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일어난 민중 봉기로 동학의 난이라 둘렀다.[1] 이후 좌파에 점령당한 교과서가 주를 이루면서 동학혁명이라 불렸다.


청교도,미국, 산업, 프랑스 혁명 등에 비해 동학의 난은 실패한 반란이었고, 혁명이라 부를 만한 영향도 없었다. 왕조가 교체 된 것도 아니고 체재가 변한 것도 아니다. 이게 무슨 혁명인가.


도리어 청나라군 일본군이 개입할 빌미가 제공했을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건가? 이건 좌파들도 동의하지 하지 못 할 것이다.


좌파에서는 동학, 3.1, 4.19, 518, 촛불광란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하는지 이걸 혁명이라고 미화시키고 있다. 오죽하면 조선시대 있었던 일을 대한민국 정부에서 동학 피해자 보상을 해준다고 법을 만들었을 정도.


폐정개혁이라는 건 소설이다. 기록은 전무하고 제일 먼저 폐정개혁이라는 게 등장하는 게 동학을 주제로 한 소설이었다.

동학이 혁명이면, 황건적의 난, 홍건적의 난, 백련교의 난, 태평천국의 난도 죄다 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

아닌게 아니라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 레닌식 사관에 입각하 황건적의 난을 황건의거라고 칭하고 있다.

북한의 역사도 이런 민란을 긍정적으로 서술한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재우 자체는 골수 중화주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으로, 수구꼴통이라고 볼 수 있는 위정척사파를 도리어 위정척사파 때문에 서양 세력이 들어왔다며 위정척사를 더 수꼴의 관점에서 비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슨 동학이 근대적 운동이라는 것인지. 남녀차별 철폐, 신분제 철폐 같은 것도 사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역대 민란에서 대부분 쓰인 구호 중 하나이다. 이것 갖고 근대적 운동이라고 볼 수 없다.

박정희 가계와 동학이 어느정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박정희도 동학을 띄운 사람 중 하나. 박정희와 전두환은 문제적 인물인 김구도 띄웠다. 박정희 전두환이 현대사 엄청난 공적이 있는 사람이지만, 인간인지라 모든 것이 다 옳았던 것은 아니다.



각주

  1. 옛날 교과서에서는 동학의 난으로 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