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대한민국에는 북한이 남침을 위해 판 군사용 땅굴이 있다. 학교 등에서 판문점을 방문할 때 반드시 들렀다 가는 코스.

현재까지 발견된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은 총 4개이다. 그 중 3개는 관광 명소가되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구경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북한군이 열심히 팔 때마다 한국에서 관광명소가 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셈.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상품 중 하나다.

국방부 공식 상황

대한민국 정부도 공식적으로 북한의 대남 땅굴이 더 존재할 것으로 생각은 하고 있다.

1998년에는 남침용 땅굴 징후가 있는 21곳 가운데 개연성이 높은 7곳(서부전선 5곳, 동부전선 2곳)에 대해 시추작업을 벌인 바 있다. 그러나 추가적인 땅굴을 발견하지는 못했고, 2000년 이후 북한 귀순자로부터 남침용 땅굴에 대한 22건의 첩보를 입수해 14곳에 대한 탐사작업을 벌였으나 땅굴을 발견하지 못했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도 4∼5차례 땅굴 탐사작업을 벌였으나, 역시 확인하지 못했다.

이미 발견된 땅굴을 은폐하거나 수십개의 장거리 땅굴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으나, 최전방 지역에 파놓은 땅굴은 수개 이상이 있을 것으로 본다는 것.

땅굴을 발견하기가 힘든 이유는 북한이 1970년대에 땅굴을 파놓았고 탐사작업에 대응해 매립 등 역대책을 시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제1군사령관 시절 제4땅굴을 직접 발견한 18대 국회의원 이진삼은 2009년 국정감사에서 한민구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20년 동안 왜 발견하지 못하냐고 말하며, 직접 땅굴팀에 복무할 의향도 있다고 말했다.

제4땅굴이 확인되기 하루 전인 1990년 3월 2일, 이상훈 당시 국방부장관은 국회 본회의(임시회)에서 땅굴 탐사 작업은 계속 진행중이라며 북한의 남침 땅굴은 20개 이상이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10월 30일 국방부 정례 브리핑에서도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국방백서를 통해 전방 지역에 20개 정도의 땅굴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이를 재확인했다.

육군에서는 지금도 매년 병사들을 차출해 DMZ에서 땅굴 조사작업을 벌이고 있다. 전방사단에서 복무한다면 착출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공병, 수색이라면 더더욱.

수방사 제1113공병단 시추대대는 공식 임무 중 하나가 땅굴 찾는 것이다.

현지 부대의 간부가 하는 말에 따르면 조사지에 천연 동굴과 공동이 워낙 많아서 땅굴인 줄 알고 계속 파보니 그냥 공동이더라.. 하는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

제1땅굴

1974년 11월 5일. 대한민국 육군 제25보병사단 담당 구역인 연천군 고랑포에서 동북방 8km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이 첫 번째 땅굴은 너비 90cm에 높이 1.2m, 깊이는 잔디가 죽지 않을 정도인 250cm에서 450cm[* [[1]] ],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 땅굴의 위치는 서울에서 불과 65km 거리에 위치해, 1시간에 1개 연대 이상의 무장병력이 통과할 수 있고 궤도차를 이용하면 중화기와 포신(砲身)도 운반할 수 있는 규모의 땅굴이다.

땅굴 발견 후 15일째인 11월 20일 한국 육군·해병대 2명과 미 육군·해군 6명 등 8명으로 편성된 공동 수색조가 땅굴의 구조와 제원을 정밀하게 조사하기 위해 땅굴 안에서 수색작전을 전개하던 중 군사분계선 남쪽 300m 지점에 이르렀을 때 북한군이 매설한 부비트랩을 건드려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폭발로 작업 중이던 우리 해병대 소령과 미 해군 장교 로버트 맥퀸 벨린저(Robert MacQueen Ballinger) 중령이 사망했고, 미 육군 5명과 한국 육군 1명 총 6명이 부상당했다.


휴전선 남방 한계선을 불과 800m 남겨놓은 완전 최전선에 위치하는 뿐만 아니라 다른 땅꿀과는 달리 심도나 얕고 높이가 1m 내외로 안보관광지로 개발하기에는 안전성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공식 발견된 땅굴들 중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

* 육군중사 구정섭 - 군사분계선 남측을 순찰하던 중 지표면에서 증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육군 일병 이상록이 발견했고, 이에 구정섭 중사가 이상이 있음을 직감하고[* 구정섭 중사는 월남 파병 경험이 있어 직감적으로 땅굴임을 의심했다고 한다.] 굴토 작업을 명령했다. 이에 북한측 초소에서 약 300여발의 기관총 사격을 가해왔으며, 아군 측도 응사하면서 약 1시간 15분 동안 교전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아군 육군 병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했으며, 구정섭 중사에게 을지무공훈장, 이상록 일병에게 충무무공훈장, 분대원 7명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고 1계급 특진 등의 포상이 주어졌다.

당시 노획된 장비들을 보면 먹다 만 밥과 반찬이 그대로 든 반합도 있다. 지표면과 워낙 가까워서 사람이 삽으로만 파도 도달할수 있는 깊이였던지라 아무래도 급하게 도망친 것으로 보인다. 전선이라던지 갱도차와 레일 또한 그대로 두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