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동학운동은 1893년 일어난 민중 봉기로 동학의 난이라 불렀다.[1]
이후 좌파에 점령당한 교과서가 주를 이루면서 어느새 동학혁명이라 부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무능한 조선 정부가 반란군을 처리해 못하자 외국군을 끌어들인 역사적 사실 무시하고 일몬군이 동학 농민을 이유없이 학살했다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학농민군의 무장봉기와 청나라 및 일본군의 개입을 초래한 책임을 축소하고, 일본군의 진압만을 부각해 반일 민족주의와 좌파 정치권의 목적에 맞게 역사를 재구성하고 있다.
2. 실패한 반란인가 혁명인가
청교도,미국, 산업, 프랑스 혁명 등에 비해 동학의 난은 실패한 반란이었고, 혁명이라 부를 만한 영향도 없었다.
왕조가 교체 된 것도 아니고 체재가 변한 것도 아니다. 이게 무슨 혁명인가.
동학이 혁명이면, 황건적의 난, 홍건적의 난, 백련교의 난, 태평천국의 난
(근대의 일어난 일로 태평천국과 동학은 좀 비슷한 면이 많다.
결정적 차이라면,
동학은 난 자체가 진압되었지만, 태평천국은 나중에 진압이 되긴 하지만
14년간 남경을 수도로 하는 나라를 만들어서 중국 대륙 일부를 실질 국가로서 지배 했다는 것)
도 죄다 혁명이라고 불러야 한다.
아닌게 아니라 중국공산당은 마르크스 레닌식 사관에 입각하 황건적의 난을 황건의거라고 칭하고 있다.
북한의 역사도 이런 민란을 긍정적으로 서술한다.
차라리 그쪽은 일관성이라도 있는 것이다.
도리어 외국군이 청나라군 일본군이 조선에 출병할 개입할 빌미만 제공했을 뿐이다.
(텐진 조약 때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에 한쪽이 출병하면 자동으로 상대방 국 군대가 개입할 수 있게 조약을 맺었다.
일본에서도 사쓰마번이나 조슈번 등이 싸웠는데,
그걸 말린 논리가 우리가 서로 싸우면 외국군이 일본에 출병해서 개입할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논리로 사카모토 료마가 두 번 사이에 싸움을 중재해서 삿초 동맹을 맺었고, 이게 일본 근대화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이라고 부르는 건가? 이건 좌파들도 동의하지 하지 못 할 것이다.
3. 흥선대원군과 동학농민군 진압
나중 되면 흥선대원군이 동학의 배후로 동학을 부추겨 다시 실권을 가져 오려고 했다가 이 편지가 일본군에게 들어가서 다 탄로가 난다.
이후 약점이 잡힌 흥선대원군과 조선관군은 일본군과 합동으로 동학을 진압하게 된다.
4. 폐정개혁론의 실체
폐정개혁이라는 건 원 출처가 소설이다.
역사적 기록은 전무하고 제일 먼저 폐정개혁이라는 게 등장하는 게
동학을 주제로 한 소설이었다.
5. 동학의 사상적 한계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 자체는 골수 중화주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으로,
수구꼴통이라고 볼 수 있는 위정척사파를 도리어 위정척사파 때문에 서양 세력이 들어왔다며
(위정은 정학 성리학을 지키고, 사학한 학문이 천주학 등 서양을 배격하고 서양과 통상하지 말자는 지금 기준으로 완전 수구 주장이다.)
위정척사를 더 수꼴의 관점에서 비판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슨 동학이 근대적 운동이라는 것인지.
남녀차별 철폐, 신분제 철폐 같은 것도 사실 전혀 새로운 이야기도 아니다.
역대 민란에서 대부분 쓰인 구호 중 하나이다. 이것 갖고 근대적 운동이라고 볼 수 없다.
박정희 가계와 동학이 어느정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박정희도 동학을 띄운 사람 중 하나. 박정희와 전두환은 문제적 인물인 김구도 띄웠다. 박정희 전두환이 현대사 엄청난 공적이 있는 사람이지만, 인간인지라 모든 것이 다 옳았던 것은 아니다.
동학이 진압되고 그 잔당들이 일진회를 만들어서 한일합방 서명을 받고 다녔다.
6. 좌파 역사관과 혁명 미화
좌파에서는 동학, 3.1, 4.19, 518, 6월, 촛불광란까지 역사적 그들의 정통성 계보가 이어진다고 주장하고 이걸 혁명이라고 미화시키고 있다.
오죽하면 조선시대 있었던 일을 대한민국 정부에서 동학 피해자 보상을 해준다고 법을 만들었을 정도.
실제로 전주에서는 동학 후손들에게 보상금을 주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황당한 코메디 같은 일이다.
사실 헌법에서는 특권층을 금지한다.
유공자라도 본인이나 그 자식대까지만 혜택이 주어진다. 오직 독립 유공자에게만 손자에게 까지 지급이 되는데 그건 나라가 없어진 특수상황이고, 동학이면 이미 거의 100년 더 된 일을 갖고(그것도 대한민국이 아닌 조선시대 일로) 그 자손에게 돈을 준다는 건 도저히 형평성이나 말이 안돼는 것이다.
그래서 임진왜란 유공자도 보상해야 한다는 웃스개 소리도 나온다. 우스개 소리도 아닌게 사실 임진왜란 유공자나 동학난 유공자나 논리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7. 문재인 정권의 동학 유공자 보상 논란
문재인 정권은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항일 의병투쟁과 3·1운동으로 이어졌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민주공화국의 근간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전남일보 권순택 논설은 동학농민혁명이 항일 의병투쟁과 독립운동,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동학농민군의 폐정개혁과 집강소가 오늘날 민생자치와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후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정읍시의 유족 수당 지급을 소개한 뒤, 이를 비판하는 보수 진영을 역사의식이 부족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접기·펼치기를 눌러 주세요. |
|---|
지난 12일 전주에서 열린 ‘농정 틀 전환을 위한 보고대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정신과 뿌리는 농어촌에 있다”면서 “전라북도에서 시작한 동학농민혁명은 농민 스스로 일어나 나라를 개혁하고자 했고 그 정신이 의병활동과 3.1독립운동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민주공화국의 근간이 되었다”고 역설했다. 즉 농학농민혁명 정신이 항일 의병투쟁과 독립운동으로 계승되었고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세우는 초석이 되었다는 대통령의 확언이다. 때마침 정읍시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내년부터 월 10만 원씩 유족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정읍시의 유족 수당 지급은 자치단체로서는 전국 최초이며 동학농민혁명 발상지로서 의미가 크다. 지급 대상은 정읍시에 주민 등록이 돼 있고 1년 이상 거주한 동학운동 참여자의 자녀·손자녀·증손 자녀로 현재 90여 명 정도다. 정읍시는 동학농민혁명 유족 발굴작업을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4년부터 시작해왔다. 당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동학 유족 발굴에 힘써왔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을 통해 유족 신청이 들어오면 심의위원회에서 동학운동 참여 일시와 직업, 참여 지역과 구체적 활동 등을 심사해서 최종 확정된 유족에게 통지서를 보낸다. 이렇게 해서 현재까지 전국에 1만1222명이 등재됐다. 정읍시에는 현재 고손자녀까지 포함하면 156명이 거주 중이지만 고손자녀들이 아직 어린 점을 감안해 증손자녀 93명에게만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 야당과 보수매체에서 유족 수당 지급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임진왜란 피해자도 보상해야 하는 것 아니냐, 좌파 운동권이 지역 정치인과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비판한다. 한 자유한국당 의원은 SNS를 통해 “문재인 정권 조금만 더 있으면 빙하기 시대 맘모스 기습 사건 피해자 유족 수당도 지급할 기세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역사의식의 부재가 아닐 수 없다. 보국안민(輔國安民)을 기치로 반봉건·반외세를 부르짖으며 폭정에 항거한 수십만의 농민혁명군을 폄훼하는 행태는 용납될 수 없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동학농민군이 제시한 폐정개혁과 집강소는 오늘날 민생자치, 민주화운동의 뿌리가 되었다. 죽음으로써 시대의 변혁을 이끈 수십만 명에 달하는 동학농민군과 그 후손들을 더는 욕되게 해선 안 된다. |
8. 각주
- ↑ 옛날 교과서에서는 동학의 난으로 불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