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2대 황제이다. 휘는 이세민이다. 아버지와 형들을 쿠데타로 쫓아내고 황제에 등극했다.

조선으로 말하면 이방원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정관이 치라고 태평성세를 이룩한 성군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에서 여러 성군인 황제를 말할 때 거론 되는 유명한 황제다.

고구려에도 여러번 쳐들어 왔지만, 고구려 원정에는 실패했다.

기록을 보면 역사를 굉장히 윤색한 느낌이 든다. 당태종이 역사의 승자가 되었으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수나라가 망하고 당나라가 세워지는데, 아버지인 당태조 이연과 당태종 이세민의 형제들은 거의 한 게 없고, 마치 이세민의 공이 제일 크고, 이세민이 다 한 것인냥 기록되어 있다. 기록만 보면 좀 의아하다. 당태조 이연이나 이세민의 다른 형제들은 당나라가 세워지는데 별로 역할도 안함 허수아비이고 별 것도 없는데 이세민이 다 했다?

게다가 엄밀히 말하면 패륜 행위인 당태종의 쿠데타도 어쩔 수 없었다고 정당화하고 있다.

그러니까 당태종이 이세민이 황제가 된 것이 이세민의 당을 창건하는데 공이 제일크고, 쿠데타도 피치못하고 정당했다라며 엄청 정당화하고 있다. 여기서 본인들의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버지와 형의 공을 축소하고 본인이 가로채고 패륜행위를 정당화 왜곡한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

혹자는 전왕조인 수나라 특히 수양제도 폭군으로 왜곡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수나라 역사인 수서도 당나라 때 씌어진 책이기 때문이다. 당입장에서 본인들이 수나라를 무너뜨리고 당나라를 세운 것을 정당화하려면, 그만큼 수나라 특히 수양제가 폭군이자 망나니였다고 서술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양제가 폭정을 한 것은 빼박 사실로 보인다. 당나라 때 쓰여진 수서에는 수양제가 아버지인 수문제를 시해하고 황제로 등극한 것으로 서술되어 있는데, 사실 이것도 진위여부가 굉장히 의심된다. 이게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당태종 또한 엄밀히 말하면 아버지와 형제들을 제끼고 자기도 패륜 쿠데타를 저질러서 등극한 것인데,

소설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장의 실제모델인 당현장이 당태종 때 인도에 가서 불경을 구해 왔다. 서유기에도 당 태종이 나온다.

중국에서 워낙 평가가 높고 유명한 황제기도 하고, 한국에서도 띄우는 편이다.

성군이자 그 유명한 당태종도 고구려의 정복에 실패했다. 이런 식으로 당태종을 띄우면 그렇게 대단했던 당태종도 정복에 실패한 고구려 또한 저절로 평가가 높아지는 것이기에,

일부에서는 당태종이 지나치게 과대포장 과대평가 받고 있다고도 이야기 한다. 역사를 어느정도 윤색한 것은 사실로 보이기도 하다.

중국 최초의 여황제인 무측천 즉 측천무후는 원래 당태종의 후궁이었다. 당태종 때는 무미랑으로 불렸는데 무씨 예쁜이라는 뜻이다. 당태종이 죽고 비구니가 되었다가 다시 당고종의 후궁이 된다. 즉 당고종은 아버지의 여자를 취한 것이다.

당태종이 무측천에게 말을 어떻게 길들일 것인가 물어보고 무측천의 대답을 듣고 그 이후 당태종이 무측천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하는데, 이건 당고종 입장에서 아버지가 무측천을 취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터뜨린 이야기가 아닌가 라는 시각도 있다.

휘의 이세민은 세와 민 모두 흔히 쓰는 한자라 피휘하는 데 애로사항이 있다. 관세음보살이 관음보살 관자재보살이 된 것은 이세민의 세자를 피휘 했기 때문이다.

조선왕들은 일부러 피휘를 엄두해 이들을 외자로 짓고, 사람들이 평소 잘 안 쓰는 글자로 이름을 만들었다. 물론 이성계와 그의 아들들은 왕이 될 것을 염두하지 않고 이름을 지었기에 예외다.

당연히 이세민이라는 이름도 피휘를 염두하고 지은 이름은 당연히 아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