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모
鄭根謨
Jeong Geun-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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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태극기.jpg 대한민국
출생1939년 12월 30일 (84세)
출생지경기도 경성부
본관동래 정씨
병역면제
당내 직책제12대 과학기술처 장관
학력서울고등학교 졸업[1]

서울대학교 물리학 학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석사

미시간주립대학교 응용물리학 Ph.D.
종교개신교 (성결교)
배우자길경자
자녀슬하 1남 2녀

정근모(1939년 12월 30일 ~ 84세)는 대한민국의 과학기술처 장관을 지낸 과학자 출신의 관료이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의 인재 육성책[2]으로 미국에 가서 처음에는 하버드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하여 물어보고 질책했다고 한다. "당장 원자력 발전과 관련된 공부를 하라"고 해서 미시간주립대학에서 물리학 공부를 하였다.

1963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남플로리아대학 조교수, MIT 핵공학과 연구교수를 하였으며, 뉴욕공대 전기물리학과 부교수로서 연구 활동하였다.

MIT에서 연구하던 시절 그는 하버드행정대학원[3]이 운영하던 과학기술정책 과정을 밟기도 했다. 하버드대학원을 수료하며 쓴 논문이 훗날 한국과학원 설립의 초석이 된 “후진국에서의 두뇌유출을 막는 정책 수단”이었다.

1970년 과학기술처 김기형 장관의 초청으로 귀국하였다. 1990년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에서 과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했다.


약력

  •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핵공학과 연구교수
  • 뉴욕공과대학교 전기물리학과 교수
  • 국무부 국제개발처 자문위원
  • 한국과학기술원 부원장
  • 한국전력기술 사장
  • 한국과학재단 이사장
  •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 호서대학교 총장
  • 명지대학교 총장
  • 국제원자력기구 총회 의장
  • 한국전력공사 원자력고문
  • 아주대학교 대학원 에너지시스템학과 석학교수


여담

히로시마 원자탄이 터질 때 세계 정상들 윈스턴 처칠, 프랑스 드골 대통령, 중국의 장개석, 미국 루스벨트등이 이 광경을 지켜봤는데 이승만은 원자 폭탄이 터질때 나오는 엄창난 에너지를 원자력 발전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고 한다.

이승만의 원자력관련 고급 인력 양성은 경제부흥을 위한 계획이었는데 6.25 전쟁의 종전을 압박한 미국에 반 강제적으로 종전 조건을 것이 한국 고등학생 2만명을 미국 비용으로 교육 받게 하는 것이었다. 완전 미국을 협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유학생 선발을 위해 조선일보에 광고를 냈고 그 중 한 명이 정근모다.

미국 웨스팅하우스란 회사는 처음으로 원자력을 이용한 에너지를 발전용으로 가능하게 만든 최초의 회사이다. 지금도 대한민국 원자력 발전소의 원천 특허는 웨스팅하우스에서 가지고 있다.



각주

  1. 1년 수료 조기 졸업
  2. 이승만 대통령은 젊은 인재들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수 있다는 확신을 하였다. 그는 김일성이 6.25 남침을 하였을 때 학생들까지 총들고 싸운 상황에서도 대학생들만은 나라를 이끌 인재라는 이유로 징병에서 제외시켰다.
  3. 현 케네디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