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鄭雲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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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일 |
1947년 3월 21일 (76세) |
출생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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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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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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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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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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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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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최선주 |
자녀 |
1남 1녀 |
종교 |
개요
서울시장을 역임한 조순 교수의 제자로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후 서울대학교 교수로 임용되었으며,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경제학자 시절의 성향은 정부의 개입을 옹호하는 케인즈 학파에 가까웠다. 총장 퇴임 후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국무총리 재임 시에는 세종시 안을 수정하려 했으나[2] 야당 및 한나라당 내 박근혜 계열의 반대에 수정하지 못했다. 국무총리 직위에 물러난 이후에는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나, 동반성장이라는 개념 자체의 모호성과 빈약한 이론적 배경이 논란이 되었다.
약력
1966 ~ 1970 | 서울대학교 경제학(학사) |
1972 ~ 1976 | 프린스턴대학교 경제학(박사) |
1978 ~ 2002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 교수 |
2002.02 ~ 2002.06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
2002.07 ~ 2006 | 제23대 서울대학교 총장 |
2009.09 ~ 2010.08 | 제40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2010.12 ~ 2012.03 |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 |
평가
정운찬은 동반성장이라는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해 초과이익공유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초과이익공유제란 대기업이 원래의 이익목표보다 더 많은 이익을 달성할 경우 그 이익을 하청기업에도 나누어주자는 제도였다. 그러나 그 제도에 대해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부정적, 긍정적을 떠나서 도대체 경제학 책에서 배우지 못했다.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3]라고 비판하였다.
여담
미국에 유학 했을 때부터 열렬한 야구팬으로 두산베어스의 오랜 팬이라고 한다. 그런 인연인지 케이비오 총재가 됐는데, 경제민주화 동반성장 재벌규제 등 이런 소리를 하고 다닌 사람이 재벌 오너들의 취미 카르텔 모임 같은 케이비오의 총재가 된 거다
. 케이비오 총재 때도 아시안게임 관련 논란을 전부 선동열 감독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하는 등 야구 팬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가히 좋지 못했다. 전임 구 총재에 대한 평가가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기에 더더욱 비교가 되었다.
신정아의 회고록에도 이 사람 이야기가 나온다. 신정아의 평가로는 정운찬은 위선자라고 한다.
참조
제1공화국 (1948 ~ 19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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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화국 (1960 ~ 19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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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공화국 (1963 ~ 19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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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공화국 (1972 ~ 1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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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1981 ~ 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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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정부 (1988 ~ 19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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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1993 ~ 19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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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정부 (1998 ~ 2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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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2003 ~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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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2008 ~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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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2013 ~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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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2017 ~ 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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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2022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