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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트 애틀리
Clement Attlee
직책 영국 제62대 총리
(1945년 5월 2일 ~ 1951년 10월 26일)
←전임후임→
생몰기간 1883년 1월 3일 ~ 1967년 10월 8일
학력 옥스퍼드 대학교 유니버시티칼리지

근대역사학(학사)

정당 노동당

개요

영국 노동당 출신의 총리였다. 그가 시행한 여러 제도는 영국을 복지국가로 거듭나게 하지만 이후 이어진 장기간 경기침체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기침체와 비효율성은 마가렛 대처 재임기에 타파된다.

외교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황이 대한민국과 유엔군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던 1950년 11월 30일, 미국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기자회견장에서 유엔군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원자폭탄 사용도 배제하지 않는다[1]고 말했다. 이때 애틀리가 미국으로 날아가 원자폭탄 사용 등으로 인해 발생할 확전을 막아야 된다며 트루먼 대통령을 적극 만류했고, 영국도 유엔군임을 내세워 영국 동의 없이 원자폭탄을 사용해서는 안된다[2]고도 이야기했다.

애틀리가 이토록 한국전쟁의 확전을 막은 데에는 중국과 인접한 자국 영토 홍콩을 잃기 싫었고, 확전으로 미국이 동아시아에 전력을 쏟으면 서유럽이 소련의 위협에 노출된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이었다. 하지만 70여년이 흐린 지금 상황에서 보면 애틀리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홍콩은 결국 중국에 반환되었고, 서유럽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해지긴 했어도 경제선진국으로서 자국의 방어를 위한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애틀리의 확전자제요청은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정말 근시안적 판단이었다. 또한 동아시아의 최빈국인 한국에 돌아갈 미국의 군사원조와 물자제공이 부유한 서유럽에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한국전쟁의 확전 자제를 촉구한 것은 애틀리가 자국에서 그리고 겉으로는 좌파이지만 그도 제국주의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