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
중국사 / 中国史

  • 상고시대
    • (기원전 2070년? ~ 기원전 1600년?)
    • (기원전 1600년? ~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1046년? ~ 기원전 256년?)
  • 춘추전국시대(기원전 771년 ~ 기원전 221년)
  • (기원전 9세기 ~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2년 ~ 서기 220년)
    • 전한(기원전 202년 ~ 서기 8년)
    • 후한(25년 ~ 220년)
  • (8년 ~ 23년)
  • 삼국 시대(220년 ~ 280년)
    • (220년 ~ 265년)
    • (221년 ~ 263년)
    • (229년 ~ 280년)
  • (265년 ~ 420년)

大淸國(대청국)
大淸帝國(대청제국)
淸朝
만주어: ᡩᠠᡳᠴᡳᠩ ᡤᡠᡵᡠᠨ
묄렌도르프: daicing gurun
시기 : 1616년 2월 17일 또는 1618년 또는 1636년 6월 5일 ~ 1912년 2월 12일 또는 1924년 1월 5일)

개요

1616년 아이신기오로 누르하치(재위: 1583년~1626년)가 건국했으며 1618년에는 여진족의 완안부가 생여진을 통일하고 건국한 금나라를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국호를 대금으로 정하고, 천명(天命)으로 개원했고, 후계자 숭덕제는 1636년, 성경에서 관온인성황제(寬溫仁聖皇帝)가 되었다.

숭덕제는 몽골에 쳐들어가 복속시키고 그곳에서 대원의 옥새를 얻고, 대칸이 되었고 국호를 금에서 청으로 바꾼다.

그에 사후 순치제 때 명나라가 이자성의 난으로 멸망하고, 산해관의 수비를 맡던 오삼계가 산해관의 문을 열고, 청나라에 투항한다. 이때 비로소 청나라는 중원으로 들어가서 북경을 손에 넣는다. 이자성의 세력을 멸망 시키고, 중국 남부의 남명 잔존세력까지 멸망 시켜 순치제 때 청나라는 중국 대륙의 주인이 된다.

청나라가 명나라를 정복하고 나서 명나라의 주원장 후손들은 모두 노예가 되거나 죽음을 당하였고 명나라 궁실 귀족 여성들은 전부 기생이 되었다. 명나라를 받들던 지방의 한족(漢族)귀족들도 모두 죽임을 당하였고 각 지방의 행성들은 만주족 귀족들로 대체되었다.

그렇지 않다. 명나라 황손의 후손 중 일부는 명나라 황제의 종묘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허용 되었다. 명나라 공주 중 청나라 황실과 결혼을 한 경우도 있다. 주삼태자를 자칭해서 반란을 획칙 하는 경우가 여럿 있어서 강희연간에 골칫거리였는데 진짜 주삼태자는 신분을 숨기고 은거했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지만 결국 강희제에 의해 사형을 당했다. 남명의 황제들은 당연히 자결하거나 죽임을 당했다. 한족 귀족들을 모두 죽였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한족 지배층 상당수가 청나라 지배에 순응했고 협조했다. 일례로 공자의 후손은 중국 역대 왕조에서 우대를 받았는데 청나라 때도 여전히 우대를 받았다. 건륭제 때 악종기는 송나라 때 그 유명한 악비의 후손이다.

여진에 남은 만인 외에 중원에 들어온 만주족은 대부분 팔기제도에 편입해 기인이 되었다. 팔기이 속한 사람은 기인 그외에는 민인으로 구분해 그 계층간에는 엄격히 구분했는데 팔기 안에서도 주요 깃발 소속 그리고 그 안에서 만인, 몽고, 한인 순으로 서열이 있었다. 자세한 것은 팔기제도 문서를 참조


그렇다고 만주족과 한족간의 차별이 없었느냐 그렇지는 않다. 조정의 주요요직은 만주족이 차지했고 지방행정의 고위직 순무 부터는 만주족만이 임명 될 수 있었다. 관리도 일정 수준 위는 그래도 한족 쿼터가 있었지만, 하위직은 그것조차 없어서 하위직 관리들이 만인들이 한인에 비해 훨씬 많았다.

이러한 차별은 청나라 말기 서태후 때쯤 막장화 된 팔기군으로는 도저히 반란군을 진압 할 수 없자 한족들이 요직 그리고 병권을 가진 주요직책에 대한 진출이 허용된다. 청나라가 망할 때까지 만인과 한인은 주거지역 등이 분리되어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수에 만인이 한족에게 흡수당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만인이 중원에 들어오고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만주족은 한족의 문화에 많은 영향을 미쳐 한화화 되었다. 여진족 나라였던 금나라에서 이런 현상이 심하고 여진족 스스로도 여진족 문화를 쪽팔려 해서 의복등을 한족 식으로 스스로 고치는 등의 일이 벌어졌기에 청나라는 이를 경계해서 만인과 한인의 거주지등을 구분했지만 뭐 소수가 다수에 무리 한가운데 살면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청나라에서는 초기에 변발등을 한족에게 도리어 강요 했고 한족이 만주족 포함 북방 유목민족에 풍습에 영향을 받은 것도 물론 많다.


만주족이 통치한 제국이자, 중국사에서 근대식 공화정 수립 이전 마지막 전제군주정으로 본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