6]

진행자)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선전물을 훔쳤다거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이 실린 노동신문으로 신발을 쌌다는 등 주로 웜비어의 잘못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습니까? 기자) 그렇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각에선 웜비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내는 것도 사실입니다. 왜 그런 무모한 행동을 했느냐는 건데요. 심지어 미국의 한 전직 외교관은 지난해 VOA와의 인터뷰에서 웜비어가 “매우 바보 같은 짓을 했다”며 “북한의 (석방) 결정은 웜비어가 가족과 함께 죽을 수 있게 배려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최 대표는 평양의 소식통으로부터 얻은 정보라며 웜비어가 출국 예정일 호텔방에서 짐을 정리하면서 구두를 노동신문에 쌌는데, 여기에는 김정은 위원장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고 말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23일 보도했다.

그는 신문 지면에 흙이 묻어 있는 것에 대해 웜비어가 혹독한 비판을 받았고 이로 인해 구속됐다고 덧붙였다.

김정은 弔花' 영구 보존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이름과 하사품에 벌벌 떠는 이게 나라냐? Freedom of Hong Kong Freedom of Korea Freedom of North Korea

김정일 조화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 김대중도서관 수장고에 특수 화학 처리를 거쳐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고 한다.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는 "북한에서 온 것이니 기념으로 한번 보관해보자고 해서"라고 했다. 다른 관계자는 "남북 관계 상징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고 존엄'이 보낸 조화를 폐기했다가 북한이 보일 반응이 걱정돼 보존했다는 얘기도 있다.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때 김정일 사진이 인쇄된 현수막이 비바람을 맞는 것을 보고 북한 응원단이 난리 친 일도 있었다. ▶이번 이희호 여사 장례식에 온 김정은 조화는 국화꽃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조화를 받으러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통일부 차관, 박지원 의원 등 장차관급 여럿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까지 직접 갔다. 판문점에서 장례식장까지 조화 운반을 위해 고가 미술품 운반에 사용되는 무(無)진동 트럭이 동원됐다. 김정은 조화도 김정일 조화처럼 특수 처리를 거쳐 김대중도서관에 영구 보존할 계획이라고 한다. 박지원 의원이 조화를 가지고 온 북한 김여정에게 "김정일 위원장 조화를 영구 보존하고 있는데 이번 조화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김여정이 "감사하다"고 했다고 한다.
  • 김정은 조화 보존, 유일사상 존중인가? _ 도태우 대표 / [도변정담]

전문

노동당 유일사상 10대 원칙[7]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확립의 10대 원칙[8]


노동당 규약

노동당 규약 또한 관련성이 높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