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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
최근 수정 : 2019년 7월 24일 (수) 18:09

개요

일제시대[1]를 거쳐 오면서 일본으로 갔었던 조선인들이, 일본제국의 패망으로 많은 이들이 한반도로 돌아들 갔으나 일본에 약 60여만명이 남았다.

재일동포들은 전후 일본의 조센징이라는 민족적 차별로 경제적으로는 빠찡코, 야쿠자 등 그늘의 경제권에서 삶을 영위해 나아갔다고 한다. 손정의는 매우 특별한 존재이다. 일본 사회에서 하나의 게토와 같은 삶을 살아왔다는 측면에서 이들은 승화를 하지 못하고 민족의식을 살리고자 북한의 김일성 영생교에 심취해 나아 갔다.

또한 김일성 영생교에 따라 한반도 남쪽에 한국전쟁으로 정복하지 못한 대한민국에 대해서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등의 정권에 극도의 반감과 반한활동을 하여 왔다.


재일동포의 학교를 통한 정신적 퇴화

분명 일본 사회에서의 차별과 이로인해 눈을 뜨는 '나는 누구인가? 저들이 차별하는 나의 근원은 무엇인가?'는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물음이며 자기에 대한 질문은 한 인간이 각성해나아가고 승화해 나아가기 위한 절차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일동포들은 민족적 의식을 각성하기 위해 북한의 김일성 영생교를 믿어가는 정신적 퇴화로 나아갔다. 내부로 계속 칩거해 들어가는 정신적 퇴화는 일본의 천황제를 가져다 고대로 이식한 북한의 김일성 영생교 신자들로 탄생하였다.

이는 외부와 소통하는 방법이 한민족이라는 북한으로만 집착하고, 단 하나 접촉하는 외부인 일본 또한 제국주의와 군국주의, 전체주의에서 아직 벗어나지 않은 사회이기에 정신적 퇴화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이 재일동포 사회다.

재일동포들이 외부를 일본인 아닌 전세계와 자유 민주주의 진영 국가들과도 교류하고 세계로 나아갔어야 함에도 (물론 서구유럽도 6.8혁명이라는 정신적 태만과 내 자아 지르기로 멍청해지는 역사를 가졌기에 정신 제대로 차리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그러하지 못하고 그리스 로마 문명과 기독교 문명에 대한 접촉이 미약하였기에 정신적 쇠퇴로 나아 갔다고 볼 수 있다.

공산주의는 서구에서 민족주의와는 결합할 수 없었으나, 동양에 와서는 민족주의와 결합하였다. 동양에서 바라볼때는 서구의 식민지 상태였으므로 서구에 대한 반대로서의 공산주의가 당연스럽게 채택할 수 있는 옵션이었으나 식민지라는 현실이 서구의 민족주의가 왜곡된채 수입된 상태에서 공산주의+민족주의가 결합된 변질 공산민족주의로 태어났다. 대한민국에서도 북한의 존재로 인해 한국전쟁의 여파로 공산민족주의로는 표방할수 없었기에 진보민족주의[2]로 발전해왔다. 결국 재일동포도 대한민국도 정신적 노예상태에서 벗어 나기 위해선 북한 해방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아래 3영상은 외국인 특히 서구인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영상들이다. 대한민국인들 보다 북한과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해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 무엇이 북한을 기괴하게 만들었는가? ( 애석하게도 현재 한글 자막 없음, 단 한글 자동번역은 가능함)


  • 일본 우익 내셔널리즘의 부흥 ( 한글 번역 있음)


  • 일본 속 북한 이야기 (한글 번역 있음)


재일동포 사회의 종북성향과 한국내 종북과의 연대성

과거 한총련(한민련)의 사례에서 보듯이 조총련의 북한 바라기야 말할 것도 없이 재일동포 사회는 한국내 종부주의자들과 연대되어 있다. 반일시위도 재일동포들의 반일의식이 투영된 것일 수도 있다.

함께 보기

영화 '김의 전쟁' 권희로 씨 별세

각주

  1. 일제 강점기 용어를 의도적으로 피합니다. 제3자적 관점하에서 보기 위한 단어로 저는 일제시대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중앙청 일본기 내려오고 미군기 올라갔다는 미군 강점기의 개념 확장으로서의 영향도 피하고자 합니다
  2.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사회변혁운동으로 명칭을 바꿔 이야기 해온 점이 그 증거이다. 또한 5.18을 1980년초에 정의하기를 프롤레타리아 운동이라고 민주화인사들, 노동계에서는 정의한 바 있다. 물론 지금에와서는 절대 그말 안한다.
  3. 27일(토) 판문점선언 1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파주 판문점에 북측 인사들이 불참한 가운데 같은 시각 일본 도쿄에서는 남과 북 청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615공동선언실천 일본청년학생협의회(615일본)는 도쿄 중심부인 시노쿠보에서「427판문점선언 1주년 공동행동」행사를 주최하고 한반도 평화를 이야기했다. 재일한국청년동맹을 비롯한 재일동포 청년대표자 120여 명이 참석한 이번 행사에서 615일본은 공동회장단을 새롭게 선임하는 등 민간차원의 판문점선언 이행에 속도를 낼 수 있는 움직임도 병행했다. 이 자리에는 남측 민화협 청년미래위원회 회원단체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또한 남측 민화협을 대표하여 1990년대 북경, 모스크바 등에서 남북청년세미나를 주최했던 (사)세계평화청년학생연합(YSP) 회장단도 참석했다. 장경태 민화협 청년미래위원장(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장)은 축사 메시지를 통해 “판문점선언이행을 위한 조청, 한청, 류학동 공동행동과 남측청년들의 교류모임은 역사의 한걸음이 될 것”이며 “청년학생운동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 통일의 시대를 열어가는 밑걸음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명진·김승민·리홍윤 이상 615일본 신임 공동회장은 행사 추진배경 관련,“재일동포와 남측의 청년학생들은 통일조국 과업을 완수해야 할 시대적 소명이 있다고 생각한다”며“판문점선언 1주년을 남측과 함께 기념하고 상호간 소통의 장을 마련함으로써 통일의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한다”고 환영했다. 427판문점선언 1주년을 맞이하여 남과 북 청년단체가 공식적인 만남을 갖은 사실만으로도 향후 남북 민간교류사업에 긍정적인 신호가 될 것으로 YSP 관계자는 전망했다. 김동연 YSP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우리의 만남이 통일의 시작이고, 남과 북 청년들의 통일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오늘처럼 결집되면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질 것이다”고 말했다. 이어 “YSP는 현재 남측 민화협과 615청년위원회 대표적인 청년통일단체로서 남북민간교류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며 615일본측에 각종 교류사업 추진 의사를 타진했다. 남측 민화협 청년미래위원회에 따르면, YSP는「판문점선언 1주년 공동행동」을 기점으로 남북통일 청년교류사업에 박차를 가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2020년 도쿄는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YSP는 ‘한반도 평화정착’ 의제를 남북통일 사업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에 한일 YSP 공동프로젝트 일환인 2032년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유치 활동인「서평올유(All For You)」캠페인에 615일본측은 긍정적으로 호응했다.
  4. 이와 관련, 조명진 615일본 신임회장은 “온 겨레가 하나된 힘으로 평양과 서울에서 2032년 올림픽을 성사시켜 새로운 역사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 행사가 열린 도쿄 시노쿠보는 최근 일본내 우익들의 일명 헤이트스피치(혐한발언) 장소로 알려진 곳이며 재일한국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이날 행사 관계자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사적인 선언들은 남과 북 뿐만 아니라 해외동포를 포함한 8천만 겨레가 들고나가야 할 소명이다. 이를 위해서 내년에 열리는 도쿄올림픽에서 남북공동입장을 지지환영하고 단일팀을 응원하는 것을 비롯, 재일동포청년들은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해서 앞장서겠다”며 일본 도심내 퍼포먼스 의미를 설명했다. 한편 615일본 신임 공동회장단은 “오늘 YSP를 위시한 남측 청년대표단의 통일 사업에 대한 깊은 열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말하며 남측을 포함한 국제청년 교류사업의 가능성을 피력했다. 이날 북측의 한 참석자는 “통일문제는 민족의 숙원사업인 만큼 이제는 청년들이 앞장서야 한다”며 “재일동포사회부터 폭넓은 청년 통일운동이 전개되도록 남측 청년단체와의 교류와 대화에 관심을 갖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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