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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드루1세(Pedro I, 1798년 10월 12일 ~ 1834년 9월 24일), 또는 뻬드루4세(Pedro IV)는 포트투갈의 왕족이자 브라질의 황족이다. 1822년 브라질을 건국하고 초대 황제에 즉위했으며, 남미의 창업군주들 중에는 최초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아들이자 차기 황제인 뻬드루2세와 더불어 브라질의 국부 중 하나로 재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포르투갈 시절

1798년 10월 12일, 현왕 주어웅과 경후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학문보다는 병법이나 사냥같은 남성적인 분야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왕실의 교육자들과 어머니인 마리아왕후로부터 탐탁치 않은 시선을 받았다. 원래는 형의 죽음 때문에 포르투갈의 차기 국왕이 될 예정이었지만, 프랑스의 침공으로 당시 포르투갈의 속국이었던 브라질로 피난을 갔다.

브라질 건국

그가 브라질에 있을 동안, 포르투갈의 본국에서는 브라질의 속국으로서의 지위를 낮춰 완전한 속령으로 편입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브라질인들은 반발을 했고, 뻬드루는 브라질인들의 편을 들어 직접 황제를 칭한 후 브라질의 건국 및 제정수립을 선포하고, 자신의 측근인 조제 보니파씨우 지 안드라다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했다.

허나, 갓 독립한 신생국가가 대게 그러했듯이 창업군주 뻬드루의 치세에는 각종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정국이 불안하였다. 제정선포 후에도 포르투갈의 간섭은 지속되었고, 이웃나라 아르헨티나와의 전쟁에서 우루과이를 빼앗겼으며, 제국총회에는 황실의 존재에 비판적인 공화주의자들이 나날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조제 보니파씨우 지 안드라다도 자신에게 등을 돌렸다.

1828년, 당시 포르투갈의 여왕으로 있던 자신의 딸 마리아가 강제로 폐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딸의 왕위를 되찾으러 가기 위해 아들인 뻬드루에게 황위를 물려주고 포르투갈로 떠났다. 딸을 복위시킨 후 1834년 9월 24일 포르투갈의 왕궁에서 단명했으며, 황위에 오른 그의 아들은 브라질의 마지막 황제 뻬드루2세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