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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루과이 라운드
최근 수정 : 2018년 8월 31일 (금) 11:01

다자간협상 중 하나로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1986-1994)을 말한다.


86. 9. 20.「푼타 델 에스테」(Punta del Este) 각료선언[1]이다.


1986년 우루과이에서 열렸기 때문에 우루과이 라운드라 하지만, 이후 약8년간 세계 10여개국을 돌아 다니며 협정이 체결되었고 1994년 모로코의 마라케시에서 종결됨.

공산국 소련이나 중국 및 제3세계 등은 "GATT협정은 선진국의 착취"라 주장하며 불참. UR이 진행되던 1991년 소련 붕괴가 발생했다.

1994년 WTO가 출범한 근거 협정이다.

전농의 반응

전농은 ‘제2의 을사조약 UR협상을 반대한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에서 알 수 있듯 세계화는 선진국의 착취이며 부익부빈익빈이라 주장했다. 다국적 기업은 그러한 착취와 환경파괴를 실행하는 것으로 여겼다.

세계화의 확산

  • 세계화 확산은 FTA체결국간 역내 무역 증가와 지역별통합을 촉발함. EU는 동구 10국을 포함한 세계최대의 자유무역지대로 탄생.
  • 세계화의 특징 : 각 지역의 가격격차가 현저히 줄어들어야 함.
'세계는 평평하다'의 저자 토마스 프리드먼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후 19C를 세계화1.0라 하고, 19C후반 기업혁명 중심 세계화세계화2.0, 그리고 20C 후반 인터넷 혁명을 통한 개인단위의 세계화세계화3.0라 했으나, 경제학자들은 16C 이후 세계화1.0은 세계화 물결에 넣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시기에는 서로 모르던 지역간 상호 알게 되고 교역증가로 세계체제가 성립되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당시 교역 상품은 사치품에 제한되고, 이 시기에 각 상품 및 자본 가격이 서로 비슷해지는 가격수렴현상이 없었다. 19C 이전에는 그런 현상이 없었다.
  • 빌클린턴의 등장과 NAFTA 이후 :

20C 후반 세계화를 정치적인 실험대에 올린 첫 사건은 북미자유무역협정North American Free Agreement, NAFTA이다. 199년 미 대선에서 NAFTA찬성의 공화당 조지 부시는 떨어지고 민주당의 빌클린턴이 당선됨. 대선 전 NAFTA에 중도적 입장을 취했던 빌은 당선 후 찬성으로 돌아섬. 미 정부발표에 의하면 NAFTA발효 후 미국은 멕시코/캐나다 수입으로 약4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나, 멕시코/캐나다 수출로 인해 90만개의 새 일자리가 생기고 1990년대 미 국제무역은 거의 2배 증가됨. 그후 1990년대 미 경제성장으로 미국 국내 약 1,700만개의 새 일자리가 생김. 특히 미국 노조 소속 일자리가 급감. 노조인 AFL-CIO는 일자리감소가 외국의 저임금노동때문이라 비난.

  • 세계화는 선진국의 후진국 착취인가? 아니다.

사실 시장이 개방되면, 득실이 있다. 특히 실업비용이 그것이다. 반면에 수입품 가격하락 후 개방이익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반대자들은 조직화되어 목소리가 크지만 찬성자들의 결집은 곤란하므로 항상 반대의 목소리가 더 크다.

반세계화 운동 원년인 1999.12. 미 시애틀에서 135개국 무역협상대표들이 모인 WTO회의가 열렸다. 4만명의 시위대가 모여들어 맥도날드 등 초국적 기업을 공격했다. 이를 '시애틀전투'라 한다.

2001.7. G8정상회담이 열린 제노바에서는 반세계화론자 15만명이 모였다. 이탈리아 정부는 경찰 2만에 핵무기, 화학무기, 통신분야 군병력 1500명, 해안경비병력 800명, 지대공미사일 부대와 공중공격 대비병력 400명 등배치, 길이 9킬로미터 높이 4미터의 콘크리트 장벽설치 후 통행금지구역선포함. 이때 충돌로 1명 사망.

이후 세계은행회의, 다보스Davos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그리고 아시아유럽정상회인 아셈회의Asia Europe Meeting, ASEM 등에서 반대시위 계속되었다.

이후에 세계의 빈곤문제가 반세계화 운동의 주 이슈로 부각 되고 시애틀 시위 이후 반세계화 운동의 주도권은 노조에서 시민운동조직으로 넘어갔다. 이들은 세계의 빈곤이 세계화 때문이라 주장했고, 정말로 세계화가 지구인의 빈부격차를 확대시키는가에 관심이 커졌다.

세계화를 가속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며, 이를 통해 선진국 착취를 합리화한다 인식하며 세계화를 선진국의 음모라 주장했다. 이들은 세계화라는 추세 자체를 부정하면서 자유무역의 확산으로 경쟁력이 낮은 국가산업 붕괴 후 빈부격차가 더 심해진다 주장했다. 특히 다국적 기업을 착취의 첨병으로 간주하고 경기변동도 세계화 때문이며, 세계화로 인해 각 나라 경쟁이 심화되고 국제적 긴장이 커진다 주장했다.

그뿐 아니라, 지구온난화, 오존층 파괴, 유전자 변형 등 환경문제도 세계화 때문이라 주장한다. 환경 문제해결을 위한 '교토의정서Kyoto Protocol'에 세계화를 주도하는 미국이 비준을 거부하자 세계화를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인식했다.

다음은 반론이다. 각국의 주권이 커졌기 때문에 다국적 기업이 후진국에 들어가서 과거와 같은 착취적 자본진출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 개발국은 정상회담을 할 때 상대방 국가 정상에게 자국 투자 요청을 하는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 투자자들 평균주식 보유기간은 2개월에 불과하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절대다수는 10년 이상 대한민국에 투자하는 장기펀드 운용회사라는 점을 볼때 외국인 투자자들이 단기 이익만 노리는 투기꾼이라 하기 곤란하다.


  • 세계화는 빈곤을 심화시킬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래와 같다.

하바드 대 경제사학자 J 윌림암슨은 오히려 자유무역은 선진국/후진국 간 격차를 줄인다 보았다. 그 이유는 보호무역이 확산되던 20세기 초~ 중반기 사이에 국가 간 경제력 격차가 더 커진 반면에, 자유무역기조로 전환된 19세기 후반기 및 20세기 말에는 국가 간 격차가 줄었음을 실증 했다. 그는 1850년, 1914년, 1950년, 1998년을 깃점으로 각각 1기, 2기 3기로 나누었다. 빈부격차만을 보아 1,3기(고성장, 세계화)에는 국가간 그 차이가 줄었고, 2기(저성장, 반세계화)에는 격차가 커졌다. 그는 주장하기를 현대 시대가 주는 교훈은 세계화가 증가하면 전 세계는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국가 빈부격차도 줄지만, 세계화가 후퇴하면 세계경제도 후퇴하고 국가간 빈부격차도 는다고 보았다.

세계지니계수도 하위20~40% 해당 자들의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 하는 비율 19세기 이래 지속적으로 하향세를 보이다가, 세계화 물결이 본격화된 1980년대 부터 역전 내지 정체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그리고 세계인구중 하루 1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은 1970년에 17.2%에서 1998는 6.7%로 감소하였다. 또, 하루 2달어이하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도 같은 기간 중에 41%에서 18.6%로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 같은 사실은 세계화가 전세계적으로는 빈곤층을 줄여주었다는 뜻이다.

게다가 세계화에 참여한 개도국들은 브라질, 중국, 헝가리, 인도, 멕시코, 등의 199년대 경제성장률이 선진국의 평균인 2%대를 훨씬 상회하는 5%의 성장률을 기록한 반면에 비세계화 개도국들은 -1%로 오히려 경제가 후퇴했다. 따라서 세계화는 국가간의 격차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 경기변동은 세계화 때문이 아닌 상품생산의 결과이다.
  • 국가간 경제력의 격차는 세계화가 아니다. 기술혁신과 제도의 차이 때문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노벨 경제학상 수상) 그의 저서 '세계화와 그 불만'에서 세게화 추진 방식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 첫째, 선진국이 일관성 없이 행동하기 때문.
  • 둘째, 너무 성급히 추진하기 때문.
  • 세번째, 개도국의 주권을 무시하기 때문.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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