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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全泰壹, 1948년 9월 28일 ~ 1970년 11월 13일, 향년 22세)은 대한민국의 봉제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이다. 1960년대 평화시장의 봉제 공장의 재단사로 일하다 22세의 나이로 노동집회현장에서 휘발류를 몸에 뿌려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태일은 착취받는 노동자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나 실은 전태일의 월급은 당시 우리나라 1인당 GDP의 세 배쯤 되었다. "당시 전태일이 받은 월급은 2만 3,000원, 당시 대학 한 학기 등록금이 2만 5,000원이었다. [1] 2016년 기준으로 1억원 가까이되는 급여를 받는 고임금 노동자이다. 민주노총의 귀족노조와 같은 임금수준인 것이다.

전태일은 미국의 급진적 사회운동가 '사울 알린스키'에게 교육받은 오재식 한국기독학생총연맹 사무총장의 영향을 받아 사회 운동에 가담했다. 사울 알린스키는 잠자는 민중을 깨워 리더를 양성시킨 뒤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던 급진적 사회운동가였다. “서울대 운동권 계열의 이승종 목사가 전태일을 교육시켰다”며 “아직 정확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모종의 교육이 전태일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2]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전태일이 과연 학생들이 본 받을 인물인가? 초등학생들의 역사 연계도서로 선정된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WHO 위인전 시리즈'에는 전태일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전태일' 외에도 '박종철', '이한열', '노무현 대통령'이 포함돼 있다고.[3]


전태일의 분신사건은 정말로 자살이 맞는가?

전태일의 분신사건으로 그는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운동권에서는 추대하고 있다. 문제는 전태일의 분신사건은 좌파들의 죽음과 함께 많은 의문점을 가지고 있는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전태일 분신서건을 이용하는 노동계 운동권 비판

좌파들사이에서 열사로 알려진 전태일의 자살이 목숨을 내건 노동계의 극단적인 투쟁을 낳았다는 평가다. 2016년 7월, 자유경제원세미나에서 ‘생각의 틀 깨기, 누가 전태일을 이용하는가 4차 세미나’에서 ‘자유주의 관점에서 본 전태일의 죽음’이란 주제로 전태일을 재조명했다. (패널로는 남정욱 숭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류석춘 연세대 사학과 교수,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부 교수 참여)


전태일의 죽음 이후 노동 운동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방향으로 흐르게 되었음을 비판하였다. 전태일이 살았던 당시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의 죽음을 '자본가 대 노동자 계급 갈등'으로만 보고 사회에 대한 ‘분노’를 조장하는 노동 운동가들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남정욱 교수는 전태일을 조명하기 앞서 박노해 시인의 ‘손 무덤’이라는 시를 소개하며 문학이 70년대 노동현실을 왜곡했다고 비판했다. "80년대 민중 문학이 한 단계 올라가며 슈퍼스타가 된 사람이 박노해"라며 "당시 '손무덤'이라는 시를 통해 계급 간 적대적 정서를 형성했다"고 지적했다.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속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이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부장님 스텔라도 태워주지 않아/함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캍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속에서 꺼내어/ 36년 한 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주질 못하였다

(중략)

내 품 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안라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린 시 '손 무덤'

조동근 교수는 박노해의 '손무덤'시의 내용을 들며 "당시 노동자가 손이 잘리고도 타이탄 트럭에 몸을 의탁한 것은 119응급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서"라며 "119응급서비스가 없고 가난했던 현실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박노해 같은 사람이 오로지 가해자 피해자로 나눠 증오를 부추긴다. “지금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산업 재해가 현격하게 줄어드는 위대한 탈출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동근 교수는 "착취와 저임금을 구분해야 한다"며 "당시 저임금이긴 했지만 착취로 인한 저임금이 아니었다" 그는 평화시장의 보조에서 미싱사와 노동운동가로 변신한 신순애 씨의 증언에 따르면 공장 보조에서 미싱 보조로 승진하며 2년 반 만에 월급이 700원에서 3,000원으로 오른다. 즉, 노동 시장이 성장했다는 것을 고려하면 지속적인 저임금도 아니였다는 지적이다. "당시 평화시장의 저임금은 착취 때문이 아니라 노동력이 흔했기 때문"이라며 "오히려 노동 집약적인 재화의 생산이 증가하면서 임금이 빠른 속도로 개선됐다"


남정욱 교수는 "전태일 분신 현장에는 누가 있었을 것“이라며 ”전태일의 결단이 정말 혼자 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태일 분신사건 이후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부정적인 유산은 "전태일 이후 1990년대 후반까지 44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끊었다"고 전했다.


류석춘 교수는 그 당시를 단면으로만 잘라서 본다면 전쟁 직후 저임금 아닌 사람이 없었다"며 “오히려 전태일이 기업가로서의 구상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실현했다면 또 하나의 정주영이 나올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며 “전태일과 정주영의 출발 조건, 당시의 수많은 노동자의 출발 조건이 대동소이했다". 이것은 당시 대부분의 국민의 현실이었다는 점이다.

전태일은 1970년 당시 월급 2만 3,000원이었다. 당시 군인 월급 780원, 대기업 사원 월급 2만원.


초등학교 교과서등에 실린 전태일

2016년 8월 22일 자유경제원 제6차 '생각의 틀 깨기: 누가 전태일을 이용하는가' 세미나에서 홍수연 한국자유연합 사무총장은 초·중·고교 교과서와 참고서에 실린 '전태일 분신 사건'으로 학생들에게 '계급의식'과 '사회주의적' 철학을 주입시키고 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전태일이 과연 학생들이 본 받을 인물인가? 초등학생들의 역사 연계도서로 선정된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WHO 위인전 시리즈'에는 전태일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여기에는 '전태일' 외에도 '박종철', '이한열', '노무현 대통령'이 포함돼 있다고.

"특정 야당 인사이거나 그들과 관계가 깊은 사람들이 주로 (위인으로) 들어가 있다"면서 "책 내용을 보면 감정적이고, 전태일을 우상화 하는 표현이 많이 들어가 있다"며 "특히 일방적으로 노동자의 시각만 전달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대한민국에 대한 반감과 반(反)국가적 생각을 가지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린이 도서 한국사에서 전태일에 관한 부분을 발췌한 내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쇠사슬만 안 채웠지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불균등 발전이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되풀이 되었어… 농업을 죽이고 공업을 살렸다”
형…, 몸에 불이 붙었을 때 일어나 얼마나 아팠어요?? 갈수록 슬픈 이야기가 많으니 저 현대사 그만 배울까 봐요……. 아니 타임머신이 있으면 과거로 돌아가서 못된 놈들을 혼내 주고 역사를 바꿔버리고 싶어요! 박정희도 혼내 주고 5.16같은 거 못 일으키게 하고 ...

또한 고등학교 교과서에서도 전태일을 우상화하고 산업화를 비하하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세계 여러나라가 우리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부른다며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정작 기적의 주역인 노동자들은 어리둥절합니다. 자신의 삶은 나아진 것에 하나도 없는데 여전히 하루 벌어 하루 먹을 궁리를 해야 하는 처지인데 무엇이 발전했다는 것인지"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는 황금만능주의는 극심한 이기주의를 불러 왔습니다. 급속한 산업화는 금수강산이라 불리던 우리나라를 더럽히고 파괴했습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넘쳐났지만 정부는 제대로 된 주택 교통 정책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죠. 이러한 모든 현상은 급속한 산업화에 대한 반대 급부였습니다"
이수호·조희연·최종진·김주영·임옥상 등 기념관 추진위원 면면 살펴보니...
위원회에는 박원순 시장, 신건택 시의회 기획경제위원, 조희연 교육감, 이수호 전태일 재단 이사장, 전순옥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위 위원장, 최종진 민노총 권한대행,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 나지현 여성노조위원장,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일감 불교 백년대계본부 사무총장, 권호경 한국기독교 민주화 이사장, 임옥상 미술연구소장, 최순영 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박순희 70년대 민주·노동운동동지회 부회장, 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등이 참여

각주

  1. '전태일 열사' 월급, 현재 가치로 780만원
    1970년 전태일 월급 2만 3,000원…당시 군인 월급 780원, 대기업 사원 월급 2만원 수준이다.
  2. 남정욱 교수 2016년 7월 자유경제원세미나 발재자
  3. 한국사를 움직인 인물임에는 틀림없는것 같다. 좌파 운동권의 선동에 의해서 자살당한 후 운동권의 열사가 되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