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존 머니(John Money, 1921-2006)라는 성심리학자가 성전환을 통해 성 정체성을 인위적으로 바꿀 수있다는 성공적 사례[1]를 발표하면서 성(sex)대신 젠더(gender)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젠더는 몸(생물학적 성)에 근거해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주장하엿다. 즉 젠더는 생물학적 천성 때문이 아닌 양육과 교육을 통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집착은 무고한 소년의 삶을 파탄시켰으며 자살로 몰아넣었다.

실험

데이비드 라이머(David Peter Reimer, 1965년 8월 22일 - 2004년 5월 5일)는 캐나다 매니토바주의 위니펙에서 쌍둥이 형제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이름은 브루스(Bruce)였고, 쌍둥이 동생의 이름은 브라이언(Brian)이었다. 생후 8개월 때 포경수술을 받던 중 의사가 전기소작기를 잘못 사용하여 음경에 큰 손상을 입었다. 그가 22개월 되었을 때 당시 존스 홉킨스 대학의 심리학 교수 존 머니(John Money)는 부모에게 권하여 이참에 음경과 고환을 제거하고 여성 호르몬을 투여하는 성전환 수슬을 하고 여자아이로 키우도록 하였다. 존 머니 교수는 젠더라는 개념을 창안한 극단적인 성연구가로 사회적 학습으로 젠더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그의 진보적 이론을 입증하려고 한 것이었다. 존 머니는 부모를 설득하여 고환을 제거하고 브렌다(Brenda)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로 키우게 하였고 여성호르몬을 투여하였다. 존 머니는 그 소년에게 질도 만들어주자고 제안하였으나 부모는 거절하였다.

내용

데이비드는 브렌다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로 길러졌다. 그 소년은 자신이 여자인줄 알고 자랐다. 사춘기에 성호르몬을 투여 받아 유방도 커졌다. 존 머니는 이 사례를 십수년간 추적하면서 학회에 간성이 아닌 사람에 대한 성전환수술(transsexual operation)의 성공사례로 발표하였다. 이 사례는 'John/Joan case'로 알려졌으며 브렌다는 TV 등에 출연하는 등 존 머니와 더불어 유명해졌다. 그의 성공에 따라 미국 전역에 성전환이 다수 이루어졌다.

또한 브렌다 라이머의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다. 존 머니는 브렌다 라이머의 사례를 성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뿐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인용하였고 인간은 자신의 성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따라 서구와 북미에서 음경이 지나치게 작거나 기형으로 태어난 아이들, 라이머 처럼 전기소작기 때문에 성기가 다 타버린 아이들 대부분이 강제로 성전환 수술을 당하고 여성으로 길러졌다.


그러나 브렌다가 사춘기에 이르렀을 때 자신이 이상하게도 자신이 남성적임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어려서부터 여자아이처럼 행동하도록 길러졌으나, 남자아이처럼 행동했으며 학교에서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늘 받는 브렌다는 존 머니 박사의 심리상담을 주기적으로 받았으나, 브렌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도 존 머니는 브렌다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말괄량이 기질을 보일뿐이라며 브렌다의 문제를 일축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그녀의 과거 출생과 수술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15세 브렌다는 '남자'로 살기로 결정하였다. 수년 후 그는 수술로 음경과 데이비드라는 이름으로 남성을 되찾았고 나중에 세 아이의 어머니인 여성과 결혼하였다.

데이비드는 32세때 다른 사람들이 유사한 시술을 받음으로써 겪게 될 후유증을 막기 위해, 성학자인 밀턴 다이아몬드(Milton Diamond)에게 자신의 비밀을 공개하였다. 존 머니의 연구의 거짓됨이 대중매체에 폭로되었다. 심지어 그가 어렸을 때 쌍둥이 형제 브라이언과 항문성교의 흉내를 내게 강요하였다고도 폭로 했다. 이에 대해 존 머니는 "건강한 성인 젠더정체성(healthy adult gender identity)"을 위한 "소아기 성적 연습 놀이(childhood sexual rehearsal play)"라는 치료방법이었다고 강변하였다. 브라이언은 나중에 조현병을 앓게 되었고 36세 때 자살하였다. 데이비드도 38세 때 우울증과 부부불화와 경제적 문제로 자살하였다. 부모는 라이머(Reimer)형제의 불행을 존 머니 때문이라고 비난하였다.

결과

성전환 실험의 실패가 1997년 널리 알려짐에 따라 그 실험은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실험이 되었다. 존 머니 교수는 자신의 이런 비난이 우파 매체 또는 안티페미니스트들 때문이라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성전환 수술의 실패를 제때 정식 보고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런 시술이 계속 소아들에게 행해졌다는 사실로 인해 윤리적 비난을 받고 있다. 그의 연구가 거짓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존 머니는 젠더개념의 창시자로 알려져있다.

이 사례는 결국 성정체성은 인위적(사회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으로 결정된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같이보기

젠더불쾌증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