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유럽인들은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에 관해 알지 못했으나, 15세기 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인도로 향하는 항로를 찾던 도중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였고. 이후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 각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일찍부터 식민지 개척을 시작한 스페인포르투갈은 자원이 풍부하고 인구가 많던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 지역을 차지했다. 하지만 뒤늦게 식민지 개척을 시작한 영국은 남아메리카와 비교해 금, 은 등의 자원도 없고 척박한 북아메리카 지역을 식민지로 차지했다. 정확히는 이 지역은 현재 미국캐나다대서양 연안 지역이다.

제임스 타운

1614년 경 제임스타운의 모습

스페인포르투갈아메리카를 발견한지 백 년가량 지난 1607년에서야 영국인들은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였는데, 이때 건설한 식민지가 바로 '제임스 타운(Jamestown)'이다. 마을 이름은 영국 왕인 제임스 1세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현 버지니아 지방에 있었는데, 제임스 타운의 역사를 살펴보면 영국인들의 식민지 개척과정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국에서 건너가 제임스타운을 세운 143명중에 절반이 첫해 겨울에 배고픔과 질병으로 사망[1]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때부터 영국 이민자들은 남아메리카에 존재하는 귀금속 등을 북아메리카에서도 찾아 대박을 터뜨리려는 헛된 희망을 버리고, 농사를 시작했다. 농사도 쉽지 않았다. 처음에 이들은 후에 공산주의 사회에서 실시했던 집단노동제 등을 실시했는데,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기만 했다. 이리하여 성인남성 1인당 3에이커 가량의 토지를 분배[2]하여, 알아서 농사를 짓도록 했고, 공동체의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성인 남성 모두가 선거권을 행사하는 의회에서 결정하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미국자본주의, 민주주의 체제의 시작이었는데, 이렇게 식민지 시절부터 생긴 제도의 차이로 인해 훗날 미국은 부국이 된 반면, 남아메리카의 스페인, 포르투갈 식민지에서 시행된 권위주의 체제로 남아메리카는 아직까지 빈국에 머물러 있다는 분석[3]이 있다.

메이플라워호

윌리엄 할셀, 플리머스 항의 메이플라워 호, 1882년 작

버지니아의 제임스타운 건설 이후인 1620년에는 영국 정부의 국교회 강요에 반대하는 청교도 102명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메사추세츠 주 플리머스에 또 하나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이들의 강한 기독교적 신념 또한 훗날 미국인들의 기독교적인 문화에 대한 기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후 1773년에는 미국 독립에 도화선을 붙인 보스턴 차 사건이 있었다.

독립과 건국

미국 독립 전쟁을 통해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초대 대통령에는 전쟁영웅인 조지 워싱턴이 당선되었고 건국의 아버지들이 다수 포함된 조지 워싱턴 내각이 구성되었다.

남북전쟁

노예제폐지여부와 연방(state)사이의 관계 등등의 쟁점으로 내전인 미국 남북전쟁에 휩쓸리게 되었다가 북부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2차대전 이후

  1. 앙드레 모루아, 미국사. 김영사, 2015, p52
  2. 앙드레 모루아, 미국사. 김영사, 2015, p54
  3.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로빈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시공사, 2012, p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