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당국이 발급한 빨치산 지도자 홍범도의 신분증.[1] "Фото удостоверения Командира партизанского отряда Хан Бем До (Photo of the ID of the Commander of the partisan detachment Han Bem Do)"

홍범도(洪範圖, Хон Бом До, Хан Бем До, 1868년 10월 12일~1943년 10월 25일)

생애

1922년 1월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 참석 당시 영상

1922년 1월 21일 ~ 2월 2일 모스크바 크렘린 궁에서 열린 제1회 극동민족대회 참석 당시 영상.

1922년 1월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한 당시에 찍은 봉오동 전투의 두 주역 홍범도(洪範圖)와 최진동(崔振東)의 사진. '홍범도 일기'에 따르면 홍범도 장군은 소련 최고지도자 레닌을 접견하고 권총 1자루와 금화 100루블, 레닌이 친필 서명한 '조선군 대장' 증명서 등을 선물 받았다.[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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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 봉환과 건국훈장 추서

박 교수는 “문 대통령이 유해 봉환 문제에 있어서 카자흐스탄 국가 권력자와 협의한 거지, 고려인 사회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게 아니지 않냐”며 “고려인에게 홍 장군은 절대적 존재이자 고려민족의 상징이다. 그런데 유해 봉환의 과정에서 고려민족 사회의 여론이 무시됐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이게 민주주의가 맞나. 아니면 대한민국의 국민만을 위한 민주주의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논란

소련서 나온 자료 보기 전까지 홍범도 아는 체 말아야 / 그의 自意識은 소련을 새 조국으로 삼은 빨치산
한인 무장해제에 가담했고 강제이주에도 불만 없어 / 문재인이 한 도발 바로잡는 걸 도발이라 해선 안 돼
    홍범도보고 지옥에나 꺼지라고 하는 건 아니다. 그는 나름 신조의 사나이였다. 다만 대한민국 현충원은 그가 있을 자리가 아니다. 국방부는 더 아니고 육사는 더욱더 아니다. 재조산하(再造山河) 운운하며 이념적 도발을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다. 도발을 바로잡아 원상태로 되돌리는 걸 똑같이 도발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언제쯤 정신을 차릴 것인가.
자유시서 무장해제하고 협조한 뒤 레닌에게 불려가 상 받은 행적
만주서 독립군 功 상쇄하고 남아 / 최고 훈장 수여 가당치 않았다
'자유시 참변' 이듬해 모스크바 초청돼 레닌과 면담…금화와 자신 이름 새겨진 권총 선물 받아
강규형 교수는 "홍범도는 독립운동은 분명 하기는 했는데, 자유시 참변 당시 독립군 몰살을 주도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동휘의 감언이설에 속았다고 주장하는데 당시 홍범도 나이가 만 53세였다"며 "홍범도가 아무리 독립운동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 반민족 행위를 했고 자유시 참변에 책임져야 할 사람인 데다 이 공로로 레닌한테 돈도 받고 대우도 받지 않았나"라고 지적했다.

그는 "3·1운동 기미독립선언문을 작성한 최남선이나 임시정부 발행지 '독립신문'의 사장 겸 편집국장이었던 이광수 등 당초 독립운동가였던 사람들에게 말년의 행보로 '반민족주의자'라는 '딱지'를 붙이는데, 그럼 홍범도를 비롯해 공산주의자들은 왜 '반민족 행위'라고 안 하나. 이 모순은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홍범도가 벌였다는 봉오동·청산리전투는 알고보면 대승·대첩이 아니라 잘해야 무승부였다. 사상적 동지였던 이동휘의 감언이설에 속아 자유시로 이동해서는 동료 독립군을 몰살하는 편에 섰던 사람이 홍범도다. 레닌으로부터 소비에트 적군 편입을 거부하는 한국 독립군을 청소해줘 고맙다고 격려금과 권총까지 선물받고, 소련공산당에 입당하여 당원이 된 사람이다. 홍범도가 과연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려는 것이며, 1등급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려는 것일까?
항일 의병장 유인석, “상놈 주제에 양반에게 대든” 죄목으로 의병 선봉장 김백선의 목을 베다.
항일무장투쟁의 영웅 김좌진은 독립 군자금 마련 위해 무장 강도 행각 벌여.
독립 군자금 강제 징수하다 연해주 한인 교포들에게 맞아죽은 독립군 대장 최영호.
자유시에서는 소련 적군과 손잡은 한인 무장부대가 동료 대원 수백 명을 사살·체포.
홍범도, 자유시 참변 당시 가해자 편에 서서 한인 독립군 몰살 후 레닌에게 군복·권총 선물받아
홍범도 장군 책자 1400부 전군에 뿌려
국방부는 책자에서 “당시 54세의 홍범도는 조선독립군 대장 명의로 레닌을 면담했으며 마우저 권총, 상금 100루블, 소련 적군(赤軍) 모자 그리고 레닌 친필 서명의 조선군 대장 증명서를 선물로 받았다”며 “홍범도는 ‘한국을 해방시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레닌에게 요청했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홍 장군이 레닌에게 요청했다는 ‘한국 해방’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선 해석하지 않았다.

참고 자료

홍범도(洪範圖; 1869~1943) 자신이 출생에서부터 의병 참가 및 청산리전투 경험과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 지방으로 집단 이주할 때까지의 활동과 경력을 쓴 일지로 이함덕이 필사하여 쓴 것이다.
'봉오동 대첩의 영웅' 최진동 장군 사진 찾았다 SBS 뉴스 2019.12.30

함께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