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王內帝

대외적으로 대개 중국상대로는 왕을 칭하고, 내부에서는 황제로서 칭하는 체재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베트남이 이랬다.(중국의 직할통치를 오래 받았기에, 중국의 체재에 대한 이해가 상당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려가 외왕내제를 했다는 썰이 있는데, 고려시대 때 금석문(당대시기 혹은 당대에 가까운 시기에 돌 등에 새긴 기록을 말한다.)을 보면 황제보다는 왕이나 대왕이라는 호칭이 훨씬 더 많이 보인다.

(그러니 고려 사극을 보면 황제로 통일시켜서 부르는 게 도리어 역사왜곡이라고 볼 수 있다.)



황제와 왕은 사실 따지고 보면 굉장히 세세한 것 까지 용어나 형식이 다르다. 유교의 특징인데(중국의 세계관에서 말이다.)


황제가 만세라면, 왕은 천세고, 편전에 이르는 궁의 대문도 왕이 3개의 문이라면, 황제는 5개다. 군주가 쓰는 모자인 면류관도 왕은 9개의 구술을 꿰었다면, 황제는 12개다. 의식주 별의 별 것이 다 세세하게 다른데,(사실 유교세계관에서는 비단 왕과 황제뿐 아니라 위계 신하들의 지위나 신분에 따라 각자의 제한을 세세하게 규정한다.)


고려는 이런 것을 구분하지 않고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왕과 황제의 격식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지금의 기준으로 고려를 보면, 마치 고려가 황제로 칭한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한국은 대통령제를 하고 있지만, 내각제적 요소가 많이 보인다.(부통령이 아니라 총리가 있고, 국회의원이 장관직도 할 수 있다) 서로 짬뽕된 건데 후대에 사람들은 몇몇 요소만 보고 한국이 내각제를 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한국사람들도 현재 어떤게 대통령제의 특징이고, 내각제의 요소인지 세세하게 구분을 잘 못한다.


고려 사람들도 어떤게 왕의 격식이고, 황제의 격식인지 구분하거나 의식하지 않고 중국의 황제의 용어나 형식을 그대로 수입해서 쓴 거다.

그러니 후대의 우리들은 고려가 황제로 행세했다고 보이는 것이다. 몽골의 지배를 받았을 때, 몽골에서 딴지를 걸어 격하되기도 한다.


외왕내제라면 왜 중국에 신하를 칭하면서도 안에서는 황제라 칭하는지 그 모순을 어떻게든 합리화 하려고 하는 게 보여야 하는데, 베트남에서는 그게 보이는데 고려에서는 안 보인다.

고려는 자체적인 연호도 쓴 기간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왕건 때 잠시, 광종 때 잠시), 이걸 엄격하게 구분한 건 조선시대 와서다. 실록을 보면 세종 때도 세종과 신하들이 왕과 황제의 격식이 뭐가 다른지 서로 토의하고 그러는 내용이 나온다.


사실 조선도 따지고 보면 모든 부분에서 제후국 왕으로서의 격식을 지켰던 것도 아니다.(물론 고려에 비해서는 엄청 따진 건 사실이다.) 예를 들어 왕의 묘호인 태조 태종 이런 것은 원래 황제에게만 올리는 것이다. 왕에 따라서 하늘에 기후제를 들이기도 했는데, 이것도 원래 중국세계관에서는 왕이 해서는 안돼는 것이다. 오직 천자만 하늘과 직접 통할 수 있다. 대신 제후국의 왕은 땅의 신인 사와 곡식의 신인 직 합쳐서 사직에는 제사를 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