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 투항한 직후의 전광(全光) 즉 오성륜(吳成崙).[1][2]

오성륜(吳成崙, 1902[3] ~ 1947 ?)은 공산주의 계열의 항일투사이다. 중국명은 마천일(馬天一)[4]이며,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할 때는 전광(全光)이라는 가명을 썼다. 항일연군에서는 1로군 사령부 군수처장(軍需處長)과 비서처장(秘書處長)을 지냈으며, 같은 1로군 소속이었던 6사장 김일성이나, 북한 김일성의 상관이었다. 1941년 1월 30일 일본군에 투항했다.[5]

생애

國外に於ケル容疑朝鮮人名簿 / 朝鮮總督府警務局 編 京城 : 行政學會, 昭和9[1934] (한국학도서관 - 한국학중앙연구원)

생년

오성륜의 생년을 알만한 당시 기록은 아래 3가지가 보이는데, 약간씩 차이가 있다.

  1. 1922년 3월 상해 거사 당시 매일신보에 23세라 하였다.[6] : 1900년생
  2. 용의조선인명부 p.134에 1898년생으로 나온다.[7]
  3. 1941년 1월 30일 일제에 투항한 후 찍은 사진에 39세로 적혀 있다.[8] : 1902년생

위 3가지 기록 중에서 본인이 직접 진술한 나이로 보이는 3번 기록이 가장 믿을만한 것으로 보인다.

1922년 3월 28일 중국 상해(上海)서 전중(田中)대장[9]에게 폭탄 던진 조선인(朝鮮人) 오성륜(吳成崙, 右, 23세)과 김익상(金益相, 左, 28세). 매일신보(每日申報) 1922년 4월 7일자.[6]

행적

거사 때 발사된 유탄에 맞아 미국인 스나이더 부인이 사망함.[12]
황포탄의거(黃浦灘義擧)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1922년 5월 2일 탈옥하여 도주함.[13]
  • 그 후 독일 등지를 거쳐 소련으로 가서 모스크바 공산대학을 졸업.
  • 중국으로 귀환하여 한동안 김원봉의 의열단에서 활동
  •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1930년 만주의 요녕성(遼寧省) 청원현(淸源縣)에서 공산주의 선전 활동. 당시 그의 처(妻)는 26세의 중국인 두씨(杜氏)라고 함.[14]
  • 1936년 재만한인조국광복회 발기인
발기인은 오성륜(吳成崙), 엄수명(嚴洙明), 이상준(李相俊) 3인이다.
  • 1930년대 후반 전광(全光)이라는 가명으로 만주의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
  • 동북항일연군 1로군 사령부 군수처장(軍需處長)과 비서처장(秘書處長)[15]
  • 일본군의 토벌에 쫓기다 1941년 1월 30일 투항, 귀순함.[5][16]
  • 귀순 후 그의 말년 행적은 분명치 않다.

기사

The China Press의 다나카 저격 사건 기사

1922년 3월 28일 상해에서 일어난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암살기도 사건에 대한 보도가 이튿날 3월 29일자 The China Press 에 실렸다.[17] 이 사건에 관한 가장 자세한 기록으로 보인다.

[아래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영문 기사 한국어 번역문이며, [펼치기]를 택해 볼 수 있다. 부정확한 번역도 보이므로 원문 참조가 필요하다.]

  The China Press 1922년 3월 29일 수요일

일본장군 田中義一 폭탄세례, 광신자들의 표적.

° 한국인 해안에서 광분, 미국여인 살해.
° 일본장군 田中義一 폭탄세례, 광신자들의 표적.
° 총알이 세관의 군중에 날아들다. 외국인 포함 4명 부상.

1922년 3월 28일 오성륜 등의 田中대장 저격 때 유탄에 맞아 피살된 미국인 스나이더(W. J. Snyder) 부인.[12]

인디아나(Indiana)州의 브라질(Brazil)[18]에서 온 스나이더(W. J. Snyder)란 한 외국인 부인이 죽고 톰슨씨(H. A. Thompson)가 중상을 당했으며 한명의 경찰을 포함한 세명의 중국인이 경악스런 총격의 소란속에서 부상당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것은 어제 오후 세관에서 일본 전 국방상인 남작 田中대장을 살해하려고 두명의 한국인이 저지른 것이다.

이 총격은 마닐라의 총독 우드(Wood)를 방문하고 돌아가는 길에 상해에 기착한 田中남작과 그의 참모들이 파인 트리 스테이트(Pine Tree State)호 기선에서 거룻배로 항구에 도착하는 순간 발생하였다. 같은 배에 탓던 스나이더 부인은 남편과 세계여행 중이었으며 이틀간 상해에서 쇼핑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살인자들이 총을 발사 할 때 막 세관검사건물을 나오는 중이었으며 가슴에 세발의 총을 맞았다. 즉시 애스터 하우스(Astor House) 화물트럭으로 병원에 옮겨 응급실로 갔으나 몇분만에 숨지고 말았다. 다른 피해자들은 시내에서 광신자들의 총탄에 부상하였으나 결국 두명을 체포하였다.
경찰에 진술한 바에 따르면 28살의 한국인 金益相과 23살 밖에 안된 吳成崙은 어제 아침 6시에 부두에 나가 거룻배가 도착한 3시 조금 지난 시간까지 시간을 보냈다. 거룻배가 도착하자 해안쪽을 향해 漢口路에서 30~40피트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金은 한손에 폭탄, 한손에는 권총을 들고 부두에 있는 전화박스 뒤에 서 있었다.

폭탄은 불발
세관건물이 열리자 승객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그 곳에 田中남작이 포함되어 있었고 그 때 총격이 발사되었다. 스나이더 부인은 마침 일본인 장군의 엄폐물의 위치에 있게 되었으므로 권총이 발사되자 그녀는 팔을 집고 쓰러졌다. 세번째 총탄을 발사하면서 김익상은 폭탄을 던졌는데 아스팔트에 떨어졌지만 폭발하지는 않았다. 폭탄은 도로를 가로질러 강뚝 제방의 가장자리까지 굴러갔는데 마침 영국 전함 카리슬(Carlisle)호의 승무원이 보고 발로 차서 강물 속으로 넣어버렸다. 金의 진술에 의하면 폭탄을 던진 후에도 田中남작을 향해 두 발을 더 발사했다고 한다. 두 살인자들은 그 후 바로 漢口路를 향해 도망하면서 교차로를 건널때 또 한 발을 발사하였다. 그는 규강(Kiukiang)路를 향해 거리를 질주하다 방향을 바꿔 漢口路로 도망갔다. 四川路에서 군중이 추적하자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였지만 그곳에서 그의 총을 놓칠뻔하고 시크인(Sikh)경찰에 잡힐뻔 하였다.

범인 체포
그의 손에 습관적으로 담배를 쥔채 도망가던 김익상은 규강路로 꺾어졌지만 외국인과 중국인 군중이 그를 추적했다. 그는 四川路 어귀의 파크 유니온(Park Union) 은행에서 갑자기 정지하여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아 중국인 손수레장사의 하복부를 맞혔다. 그리고 나서 四川路로 방향을 바꾸어 남쪽으로 홍콩상해은행 건물까지 뛰었다.
그곳에서 무장하지 않은 중국인경찰이 그를 제지하려 하자 또 발사하여 목을 관통시켰다. 그리고 레이스(Reiss)회사건물로 피신했다가 다른 문을 통해 규강路로 빠져 나왔다. 이때에 톰슨씨가 부상당했다.
추적하는 군중과 합류한 톰슨씨는 범인을 붙잡아서 함께 도로쪽으로 나갔다. 그러자 한국인 범인은 그를 떼어 내려고 총을 발사하자 첫발이 가슴에 맞았다. 범인이 다시 도망가기 전에 미국인증권중개인 호라스 규릭(Horace Gulick)의 머리를 스쳤는데도 불구하고 그를 덮쳐 총을 빼앗았다.
김익상이 쏜 총알이 손을 가까스로 비켜간 다른 외국인은 헤이리 에프 벨(Hayley F. Bell)인데 총알이 코트소매자락을 뚫고 지나갔다. 다른 한발의 총알은 한 중국인의 넙적다리에 맞았고, 또 한발은 중개업자인 리드(H.H. Read) 소유의 조랑말에 맞았다. 범인이 쏜 총탄의 수효는 불확실하지만 범인의 진술은 모두 6발 밖에 쏘지 않았으며 세관에서 쏜 것은 두발뿐이라는 것이다. 범인이 체포될 때 총알이 떨어진 상태였으므로 그는 도망치면서 6번에 걸쳐 쏘았지 않았나 한다. 그 총은 8발이 장착되는 권총이었다. 그렇지만 목격자들에 따르면 그 이상 쏘았다고 말한다.

폭탄재료 발견
경찰은 범인들을 체포하는 즉시 엄중 조사하였으며 프랑스조계내에 있는 그들의 집도 수색하였다. 유젠 바르路 18번지에 있는 그들의 집을 수색한 결과, 중요한 것은 찾지 못했지만 쓰레기통에서 김익상이 폭탄에 사용했다고 진술한 폭발 뇌관과 다수의 조그만 뇌관을 찾아내었다. 두명 모두 한국혁명당(Korean Revolutionary Party) 소속임을 시인했으며 그들은 체포된 이후 정상을 되찾았지만 그들 행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끼지 않았다.
金은 『나는 단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할 뿐이다』라고 했으며 반면에 吳는 田中 남작의 암살 계획에 대해 경찰에 설명하기를 『우리의 조국이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우리의 손으로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했다.

북경에서의 모의
그들의 상해에서의 행동은 진술과 모순되는데 김익상은 북경에서 모의한 후 상해에 이틀전에 왔다고 하였지만 여관의 중국인들은 10여일 전부터 그들 보았다고 한다. 경찰의 견해는 두 사람이 상해에 어느 정도 있었으며 폭탄도 그들 진술대로 북경이 아닌 이곳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김익상은 북부지방에서 외국인에게 폭탄제조법을 배웠다 한다. 그는 폭발이 왜 실패했는지를 알고 당황했다고 했으며 오성륜은 폭발이 실패했다고 말했을 때 매우 안타깝다고 했다.
김익상은 경찰이 심문할 때 그의 투쟁을 자랑하였는데 정당활동은 부인하였지만 지난해 9월 서울의 총독부청사의 세발의 폭탄을 투척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진술하였다. 그의 진술로는 『義烈團(Righteous Blood Society)』이라고 알려진 조직의 단원이라 한다.

스나이더 부부는 여행중
총잡이의 탄환에 희생된 불운한 스나이더 부인은 대략 40살 정도인데 그녀는 남편과 함께 5달 전에 세계여행을 위해 뉴욕을 떠난 8명의 관광단의 일원으로서, 이들 부부는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은 슬픔을 잊으려고 여행을 떠난 것이다. 그들은 상해에서 내일까지 머무를 예정이었으며 북경을 비롯한 북쪽지방의 다른 도시를 방문한 후 일본을 거쳐 그들의 고향이 미국의 인디아나州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스나이더씨는 부인의 죽음으로 여행을 중단했다.
스나이더 부인의 비극적인 죽음은 즉각 미국영사관과 미국대사 슈을(Schuhl)에게 알려졌고 그들은 병원을 방문하였다. 오늘 오후 4시에 미국법정에서 심리가 열릴 예정이다. 8명의 회원은 스나이더 부부가 여행한 레이몬 휘트콤(Raymond Whitcomb) 여행단 소속으로서 스나이더부부 이외에 오하이오州의 콜럼버스(Columbus, Ohio) 지역에서 온 후레드릭 쉐드(Frederick Shedd)부부와 마리온 쉐드(Marion Shedd)양 엘리자베쓰 쉐드(Elizabeth Shedd)양, 루이지애나(Louisiana)주 바톤 후즈(Baton Rouge)에서 온 카트린 힐(Katherine Hill)양, 레이몽 휴트콤회사 사장이며 여행안내자인 드 벅 루비쓰(De Burg Lewis)씨이다.
8명의 여행자들은 지난 10월 4일 뉴욕을 출발하여 유럽을 여행한 후 이집트, 인도, 실론, 자바섬을 경유하여 그들 고향으로 가기전에 상해에 들린 것이다.
얼굴을 부상당한 톰슨씨는 매우 위험한 듯 하였지만 곧 회복될 것이라 한다.
중국인경찰도 중상은 아니며 다른 중국인들도 부상이 경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한국인들의 체포
두명의 살인자를 체포한 프랑스경찰은 어제 4명의 다른 한국인들을 모제(Mauser)권총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하였다. 그것은 저명한 일본인을 암살하여 한국독립운동을 환기시키자고 공언하는 그들의 위험스런 광신적 행동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인 것으로 판단된다.
경찰에 따르면 프랑스 경찰이 4명을 체포한 것은 이번과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 한다. 비록 그들은 같은 조직의 일원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세관에서 체포한 두명이외에 더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리브(Reeves)형사는 조사에서 모발의 탄흔을 발견했는데 완전히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발사된 것이라 한다. 이것은 김익상과 오성륜이 서 있던 위치와는 다른 것이다.
프랑스경찰이 체포한 4명중에서 3명은 일본영사관에 인계하였고 나머지 한명은 미국인 시민권을 박탈하였다.

― The China Press 1922년 3월 29일 수요일


국내 신문 기사

1922년 3월 28일 중국 상해(上海)서 전중(田中)대장[9]을 저격한 김익상(金益相, 상)과 오성륜(吳成崙, 하). 동아일보 1922년 4월 7일자.[19]
脫獄 田村의 自白, 오성륜과는 항주에서 길을 나눠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5월 23일
571 (1922년 3월) 30일 상해에서 전중대장(田中大將)에게 폭탄을 투(投)하다.
607 (1922년 5월) 6일 전중대장(田中大將) 저격범 吳成崙(오성륜)은上海(상해)에셔破獄逃躲(파옥도타)하다
그곳에서 만난 한국사람으로는 独立鬪士(독립투사)였다는 吳成崙(오성륜)(中国名(중국명) 馬天一(마천일)),金炯斗(김형두),趙(조)훈등으로 모두 共産大學生(공산대학생)이었는데
(吳成崙(오성륜))과함께불원에비률빈(比律賓(비율빈))으로부터도라오는길에상해에상륙할 륙군대장 뎐중의일(陸軍大將田中義一)... (吳成崙(오성륜))등이모히여동년안으로조선안에서폭탄과권총으로써관뎡을파...
各國人環列(각국인환열)한上海埠頭(상해부두) 田中大將(전중대장)을爆擊(폭격) 1926.11.11 조선일보 2면
(강비호돌))과 오성륜(吳成崙(오성륜))등의 권유로의렬단에입단하야 최하청(崔河淸(최하청))진공목(陳公木(진공목))등으로더불어선전출판부의 책임을지고활동하다가조선민족의해방을 엇기위하야는 민족운..

동북항일연군 1로군의 궤멸

일본군에 투항할 당시의 사진

참고 자료

김준연 - 모스크바에서 공산대학 다니는 오성륜을 만났다고 함.
상하이 황푸탄 의거 주도한 독립투사들의 유언…딸아 아우야 나처럼 살길 바란다
‘황포탄 의거’ 오성륜…맹수 우리 같던 감옥을 어떻게 탈출했나
오성륜이라고 나와 있는 ②번 사진의 인물은 실제로는 중국공산당 초기 농민운동가 팽배(彭湃, 1896~1929)이다.[22][23]

함께 보기

각주

  1. 1.0 1.1 1.2 《アルバム 謎の金日成 写真で捉えたその正体》, 東アジア問題研究会編 / 編著者 代表 李命英, (成甲書房, 1978) pp.120~121
  2. 2.0 2.1 2.2 이제는 말할 수 있다 : MBC 특별기획. 제48회, 김일성 항일투쟁의 진실 (서울 : 문화방송 시사제작국, 2002) p.192.
  3. 그의 생년은 1898년, 1900년 등이 기록에 보이나, 1941년 1월 일본군에 투항할 당시 사진에 39세라 했으므로 1902년생이 맞는 것같다.
  4. 모스크바 滯留(체류) 45日(일) 1970.03.05 조선일보 22면
  5. 5.0 5.1 件名標題 : 第4 粛正の実行 p.3 - 양정우의 비서처장 전광(全光)의 투항 :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C13071218200、吉林、間島、通化三省治安粛正の大要 昭和14年10月~16年3月(防衛省防衛研究所)」
  6. 6.0 6.1 사진: 상해에서 전중 대장에게 폭탄던진 조선인, (右) 吳成崙(23), (左) 金益相(29) 매일신보 [每日申報] 1922년 04월 07일 3면 9단
  7. 7.0 7.1 7.2 오성륜(吳成崙, 1898년생) 용의조선인명부(國外に於ケル容疑朝鮮人名簿 / 朝鮮總督府警務局 編, 1934) p.134
  8. 파일:1941년 1월 오성륜 투항 직후 사진.jpg
  9. 9.0 9.1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1864~1929) 위키백과
  10. 2010년 06월 이달의 독립운동가 김익상 보훈처
  11. 公開(공개)된爆彈事件(폭탄사건)의眞相(진상) 少毫(소호)도隱諱(은휘)업시明快(명쾌)히陳述(진술) 1922.07.02 동아일보 3면
  12. 12.0 12.1 스나이더氏의 懇意 독립신문 1922-10-12
  13. 吳相崙(오상륜)은破獄逃走(파옥도주) 1922.05.06 동아일보 3면
  14. 日本共産党関係雑件/朝鮮共産党関係 第九巻 分割3 p.86 : 1930년 12월 21일자 길림총영사의 외무대신앞 보고서 「日本共産党関係雑件/朝鮮共産党関係 第九巻 分割3」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B04013183600、日本共産党関係雑件/朝鮮共産党関係 第九巻(I-4-5-2-3_10_009)(外務省外交史料館)
  15. 1941년 3월 동북항일연군 1로군 조직표
  16. 파일:1941년 1월 오성륜 투항 직후 사진.jpg
  17. 한국독립운동사 자료 20권 임정편Ⅴ > 上海共同租界工務局警務處 韓人獨立運動關係文書 > 11. 田中 암살기도사건 관련 문건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8. 남미의 국가 Brazil이 아니고, 미국 인디아나(Indiana)州의 Indianapolis에서 50 km 가량 서쪽에 있는 마을의 이름
  19. 상해에서 뎐중대장을 저격한 김익상(상)과 오상륜(하) 동아일보 1922년 04월 07일 3면 1단
  20.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C13071220200、吉林、間島、通化三省治安粛正の大要 昭和14年10月~16年3月(防衛省防衛研究所)」 件名標題:第5 討伐成果 (C13071220200)
  21. 독립운동가 오성륜(吳成崙) 간찰1점 옛날물건 (경매사이트)
  22. 불멸의 발자취(29)—해륙풍에서 길림신문 2011.07.25
  23. 殺人魔王彭湃成中共第一英模 禍滅家族惡報 阿波羅新聞網 2018-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