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자 | |
기본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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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기원전 372년 |
사망일 |
기원전 289년 (향년 83세) |
학문적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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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파 또는 전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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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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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활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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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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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받음 |
자기 이후의 동양철학 전체 |
1. 개요
맹자 (孟子, 기원전 372년~기원전 289년?)은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다. 맹자는 공자의 제자로 그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유교에서는 거의 공자 다음가는 위상을 가졌다. 본래 이름은 맹가다. 참고로 공자의 이름은 공구다.
2. 상세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말로 많이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어린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세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맹자는 성선설을 주장하였는데 인간의 심성은 태어나면서 부터 선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라는 네 가지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수양하면 인(仁)·의(義)·예(禮)·지(智)의 덕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혜왕[1]과의 대담이 유명하다.
앙혜왕이 맹자를 만났을때 양혜왕은 맹자에게 귀공은 이 나라를 어떻게 이롭게 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묻자 맹자는 왕께서는 왜 이로움을 말하십니까?
왕께서도 사사로운 이로움을 추구하시면 나라가 개판됩니다.
왕께서는 이로움보다는 인과 의를 구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했다.
유교에서는 사사로운 이득을 금기시 하고, 의로움이나 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봤다. 맹자입장에서는 일반 백성들에서 부터 권력의 정점인 왕까지 사사로운 이득을 모두 추구하면 개판이 된다고 봤다.
물론 당시는 전쟁으로 날을 새우며 국가별로 총력전을 벌이던 전국시대였기에 맹자의 이상주의 같은 이야기는 위정자들에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다.
유교가 그나마 국가의 이념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건 통일왕조로 전란이 끝난 한나라 때 부터였다.
난세에서 전쟁으로 백성을 짜내서 평정을 해야 하는 시기와, 난세를 종식하고 평화적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 시대의 통치 질서는 다를 것이다.
말위에서 천하를 얻을 수는 있지만, 말위에서 천하를 통치할 순 없는 법이다.
전국을 통일하고도, 그전에 전국시대 진나라의 법가 질서를 강요하다가 통일왕조 진나라는 15년만에 망했다.
명태조 홍무제 주원장은 맹자를 읽다가 분노해서[2] 맹자의 특정기록을 삭제하도록 시켰다.
맹자는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고, 힘으로 억압해서 다스리는 건 패도정치로 지양해야 하며, 인과 백성의 생활의 안정을 추구하는 왕도정치를 이상적으로 보았으며,
조선에서도 나름 왕도정치를 이념으로 삼았는데, 쓸데없이 토목공사 같은 일을 벌려서 백성을 힘들지 않게 하며 왕 개인도 인격을 고양해서 인의로 다스려야 한다는 식이다.
왕도정치를 추구한다면서 조선의 위정자들은 실질적으로 백성의 삶을 개선하는 노력은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
사실 백성은 어느정도 가난해야 통치하기 편한 측면이 있기도 하니 말이다.
맹자는 신하가 왕에게 간하여도 듣지 않고, 왕이 폭군이라면 폭군은 군주가 아니며 그런 왕은 갈아치워도 된다라고 주장했는데,
민본정치, 왕도정치, 폭군은 갈아치워도 된다는 혁명 부분이 주원장에 의해 삭제되었다.
3. 함께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