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야 마노빠껀(พระยามโนปกรณ์, 1884년 7월 15일 ~ 1948년 10월 1일)은 태국의 귀족이자 정치인으로 프라차티뽁왕 치세기간인 1932년 섬라혁명(당시 태국의 국호는 섬라였다) 이후 태국의 초대 수상을 지낸 인물이다.

생애

1884년 7월 15일 태국의 국호가 섬라이던 당시 수도인 방콕에서 태어났다. 젊을 적에 법학을 공부하여 법무성에서 일하고 출세가도를 달리어 왕실에서 후작위에 봉해졌다. 와치라웃왕의 치세에는 중추원 의관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하였다.

섬라혁명과 수상취임

프라차티뽁왕 치세기간인 1932년 내각책임제와 민주화의 요구가 거세지자 프라차티뽁왕은 국민들의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마노빠껀은 태왕국 최초의 내각인 섬라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자신이 초대 위원장(수상)으로 취임하여 1932년 12월 10일 태왕국 최초의 헌법을 발표하고 국정을 운영하였다.

실각과 말년

하지만 그가 구성한 내각의 이름인 섬라인민위원회에서 보듯이 마노빠껀은 왕실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회주의 정책을 추진하여 많은 이들의 반발을 샀다. 그리고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을 탄압하고 독재를 저질러 민심을 잃어 1933년 섬라혁명으로 실각하였다. 이후 1948년 10월 1일 사망할 때까지 영국의 지배 하에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