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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김대중 관훈클럽 토론
최근 수정 : 2018년 12월 8일 (토) 04:05

1987년 김대중 관훈 클럽 토론

중견 언론인들의 친목단체인 寬勳클럽은 1987년 가을 대통령 후보들을 차레로 초청해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은 초청연사의 기조연설에 이어 질문자들의 질문에 초청연사가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질문은 金大中 조선일보 논설위원(*동명 표기를 피하기 위하여 전 대통령을 김대중a, 조신일보 논설위원을 김대중b라 표기한다), 金景澈 중앙일보 논설위원, 張明秀 한국일보 부국장, 朴成範 KBS 보도본부장 등 4명이 맡았다.

김대중a은 10월 30일 평화민주당 창당준비위원장의 자격으로 초대받았다.

-〈김대중b〉저 개인으로서는 오늘 이 자리가 대단히 감회스러운 자립니다. 1971년 야당 출입기자로서 金大中위원장이 대통령직에 도전했을 때 그 과정을 낱낱이 취재했던 기자로서 저는 이제 일선 기자를 벗어나서 지금 논설위원을 하고 있는데, 우리 金위원장께서는 그때도 후보고 지금도 또 후보다, 16년간을 일관성있게 한 가지 목표를 추구하고 계신다 하는 그런 느낌을 갖게 됩니다. 특히 세월에 따라서 얼굴도 변하시지 않고 계속 더 젊어지시는 것 같아서 참 보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제기하고자 하는 문제는 金위원장의 이미지에 관한 한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일관성의 문제를 제가 묻고자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많은 사람들이 金위원장의 발언과 생각과 또 정치관이랄까 모든 관에 대해서 앞뒤가 안 맞는 경우가 있다는 지적들을 하고 있습니다. 크게는 두 가지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다 아시다시피 불출마선언과 단일화에 관한 한 약속을 지키지 못 지키신 것입니다. 그 이유나 상황은 어쨌든 간에…. 그 다음에 정책에 관한 것이라 하더라도, 직선제에 관한 견해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성당 부분 변화했습니다. 또 올림픽에 관한 입장도 처음에는 강력하게 반대를 하셨다가 지금에선 상황이 또 바뀐 것으로 봅니다. 또 2․12 총선에 대한 평가나 가치판단 자체도 상당히 많은 변화와 기복을 겪었다고 저희들 기자로서는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金위원장의 일관성에 회의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金위원장은 스스로 어떤 답변을 하실 수 있는가를 여쭤 보고 싶습니다. 
▲<김대중a>그런데 나는 미안하지만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나는 올림픽이나 2․12 선거나 대통령직선제에 대해서는 한번도 생각을 바꿔 본 일이 없습니다. 또 불출마 선언은 내가 전두환씨가 직선제를 수락하고 그 당시 건국대 학생들을 용공으로 몰아서 탄압한 것을 중지하면 내가 안 나갈 수 있다 했는데 상대방이 즉각적으로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내가 약속을 어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소소한 문제는 내가 보기에 따라 견해가 다릅니다. 그러나 정치인의 진정한 약속은 그 기본적인 진로와 노선에 있어서 국민에게 말한 것을 지켰느냐, 난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30년에 걸쳐서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그것을 때로는 목숨을 걸면서까지 굴복하지 않고 국민에 대한 약속을 지켰습니다. 또 나는 일관해서 노동자 농민 근로대중 그리고 중산층, 이런 분들의 권리와 생활향상을 위해서 봉사하는 그러한 정책과 나 나름대로의 학술을 가지고 일관된 주장을 해서 한번도 바꿔본 일이 없습니다. 또 나는 심지어 사상을 의심까지 받은, 그러한 모함까지 받으면서도 남북간의 평화정착과 조국의 통일, 여기에 헌신하겠다는 내 정책을 일관해서 밀어 왔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문제에 있어서 나는 적어도 30년 동안 국민에 대해서 정직하고 성실한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나머지 소소한 정책적인 문제라든가, 이런 문제는 나뿐 아니라 누구든지 그것은 상황에 따라서, 또 판단의 차이에 따라서 다소간 변화가 있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해서 만일 그런 오해가 있다면 내가 솔직이 말씀해서 하나는 내 부덕의 소치고, 하나는 이 정권의 악랄한 모함의 소치가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장명수〉보충질문을 하겠습니다. 지금 질문한 일관성의 문제에 대해서 요즘 드러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金후보께서 요즘 연설을 하고 다니실 때 일반청중을 대상으로 연설하실 때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설하실 때, 그 노선이라든가 정책에서 강도가 매우 다르다고 일반국민들은 느끼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근로자 앞에서 말씀하실 때나 또는 중소기업인들 앞에서 말씀하실 때 또한 같은 차이를 느끼고 있습니다. 누구 앞에서 연설하실 때의 온도가 金위원장께서 생각하시는 생각에 가장 가까운 것입니까.  
▲<김대중a>내가 생각할 때는 기본원칙만 같으면 사람에 따라서, 대상에 따라서 표현은 다를 수 있는 게 아닌가요. 나는 부처님도 사람에 따라서 설법하라는 말씀도 해서, 그런 점에 있어서는 상대방이 그 계층에 따라서, 또는 관심이 집중한 분야에 따라서 표현이야 다를 수 있지요. 그러나 내가 가령 학생들 앞에서 우리는 미국을,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미국을 우리의 원수로 삼아서는 안된다, 이건 우리의 국익에 위반된다, 나는 정의로운 사회만이 공산주의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강력한 안보를 지지한다, 또 나는 어떠한 좋은 목적이라 하더라도 폭력을 써서는 안되고 그리고 공산주의를 이롭게 하는 그런 주장이라든가 통일방안은 안된다, 이런 원칙에 있어서는 아마 여러분이 기억하시겠지만 작년 4월에 민국련성명, 그런 과격한 용공적인 것은 안된다든가, 또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내가 말한 3非주의, 非暴力 非容共 非反美 이런 것을 공개적으로 말한 정치인이 도대체 미안한 말이지만 나 말고 누가 있는가, 그래 가지고 나는 한때 사실은 학생이나 노동자, 그런 분들한테 상당한 비판도 받았지만 그것이 내가 나라를 아끼고 또 그분들 자신들을 아끼는 입장이기 때문에 나는 내 소신을 일관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원칙의 입장,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그러나(sic) 동족간의 전쟁을 반대하고 공산당을 이롭게 하지 않는 방향으로 통일을 추진하고 또 국내에서 국민대중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이런 원칙에 있어서는 누구 앞에서나 일관했다고 생각하고 있고, 나는 또 학생들 앞에서도 내가 사회주의자가 아니고 사회민주주의자도 아닌 것은 나는 자유경제를 지지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제게 그런 오해가 있다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제가 주장해 온 것을 여러분이 상기하신다면 내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이렇게 이해하실 걸로 믿습니다.    
-〈박성범〉일관성 문제하고도 관련이 있고 또 앞으로 외교정책 구상문제하고도 관련이 되는 것 같아서 보충해서 여쭤 보겠습니다. 金위원장께서는 지난 27일에 계보대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친미도 반미도 아닌 보다 자주적인 對美외교를 강조했습니다. 저희가 일기로는 金위원장께서 두 차례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에 거의 대부분을 미국에 계셨고 또 그런 점에서 볼 때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으로부터 상당히 도움을 받은 그런 분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지난 27일의 발언으로 불 때는 느낌상으로는 조금 미국쪽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으로 해설할 수 있는 부분도 있었는데 金위원장께서 미국에 계실 때는 朝野에 다니면서 軍援삭감이나 경제원조를 중단해서라도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미국이 압력을 넣어야 된다, 이런 주장을 펴오셨는데, 27일 대학생들하고의 토론에서는 조금 다른 뉘앙스의 얘기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외국의 간섭도, 선의의 간섭도 수용을 해야 된다는 소신이 변하신 것인지, 아니면 지지기반을 의식한 전술적인 발언인지 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a>오늘 저녁 내가 여기 잘 나왔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렇게 자꾸 오해된 일이 여기서 얘기하는 과정에 풀려가는데, 나는 미국서 단 한번도 軍援을 중지하라든가, 그런 얘기 한 일이 없어요. 이게 정부의 정보정치의 조작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겁니다. 나는 그런 일이 없어요. 또 나는 안보에 대해서 미국이 그것을 한국민주화에 대한 압력수단으로 이용하라는 것을 주장 안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반대했어요. 내가 얘기한 것은, 내가 미국서도 교포들한테 연설 할 때 -원하면 내가 언제든지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줄 수도 있는데- 거기서도 친미도 반미도 운운할 필요 없다고 그랬어요. 도대체 우리는, 미국과 우리가 지내는 것은 우리 국가 이익에 의해서 미국과 잘 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도 자기네 이익의 필요에 의해서 여기 와 있는 거에요. 한번도 미국정부가 여기 와 있는 것이 한국만 위해서 와 있단 말 한 일 없습니다. 자기네 국익을 위해서 와 있다고 그랬어요. 우리는 우리 국익을 위해서 미국과 협력하고 우리 국익을 위해서 말하자면 미국을 우방으로 가지고 있는 거에요. 그러기 때문에 만일 미국이 이 나라에서 독재정치를 지지한다든지, 우리에게 지나친 시장개방을 주장한다든지, 이럴 때는 그 정책은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우리가 말하자면 비판하고 때로는 싸워야 돼요. 그러나 나는 또 한마디 말씀만 가지고 그렇게 얘기하니까 그렇게 되지만, 나는 또 똑같은 얘기 과정에서 우리가 북한에 공산정권이 있고 그 배후에 중국과 소련이 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미국이나 일본을 우리의 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 얘기는 수없이 또 제가 하고 있어요. 이러기 때문에 제가 말씀한 것은 결국 잘못된 전달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여하튼 그런 질문 해줘서 감사합니다.         
-〈김대중b〉제가 기록을 위해서, 1973년 2월 金위원장께서 미국에 당시 망명으로 있을 때, 유신치하에서, 그때 뉴욕 타임즈에 기고한 어페어즈(affairs)난에 金大中 명의의 글에서는 분명히 한국에 정치적인 압력을 가하기 위해서, 군사원조의 중단까지를 고려해서, 그런 문제가 분명히 기록에 나와 있습니다. 제가 기록을 위해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김대중a>그런 기록 나온 일이 없어요. 난 그렇게 쓴 일이 없어요.
-〈김경철〉경제문제를 하나 물어 보겠습니다. 金위원장께서는 저서를 통해서나 또는 공식입장을 통해서나『나는 자유경제 체제의 지지자다』를 누누이 강조하고 계십니다. 또 최근엔『나는 온건 개혁주의자다』는 것도 또한 강조하고 계십니다. 이와같이 경제에 관한 기본적인 金위원장의 태도를 표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 중에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이 아니고 심지어 金위원장께서는 경제적으로도 보수적이라기 보다는 혁신적인 인물이다, 따라서 金大中 위원장께서 집권하시는 경우 경제정책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金위원장이 집권하면 역시 기업하기가 상당히 어려워질 것이다, 이렇게 말들이 많습니다. 이와 같은 金위원장의 경제관에 관한 국민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계시는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a>히틀러가 말하기를 거짓말도 열번하면 참말된다, 자꾸 똑같은 소리 되풀이한다, 이런 말이 있는데, 이 정권이 15년 동안 상대방은 입 막아놓고 자기 혼자만 계속 나한테 뒤집어 씌우고 몰아 붙였다 그 말이요. 그러기 때문에 그런 문제가 생겨난 겁니다. 지금 어느 내가 쓴 글자, 또 내가 수많은 경제적 발언을 국회에서도 했고 본회의, 분과회의에서도 했는데 내가 그렇게 기업을 적대시하거나 어떤 사회주의적인 주장을 한 일이 없어요. 정반대에요. 그런데 그런 오해가 생겨난 것입니다. 다만 나는 기업인에 대해서 적대시 안할 뿐 아니라 기업인을 오늘의 경제적 활동에 있어서 권력의 지배, 기반으로부터 해방시켜 줘야겠다, 풀어줘야 겠다, 심지어 어떤 기업인은 자기 아들을 국회의원 출마시키려다 그것도 못했어요. 어떤 대재벌은 불과 1개월 내에 아무 이유도 밝히지 않은 채 완전히 파산, 권력에 의해서 해체당했어요. 이런 기업들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거에요. 그래서 나는 오히려 기업의 편에 들어서 기업인들이 자유로운 기업활동 하는 걸 도와주고 싶다, 다만, 기업들이 만일 제가 정권잡으면 기업하기 어렵다, 그건 어떤 의미에선 사실입니다. 지금까지와 같이 권력하고 결탁해 가지고 중소기업이나 국민대중은 무시하고 자기만 독점적인 특혜를 누리는 그런 일은 앞으로 불가능하니까 그런 기업은 어렵지요. 그러나 자기 능력과 실력 가지고 국민에게 최대의 서비스를, 가장 좋은 물건을 가장 싸게 파는, 그리고 국제 경쟁력을 확고하게 기르는 이런 기업, 노동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주는 기업, 이런 양심적인 기업은 아마 내가 정권 잡으면 가장 활기차고 가장 성공적인 기업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장명수〉金위원장께서는 지금까지 정치보복은 일체 하지 않겠다, 또 독재자도 자체는 용서할 수 없지만 사람은 용서해야 된다, 또 해방 이후에 친일파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은 것이 잘못이 아니라 그 사람들을 기용한 것이 잘못이다, 이렇게 말씀해 오셨습니다. 만일 金위원장께서 대통령이 되신 후에 구체적으로 광주 사태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광주사태에 대해서 일체의 법률적 차원의 처리를 안하시겠다는 뜻입니까. 또 그것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사회정의론에 부합되는 것인지 좀 설명해 주십시오.    
▲<김대중a>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제가 여기서, 이 자리 답변보다는 지난 9월 8일 광주 망월동 묘소, 영령들의 묘소앞에서, 영령들의 묘소앞에서 유가족을 앞에 모시고 한 얘기를 답변해 대신 하겠습니다. 나는 거기서 광주사태는 분명히 해결돼야 한다, 국민과 모든 관계자, 희생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그 진상이 밝혀지고, 명예가 회복되고 그리고 유가족과 부상자들에 대해서 정당한 최대한의 물심양면의 보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광주 영령들이 갈망하는 민주주의가 이뤄져야 한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자리서 제가 반면에 우리는 독재정권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지만 독재자는 우리가 인도적 견지에서, 또 장래에 정치적 혼란을 막는 견지에서, 또 국민 내부의 화해를 성취시키는 견지에서 이것은 용서해야 한다, 제가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참 뜻밖에도 거기서 큰 박수가 일어났습니다. 난 가슴을 쓸어내리고 안도감을 그때 느낀 일이 있습니다. 아까 사회정의 측면 말씀을 하셨는데, 사회정의란 것은 악을 용납할 때 사회정의에 어긋납니다. 독재정권, 독재적 제도, 독재적 법률관행 이런 것을 우리가 만일 용납한다면, 또 그것을 정치보복 안한다는 구실아래 용납한다면 그것은 사회정의에 어긋납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죄도 범할 수 있지만 선행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사람은 그 죄가 미운 거지 사람이 미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 종교신앙에서 보면 다 하느님 아들이고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보면 다같이 천부인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 반성하고 또 회개하도록, 그리고 새로운 민주사회에 선량한 시민으로 참가하도록 촉구하고 용서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용서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성공과 내일을 향한 화해를 가져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성범〉딱딱한 질문과 답변이 계속되는 것 같아 화제를 바꾸겠습니다. 金위원장이 감옥에 계실 때 김일성과 수천 번 장기를 두셨다고 나오셔서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장기는 누가 이겼고 또 金위원장은 어떤 수를 주로 쓰셨고 김일성은 어떤 수를 주로 썼습니까. 
▲<김대중a>장기를 두었다고 얘기하고 바둑을 두었다고 하지 않은 것은 바둑을 둘 줄 몰라서 장기를 두었다고 얘기했습니다. 장기를 둬보니까 김일성이도 수가 세지만 내 수도 별로 지지 않는 수다, 이렇게 결론 얻었는데요. 
-〈김대중b〉또 도리없이 딱딱한 질문으로 들어가게 됐습니다. 金위원장은 온건 개혁주의를 표방하셨습니다. 그러나 富裕稅 신설에 관한 발언 또는 농가부채 전면탕감, 그밖에 민중사관 이런 문제들에 대한 발언이 金위원장으로 하여금 운동권 및 재야의 주장을 다른 여타 출마 예상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수용하고 있다는 그런 주장을 가능케하고 있습니다. 또 金위원장은 특별히 근로자와 학생들을 지지기반의 토대로 삼으려는 그런 의도를 때때로 간헐적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또 평민당이 저소득층․근로대중․소외계층을 위하는 정당이고 민주당이나 기타 다른 정과는 다른 정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金위원장을 비롯한 신당 참여인사들의 뜻과 의지가 그럴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가지만 적어도 구성면에서 드러나는 면에서는 온건하면서도 개혁적인 어떤 수용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기왕에 가지고 있던 세력을 갈라서 가졌을 뿐 새로운 다른 정당이라고 표방하면서 새로운 인풋(input)이 과연 있느냐 하는 점에서는 말로만 믿을 수밖에 없다는 저희들 생각입니다. 신당에 참여하신 분들도 저희들 느낌으로는 지금 당장에는 어제의 민주당 의원들과 별로 색깔이 다른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온건주의자일지는 몰라도 개혁주의자라기에는 고개가 까닥해지는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차제에 진보세력 또는 학생세력들을 광범위하게 흡수해서 명실공히 혁신정당으로 새로운 진출을 할, 그런 변신을 할 용의는 없으신지요.
▲<김대중a>상당히 어려운 질문이고 잘못하면 위험한 질문같은 생각이 드는데,(웃음) …아까 농가부채 얘기를 했는데 그 농가부채는 원래 신민당에서 탕감하라고 주장한 겁니다. 나는 신민당에서 배워가지고 마치 내가 혼자 창안해 갖고 말한 것처럼 말씀을 하시는데 어째서 내가 얘기하면 그렇게 들리는지 모르겠어요. 민중사관이란 것은 국민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관이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적 계급사관은 아닙니다. 민중이란 것은 얼마전까지 경찰을 보고 민중의 지팡이라고 부를 수 있었듯이 좌익용어가 아닙니다. 또 그리고 내가 무슨 사관이라고 해서 그렇게 큰 역사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혁신정당을 안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전에 학생들한테도 분명히 얘기했는데 나는 경제에 있어 자유경제를 지지한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혁신정당이 지향하는 계획경제, 이런 것은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혁신정당이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자가 주장하는 사회정의의 측면은 강력히 지지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자유경제주의자이기 때문에, 나는 혁신주의자가 아니다, 그리고 사회정의의 측면도 나는 어디까지나 경제의 안정과 건전한 발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의 정의의 측면이지, 말하자면 영국에서 하는 식으로 국가경제의 능력을 초월한 무모한 사회보장적인 그런 것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이런 말이었습니다. 내가 혁신정당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 같은 기본적인 생각때문입니다. 요즘 노조 같은 데서 나를 지지할 때도 그 이유를 보면 다 마음에 안 맞지만 그래도 그 중 金 아무개가 우리 문제에 제일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니까 지지한다, 이렇게 한편으로는 비판하면서 지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혁신정당을 할 생각이 없다,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김경철〉보충질문을 하겠습니다. 농가부채의 이야긴데 지금 金위원장은 농가부채탕감문제는 원래 내가 제기한 게 아니다, 신민당에서 제기한 것인데 어떻게 좀 잘못돼서 내가 얘기한 것인 양 신문에 보도됐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신 것 같은데 金위원장도 분명히 요즘 공공연히 농가를 부채로부터 해방시키겠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론 金위원장 나름대로 농가를 부채로부터 해방시키는 방법론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첫째 농가부채해결 방법론을 말해 주시고, 그 다음 세간에 경제전문가들이 농가부채탕감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이란 사실도 알아야 할 줄 믿습니다. 왜냐면(sic) 농가부채는 어쨌든 경제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사실 경제적인 문제를 정치적으로, 다시 말하면 선거를 위한 해결책이다, 이런 비판이 있다는 것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농가부채탕감 방법을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a>그 문제에 있어 내 나름으로는 명확한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다시피 조세감면특별법 이것을 재작년에 날치기로 통과시켜 갖고 작년과 금년 양년의 정부는 불과 30~40개의 재벌에 대해 약 5조-어쩌면 그 이상 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양심이 있다면 30명의 대재벌에게는 5조의 빚을 탕감해 주고 1천만 농민에게는 3~4조의 빚을 탕감 못해 주겠다, 이것은 어떤 양심 갖고도 긍정할 수 없습니다. 또 농가가 부채를 지게 된 원인은 자기 자신의 책임보다는 정부책임이 큽니다. 무모한 양곡 도입, 무모한 소와 쇠고기 도입, 그리고 농민들이 생산한 농축산물과 야채에 대한 유통구조의 형성에 실패한 것, 따라서 서울선 배추 한 포기에 2백원 하는데 농민은 밭에서 15원, 20원밖에 안하니까 밭에다 내팽개치는 이런 상태에서 부채를 졌습니다. 때문에 정부책임상으로도 이곳은 모면할 수 없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농민으로부터 이 부채의 짐을 덜어주고 농민의 생산물 가격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농촌은 완전히 없어져 버립니다. 이미 현재도 파멸 직전입니다. 농촌이 파멸됐을 때 우리나라가 어떤 상태가 되겠는가, 이것은 3조는커녕 3백조 갖고도 해결 안될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국가존망문제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예산문제만 해도 솔직이 말해 우리나라의 정부 구매물자 또는 정부공사, 이것이 연간 약 3~4조에 달하는데 여기서 적어도 3~4할 이상의 로스가 있습니다. 깨끗하고 정직한 정부가 들어서서 여기서 2할씩만 절약을 한다해도 5년 안에 농가부채는 탕감할 수가 있습니다. 꼭 탕감해 주지 않을 성격의 부채는 장기간 저리상환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농가부채문제는 어떠한 면에서 보더라도 이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장명수〉부드러운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오늘 金위원장은 굉장히 젊어 보이는데 혹시 머리에 염색을 하셨습니까?
▲<김대중a>예, 미국에 가서도 염색을 많이 하고 다녔는데 미국사람들은 특히 동양사람들을 굉장히 젊게 봅니다. 그러다가 나이를 얘기하면 깜짝 놀라서 당신은 고생도 많이 했다는데 어째서 그렇게 젊고 머리도 그렇게 검으냐? 그래서 제가 말하기를, 그 일일이 이유를 설명하기도 쑥쓰럽고 해서 당신들은 밖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늙을 책임이 있지만 나는 감옥 안에 오래 있었으니까 내 인생이 중단되어 늙는 거도 중단되어야지(웃음) 늙는 것도 같이 가면 되느냐 이렇게 대답했는데 뭐 그런 정도죠. 
-〈박성범〉지금 4명의 대권후보자 중에서 金위원장이 통일문제를 가장 많이 말하고 또 가장 빈번하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공화국연방제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들을 기회가 있었기 때문에 생략하고 그것보다도 왜 북한측에서 쓰는 고려연방제 - 즉 오해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용어를 썼는지 또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론, 또 군축론, 남북한의 평화구조정착론의 배경과 내용을 설명해 주시죠. 
▲<김대중a>연방이란 말은 이북 공산당이 먼저 쓴 것이 아니라 사실은 1973년에 내가 일본에서 먼저 한 얘긴데 또 우리보다 훨씬 더 먼저 나온 것은 미국은 2백년 전부터 연방제를 하고 있고 호주연방, 캐나다연방, 서독연방 등 연방얘기의 원조는 서방국가지 이북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북은 또 내가 말한 연방하고 내용이 다릅니다. 나는 양쪽 남북간의 두 독립정부가 대표를 파견해서 아주 권한이 제한된 그러한 일종의 협의기구 비슷한 연방이다, 그런 제안인 데 비해 이북의 연방은 외교와 군사권을 연방정부가 갖는다, 간단히 말하면 인민군과 국군을 하나로 만든다는 얘깁니다. 이러면서 양쪽 정부는 지방정부로 한다는 것이어서 전연 다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안 살피고 연방이란 말 하나만 가지고 모두들 오해도 하고 악선전하기도 해서 내가 이미 선언한 바와 같이 내 본의가 그런 뜻이 아닌데 또 미국이나 캐나다나 다 쓰는 말이니까 또 이것은 미국의 라이샤와 교수라든가 하는 석학들과도 협의해서 붙인 이름이지만 국민에게 그런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이 이름은 쓰지 않겠다고 이미 발표한 바가 있읍니다. 비핵지대 군축론, 이것은 제가 말한 적은 없구요, 민주당에서 정책 안에 그것이 나온 적은 있습니다. 나는 이 핵문제에 대해서는 솔직이 말해 오늘날 우리나라의 안보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내 의견을 유보하고 만일 정권을 잡으면 충분히 안보사정을 검토해 가지고 그 필요성을 검토해서 정해야 한다, 또 군축문제는 적어도 남북의 평화체제가 확립되기 전에는 군축이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대중b〉이번에는 좀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특히 金위원장 세대가 대단히 어려운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개인적인 히스토리라고 할까 하는 것이 비교적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편입니다. 그것은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감안해 이해는 합니다만 그러나 오늘날 정치에 있어서는 대통령을 하겠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겠다는 분들은 어떤 형태로든 간에 국민앞에 투명하게 비쳐져야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느껴져서 金위원장의 해방 전후한 정치경력 등에 대한 오해나 비판에 대한 말씀을 해주시고 또 학력문제에 대해서도 몇 가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제가 이걸 우연히 발견한 것입니다만 선관위에서 나온 국회의원 당선자 명단에 보면 金위원장의 학력이 4가지로 나와 있습니다. 일본 법정대학인 경우가 있고, 건국대학 이것은 아마 만주 건국대학인 걸로 보입니다. 또 경희대학도 나와 있고 대학원이라고 나와 있기도 합니다. 이런 문제를 묻는 것은 비단 金위원장의 경우만은 아니고 앞으로 토론회에 나오거나 예정된 분들께도 그분의 개인적인 경우를 우리가 물을 권리가 있지 않은가, 다만 金위원장이 오늘 처음 나왔기 때문에 먼저 묻게 되는 것을 양해하기 바랍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金위원장의 나이, 연세 문젠데 저희가 71년 선거 때 기억하기로 朴正熙씨와 치열한 다툼을 벌일 때 金위원장은 나는 돼지띠요, 朴正熙씨는 뱀띠라 뱀이 돼지한테 꼼짝 못한다, 그래서 이 선거는 필연코 내가 승리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돼지띠로 계산하면 지금 예순 다섯이 되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만 1925년 출생으로 돼어 있어 어느 쪽이 맞는가를 말해 주십시오.          
▲<김대중a>아이고, 그 71년에 조금 말하던 것까지를 다 기억해 가지고 질문하시니 이거 뭐 겁이 나서 안되겠는데요.(웃음) 여러분께서 또 TV가 비추어서 국민에게 알려지겠지만 내 여기서 특히 사상에 대해서 경력에 대해서 말한 것에 대해 김대중선생이 질문해 준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또 여기서 책임있게 말하겠습니다. 나는 일제시대에 목포상업학교를 나와 가지고 바로 일본군에 끌려가게 돼서 대기하고 있던 중에 해방을 맞이했습니다. 해방을 맞이해서 참 그때 스물한살에 너무도 기뻐서 건국준비위원니 인민위원회니 그땐 또 지방에서는요, 우익․좌익이 같이 가담을 했습니다. 그래 거기도 또 조금 관계했고 신민당이라고 하는-당시 지방에서는 남북좌우합작을 하는 정당이었는데 나중에는 좌익정당으로 갔습니다.-에 또 거기에 조금 가담을 했습니다. 한 10개월 동안 관계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1946년부터는 당시 전처의 아버지 즉 장인이 한민당 목포시당 부위원장이었는데 저는 거기를 이탈하고 그래서 우익측에 가담을 하고, 6․25 당시에는 해상청년단 목포시 부단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6․25 때는 서울에 사업상 왔다가 6․25를 서울에서 맞이했습니다. 그래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유엔방송을 들으니 대전 금강전투에서 막는다고 안심하라고 했고 서울에 있으면 의용군이 잡아가려고 하고 해서 몇 사람들과 함께 걸어서 목포까지 내려갔습니다. 가는 도중에 목포에 인민군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올데갈데가 없어 할 수 없이 집으로 갔더니 우리 집은 몰수됐고 가재도구도 다 가져갔어요. 아내는 방공호에서 둘째아들을 낳았지요. 그래서 나는 이틀만에 공산당한테 잡혀갔습니다. 그 사람들이 철수할 때 목포 형무소에 있는 약 2백20명을 학살했는데 그 중에 1백40명이 죽고 80명이 간신히 탈옥해서 나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접니다. 제 바로 밑의 아우도 그랬습니다. 이래 가지고 나는 다시 해상방위대-말하자면 해상방위군이죠-전남지구 부사령관이란 직책을 해군으로부터 임명받아 갖고 하다가 육군방위군이 해산되는 바람에 같이 해산됐습니다. 내가 만일 요새 말하는 그런 좌익이고, 무슨 파출소를 습격하고, 이랬다면 상식으로 생각할 때 내가 목포에서 출마, 국회의원을 두 번씩 할 수 있었겠는가, 또 그랬다면 내가 1971년 대통령 출마했을 때는 왜 朴정권은 그때 입 다물고 있었는가, 전부 유신 이후에 조작한 말입니다. 이것은 나 혼자 한 소리가 아닙니다. 80년 나를 좌익으로 몰아 죽이려 할 때 미국 정부가 -이 문제는 중요하니까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양해해 주십시오-자기네 변호사를 보내 법정에서 방청하고 기록했습니다. 그래 갖고 미국정부가 예외적으로 김대중에 대한 혐의는, 좌익이다, 광주사태 선동했다, 이런 것은 전부 조작이라 했습니다. 뿐 아니라 레이건 행정부도 그 입장을 재확인했습니다. 더욱이 지난 연초에는 미의회에서 어느 공화당의원이 김대중 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질문했을 때 시거 차관보가 김대중 사상에 대해 우리는 아무 의문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도대체 이 全정권이 또 민정당이 지금 악의적인 문서를 매일같이, 지금 이 시간에도 전국에 뿌리고 있는데 내가 진짜 좌익이면 왜 나를 사면복권하는가, 이 정권이 용공정권입니까? 나는 이 사람들이 참으로 비열한, 국민으로부터 저주받을 짓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여러분들같이 좋은 시대를 못 만나고 또 환경이 그래서 내 학력은 이렇습니다. 나는 학력이 법정대학 나왔다는 말 한 적도 없고 만주 건국대학 나왔다 한 일도 없습니다. 다만 부산 있을 때 거기에 건국대학이란게 있어 가지고 나중에 동아대학으로 합병했습니다. 거기에 내가 3학년으로 편입한 일이 잠깐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경희대 경영대학원을 나왔고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습니다. 다만 대학을 정식졸업 안했기 때문에 석사학위는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하버드 대학가서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국제문제 연구소에 초청 연구원으로 1년 있었고 에머리 대학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나이는 돼지띠입니다. 그런데 호적은 달라서 만으로 두 살 차이가 납니다. 우리 나이로는 12월생이지만 65세입니다.               
-〈박성범〉이번에는 부드러운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최근에 공식석상에 한복을 자주 입고 나타나니까 해방직후 여운형씨나 김구선생같은 인상을 연상케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해방직후 두 분의 정치노선하고 자신의 노선하고 공통점과 차이는 어떤 것입니까.
▲<김대중a>김구선생은 민족 정통성을 엄격히 주장, 친일파를 처단은 안하더라도 친일파가 국정을 좌우토록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지금도 천만금 같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구선생의 책을 읽어보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김구선생 이미지와는 달라서 경제적 정의에 대해 상당히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도 한없이 존경합니다. 여운형선생에 대해서는 그 분이 일종의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분은 공산주의자도 아니었고 공산주의를 좋아하지도 않았지만 좌익으로부터는 개량주의자로 몰리고 우익으로부터는 용공주의자로 몰리고, 이런 비극의 시대를 살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병행해서 활약했던 그 정신은 우리가 정당히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복 입는 것은 그분들 흉내내는 것은 아니고 원래 좋아하는 데다 또 이번 선거에 나가는 정신이 민족자주라든가 국민들의 생존권이라든가 민족통일이라든가 이런 점이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에 주위의 권고도 있고 해서 앞으로도 종종 입을 생각입니다.
-〈장명수〉문교정책에 대한 질문입니다. 현행 대학 입시제도는 정부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현재 과외공부가 법으로 금지돼 있는데 아무리 부작용이 있다 하더라도 공부시키는 것을 불법화시키는 것은 문교정책의 모순, 나아가 빈부격차의 모순을 수험생들에게 전가시키는 큰 모순이라고 생각합니다. 입시제도와 과외공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김대중a>제가 나름대로 제일 고민하며 연구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그런 교육제도입니다. 이는 너무도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제가 조심하며 말해야 하는데 지금 장국장 말씀께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우선 입시지옥은 해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만 갖고 처리될 문제가 아니고 전반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나와야 합니다. 예를 들면 민주정부가 서서 교사들이 양심을 갖고 정직하게 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서 교사들의 내신서가 입학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런 방법도 검토돼야 할 것입니다. 2학년, 3학년으로 가면 시험 과목외에는 거의 공부를 안함으로써 교육이 완전히 파행적으로 가고 있는 이런 사태를 시정키 위해서도 내신제도가 중요하지 않은가 봅니다. 또 대학문호도 어느 정도 개방,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시키되 열심히 안하는 사람은 졸업시킬 수 없다, 그래서 유급제도를 두더라도 개방은 더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안되고 근본적으로는 사회에서의 정책이 가령 대학 4년 나온 사람과 고교 3년 나온 사람의 차이는 봉급이나 승진에 있어서 4년 차이만 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학을 안 나오고 고등학교만 나오더라도 자기 실력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승진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됩니다. 이렇게 돼야 모두가 대학에 안 몰리지 그렇지 않으면 사회에서 출세하는 길이란 오직 대학가는 일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리 대학문을 넓히더라도 이 문제는 해결이 안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여러 가지 문제가 종합적으로 다뤄져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게 제 생각합니다. 대학기부금 입학제에 대해선 그것이 부작용이 안 나오는 범위 내에선 채택해도 좋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박성범〉1980년 봄, 지금은 87년 가을입니다. 세월도 계절도 정치상황도 차이가 많습니다. 김대중 위원장은 어떤 점이 달라졌읍니까.    
▲<김대중a>여러 가지 고생도 하고 어려움도 겪고 했으니까 다소 수양도 됐을 것이고 인내심도 좀 생겼을 것이고 그러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사실 그간에 내 개인으로서는 참으로 힘들고 때로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은 어떤 일을 겪더라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다 감사하다는 이런 심정도 들고, 또 내가 남한테 당해 보니까 참 못 당할 일이 정치보복이더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상대방을 박해하는 일이더라 생각하니까 결국 용서하자는 그런 생각도 들고, 또 가만히 안에서 생각해 보니까 결국 인생이란 것은 결국 한번 왔다 한번 가는 건데 아무리 높은 자리 부귀영화 누려도 이완용이 같이 누리면 아무 소용이 없고, 설사 그렇게 못하더라도 안중근이나 윤봉길 의사 같이 살면 값이 있다, 결국 인생은 뭐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또 많은 사람들이 뭐가 옳고 그른 줄 알면서도 결국 침묵을 지키거나 소극적으로 악에 협력하는 걸 볼 때, 양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양심대로 행동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가졌습니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내 나름대로 느낀 것은 이런 어려움을 겪고 고독한 생활을 해보니까 사람이 그립고 사람을 사랑하고 싶고 사람을 용서하고 싶고 그리고 현재의 상태에 대해서 감사하고 싶은 그런 여러 가지 면에서 사실은 그 감옥간 덕택으로 수양도 좀 됐고 안에서도 책을 좀 읽은 덕택으로 부족한 지식도 보충해서 때로는 감옥 안에서 내가 여기 안 왔더라면 이 진리를 모르고 죽을 뻔했는데 참으로 감옥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까지도 들었어요. 지금은 사면복권되서 바쁘니까 그런 생각을 할 여지가 없지만 그후로 간혹 집에서 있을 때는 차라리 감옥에라도 가 있으면 책도 좀 읽을 수 있을 텐데 하는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김경철〉金위원장께서는 나의 지지 세력은 중산층 이하 저소득층이다라는 걸 대단히 만족해하고 동시에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혹시라도 집권하게 되면 저소득층의 지지에 대한 상당한 보상이 있을 걸로 생각됩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고락을 같이해 온 주위의 많은 분들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경제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다가 金위원장이 집권하면 어떤 보상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는 요구가 클 텐데요. 과거 金위원장과 어떤 관계로든 연루되어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거나 고난을 받았던 기업들도 상당히 있으리라 봅니다. 집권 후 이들에 대한 한풀이 경제운영이라는 쪽으로 펼쳐지지 않겠느냐는 일부의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하실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중산층과 근로대중이 뿌리박는 정당이라고 말했는데 최근 국내 모 국립대학 사회과학연구소에서 조사한 것을 보면 우리 국민의 83%가 내 이익을 대변할 정당이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당은 모든 계층의 이익을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평화민주당은 중산층과 근로대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을 지향하고 또 그것이 내 일생의 신조이고 다른 분들은 또 다른 분야를 대변하겠지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같이 고락을 나누던 분들의 요구를 어떻게 하겠느냐, 또 근로자들의 요구를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참고로 할 만한 좋은 예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남미 아르헨티나의 알폰신 대통령 이분이 지금 내가 말한 계층들의 지지로 대통령이 됐습니다. 그런데 이분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분들의 과도한 요구, 그것을 다 들어주어서는 경제가 안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분이 자기 지지세력을 설득, 적정한 선에서 요구를 채워주는, 말하자면 설득을 통해서 재조정했습니다. 그래서 아르헨티나 경제는 파탄직전에서 회생, 지금 3백~5백%까지 치솟았던 인플레가 잡혀서 10%대로 안정됐습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신용도 얻고 있습니다. 이래서 나는 그런 계층의 분들과 유대가 있기 때문에 그분들의 정당한 요구는 충족시켜 주되 우리 경제로 봐서 불가능한 요구는 그분들의 지지와 신임속에서 설득,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그래서 내가 남이 하지 못한 몫을 할 수 있지 않은가, 경제적․사회적 안정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은가, 외람되지만 그렇게 생각합니다.          
-〈김대중〉金위원장은 매사를 아주 명쾌한 논리와 사변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시중 속된 말로 하자면 대단히 머리가 좋으셔서 모든 문제를 자기보다 더 뛰어나지 않거나 자기보다 못한 것에 대해서는 항상 불만을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 金위원장을 모셨던 여러 사람들이 지금은 金위원장 주변에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반론으로 말씀드릴 수는 없겠지만 71년 또는 그 이후에 金위원장의 손발이 돼서 여러 업무를 해왔던 사람들이, 비록 나름대로의 실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 金위원장을 떠나서 金위원장에게 결코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것은 일부에서는 결국 金위원장이 재승박덕한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대중a>이유가 어쨌든 내 주위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서 이탈이 있다, 이것은 내 부덕의 소치지요. 또 나는 그분들에 대해 항상 그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있고 그분들이 당초 나와 같이 일하던 정신으로만 돌아오면 언제든지 받아들이겠다, 이런 자세를 갖고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내가 사적으로는 어떤 감정도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그분들과 앞으로 같이 일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회에 알려져 있는 사실들 중 잘못돼 있는 게 많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볼 때 과거 박정희씨와 여야간에 많은 지도자를 볼 때도 혁명도 같이했다, 쿠데타도 같이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인간관계기 때문에 자연히 변화가 있습니다. 나도 해보니까 좋은 관계도 사람도 세월이 가면 변하기도 하고 여러 문제점도 생기고 어느 누구라도 주위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도 있고 새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고, 그런 게 인간관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만 가까이 하고 멀리하고 그런 것도 문제지만 서로 적어도 미워하지 않고 또 언제든지 인간적으로는 같이 손잡고 상의하고 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고 있는 것이 중요치 않은가, 나는 적어도 그 점에 있어선 내가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김경철〉金위원장은 자신에 관한「東橋洞 24시」를 읽어봤읍니까?
▲<김대중a>안 읽어봤는데요.
-〈김경철〉왜 이런 질문을 하는가 하면 내 주변에 있는 야당 국회의원들로부터 金大中위원장이 결코 따뜻한 분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본인이 직접 그 문제를 포괄해서 자신의 인간성, 또 성격에 대해 말해 주기 바랍니다.
▲<김대중a>「東橋洞 24시」라는 것은 전직 내 경호원 이름만 빌었지, 안기부에서 만든 거예요. 나는 안기부에서 만든 모든 증거와 필자 이름도 갖고 있어요. 어느 땐가 여러분이 알 때가 와요. 그리고 운전기사 얘기… 전적으로 거짓말이에요. 운전기사가 나를 20년 모시다 죽은 것이 아니고 유신 이후 나가서 다른 직업을 갖고 7, 8년 있다가 병 걸려 죽었어요. 그런데 지금도, 지난 추석 때도,… 이런 말을 내가 안해야 하는데 말이 나왔으니… 추석명절 때도 난 얼만가를 보냈어요. 그 운전기사뿐 아니에요. 또 하나 처를 태우고 다니던 운전기사가 죽었는데 그런 사람들 가족에 대해서, 자식들 취직도 시켜주고 지금도 출입을 해요. 한 사람도 그런 사람이 없어요.「東橋洞 24시」에 쓴 것은 가공의 조작이에요. 그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사람 이름과 증거를 대면 거짓말이라는 게 나타나요.     
-〈박성범〉대권경쟁자들은 한결같이 지역감정이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지만 실제로 그 사람들의 움직임은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행동임에 틀림없읍니다. 金위원장도 지역감정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걸 여러 번 강조한 것을 전제로 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지역감정의 발동이 선거에 유리하다고 생각합니까, 불리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김대중a>지역감정… 이것은요… 과거 자유당 때는 없었어요. 부산․대구에서 전라도 출신이 국회의원이 됐어요. 우리 목포에서는 내가 경상도 분을 밀어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어요. 이게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만든 거에요. 이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망령․악령 때문에 시달림을 받고 있는 거예요. 나는 지역감정이 설사 내게 도움이 된다 해도 절대로 증오해요. 나는 단 한번도 지역감정에서 행동한 일이 없어요. 지금 가령 동교동계, 요새 평화민주당을 보세요. 우리 쪽에 부총재가 있는데 4분 중 한 분 빼놓고 두 분이 충청도고 한 분이 서울이에요. 정무위원도 동교동계 17명 중에서 전라도는 7명밖에 안돼요. 그런데 우리 쪽보다는 한도에 훨씬 편중된, 그런 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우리에게만 자꾸 말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구체적인 예로 말하겠어요. 1979년에 김영삼 민주당 총재가 당시 新民黨총재경선에 이철승 대표최고위원에게 도전했어요. 이때 김총재는 아주 열세였고 주위에 사람도 없었어요. 그런데 내가 자진해서 金在光․朴永祿․趙尹衡 세 분을 간곡히 설득해서 당수후보에서 사퇴시키고 나중에 李基澤 후보표까지 몰아서 김총재를 당선시켰어요. 나는 아무 것도 요구한 게 없어요. 이번에도 신민당에서 이탈해 왔을 때 김총재를 우리가 밀어서 총재를 시켰어요. 1979년에 내가 김총재를 밀 때는 그렇게 하면 장래 내게 불리하다고 충고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소위 경상도 정권 밑에서 전라도 사람이 그래 야당 당수 하나 하고 있는데 같은 전라도 사람인 당신이 그럴 수 있느냐?」-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에게「당신은 나를 전라도의 김대중으로 만들 작정이냐」고 면박했지만 나는 내 행동에 부끄럽지 않게 지역감정을 초월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김대중〉지역감정에 대한 보충질문입니다. 나도 金위원장 말대로 그것을 주도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金위원장이 언제 가도 환영받을 수 있는 고향인 光州를 처음 정계복귀의 거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이 결과적으로 일파만파로 지역감정을 부채질하고 사람들에게 어두운 그림자를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과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대중a>그것은 사정이 좀 다릅니다. 내가 光州에서, 아시다시피 유세나 연설을 한 일이 없습니다. 光州는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望月洞묘소 참배, 유가족과 부상자, 그리고 光州시민에 대한 위문과, 또 그 동안의 은혜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갔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장소에 사람을 모아 놓고 연설안하지 않았읍니까? 아, 내가 光州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또 光州분들이 그 당시 일어설 때 계엄사령부 발표를 내가 光州사건이 나고 56일만에 읽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걸 보면 계엄령해제와 金大中석방, 나중에 알고 보면 또 하나 전두환 물러가라의 셋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金大中석방」을 들고 일어났다가 그분들이 많이 희생된 것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만일 光州를 제일 먼저 가지 않고 딴데를 갔다면 아마 질문하신 여러분들 중에는「당신은 당신의 정치적 목적만 달성하는 것이 문제고 그런 막중한 은혜를 입은 데 대한 인간적인 예의조차 결하는 일이 아니냐」- 이렇게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光州를 택할 때는 참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지금 말한 그런 오해를 받을까 해서 사실은 釜山부터 먼저 할까,… 한때 그렇게 결정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釜山분들이 와서 이야기가「그렇게 하면 곤란하다. 적어도 떳떳하게 光州부터 갔다와야지, 그렇지 않고 釜山부터 먼저 오면  너무 정치적으로 보인다」- 이런 釜山분들의 만류에 의해서 사실은 釜山으로 결정했다가 다시 光州로 환원했던 것입니다. 
-〈장명수〉이 나라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그동안 차별과 불이익을 당해 오면서도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것은 물론이고 지난 유신 이래 민주화 과정에서도 남자들 못지 않은 끈질긴 투쟁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족법이나 동성동본불혼제도 같은 법적인 차별문제가 있어도 역대 국회의원들이 가족법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유림세력을 의식해서 개정작업을 미뤄왔습니다. 金후보의 부인인 李姬鎬여사는 특히 대권주자로 뛰는 4분의 후보 중 가장 활발한 여권론자로 알고 있는데 이 가족법개정과 동성동본 불혼문제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알려주기 바랍니다. 또 만일 대통령이 되신 뒤에 비슷한 자격을 가진 총리후보나 장관후보가 남녀 두 명이 있을 경우 그동안 여성들이 오랜 세월 동안 감수해 온 불이익을 고려해서 우선적으로 지명해줄 생각이 있으신지요? 
▲<김대중a>후자부터 말하자면 저는 앞으로 다음 정부는 젊은 세대와 여성을 국회나 정부에 많이 등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張국장과 전적으로 의견이 같고, 만일 그런 경우 장국장보고 나와주십사 하면 거절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웃음). 그리고 여성의 지위문제, 가족법을 포함해서 저는 근본적으로 헌법이 만인평등 남녀동등을 규정한 이상 이 헌법정신대로 실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불이익, 이것은 여성만의 손실이 아니라 크게 보면 국가전체의 손실입니다. 동일한 노동에 동일한 임금을 주어야 하고, 동일한 학력에 동일한 월급을 주어야 하고, 또 똑같이 근무한 연한이면 똑같이 승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법 문제는 여권을 주장하는 분들과 유림과의 사이에 상당히 첨예한 대립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정부가 헌법정신에 입각해서 충분한 대화를 거쳐 합리적으로, 또 남녀동등의 원칙하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성범〉金위원장은 80년 이후에 東學亂, 3․1운동, 8․15광복, 4․19 등을 민중항쟁의 역사의식으로 재평가해야 된다…이렇게 주장했고 또 얼마 전에는 鄭夢周와 李成桂, 중국의 秦始皇까지 민중사관으로 재조명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8․15 이후에는 친일파를 제거하지 못해서 8․15 이후의 역사가 日帝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中共의 문화혁명 당시 역사적 인물 재평가 방법과 닳은 데가 있지 않나…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데 金위원장은 민중사관에 의한 최근세사의 민중항쟁사를 간단하게 어떻게 요약하고 있습니까? 
▲<김대중a>나는, 무슨 민중사관이다 할 정도로 큰 식견이 없고요, 역사에 대해서도 지난 번에 기자분들이 취재하면서 좀 부정확하게 취재했는데, 내가 민중사관에 의해서 鄭夢周선생․秦始皇, 나는, 무슨 민중사관이다 할 정도로 이런 것을 재평가하겠다, 이렇게 했다는데, 그러니까 어떤 신문도『정치인이 그런 소릴 한다는 것은 염치없는 소리다』라는데 그 말은 옳지요. 어떻게 정치인이 그런 역사․사관을 마음대로 정치나 법률갖고 합니까? 다만 내가 그 이야기를 할 때는 민중, 민중이라고도 하고 백성이라고도 하고 국민이라고도, 여러 가지 용어를 썼습니다. 비슷한 얘기죠. 백성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러이러한 의견도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秦始皇에 대한 문제는 문화혁명의 사관이라든가 그것이 아니고 아시다시피 서양의 저명한 토인비같은 사람도 그 역사책에서 秦始皇이 한 역할을 상당히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역사의 학설도 있다, …이것을 그날 소개한 데 불과합니다. 내가 이 자리를 통해서 다시 한번 얘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정몽주 선생에 대해서 어떤 역사적 평가를 내렸다든가 또 내가 어떤 방향으로 쓰겠다든가, 이런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김대중〉金위원장의 말을 듣노라면 우리 언론이 제대로 일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받아쓰는 것도 잘못 받아쓰고, 말도 잘못 알아듣는다는 질책 같은 느낌도 듭니다. (웃으며) 나 개인의 입장입니다만 과거에 고생하고 고통받을 때에 우리가 활발한 언론 기능을 못했다는데 나는 金위원장에 대해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많습니다. 그런 입장임을 전제로 해서 金위원장은 현재 언론이 수행하고 있는 기능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경우 때로는 우리가 수긍되는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말하자면 光州인파의 보도문제에 관한 興士團에서의 발언문제라든가 또는 두 월간지의 李厚洛 증언에 관한 발언이라든가- 우리 나름대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도 누구의 압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다른 동료기자들도 같이 느끼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론자유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경우 그 언론자유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금도 언론자유가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김대중a>이렇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자기에게 잘 써주었거나 과히 불공평하게 안 쓴 것은 말 안하고 불공평한 것은 얘기합니다. 그래서 언론인하고 취재원은 서로 상호간에 조금씩 불만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가운데 또 서로 이해도 깊어지고, 언론자유도 더욱 전진해 나간다, …언론도 우리를 비판해 나갈 수 있고, 우리도 불만이 있으면 얘기할 수 있고, 그런 가운데 서로 이해도 깊어지고 발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서 이해해 주기 바랍니다.    
-〈장명수〉만일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다면 가장 큰 이유가 야당후보가 단일화되지 못해서라고 생각하겠읍니까? 또 낙선한다면 다음 선거에 다시 도전하겠읍니까?
▲<김대중a>낙선한다는 것은 생각 안해 보았기 때문에 거기 대해서는 답변준비가 없는데요.(웃음) 나는 선거전망에 대해 이렇습니다. 우리의 과거 투표성향으로 봐서 표가 산표되지는 않는다, 결국 국민은 與野거나 혹은 야당의 두 후보거나 여기에 표를 집중하지 산표하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대통령 선거의 성향이 일관해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1971년 제가 박정희 대통령하고 같이 나왔을 때 공명선거여부는 별도로 하고, 어쨌거나 박정희 대통령과 제가 얻은 표가 합쳐서 99%입니다. 나머지 朴己出씨 이하 3명이 얻은 표는 1%도 안됩니다. 이번에도 국민의 힘에 의해서, 압력에 의해서, 필요하면 야당의 힘을 단일화시킬 것이고, …예를 들면 1963년에 尹潽善․許政 두 분의 경우같이 할 것이고 또 야당후보 두 사람에게 표를 집중시켜 그것으로 결정할 것이다, 또 하나 내가 생각한 것은 盧泰愚 후보에 대해서는 그분이 권력의 지지를 받고, 또 선거자금을 독점하고 있고, 게다가 많은 언론매체의 각광을 받고 있고, 또 큰 조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지만, 나는 우리 국민이, 총칼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국민이, 전두환=노태우인데 그분을 지지할까? 더구나 8개항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食言을 한 그 분을 지지한다… 나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선거를 하면 노태우 후보의 당선은 없다, 부정선거해야만 당선 가능성이 있는데 그럴 때는 그것대로 큰 문제가 된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김경철〉떨어지는 것은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했는데, 나는 떨어질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번에 단일화에 실패했습니다. 만약 단일화가 가능했다면 땅짚고 헤엄치기다, 이렇게 국민 대부분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이 깨지고 단일화가 안되었기 때문에 모처럼 민주화의 기회, 또 군정종식이란 기회가 결국 무산되는 것 아니냐? 그래서 거기에 대한 책임도 결국 양金씨가 져야 한다. 두 분은 차기에 대통령으로 재출마한다는 것은 아예 생각도 마시고 영원히 이 정치장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런 여론까지 있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랍니다. 이런 여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대중a>그런 이야기가 일부에 있고 또 상당수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양보하지 말고 나오라고 엄청난 압력을 가합니다. 결국 솔직한 얘기로 내가 대통령에 나가게 된 것은 나 자신으로서는 그렇게 마음에 내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고민스럽고 수치를 느낀 적이 없습니다. 밤에 일어나서 2시, 3시까지 잠 못잔 적이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국민의 압력-물론 전부는 아니죠. 나를 지지하는 사람들, 즉 적지 않은 수의 압력, 지난번 高大에서 강연 때 와서 보셨지만 그런 엄청난 광경을 여러 번 봤을 것입니다. 그런 압력을 지금 내가 거부할 길이 없습니다. 지금 떨어지면 정치생명이 끝난다고 하지만, 지금 가부하면 정치생명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적으로 저를 지지하는 사람에게 다시는 용납받지 못할 상황에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입후보를 결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분들의 압력이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물론 내가 당선되리라고 확실히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여러분이 선거양상을 보면 압니다. 절대 이건 허세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가정해서 金永三총재나 나나 둘 다 떨어지고 군사정권에서 나온 사람이 당선될 경우가 있다 할 때는, 국민도 그것을 그냥 두지 않고「두 사람 중에 하나를 단일화시켜라」고 했지만, 우리 자신도 그런 것이 확실할 때는 결단을 해야 된다, 이렇게 확실히 마음에 결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너무 성급하게 독단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사태추이를 좀 더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김대중〉막판단일화를 말하는데 그 그림에는 金위원장이 있지, 金永三총재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金위원장도 막판에 양보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김대중a>물론 국민 여론에 따라서 양쪽 다할 준비가 있어야지요.
-〈박성범〉金위원장은 낙선은 생각 안해봤다는데 만약 네 후보가 경선하면 가장 힘겨운 상대는 누구입니까?
▲<김대중a>그건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조금 선거전이 진행되지 않으면 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지지로 봐서는 김영삼 후보가 더 어려운 상대고, 군사정권의 집권당으로서 프리미엄을 생각하면 노후보도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현 사태를 예의 주시, 분석하고 있습니다. 
-〈김대중〉다음 지도자 세대에 관한 말씀을 좀 드려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 정치가 여야 할 것 없이 권위주의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경향이 많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외국사람들일 경우에 만약 그분들이 아니면 대안이 누구냐고 물어봅니다. 솔직하게 그분들 아니면 대안이 별로 없다 이겁니다. 집권당은 집권당대로 한 사람이란 정점을 위해서 모든 것이 희생돼야 되는 상황이고 오늘날 야당은 어느 야당이건 간에 야당의 입장도 결코 한 사람의 지도자에 우산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지, 다음 지도자세대로 부각될 수 있는 그런 여지는 상당히 봉쇄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한국의 정치를 관찰하는 입장에 있는 저희들도 다음 세대가 누구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과연 우리나라 정치가 이렇게 오늘에 한 끼 아침밥을 먹고 끝나야 되는 것인가, 아니면 점심도 걱정하고 저녁도 걱정하고 하는 그런 상황까지, 그것을 다 배려해야 하는 것이 훌륭한 지도자가 아닌가 하는 입장에서 지금 오늘날의 다음 지도자 세대의 빈곤과 부재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대중a>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 사실 우리 다음 세대의 지도자 될만한 사람이 정확히 부각이 안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참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누가 밀어제껴서 그렇게 됐다고는 볼 수 없고, 이것은 도대체 세대교체가 있을 만한 자유로운 정치 분위기가 안돼 있기 때문에 다음 세대 사람의 등장이 못된 것이고, 또 앞에 가는 세대 사람이 대통령을 하든지 뭐든지 하고 끝나야 그 다음을 하는 건데, 딱 독재정권에서 길이 막혀 버리니까, 순서를 기다리다 보니까 뒤의 사람들이 등장을 못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결국 다음 세대의 지도자란 것은 국민이 등장시켜야 하는데, 국민이나 야당이나 전부가 독재정권 넘어뜨리는 데 열심하다 보니까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번에 민주정부가 성립이 되면 그 문제는 아마 국민 사이에 굉장히 급속도로 활발하게 논의가 전개될 것이고, 또 행인지 불행인지 헌법에 5년밖에 못하게 돼 있으니까 저도 대통령 당선되더라도 당선된 그 다음날부터 후계자가 등장할 수 있는 그러한 길을 열어주면서 고무․격려하고 협력하는 그런 조치를 취해서, 지금 金위원이 말한 그런 걱정을 덜어가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경철〉이번 대통령선거를 치르는데 金위원장 본위로 선거비용이 어느 정도 드리라고 봅니까? 그리고 자금확보는 어떻게 원활히 되고 있는지요? 지금 성금이 원활히 들어오고 있는 건지, 자금사정이 어려운지…?
▲<김대중a>자금사정이 어렵다고 신문에 나서 독지가가 돈 좀 도와줬으면 참으로 감사하겠다, 이렇게도 생각하는데, 저는 선거자금이 얼마나 드느냐 가늠할 수 없어요. 그런데 그 여당후보가 엄청난 돈 쓰는 것을 보면 얼마나 쓸 건지… 내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1조원을 쓴다는데 지난 추석 때도 民正黨 盧후보 선물을 안받은 사람은 사람축에 못 들어간다, 이 정도로 뿌리고… 그 양반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자기 재산이라고는 집 한채밖에 없다는데  집 한채 밖에 없다는 사람이 어떻게 돈이 나서 그렇게 선물을 할 수 있는가. …그 집에는 금 나오고 돈 나오는 방망이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쓰니 겁이 나서 선거자금에 대해 얘기할 수 없어요. 그리고 솔직이 말해 이 정권이 여당만 선거자금을 갖다 쓰면 그것도 어느 정도는 여당의 프리미엄이다 하고 봐줄 수 있는데, 경제인들을 샅샅이 찾아다니면서, 나하고 한번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미리 세무사찰 위협하기 때문에 돈주기는 커녕 만나주지도 않아요. 이런 면에서 지금 현실적으로 정치자금을 자기네만 일방적으로 뒷구멍에서 불법적으로 받아쓰는 것이 부정선거의 원천이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장명수〉金후보는 지난달 光州에 내려갈 때 저고리와 잘 안맞는 바지를 입었다가 다시 갈아입은 일이 있고, 또 지난 10월 27일 국민투표 때 주민등록증을 못 찾아 소동을 겪은 끝에 다시 다른 양복주머니에 있는 주민등록증을 찾은 일이 있읍니다. 평소 일상생활에서 주의력이 부족한 편인지, 아니면 李姬鎬 여사가 매우 독립적인 여성이라 전통적인 내조를 좀 소홀히 한 것이나 아닌지 말해 주십시오. 
▲<김대중a>어떻게 해서 저고리․바지 틀리게 입은 것을 아세요.(웃음) 나보고 너무 빈틈이 없다고 하는데 때로 빈틈이 있어 좋지 않아요? 
-〈박성범〉金위원장은 모일간지 회견에서「민주주의와 통일은 손바닥의 안쪽과 바깥쪽이나 마찬가지다. 민주주의가 먼저 되고 통일이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가 없는 통일은 낭만적인 도피다」라고 했는데 통일정책과 민주화는 어떻게 연결시켜 나갈 생각인지요?
▲<김대중a>중요한 질문이고 내가 그 말을 할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합니다. 공산주의를 극복하는 길은 민주주의밖에 없다, 세계에서 민주주의해서 공산주의에 진 나라 없고 독재해서 공산주의를 이긴 나라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주의만 하면 국민의 자발적 지지에 의해 정국이 안정되고 공산당이 대한민국의 공산화에 대해서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확고한 안정과 안보태세가 된다고 봅니다. 나는 민주주의를 이번에 하게 되면 안정과 안보가 온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면 남북간에 현재의 휴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로 바꾼다, 여기에는 美日과 밀접한 협력으로 진행시킨다, 유엔 4대국의 협력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항구평화를 정착시키고 그 다음 이것을 기반으로 평화적 교류의 단계로, 평화공존에서 교류의 단계로 들어가서 민족동질성을 회복시키고 통일의 길을 닦는다, 여기까지 다음 정부가 할 수 있고 그 다음 문제는 그 다음 정부가 맡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대중〉金위원장의 軍에 관한 견해가 어떤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조직력을 갖고 있는, 또 가장 훈련이 잘된 집단과 대통령이 되겠다는 金위원장과의 관계가 원활하게 되는 것이 나라의 발전과 정치의 모양을 위해 좋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金위원장의 軍에 관한 발언에 항상 가시가 있고 또 군은 군대로 金위원장에게 또 다른 가시가 있다고 믿어집니다. 따라서 金위원장이 군의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할 기회를 마련할 용의는 없읍니까?
▲<김대중a>그분들이 응할 형편만 되면 내일이라도 있죠. 그런데 실제로는 내가 전에 육군통합병원에 위문을 가려고 했어요. 처음 연락 때는「좋다」고「언제라도 오시라」고 병원당국에서 했어요. 나중에는 무슨 판단이 내렸는지 오는 것을 원치 않는 방향으로 해서 결국 못 가고 말았어요. 내가 안하려고 한 게 아니예요. 나는 요새 연설할 때마다 우리 군인의 절대다수가 「군은 정치에 개입하지 말고 안보에 전념해야 한다」-이런 애국적이고 국방에 충실한 군인이니「그분들을 격려하고, 또 정치군인도 이제부터는 태도를 바꿔 국방에 충실하면 아무 차별없이 서로 협력할 것이기 때문에 정치군인들도 마음을 바꾸도록 격려하는 박수를 하자 」해서 박수하고 있습니다. 다만 분명히 얘기할 것은 군이 후보를 누구를 뽑느냐, 대통령을 누굴 뽑느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백의 하나, 만의 하나도 개입해서는 안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국민뿐이다, 어떤 일에서도 양보할 수 없는 기본적인 확고한 선입니다. 나는 군을 존경하고, 군을 사랑하고, 또 군의 국방의무를 적극 지원하는 태도를 지금까지 취해 왔습니다. 국방예산을 삭감했다느니 외국군원을 반대했다느니… 전부 조작된 거짓말입니다. 군의 중립, 민주주의만이 진실로 군을 위하고 나라를 위한 길이다.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 같은 데서 알폰신 대통령이 처음 출마하려 하자「다 돼도 알폰신만은 안된다」-이랬지만 알폰신이나 지지자들이「비토할 권리는 국민뿐이지, 어찌 군이 개입하느냐」-이래 가지고 대통령에 당선해서 오늘날 군도 잘 장악하고 정국도 안정시키고 있읍니다. 나는 절대로 국방이나 군의 임무를 누구 못지 않게 중요시한다, 다만 내가 반대하는 것은 군의 정치개입뿐이다. 군이 정치하려면 옷 벗고 나와 민간인이 돼서 해라, 군복입은 채로 국민세금으로 준 무기를 갖고 백성을 탄압해서 정권잡고 그 다음에 옷 벗는 것은 민간인이 아닙니다. 옷은 벗어도 그것은 군사정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전두환 대통령이나 노태우씨를 정당한 민간 정치인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박성범〉金위원장은 85년 美國정치망명을 마치고 귀국할 때 전현직 美정치인들을 대동하고 金浦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것은 金위원장이 늘 주장하고 미워하는 사대주의에 상치하는 행동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김대중a>당시 사정은 귀국할 때 미국의 전 언론이「김대중의 귀국이 제2의 아키노가 되는 것 아니냐」하는 우려를 했습니다. 미국사람들은 아키노를 소홀히 보냈다가 목숨을 잃은 데 대해 굉장히 후회스럽고 실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자기 돈 가지고 자발적으로 온 것입니다. 온다는 것을 내가 막을 것도 없고, 생각해 보니까 내가 그분들 따라가면 사대주의자지만, 세계에서 제일 큰 대국 사람들이 날 따라오는 것은 사대주의가 아니지 않느냐? 어떻게 보면 우리 국민이 볼 때 속이 후련한 일이 아니냐, 나는 그렇게 생각해서 일행과 같이 왔습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경철〉잘 아시다시피 금년 여름에는 노사분규로 우리 경제가 큰 홍역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업계에서는 사실 내년 봄에 또 한 차례 이와같은 큰 홍역이 있을 것으로 지금 벌써부터 우려가 대단합니다. 이와 같은 노사분규가 재발되지 않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겠읍니다마는, 만약 노사분규가 발생하는 경우에 어떻게 또 하나의 홍역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복안이 있다면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김대중a>아주 심각한 질문인데요. 우리가 지금까지 보면, 우리가 예측하고 걱정하던 것하고 사태가 똑같이 오느냐 하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컨대 8월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9월․ 10월 위기설을 말했습니까. 그런데 위기가 안 왔습니다. 또 그때 9월부터 학교가 문 열면 노학연대 해가지고 큰 혁명적 투쟁이나 일어날 것처럼 말했습니다. 노학연대 안 일어났습니다. 절대다수 노동자나 학생들이 지금 가는 길은 선거를 통해서 민주화를 하겠다, 그러니 공명선거만 해달라 이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온건한 주장이 어디 있습니까. 이래서 툭하면 정부는 좌경․용공으로 모는데, 내 어제 자제하고 안 갔읍니다만, 작년에 건국대학에서 1천2백65명 체포해서, 이것은 용공도 아니고 공산혁명분자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다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정권이 용공정권입니까, 다 내어주게. 이 정부가 그렇게 엄청난 과장을 하고, 반공을 악용하고 있다 이것입니다. 나는 명년 봄에, 노동전문가와 얘기해 보니까, 다시 민주정부가 섰을 때 노동자들이 요구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그것도, 노동자들의 주장도 지난번과 같이, 지난번 주장 즉, 어용노조 물러가라, 적정임금 내라, 그런데 심지어 여당의 총재까지도 그 주장은 합리적이라고 말하지 않았읍니까. 나는 명년에도 합리적인 주장을 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때는 민주정부가 서면 좀더 그 주장하는 표현이나 강도가 강해질 수 있지요. 그러기 때문에 그때에 노동자로부터 신임을 받을 수 있는 대통령, 그들하고 고락을 같이하는 대통령, 그리고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이 나왔을 때만 이런 노사문제를 안정의 기반위에 해결할 수 있지 않는가, 이래 가지고 과도한 요구는 조정할 수 있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김대중〉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정치에 진출하고 개입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김대중a>그게, 내 생각에는요… 그거는 그, 그런 원칙론보다는 구체적으로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해서 누가 보더라도 그 친척과 가까운 사람 중에서 정치에 참여할 자질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참여하느냐, 아니면 부모의 선택으로 그 힘을 빌려가지고 정치에 밀고 나오느냐, 이것이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내 주위의 가족이나 동지는 유신 이래 15년 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피해를 본 사람이 더 많습니다. 다만 앞으로 자유로운 세상에는 국민여론이 판단해서 주변사람 중에 저만하면 정치할 수 있다 판단하면 할 수 있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고, 다만 하나 분명한 것은 부모나 특별한 편에 의해서 등장하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가 플로어의 방청객이 제출한 서면질의를 대신 낭독〉단일화문제와 관련해서 4파전이라도 해볼 만하다고 말한 것은 4파전이라야 꼭 승산이 있다는 뜻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처음부터 1노3김의 경쟁체제를 예비하지 않았나 묻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각제 주장자였던 김영삼 총재를 우선 직선제 주장으로 돌려 앉혀놓고 민주화투쟁을 벌이다가 직선제가 관철되었으니 4파전 실현을 위해서 단일화를 깬 것은 아닙니까. 단일화 실패의 책임은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위원장 어느 쪽에 더 책임이 있다고 보십니까. 
▲<김대중a>굉장히 깊이 생각해서 질문하셨는데, 단일화를 할려고 나름대로 노력한 것은 사실이고, 또 누가 잘했다 누가 못했다 말하고 싶지는 않고, 다만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결과는 절대로 처음부터 의도해서 한 것도 아니고, 의도해서 했다면 지난번에 당을 깨지 않기 위해서 조금 비정상적이지만 우리 두 사람이 공천을 하지 않은 채로 나가 가지고 당은 안 깨는 것이 어떠냐… 결코 의도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결국 국민간에 상당수의 층이 참으로 거역할 수 없는 강한 압력․주장을 해왔고 또 재야에서 민주주의를 가져오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한 그 층에서 감사하고 과분하게도 적극적인 지지를 보냈고 그리고 가장 직접적인, 결정적인 동기가 됐다고 생각한 것은, 金총재측에서 군이 나를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양보하고 싶지만, 나이도 내가 많고 또 사면․복권되면 나보고 나가라고 약속한 일도 있기 때문에 양보하고 싶지만, 군이 지지하지 않기 때문에 양보할 수가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하고 아주 결정적으로 의견을 달리하고 또 이것은 민주주의로 가느냐 안 가느냐 하는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도저히 양보할 수 없다, 또 그것이 그쪽의 한번 두 번 해본 우연한 발언도 아니고 일관된, 8․9월에서 10월까지도 일관된 주장이기 때문에 거기에 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런 생각에서 오늘날 여기까지 온 것인데,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단일화를 이루지 못한 것은 대단히 송구하다고 말씀드리겠읍니다. 
-왜 꼭 대통령을 하려고 하시는지, 그리고 대통령직이 격무라고 생각되는데 현재의 건강으로써 감당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김대중a>먼저 뒤부터 얘기하면, 건강에 대해서는 실제로 아무 지장이 없을 정도로 건강합니다. 그것은 내가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최근에 격무를 감당해내고 또 지난번에 李韓烈군 장례식도 연세대에서 시청앞까지 걸어오고 또 조선일보의 광복절 걷기 운동 때도 긴 거리를 걷는 것 보시면 대개 알 것입니다. 내가 미국에서 전체 정밀검사 했을 때도 건강은 완벽하다는 보증을 받았습니다. 다만 여기 허리 관절, 이것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71년 제가 그때 선거후에 국회의원 지원유세 때 이 정권 사람들이 자동차사고로 위장해서 제 차를 들이받은 데서 얻은 부상 때문에 지금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건강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을 왜 하려고 하느냐, 그것은 공무원이 국장․장관하려는 거나, 장사하는 분이 돈벌려 하는 거나, 정치하는 사람이 총리나 대통령하려는 거나, 그것은 나는 아무런 시비될 것은 없다… 그런데 저는 현재 솔직한 심정은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 심정을 느끼면서 대통령으로 나간 것은 참으로 본의가 아닙니다. 아까 말한 그런 이유에서 나가게 된 거고…, 여기에는 언론인들이 많아서, 과거 제가 국회의원할 때 국회 출입하신 분들이 많고 또 71년 내가 선거를 한 것 보시면 알지만, 나는 어떠한 비판을 할 때나 정책대안을 내지 않고 한 일은 없습니다. 내가 정부를 맡았을 때 어떻게 하는가, 내가 여당일 때 어떻게 하는가, 언제든지 대안을 내었습니다. 이것은 지금에도 국회속기록 뒤져보면 거기 분명히 나옵니다. 또 71년 대통령 선거는 한국뿐 아니라 외국의 언론까지도 찬양할 정도로 야당 후보가 참으로 모범적인 정책대결을 했다고 지적을 받았습니다. 내가 지금 강경투쟁하고 뭐한 것 같은 것은 유신 이후에 이러한 길이 전연 없어지고 오직 독재가 모든 자유를 말살하기 때문에, 이 독재에 항거하다 보니까 내 정책적인 면은 가려지고 투쟁적인 면만 부각됐는데, 여하간에 나는 옥중에 있어서나 집에 있어서나 국회의원할 때나 이 나라의 정치를 바로 세워 가지고 우리들의 다음 세대에 어떻게 하면 우리가 겪어온 그런 고통스러운 악의 정치를 남기지 않고 희망의 정치를 남기느냐, 이것을 일구월심 생각해 왔기 때문에 내 개인으로서는 개인욕심보다는 국민을 위해서, 우리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 내게 한번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참으로 내가 그동안 30여년 두고 닦고 축적해 온 내 나름대로의 식견과 포부와 경험을 국민을 위해서 마지막 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간절히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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