閔妃
명성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중세 한국어: 명셩ᄐᆡ황후 민시
(1851년 11월 17일 ~ 1895년 10월 8일)

개요

민비는 조선의 26대 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高宗)의 왕비이자 추존황후이다.

인현왕후의 생부인 민유중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사도시 첨정으로 사후 증 의정부영의정, 여성부원군에 추봉된 민치록이고, 어머니는 감고당 한산 이씨이다. 아명은 자영(玆暎), 본관은 여흥. 출신지는 경기 여흥이며, 여주 나들목 인근에 생가 공원이 있다.

흥선대원군고종의 왕비를 고를 때 당시 외척 가문의 정치질에 진저리를 내던 시기인지라 아무 연고도 없는 민비를 선택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강화시켜 나갈 생각이었다.

당시 민비는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성장하였다. 그 덕분에 민비는 천자문도 모르는 상태에서 고종의 비로 선택되어진 것이다. 그녀의 친정 식구들도 변변치 못해 외척의 정치질이 없다고 판단하였다.

그런 민비였지만 방구석에서 천자문을 익히고 사서삼경등을 깨우치면서 정치를 알게되었다. 흥선대원군의 대리청정이 끝났음에도 고종이 왕권을 가져올 상황이 되지않자 1873년 11월 고종을 앞장세워 친정을 선포케 하고 흥선대원군을 강제로 실각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후 민비는 정치일선에 등장하는게 되었다.

고종은 자신이 쓴 《명성황후 행록》에서 민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있다.

내가 근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으면 대책을 세워 풀어 주었다. 특히 외국과 교섭하는 문제에서 먼 나라를 끌어들여 가까운 나라를 견제하길 권하니 다른 나라에서는 모두 감복했다. 황후가 일찍이 나에게 말한 것들이 지나고 보면 모두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황후의 통달한 지식과 멀리 내다보는 안목, 앞날에 대한 헤아림은 고금에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탁월하다. 훌륭한 공덕으로 나를 잘 도와주었기 때문에 내가 정사를 돌볼 수가 있었다.

조선의 서태후에 해당한다고 본다. 민씨 세도정치가 이어졌고, 여흥민씨의 인사편중은 안동김씨나 풍양조씨보다 더 심했다.

일본에 의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해서 미화 되었을뿐. 나라를 망쳤다고 볼 수 있다. 외교도 이상하게 했지만, 무당에게 의지하고 사치를 하고 굿을 하는데 돈을 탕진한다던지. 고종 흥선대원군 민비 셋다 좋은 평가를 할 수가 없다. kbs 드라마 명성황후나 뮤지컬 같은 경우는 엄청난 미화 역사왜곡물이다.

군인대우를 개차반을 해서 성난 군인들이 민비 잡겠다고 들고 일어나자 도망간 것도 왜곡해서 미화할 정도니

민비가 죽어서 의병이 일어났다는데 사실 민비와 민씨들이 워낙 해먹은 게 많아서 민비 살아 있을적에도 민심이 좋지 못했다. 매천야록인가 당대에 가까운 기록에도 잘 죽었다는 말까지 나올정도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