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연예인으로서는 가장 성공한 사람의 하나로, 가수이자, 작곡가, 연기자 등의 다방면의 능력으로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로서, 클린턴과 매우 가까웠고, 드러나지 않은 그녀의 생활은 위선으로 가득차있다[1].

가수 바브라 스트라이젠드(Barbara Streisand)는 민주당의 열렬한 지지자이고 기금모금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며 환경보호에도 앞장서왔다. 그녀는 자신의 웹사이트나 잡지에 기고한 글에서, 지구를 살리려면 미국인들이 과잉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휘발유가 많이 드는 SUV를 금지하고 집의 실내온도를 좀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지금은 헤어진 남편관 함께 살던 캘리포니아주 남부에 있는 저택은 단지 안에 집이 다섯 채가 있었고, 12,000평방피트 크기의 마구간[2]에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그녀의 저택에는 드넓은 잔디가 펼쳐져 있는데 수도세가 한 해에 22,000달러에 달했다. 캘리포니아는 툭하면 물 부족 위기를 겪는 지역이다. 이런 인간이 평범한 미국인에게 과잉소비를 자제하라고 훈계할 자격이 있는가?[3] 

엔테테이너로서의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가수이며 연기자이자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녀는 또한 유대인이며, 유대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놓고 활동한 몇 안 되는 연예인이다. 이는 사실상 스티븐 스필버그 이전에는 유대인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매우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영화에도 다양하게 출연하였다. 영화 '퍼니걸'을 시작으로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으며, 특히 로버트 레드포드와 '추억(We way we were)' 했고 스타탄생(A Star Is Born)에서 부른 Evergreen은 자기가 작곡한 곡이었다. 그녀는 영화 퍼니걸은 통해서 196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1968년 여우 주연상은 드물게도 2명이 받았는데 다른 한명은 캐더린 햅번이었다. 캐더린 햅번은 1967년에도 수상해서 2년 연속 수상했다. 이러한 배우와 동등한 위치에서 상을 받았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또한 1973년 곡 에버그린 역시 아카데미 오리지날 송 상을 받았으며[4] 빌보드 차트에서 3주간 1위를 했다. 그녀는 이외에도 19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앨범차트 1위를 차지한 적이 있는 가수로도 전설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추억"이나, "스타탄생"을 모르면 잘 알려진 배우가 아닐 수도 있고, 특유의 매부리코 때문에 한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매력적인 얼굴은 아닐 수 있지만 그녀는 미국에서는 매우 대단한 가수이고, 연기자이고 엔터테이너이다.


민주당 지지자로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노벨상을 수상한 사람의 일부가 비과학적인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노벨병이 있듯이, 스트라이샌드도 위선적인 면이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다. 그녀의 정치성향이 굉장히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빌 클린턴(1993~2001 미국 대통령)을 위해서 수백만 달러의 기금을 모집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백악관의 링컨 침실에서 하루밤을 머물렀다[5]. 이 백악관의 3층의 동쪽 끝의 아래쪽에 있는 링컨 침실은 말 그대로 링컨이 사용한 침대와 책상이 있는 방으로 링컨은 이 방에서 게터즈버그 연설의 원본을 작성한 곳으로 보통 대통령의 사적인 공간이라서 일반인에게 내주지 않는 곳이다. 그녀는 Barbra Streisand Foundation를 통해서 정말로 막대한 기부를 한다. 그만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한 사람이다. 그녀는 골수 민주당 지지자이며, 현재 트럼프 반대진영의 대표적인 연예인이다. 그녀가 2017년 극좌언론인 허핑턴포스트 US에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 발표한 글 '개념 없고, 품위 없고, 생각 없고, 인정 없는'은 우리말로 번역되서 올라와 있다[6]. 그녀의 기사를 읽어보면 그녀가 힐러리 클린턴의 비리에는 한없이 너그럽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한 없이 가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군다나 그녀의 주장의 대부분은 사실 가짜기사에 근거를 두고 있고 그녀의 주장도 사실 그녀의 일상생활과 그녀의 지금까지의 삶을 살펴본다면 매우 위선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선적인 성격

그녀가 정치기부금에는 큰 손이었지만 그가 고용한 사람들은 착취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Brad Melzer은 그녀가 그린카드가 없는 멕시코인들 에게 일을 시키면서 시간당 3달러 50센트에 일을 시켰지만 일이 빠르게 끝나지 않자, 그들이 오버타임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은 오버타임이므로 시간당 25센트를 추가로 요청하자, 그들을 모두 해고시키고 다른 사람을 대체했다.

그녀는 항상 노동자의 월급을 올려줘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그녀는 일부 고용자들에게 아예 월급을 주지도 않았다. 정원사가 몇 달치 월급을 받지 못하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게 찾아가서 이에 대해서 불평했지만, 그는 권총으로 위협을 받고 물러나야 했다. 뿐만 아니라 말리부의 그녀의 목장을 수리한 많은 사람들이 돈을 받지 못했으며 이들이 돈을 받기 위해서는 유치권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녀가 지불하지 않은 비용은 사람바다 다르지만 4,500달러에서 5만달러에 이른다. 그녀는 대본 작가에게 돈을 지불하기로 했지만 지불하지 않고 소송이 걸리기도 했다.

그녀는 1969년 퍼니걸이 성공한 이후, LA 타임즈의 컬럼리스트인 Joice Herber는 그녀가 윌리엄 와일러 감독에 대한 disrespect를 인용하면서 "완전한 소녀 괴물(full fledged girl monster)"라고 불렀다고 알려져 있고, 뉴욕 타임즈의 얼 윌슨(Earl Wilson)은 그녀를 나르시스적이고 매우 까다로운 디바(narcissistic, difficult diva)라고 악평했다[7]. 참고로 윌리엄 와일러 감독은 미국 영화계에서 대단히 존경받는 사람으로 퍼니걸의 감독이기도 했지만, 벤허를 비롯한 많은 훌륭한 영화의 감독이었다.

사실 이러한 일들은 헐리우드 영화인에게는 흔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 중에서 노동자 계급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이런 짓을 하는 사람 중에서는 가장 대표적이라고는 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언론의 자유를 지지하고 말로는 이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자신은 거의 지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는 자기와 일하는 사람 모두에게 자신과의 일에 대한 어떠한 비밀도 누설하지 못하게 하는 비밀유지계약을 맺고 일을 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해가 될 수도 있지만, 스스로 언론의 자유를 말하는 사람치고는 매우 이상한 일이라고 전기작가 Anne Edwards가 지적한 바가 있다.

그녀는 또한 독특하게 미국의 애국자 법을 반대한다. 그는 관타나모에 테러리스트로 의심받는 사람들이 갇혀 있다고 비난한다. 그렇게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왜 자신과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는 무시한다.

2004년 Wendell Wall은 그녀의 사진을 찍었다고 구속되었다. 그는 그녀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약 400m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와 전혀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몇 달 간 지내면서 얼굴을 익혀 놓은 사이였다. 그녀와 남편 브롤린이 차를 사려고 하는 순간 그가 사진을 몇장 찍었다. 그리고 그는 이 사진기에서 필름을 빼고 작업하고 집으로 돌아갔는데 집에서 경찰이 기다리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의 보석금은 일반적인 15만이 아니라 백만불로 책정되어 있었다. 전혀 접촉도 없었고 공격적이지도 않은 그 사진사는 3일간 갇혀 있었어야 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스토킹을 했으며, 자신을 물리적으로 위협했다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신고했기 때문이었다. 검사가 이 사건을 맡은 후 그는 Wall이 전과도 없고 그 전에 스토킹을 했다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신고나 불평한 적도 없으며, 불법적으로 뭔가를 한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그를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국 풀어줄 수 밖에 없었다. Wall은 그를 체포한 sheriff 부서를 고발했다. 보통 이러한 사건에는 ACLU같은 단체가 나서서 도와주기 마련인데 이 유명한 사건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스트라이샌드는 ACLU에 막대한 돈을 기부했다. sheriff office에서는 사건을 내사한 후, 이 사건이 재판으로 갈 경우 Wall에게 유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할 경우 약 30만불까지도 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단하에 재판없이 합의해주었다. 이 사건에서 분명한 것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거짓말을 했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월급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그녀는 좌파로서 자본가와 보수주의자들이 매우 이기적인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는 무관심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말은 바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이다. 그녀는 영화인으로서 영화제작회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Barwood Films이다. 그는 독특하게도 미국 영화를 찍으면서 미국에서 찍지 않고 캐나다에서 찍을 뿐만 아니라, 촬영 후 후작업을 주로 캐나다에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The Long Island Incident라는 미국 뉴욕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토론토에서 촬영했으며, 미국 레즈비언 여군의 이야기인 Serving in Silence 는 밴쿠버에서 활영했다. Frankie and Hazel 역시 밴쿠버에서 촬영하고, What make a Family는 토론토에서 촬영했다. 미국 이야기를 캐나다에서 촬영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의 월급이 20~30%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노동자들의 월급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글로벌리스트들의 위선의 한 단면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미국에서 다양한 종류의 세금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러한 탐욕은 미국의 많은 비지니스 사회에서는 일반화되어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녀의 사치스러운 생활은 놀라울 정도라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면서도 1993년 파산직전까지 가게 된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가난한 것처럼 집값을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한다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돈을 매우 쉽게 버는 편이다. 그녀가 자신의 영화로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녀는 가수로서는 매우 유명하고 그녀의 콘서트 입장권은 대략 100만원 정도를 한다. 이 정도의 가격은 그 누구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가격이다. 일부는 그녀의 팬들이 돈 많은 유대인 들이라서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일부는 그녀의 콘서트를 위해서 담보대출을 받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을 비난할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노동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 콘서트 입장권이 너무 비싸서 호주의 Sydney Morning Herald 는 그녀를 Barbra “People Who Love Money” Streisand 라고 불렀다. 당연히 그의 콘서트에는 일반인들은 갈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녀가 노동자들을 위한다지만 그들을 위해서는 사실상 콘서트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하룻밤에 100억원을 벌었다. 참고로 대한민국 아이돌의 콘서트도 비쌀 수 있지만, 대한민국의 콘서트는 대략 수입에 비해 비용이 약 80%~90% 수준으로 사용하지만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그런 화려한 콘서트가 아니다.


세금과 스트라이샌드

그녀는 공화당원과는 달리 부자의 편이 아니며 자신은 세금을 많이 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녀는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 아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그녀가 15백만불의 세금 혜택을 본 사건이다. 그녀는 1990년대에 자신의 말리부의 집을 팔려고 내 놓았다. 당시 1600만불로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이것을 1900만불로 오히려 가격을 올렸다가, 다음에 1190만 달러에 내 놓았지만, 이것도 팔리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그녀는 이 집을 Santa Monica Mountains Conservancy에 기부하고 1500만불의 세금을 면제받았다. 사람들은 1190만불에도 거래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1500만불의 세금을 면제 받았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많았다[8]. 그녀는 자신의 재산의 가격을 적을 때, 1900만불이라고 적었다. 미국 국세청(The Internal Revenue Service)은 이에 대해서 조사를 하기도 했다.


환경보호와 스트라이샌드

스트라이샌드는 마치 자신이 환경론자인 것처럼 여러 곳에서 말했다. 환경 보호 기금( Environmental Defense Fund)에 Streisand Chair on Global Climatic Change를 설립했다. 그리고 자신이 환경보호인자인 것처럼 말한 사례가 많다. 하지만 석유화학업체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 Home-Stake Production Company. 그녀는 2001년 전력이 부족해지자, 대변인을 통해서 에어컨을 사용하지 말고 옷을 건조기가 아닌 밖에서 말리자고 말했다. 그녀는 소문난 에어컨 중독자이다. 한 친구는 리포터에게 그녀는 단 1초도 에어컨 없이는 더운 곳에 있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환경을 말하지만, 그녀는 일반인과 달리 매우 화려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바브라가 마리 앙뚜와네트 처럼 살았다. 그녀는 단지 2명만 살고 있음에도 건물이 5채였다. 이중 하나는 12000평방피트(337평)의 에어컨디션 기능이 있는 창고였다. 이곳에 그녀는 자신의 악기등을 보관했다.

그녀는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사용한다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Williams Companies (석유와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Schlumberger, Patterson Energy (석유 시추), Nabors Industries (offshore oil drilling platforms), British Petroleum, Kinder Morgan Inc. (오일 파이프라인 회사), 및 El Paso Corporation (석탄채굴)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으나, 태양광이나, 수소 관련 개발회사의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군수산업체인 Halliburton을 비롯한 Honeywell 이나 록히드 마틴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주식을 선택한 것이 그냥 우연한 것이 아니다. 그녀는 Fortune지에서 자신은 주식을 매우 심사숙고해서 선택한다고 말한 바가 있다.

해변기록 프로젝트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바브라스트라이샌드와 환경과 관련된 가장 어이없는 사건은 켈리포니아 해안기록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으로 이 사건으로 인하여 스트라이샌드 효과라는 단어까지 생겨났다. 그녀는 2003년 사진가 케네스 아델만(Kenneth Adelman)과 픽토피아닷컴(pictopia.com)에게 5,0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 했다. 이 프로젝트는 아델만이 캘리포니아의 해안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것으로 1,150-마일의 해안선 중 정보가 알려지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군부대(Vandenberg Air Force Base)가 있는 부분만 빼고는 모두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이었다. 그는 해안 사진을 찍기 위해서 헬리콥터를 타고 날아가면서 12만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 결과 스트라이샌드의 어마어마한 Point Dune 저택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녀는 이 사진이 사생활 및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하면서 사진을 내리라고 요구했다. 아델만은 이것이 단지 해안침식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버텼다. 이에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5천만불 손해 배상 소송을 제기했고, 아델만은 타협을 거부했다. 그녀는 이 사진의 해상도가 높아서 자신의 집의 배치도 그녀의 파라솔의 위치, 책상 의자, 그리고 창문, 프렌치 도어, 발코니 등이 나타나며 이것은 땅에서 보면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므로 사생활 침해라고 우겼다.

이에 아델만의 변호인은 아델만은 파파라치가 아니며 이 사진으로 어떠한 이익도 얻지 않았으며, 누구도 스토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불만을 표시한 것이 2003년 2월 이었으며, 이 사건이 알려지자, 캘리포니아 해안기록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일반인들(소송전 조회수가 6회[9])도 사진을 보기 위해서 접속하여 다녀간 사람이 5월말까지 62만명이었다[10][11].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환경단체는 분노했고, 해안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을 개인의 사생활 침해로 방해하려는 사람이 환경론자라고 말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시에라 클럽의 마크 마사라(Mark Massara)가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때 다른 환경단체들은 입을 다둘었다는것이다. 그것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다른 단체에 기부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결국 소송으로 갔으며, Los Angeles Superior Court 의 판사 알란 굿맨은 스트라이샌드의 소송을 기각하고, 스트라이샌드가 아델만의 공공의 이익에 대한 free speech 권리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당연히 아델만의 소송의 비용(17만불)은 모두 스트라이샌드가 부담해야 했다[12].

이 사건으로 스트라이샌드의 위선이 폭로되었으며, 미국의 정보기술(IT) 관련 블로그 '테크더트’의 블로거인 마이크 매스닉은 소셜미디어상에서 특정 뉴스를 삭제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그 뉴스를 더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부르는 현상을‘스트라이샌드 효과’라 이름지었고, 이후 널리 쓰이게 되었다.

흑인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는 말로는 흑인의 인권을 촉구하지만, 그녀의 영화의 대부분에서 스탭들은 특히 제작자나 감독 63명 중에서 흑인은 단 한명이었다. 그 흑인은바로 우피 골드버그로 그녀는 영화 What makes a family에서 제작자로 나온다. 놀라운 것은 흑인에 관한 영화인 City at Peace를 촬영할 때도 관련된 제작자나 감독은 모두 백인이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그녀는 페미니스트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 하나 있다. 여성은 아버지와 같이 오고, 아버지를 꿈꾸고, 보호받고 싶어한다. 비록 나의 페미니스트 입장에서는 사람들은 독립적이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보호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만, 반드시 그렇게 할 필요는 없다. 당신도 알다시피 human factor 라는게 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솔직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위선적이기도 하다. 그는 매우 강하게 생긴 사람을 좋아하며, 그녀의 남편들인 엘리엇 굴드, 존 피터스, 그리고 제임스 브로닌은 모두 강한 남성성을 보이는 사람이다. 그의 사업 관리자도 남성이며, 그는 주로 남성들과 사업을 진행했다.

각주

  1. 아래의 거의 모든 내용은 피터 슈바이처의 Do As I Say, Not As I Do 에서 인용했다.
  2. 원저를 읽어보면 마굿간이 아니라, 음악 악기를 보관하는 창고 같다.
  3. 홍지수, 트럼프를 당선시킨 PC의 정체, 북앤 피플 (2017), pp284-285
  4. https://en.wikipedia.org/wiki/Evergreen_(Love_Theme_from_A_Star_Is_Born)
  5. https://news.joins.com/article/2818845
  6. https://www.huffingtonpost.kr/barbra-streisand/story_b_14279720.html
  7. Hollywood Reborn: Movie Stars of the 1970s, james morrison p.12
  8. http://articles.latimes.com/1994-04-06/local/me-42626_1_barbra-streisand-s-malibu
  9. http://hiupress.hongi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45
  10. http://articles.latimes.com/2003/may/30/local/me-barbra30
  11. https://www.californiacoastline.org/streisand/lawsuit.html
  12. http://hiupress.hongi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