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임진왜란이 종결 되고 일본에 도쿠가와 에도 막부가 들어서면서

조선과 일본은 다시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고, 쇼군이 새로 등극하거나 할 때 등 조선에서 일본으로 보낸 외교 사절단을 말한다.

일본에서도 사절단을 보냈는데 임진왜란 전과는 다르게 일본에 사절단은 부산에 설치 된 왜관 정도에서만 머물고 도성인 한양까지 오는 것을 조선 정부에서 허용하지 않았다.

아마도 임진왜란 전 처럼 사절단이 도성인 서울까지 오게 되면 이게 또 다른 침략에 활용 되지 않을까 그런 우려에서 였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조선통신사가 조공하러 온다고 선전했다.


실상 =

일본에 문화를 전수 해 줬다고 하는데 당시 조선은 성리학 탈레반 수준의 오로지 성리학만을 추구하는 나라였고, 중국은 세계의 중심이고 나머지는 오랑캐 조선은 소중화 망한 명나라를 섬기는 세계관을 가진 나라였다.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쇄국정책을 폈지만, 나가사키의 데지마를 통해 유럽이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고,

일반 백성들에게는 여러가지 성리학 가르침을 폈을 지 모르나, 당시 일본 지식인들과는 세계관 지식 격차가 너무 나서 조선인의 지식인이라는 통신사는 일본 지식인들과는 사실상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일례로 일본 지식인이 당신네 나라는 구라파 유럽이 어디 있는 줄 아니냐? 물어보자 조선 통신사가 유럽은 어디 나라지? 이러니까 당신네 나라는 지구본도 없는가? 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고, 왜 망한 나라인 명나라를 섬겨야 하냐며 일본의 지식인들에게 볼멘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이 일본인은 조선통신사와 대화를 한 이후 조선통신사가 오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했고 비용이 많이 드니 간소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성리학 탈레반인 조선통신사는 비용만 많이 들고 얻을 게 없다고 판단한 것

야사가 아니라 다 실제 대화 기록에 있는 내용이다.

일본에서는 성리학 탈레반이라고 조금이라도 베껴 먹고 뭐 하나라도 배울 게 없나 그런 자세였지만,

도대체 조선 통신사가 여러번 일본에 갔지만 일본에서 배워 온 것이 없다. 굳이 꼽자면 고구마 종자와 서양의 무기를 가져온 것 정도 일것이다.

조선 통신사들은 내내 한탄만 한다. 왜 이 도리도 모르는 오랑캐 왜놈들이 이렇게 옷도 화려하게 입고 집도 화려하게 장식 되어 있고 잘사는 가? 하늘도 무심하지 이런 식이다.

예를 들면 조선통신사가 오사카에서 한 말이 에도를 거쳐서 다시 오사카에 돌아오니 이미 책으로 출판 되어 있고, 일본 오사카에는 책이 파도 처럼 많았다.

이렇게 출판 보급이 활성화 된 비결을 배워 올 생각은 하지 않고, 하늘에 한탄만 한다.

영조가 실질적으로 마지막 통신사(진짜 마지막 통신사는 일본측에서 더이상 배울 것도 없고 비용문제가 크니 일본측에서 거부해서 대마도에만 갔지 일본 본토에 가지도 못했다)를 보내면서 한 말도

1. 임진왜란 때 왕릉이 도굴 된 것을 잊지 마라

2. 일본에서 우리 조선의 소중화 성리학을 널리 펼치고 오라

이거지 일본에서 뭐 하나라도 좋은 걸 배워라 그런 말은 없다. 성리학자 탈레반 이었던 조선 통신사는 그렇게 여러번 일본을 갔어도 일본에서 문물이나 제도 뭐 하나 배워 오지도 배울 생각도 없었던 것이다.

공자도 지나가다가 3사람을 만나면 3사람 모두가 스승이다 그런 말도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