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盧平久, 1912년 1월 16일[1] - 2003년 9월 8일)는 무교회주의 기독교 사상가, 신학자, 출판인, 독립운동가이다.

"조선·대만 특별요시찰인 약식명부"의 노평구(盧平久)[1]

생애

함경북도 경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부친은 한의사였다고 한다. 배재고보 재학시절 광주학생운동으로부터 파생된 배재고보의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고 퇴학 당하였다. 그후 마포에서 빈민 아동 교육에 헌신하던 중 인간성의 한계에 대하여 실망하고 있던 그는 김교신을 만나 기독교 신앙을 배우게 되었다. 김교신의 소개로 일본으로 건너가 무교회주의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였다. 해방 후 귀국한 노평구는, 김교신의 "성서조선" 잡지를 본받아, "성서연구" 잡지를 창간하여 50여년 동안 500호를 발간하였는데, 당시 한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발행된 월간지였다. 노평구는 한국에서 무교회주의 기독교운동을 시작한 우찌무라 간조의 제자 그룹인 김교신과 송두용의 뒤를 이어 한국 무교회주의 기독교운동을 이끈 2세대 지도자였다. 노평구는 일생동안 주일이면 종로 YMCA 회관에서 성서연구 집회를 열어 후학을 양성하였다. 노평구는 글과 강연을 통하여 항상 직설적이고 통렬한 어조로 한국 교회와 사회의 도덕적 타락를 꾸짖었으며, 하나님의 진리에 복종하는 민족의 사명을 설파하였다. 젊은 시절 만세운동 관련 투옥 기록에 근거하여 말년에 독립유공자로 인정 받았으며, 사후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참고 자료

노평구(盧平久) : 함경북도 경성군 어랑면(漁郞面) 용강동(龍岡洞) 239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