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n Schroif (1915년 2월 22일 ~ 1979년 8월 16일)

개요

마르틴 슈로이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 소속의 전차 슈퍼 에이스들인 쿠르트 크니스펠, 오토 카리우스, 요하네스 뵐터, 미하엘 비트만 등과 더불어 적 전차를 가장 많이 격파했던 최상위 슈퍼 전차 에이스들 중 한 명이자 SS 무장친위대 티거 에이스이다. 독일 연방군 육군 대령 볼프강 슈나이더가 저술한 학술자료들에 따르면 마르틴 슈로이프는 최대 161대의 적 전차를 격파했는데 이는 나치 독일군 전체의 전차 격파 에이스 순위에서는 2위이며, SS에서 1위이다. 대전차포까지 포함했을 때는 전차 138대, 대전차포 132문을 격파한 SS 대위(최상급돌격지도자) 미하엘 비트만이 독일군 전체 1위이다. 그러나 다른 독일 전차 에이스들과는 다르게 마르틴 슈로이프의 전적은 161대 미만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생애

마르틴 슈로이프는 1915년 2월 22일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최서단 국경도시 아헨(Aachen)에서 동쪽으로 약 5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작은 도시 스톨베르크(Stolberg)에 속한 근방의 작은 마을 그레제니히(Gressenich)에서 태어났다.

1936년부터 그는 SS 병사 계급, 개인 SS 번호 287 993으로 SS Deutschland 표준에서 복무했다. 1939년 9월에 그는 SS 하사(Unterscharführer) 계급으로 승진했다. 1941년 7월부터 SS 상사(Oberscharführer) 계급으로 '베스트란트' 연대의 오토바이 부대를 지휘했다. 1944년 3월, 그는 소위(Untersturmführer) 계급으로 제102SS중전차대대(나중에 제502로 개명)에 입대하여 연대 장교 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1943년 여름 초부터 이 부대의 일원이었으며 제2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의 중전차중대의 일원으로 성채 작전에서 티거 전차장으로 일명 쿠르스크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그는 자신이 조우했다고 기록된 대부분의 소련군 전차를 격파했다.

102중전차대대 2중대의 일원으로 그는 "Tiger"No. 241의 사령관이었으며 영미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방어하기 위한 작전에 참가하여 14대의 미군 전차를 격파했다. 마르틴 슈로이프는 1944년 6월 8일 상관인 제2중대장의 전사 후 7월 15일까지 중대를 임시로 지휘하다가 새로 임명된 대대장에게 지휘를 받았는데 사이가 원만하지 않았고, 이러한 여러 혼란 때문에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을 서훈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르틴 슈로이프는 약 100대의 전차를 격파한 전차 에이스 14명 중 하나인 빌리 페이와도 같은 부대에서 복무한 적이 있는데, 이 부대는 1943년 4월 창설된 제2SS기갑사단 '다스 라이히' 소속의 티거 중대에서 출발하여 제102SS중전차대대로 알려졌으며 서방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방어하는데 급파되어 캉 부근에서 격전을 펼치며 뛰어난 전적을 기록하는 등 서부전선에서 연합군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 부대가 되었다. 그러나 노르망디 전투에서 격렬한 퇴각전을 치르다가 해당 전투 종료 시점에는 거의 대부분의 차량을 연료 부족, 고장, 교량 붕괴 등으로 손실하였다.

이 부대는 1944년 말 6호 전차 티거 E형의 후속작인 최신예 중전차 티거 II를 지급받고 제502SS중전차대대로 재편되어 동부전선으로 복귀하여 격전을 치른다. 그러나 1945년 4월 중 할베 전투 당시 거듭된 소련군의 물량 공세에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할베 포켓에 고립되고 만다. 그러나 제502SS중전차대대는 할베 포켓에서 돌파를 시도하였고 소수의 티거 II 차량들이 돌파에 성공하여 이후 다른 부대들이 '본대를 잃은 제502SS중전차대대의 티거 II가 4월 말 우리 부대에 합류했다'는 기록들을 남겼다. 그러나 이들 역시 결국 극심하게 소모되어 수명이 다 되어버린 전차를 버릴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엘베 강을 도강하여 소련군 대신 미군에 투항했다.

종전 후

1978년에 그는 노르망디에서의 군사 작전에 관한 책의 저자인 J. J. Howe 소령을 만나기 위해 영국에 도착했다. 마르틴 슈로이프는 그의 저서 Operation Bluecoat와 Hill 112 모두에서 언급된다.

마르틴 슈로이프는 1979년 8월 16일에 64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는데, 평소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전적에 대한 논란

노르망디 전투 말엽 마르틴 슈로이프가 소속된 부대의 지휘를 새로 맡게 된 새 대대장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을 서훈하는 데 장애 요소가 되었으며, 수훈에는 실패하였다. 독일 국방군 부사관 쿠르트 크니스펠이 포수 시절 격파한 전차들까지 합하면 독일군 전체 1위였으나 전쟁범죄에 반대하여 상부 뿐만 아니라 나치당과의 사이가 원만하지 않아 기사십자 철십자 훈장을 서훈하지 못한 이유와 비슷하다. 또한 계급이 대위급이었던 다른 나치 독일군의 전차 에이스들과는 다르게 크니스펠은 최종 계급이 기갑상사에 불과했고 슈로이프 역시 SS 소위에 불과했다는 점 역시 이를 증명하는 마이너스 요소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쿠르트 크니스펠은 독일 국방군 소속이었기 때문에 공식 전차격파기록 168대, 비공식 격파기록 196대라는 대부분의 전적이 전후에도 인정된 반면 마르틴 슈로이프는 독일군 전체 1위인 쿠르트 크니스펠에게 전적이 밀려 유명하지도 못했으며 SS 소속이었기 때문에 전후 독일 연방군의 정치적인 이해관계에 따른 결정으로 형식적인 SS 전과 말소를 진행함에 따라 마르틴 슈로이프의 전적은 비밀이 되었으나,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독일 연방군 대령 볼프강 슈나이더가 진행한 티거의 전투 연구에서 마르틴 슈로이프가 161대의 전차를 격파하였다는 계산이 나왔으며 볼프강 슈나이더의 저서들에 저술되어 출판되었다. 그러나 2023년 현재까지도 독일 연방군의 보안 방침상 SS 관련 자료에 대한 외부로의 추가적인 공개는 꺼리고 있기 때문에 역사학계의 모든 논란을 잠재울 추가적인 완벽한 검증을 위해서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Tigers in Normandy. Wolfgang Schneider. Stackpole Books, 320 pp.

Hill 112: Cornerstone of the Normandy Campaign. Joe J. How. J.J. Fedorowicz, 2004 — History — 198 pp.

Tigers in Combat: Volume 2. Wolfgang Schneider. Stackpole Books.

Armor battles of the Waffen-SS, 1943-45 By Will Fey, Henri Henschler. Stackpole Books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