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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
최근 수정 : 2019년 7월 26일 (금) 19:38

그리스어: διασπορά

개요

디아스포라는 바빌론 유수에서 유래된 말로, 민족 대이동을 말한다. 그리스어 어원은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 을 뜻하고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든지 타의적이든지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한자어로는 파종(播種) 또는 이산(離散)이라고도 한다. 유목과는 다르며, 난민 집단 형성과는 관련되어 있다. 난민들은 새로운 땅에 계속 정착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나, 디아스포라란 낱말은 이와 달리 본토를 떠나 항구적으로 나라 밖에 자리잡은 집단에만 쓴다. 난민 외에도 노동자, 상인, 제국의 관료로서 이주한 사례도 디아스포라에 해당한다.

유래와 의미변화

디아스포라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부분은 신명기 28:25의 추방에 대한 내용인 "그대가 이 땅의 모든 왕국에 흩어지고"이다. 히브리어 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기원전 587-586년 바빌로니아인들이 이스라엘에서, 기원후 70년 로마 제국이 유대 지방에서 유대인들을 쫓아내는 부분에서 디아스포라라는 낱말이 쓰여 이 말이 지금의 의미를 얻게 되었다. 그리하여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의 유대인 민족 집단이 해외로 흩어진 역사적 현상과 그들의 문화적 발전 혹은 그들 집단 그 자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아시리아인들이 피정복민에 대해 장래 이들이 자기네 몫의 땅을 요구하지 못하게끔 사민정책(徙民政策)을 펴면서 이 낱말은 용례가 확대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디아스포라란 "뿌려진 것"을 뜻했으며, 해외 식민시로 이주한 중심 도시국가의 시민들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최초의 근대 디아스포라는 1876년의 그리스 디아스포라이다.

영어에서 디아스포라란 낱말은 1950년대 중반부터 널리 쓰이게 되어, 상당수의 인구 집단이 다른 특정 국가나 지역으로 쫓겨나 오래 살게 되는 데에도 디아스포라라는 말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디아스포라' 가 가지는 의미의 범위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어왔다. 예를 들어, 윌리엄 사프란(William Safran)은 디아스포라와 이주 공동체를 구별하고자 했다. 그는 디아스포라를 구성원들이 특정한 조건을 공유하는, 고향을 떠난 소수 공동체로 정의했다. 사프란이 주장한,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특정한 조건' 은 첫째로 구성원들이나 구성원들의 조상이 원래 살던 본원지에서 두개 이상의 주변지역이나 외국으로 흩어지고, 둘째로 본원지에 대한 집합적인 기억과 신화를 보유하며, 셋째로 그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아 사회에서 소외되어 있다고 느끼고, 넷째로 그들의 본원지를 조건이 만족되면 되돌아 가야할 진정한 고향으로 여기며, 다섯째로 집단적으로 본원지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본원지를 유지하거나 복구하는데 힘써야 한다고 믿으며, 여섯째로 그들의 본원지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민족적 공동체 의식과 단결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다.

로빈 코헨(Robin Cohen)은 디아스포라를 피해자, 노동, 통상, 제국, 문화 디아스포라로 유형화하였다. 또한, 코헨은 사프란이 주장한 디아스포라의 여섯가지 조건을 수정, 확장하여 제시하였다.

디아스포라의 사례

유대인

기원전 722년에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멸망한 뒤 기원전 587년 무렵에 유다 왕국도 신 바빌로니아에 멸망하여, 주민 일부가 신 바빌로니아의 바빌론에 강제로 잡혀갔다. 이 사건을 바빌론 유수라고 하며, 이 사건을 계기로 신 바빌로니아에 유대인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기원전 538년에는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키루스 2세가 신 바빌로니아를 격파한 뒤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에 따라 바빌론의 유대인 중 일부는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였고 일부는 바빌론에 남아 공동체를 유지하였다.

기원후 70년에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로마군에게 패한 유대인들은 유대 지방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이주하여 팔레스타인 출신의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형성되었다. 그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탄압을 받자 15세기 말 동유럽 등지로 이주하였다. 한편 20세기에 흔히 나치당으로 잘 알려진 민족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이 독일에서 권력을 얻고 반유대정책을 펼치자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를 택하였고 이에 따라 문화적, 종교적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유럽에서 아메리카 등지로 확장되었다.

그리스인

그리스인이 세계의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례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있어 왔다. 현대에도 미국 등지에 디아스포라의 중심지가 있다.

집시

인도 북부지역에서 기원한 민족인 집시(Gypsy)는 꾸준한 이주를 통해 11세기에 페르시아에, 14세기 초에는 유럽에 노예로서 공급되었다. 이들은 로마니어를 사용하며 고유 언어와 문화를 보존하였다. 이로써 이들은 대개 떠돌아 다니는 생활을 하면서도 공동체를 유지해 나갔다. 그러나 이들은 박해를 받는 경우가 많았으며, 여러 국가로부터 추방당하기도 하였다.

아일랜드인

19세기에 아일랜드인은 영국,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메리카 등지로 대규모 이주를 하였다. 이주의 규모는 당시 아일랜드 인구의 45% 에서 85% 사이로 추산된다. 이주의 원인은 아일랜드 대기근이 자주 거론된다. 아일랜드 대기근 외에도 종교적 차별, 산업 약화, 강제퇴거 등을 디아스포라의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아프리카 흑인

노예 무역은 자주 노예들을 먼 곳까지 이동시켰다. 그 중에서도 16세기부터 본격화된 대서양 노예 무역은 중서부 아프리카 흑인 원주민을 대규모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시켰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인구가 유럽인들의 전염병으로 심각하게 줄고, 유럽 세계에서 설탕과 담배등 상품작물의 수요가 늘자 흑인들의 강제 이주가 더 늘어났다.

한국인

미국, 일본, 러시아, 중앙아시아, 중국, 캐나다 등지에 한국인 공동체가 있다.

교역 디아스포라

종교와 상업의 확산은 교역망을 발달시켜 대규모 영구 이주를 늘렸다. 7세기 이후 이슬람 상인들이 바닷길을 통해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와 교역을 하면서 무역로의 주요 거점에는 이슬람 공동체가 생겨나 이들 거점을 중심으로 디아스포라가 생겨났다. 예를 들어 동남아시아의 믈라카의 경우 한때 인도 출신 이주민들이 사는 작은 마을에 불과했으나, 무역의 발전으로 13세기 무렵 거대한 이슬람 상인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아르메니아 상인들도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교역 연결망을 연결하면서 교역 디아스포라를 형성했다.

디아스포라의 영향

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낙후되었거나 경제적 위기를 맞이하였을 때, 자국 출신의 디아스포라에 경제적 지원을 받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과 인도는 경제적 위기를 맞았을 때 디아스포라 채권을 발행하여 도움을 받았다. 2011년에는 재정 위기를 맞은 그리스 정부도 디아스포라 채권을 발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관련 항목

시오니즘
유대인 디아스포라
그리스 디아스포라
한국인 디아스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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