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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중 체포된 김일성 전속 간호사 조옥희(趙玉姬, 25세)의 기자회견 기사 : 부산일보 1951년 3월 1일자 2면

金日成(김일성)의 看護婦(간호부) 合同搜査本部(합동수사본부)서 逮捕(체포)

金日成(김일성) 專屬 看護婦(전속 간호부) 趙玉姬(조옥희, 二五)는 昨年(작년) 十二月(십이월) 八日(팔일) 平壤(평양)을 脫出(탈출) 南下(남하)하여 市內(시내) 某病院(모병원)에 就職(취직)하고 있다가 合同搜査隊員(합동수사대원)에게 逮捕(체포)되었는데 二十八日(이십팔일) 上午(상오) 十時(십시) 金昌龍(김창룡)[1] 大領室(대령실)에서 記者(기자)에게 金日成(김일성) 괴뢰 首相(수상)의 秘密(비밀)을 다음과 같이 暴露(폭로)하였다.

問(문) 金日成(김일성) 自身(자신)은 어떤 病(병)을 가지고 있나
答(답) 梅毒(매독)에 걸린 것 같다. 내가 目擊(목격)하기에 六○六號(606호)[2] 注射(주사)를 맞는 것을 十餘回(십여회)나 보았다.
問(문) 金日成(김일성) 本妻(본처)는 죽었나
答(답) 죽었다.
問(문) 무슨 病(병)에 죽었나
答(답) 어린애를 낳다가 子宮出血(자궁출혈)로 죽었다. 아마 花柳病(화류병) 關係(관계)인 듯하다.
問(문) 本妻(본처)가 죽은 다음 院長(원장) 以下(이하) 全員(전원)은 無故(무고)하였는가
答(답) 院長(원장) 以下(이하) 全員(전원)은 自己(자기) 本妻(본처)를 잘못 治療(치료)하였다 하여 引責(인책) 罷免(파면)시켯다.
問(문) 金日成(김일성)이는 本妻(본처)로써 滿足(만족)하였던가
答(답) 金星八(김성팔)(二○)[3]이라는 金日成(김일성) 打字秘書(타자비서)와 關係(관계)를 맺아 姙娠(임신)한 것을 알고 所聞(소문)이 날까바 두려워 落胎(낙태)시킨 事實(사실)이 있다.
問(문) 本妻(본처)가 죽은 后(후) 再婚(재혼)은?
答(답) 洪命熹(홍명희) 딸과 再婚(재혼)하고 心臟(심장)이 弱(약)하다고 한다. 金日成(김일성)이는 自身(자신) 盲腸炎(맹장염)이 걸렸을 때 北朝鮮(북조선)서 治療(치료)를 하지 않고 蘇聯(소련)에 가서 治療(치료)하였다고 한다.
金日成(김일성)의 看護婦(간호부) 合同搜査本部(합동수사본부)서 逮捕(체포) 부산일보 1951-03-01
金日成 전속 간호부 趙玉姬, 체포 후 기자회견 부산일보 1951년 03월 01일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각주

  1. 김창룡(金昌龍, 1920~1956)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Salvarsan 또는 화합물 606호 (compound 606) : Arsphenamine
  3. 나중에 김일성의 후처가 된 김성애의 초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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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2022년 8월 25일 (목) 06:08632 × 1,133 (318 KB)JohnDoe (토론 | 기여)6.25 전쟁 중 체포된 김일성 전속 간호사 조옥희(趙玉姬, 25세)의 기자회견 기사 : 부산일보 1951년 3월 1일자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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