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김대중 관훈 클럽 토론

  중견 언론인들의 친목단체인 寬勳클럽은 1992년 12월초 대통령 후보들을 차례로 초청해 토론회를 가졌다. 김대중은 12월 2일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격으로 초대받았다. 김대중은 약 3시간 동안 패널리스트들의 질문에 답변했다. 김대중은 대통령 직선제는 쉽게 바꿀 수 없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96년 총선에서 이를 검증, 국민이 원한다면 내각제 개헌을 할 수 있으며 자신의 잔여임기도(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될 경우를 가정) 포기할 수도 있다고 답변했다. 여기서 한 말을 김대중이 얼마나 지켰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토론은 초청연사의 기조연설에 이어 질문자들의 질문에 초청연사가 답변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질문은 李光勳 경향신문 논설위원, 崔靑林 조선일보 편집국장 대리, 成炳旭 중앙일보 논설주간, 李成春 한국일보 부국장, 동아일보 鄭鍾文 수석 논설위원 등 5명이 맡았다. 


토론 내용

 - 〈이광훈〉시간절약을 위해서 본격적인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김후보께서는 87년 대선 때에는 온건개혁을 표방하셨고 이번 대선에서는 NEW DJ 플랜을 내세워 보수증산층을 겨냥한 중도우파라는 것을 내세우셨습니다. 또 얘기를 여러 번 하셨고요. 
  그런데 며칠 전에는 재야세력의 결집체인 전국연합과 정책연합을 한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석간 일부언론에서는 오늘 다시 만나서 54개항에 대해서 합의를 하고 앞으로 전국연합측은 국정운영을 협의함은 물론 장관을 임명할 때도 전국연합과 협의하기로 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金후보께서 이야기하시는 집권후의 거국내각이 전국연합과의 연립정부를 이야기하시는 건지 또 지금까지 이야기하시는 中道右派라는 노선은 어떻게 되는 건지 김 후보와 민주당의 확실한 정치노선을 이 자리에서 밝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답변하겠습니다. 전국연합측과의 연립내각을 구성하지 않습니다. 저의 中道右派의 입장도 변함이 없습니다. 전국연합과 합의한 50여개의 정책은 서로 가지고 와서 합의한 것이 아니라 우리 당의 정책으로서 전당대회에서 발표한 그 정책을 전국연합이 가지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것만 우리가 합의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쪽에 대해서 어떤 수동적인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정책을 그대로 우리는 합의한 것입니다. 
  우리의 정책과 맞지 않는 예를 들어 △국가보안법의 무조건 철폐 △안기부의 무조건 폐지 혹은 △美軍의 철수 이런 등에 대해서는 5~6가지가 있는데 가령 기무사의 무조건 폐지 라든가 이런 등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는 합의를 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분명히 말씀해서 우리는 우리와 전국연합과의 사이에는 우리당의 정책에 있는 것을 전국연합의 의견이 같은 것을 같이 합의한 것, 정책연합입니다. 이런 일은 독일에서도 있었고 어느 나라에나 많이 있는 일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정부구성에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독자적으로 우리가 집권했을 때 구성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전국연합과의 어떠한 연립정부 구성의 계획도 없고 그런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따라서 저의 중도우파라는 위치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이성춘〉김 후보께서 말씀하신 것 잘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 이런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이 제가 기억하기에는 지난 달 25일 일부신문에 크게 보도가 되었는데 그것이 54개항이 합의가 되고 5개 정도가 문제되는 것이 아직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는 내용이 자세하게 나오고 그분들이 김 후보측이 집권하실 경우 정부구성참여에 배제하지 않는다. 이런 것이 자세하게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아무런 黨측의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다가 오늘 또 이 문제가 합의되었다는 식으로 나오니까 거기에 대해서 지금 말씀을 하셨는데 기왕에 말씀하신 김에 왜 처음에 나왔을 때는 당에서 침묵을 지켰다가 이제 와서 김 후보께서 직접 그런 해명을 하시는지 그것도 간단히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일 전에 그렇게 발표가 된 것을 보고 제가 전국연합측과 연락책임을 맡고 있는 金元基 최고위원을 만나서 경위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김원기 최고위원은 그것은 사실무근이다. 자기가 그것을 보도한 신문에 알아보고 조치를 하겠다. 그래서 위임하고 저는 지방유세에 나갔습니다. 어제 김원기 최고위원이 기자회견에서 그 점을 분명히 밝힌 걸로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정종문〉보충질문 드리겠습니다. 그런 전국연합과 정책연합을 일단 하기로 합의하셨다면 전국연합측으로부터의 김후보에 대한 선거지원활동 이런 것도 기대하십니까.  
  『예. 그분들이 저희 당의 정책이 자기들이 기대하는데 일치한다면 저는 당연히 지지할 것으로 그렇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서 어떤 법적인 협정을 맺거나 한 일도 없고 또 그분들은 법적으로는 선거운동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도 법적 조항을 분명히 얘기해서 그쪽에서 우리와 정책협정한 것과 선거운동을 같이 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입장을 설명을 해서 우리가 법에 의해서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서로 이해가 돼 있습니다』 
 - 〈이성춘〉한 말씀만 더 보충질문 드리겠습니다. 지금 물론 앞서 김후보께서는 전국연합과의 합작관계는 사실이 아니고 중도우파라는 컬러도 불변이다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일반적으로 국민들이 이 기사가 나오고 근 6~7일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물론 이분들의 생각에 대해서 대다수 국민측에서 지지하는 측도 있고 반대하는 측도 있습니다. 또 이분들이 상당한 고생을 한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선거운동하고 이분들과의 협력관계는 별개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기억하기로는 지난 87년 대통령 선거 때 재야세력이 김후보를 지지할 것이냐 김영삼 후보를 지지할 것이냐 하는 문제를 가지고 논란 끝에 양분이 되어 가지고 그것이 그분들 내부에서 상당히 문제가 생기고 스스로 해체하는 그런 식으로 된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그러면 이런 식의 대화는 결국 선거용이냐 그분들 쪽의 지지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선거 때 일시적인 방편이냐 아니면 앞으로도 또 언젠가는 이분들과 본격적인 논의는 계속할 수 있는 것인지 이 부분도 말씀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주 좋으신 질문입니다. 저희는 과거 13대 국회에서는 당시 平民硏 분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그때 일부에서 이것을 위험시한 분들이 있었습니다. 당내에도 있었고 당외에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본대로 그분들이 원내에도 들어오고 당의 여러 가지 요직도 맡아서 일했지만 완전히 저희들과 일체가 되어서 아무런 차질없이 지난 4년을 보냈습니다. 그리해서 우리는 제도권으로 그분들을 영입함으로써 우리나라 정치를 그만큼 안정시켰습니다. 
  그 다음에 지난 선거에서 14대 선거에서 요새 말하는 民聯 출신 이분들을 대거 영입시켰습니다. 그분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당선되었습니다. 당에서 우리 당 노선에 따라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점에 있어서 저희 당은 양차의 선거에 걸쳐서 우리나라 정국안정과 재야권의 제도권 진입을 도와서 이래서 우리나라 정치를 더욱 건전하게 하는데 정국안정을 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분들이 다시 15대 국회같은 때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하면 당의 공천심사를 거쳐서 또 이런 분들이 진출하면 우리 정치는 더 발전할 것으로 봅니다. 
  저희는 민주주의를 하면 과거 5공 6공의 인사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에서 아까 지적하신대로 어쨌거나 많은 희생을 하고 고생해온 분들이 이제 제도권에서 건전한 민주화를 위해서 우리나라에 기여하겠다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 정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방향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최청림〉정책공약에 대한 질의를 드리겠습니다. 김후보께서는 만약 이번 大選에서 승리를 한다면 5년 내에 우리 경제를 세계 8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공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공약내용을 보면 구체적인 비전이랄까 청사진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기를 우리나라의 기술력이라든가 생산력 여러 가지 국민의식으로 봐서 그것이 과연 가능할 것이냐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만약 김후보께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기간 중에 수출은 어느 정도 늘려야 되겠느냐 GNP 성장율은 얼마쯤 끌어가겠느냐 기술개발은 어느 전략으로 가겠느냐 그리고 제도와 관행을 어떻게 고치겠는지 거기에 대해서 좀 말씀해 주시고 참고로 말씀드리면 20세기에 선진국이 된 나라는 일본 하나뿐입니다. 이만큼 선진국이 된다는 것이 어려운 실정인데 우리도 과연 제 2의 일본이 될 수 있는지 거기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세계 8강으로 가는 길」이란 저서를 제가 최근 냈습니다. 그 안에 아주 자세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씀을 드리면 저희는 이 일이 능히 가능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 7강 이것이 있는데 그 7강에 이어서 오늘날 8강으로 들어갈 경쟁국가는 스페인, 호주, 혹은 덴마크 나라들입니다. 그런데 스페인 빼놓고는 대개 인구가 적어서 강국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5년 동안 우리가 하면 현재의 GNP 성장추세 금년은 지금 현재 5.4% 9월말 현재까지 올라있는데 여하튼 이것이 다시 상승해 가지고 다음 5년 동안의 평균 GNP가 7~8% 유지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유럽 나라들은 그렇게 성장을 못합니다. 5년하고 나서 지금은 조금 뒤지지만 5년 지나면 우리가 GNP 총계가 5천억 달러가 넘습니다. 이래 가지고 단연 스페인 호주를 따 넘기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지금 우리는 세계무역 제 11위의 국가입니다. 그러한 경제성장에 힘입어서 우리는 정부의 5개년 계획은 1996년까지 1450억불 수출을 내다보고 있지만 저희들은 아까 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쌍두마차로 활용하겠습니다. 이제부터 대기업은 세계에서 제일 좋고 제일 싼 물건 만들지 않는 대기업은 정부가 육성하지 않겠습니다. 언제까지나 국민의 부담에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쌍두마차로 하면 적어도 제가 볼 때는 1천 8백억불 무렵까지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 무역수출면에 있어서도 세계 8강의 대열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술면에 있어서 지금 정부도 1996년까지는 기술8강으로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기능인력들은 국제기능올림픽에 가서 근10년, 10년이 더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10년 정도 계속 1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도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저희들은 다음에 앞에도 연설문에 있었지만 기업인과 노동자와 기술자가 삼위일체가 되어서 요새 서울대학 모 교수가 말한 소위 W이론 신나는 협력체제를 만들면 저희들의 집권 말기에 가면 세계 8강에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최청림〉보충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기술이라든가 생산성이라든가 성장 잠재력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뭐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의 지금 문제가 잠재력이 상당히 잠식되어 있다, 경쟁력이 취약하다는 이야기인데요. 예를 들면 기술은 일본의 2~30% 수준, 생산력은 40%, 은행의 생산성은 일본의 1/10 이런 식으로 모든 분야가 총체적인 생산성 열위 상태에 있는데 무슨 수로 5년만에 그것을 다 제거시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느냐? 그런 의문을 상당히 많이 얘기하고 있고요. 그럼 기술개발전략을 어떻게 하시겠느냐? 어떤 부분에서 중점적으로 하시겠느냐? 
  요새 세계적인 추세가 기초과학기술과 생산응용기술을 구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에 클린턴 정부도 정책전환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본받아서요. 그런 문제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아까도 대체적으로 큰 거시적 입장에서의 저희들의 근거를 제시했습니다. 또 이 문제는 우리 정책위원회에서 전문적으로 다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해서 자료도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안된다고만 하시지 말고 한번 맡겨 보시죠. 그럼 우리가 해낼테니까. (웃음)     아무 것도 모르고 정치도 경제도 모르는 군인들에게도 30여년을 맡겼으면 이제 우리가 정치 잘 해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한 저희들 한번 맡겨가지고 그래 가지고 여러분이 비판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저희들에 대해서 너무 걱정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여하튼 저희들은 나름대로 국민앞에 내놓을 때는 모든 전문가들의 검증을 받을 각오를 하고 내놓은 것이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저희들에 맡겨주시고 8강으로 어떻게 하겠느냐 구체적인 것은 제 저서와 더불어 참고자료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성병욱〉조선 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이나 김낙중 사건을 보면 북한은 남북대화를 하면서도 적화통일을 위한 통일전선전략을 바꾸지 않는 것으로 대개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국의 수사발표에 의하면 그러한 북한이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북한에서 남한의 자기 조직원들에게 民主黨을 지지하도록 그렇게 지령을 했다고도 하고 또 이번에 정책연합을 하신 재야의 전국연합에 대해 구국의 소리 방송한 민전성명을 가져다가 노동일보가 보도하는 그런 방식을 통해서 지지하고 있는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도움이 된다고 착각을 하고 그런 짓을 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또 남한 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등으로 해서 유독 주요 정당 중에서는 민주당에서만 김후보 비서실의 사무보조원하고 당의 부대변인이 구속되었는데 이것도 편파적인 수사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점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좀 그 문제를 설명하고 싶은 얘기인데 제가 모수자천(毛遂自薦)을 하면 뭔가 켕기니까, 제가 얘기한다, 이럴 것 같은데 마침 질문을 해서 참 감사합니다. 김일성이가 우리를 지지하라고 했다, 그렇게 안기부에서 얘기하고 내외통신이 얘기한다고 하니까, 그 말을 믿어야 할지 안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김일성이가 그렇게 방송으로 공개적으로 했다고 하면 여러분 대한민국 잘 알지 않습니까? 아마 김대중이를 지지하려고 했던 사람도 떠나버릴 겁니다. 그러면 김일성이가 누구 돕기 위해 했겠습니까? 한번 우리가 생각해 봅시다. 
  과거에도 유신체제에서 싸울 때 학생들이 데모하고 뭐하면 꼭 이북에서 남한의 학생들과 연대한다고 떠들어대고 이러면 그 당시 중앙정보부에선 봐라, 이북에서 이렇게 지시하지 않냐? 그러니 학생들이 수상하다, 이래 가지고 탄압의 구실을 삼았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이북하고 짜고 한다는 것이 너무하지 않냐? 이렇게 말씀할지 모르겠지만 짝 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지난 72년 유신 남북이 짜고 해가지고 남쪽은 박정희 영구집권체제를 갖추고, 북쪽은 김일성이가 그때까지 수상하다가 주석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해서 양쪽이 다 자기정권강화에 악용했어요. 그런 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보증합니까? 
  솔직한 얘기가 아까도 말씀했지만 아니 김일성이가 지지한다고 떠들면 그 사람은 아주「낙선보증서」받는거나 마찬가지인데 김일성이가 저 생각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들 우리는요, 김일성이 말 한마디에 놀아나는 이런 대한민국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김일성이가 자기 이익에 필요해서 지지를 한다고 해서 김대중이가 김일성이 이익을 위해서 일합니까? 자기는 자기 속이고 나는 내 속이지, 내가 왜 김일성한테 일합니까?   
  대한민국에서 김대중이 만큼 용공문제를 가지고 철저히 검증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몇천 몇만 번 안기부에서 검증했습니다. 빨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 이상 의심하겠습니까?
  저는 대한민국에서 반공일뿐 아니라 공산당한테 이기는 반공 저 西獨같이 자유와 번영 과 복지를 실현해 가지고 이래가지고 공산당하라고 등을 밀어도 안하는 그런 반공하자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서독이 이기지 않았습니까? 세계 모든 민족이 이겼습니다. 
  남한의 군사정부같은 반공해 가지고는 같은 내전에서 모두가 졌습니다. 중국의 장개석, 월남, 캄보디아, 라오스, 쿠바, 니카라과 다 졌습니다. 왜 내가 대한민국 망하는 반공을 합니까, 「이기는 반공」을 해야지 그게 제 입장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나라 수사 기관이 특히 안기부가 얼마나 많이 반공을 악용했습니까? 그 사람들은 반공이 목적인지 정권유지를 위해서 반대세력을 음모에 걸어 가지고 한 것이 목적인지 우리가 모르지 않습니까? 1980년에 저에 대해서 용공이라고 사형까지 선고했던 그 사람들 전세계가 들고 일어나고 미국정부가 들고 일어나 가지고 한국군사재판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이렇게 발표하면서 저를 살렸는데 그때도 저를 그렇게 뒤집어 씌운, 제가 바로 희생의 장본인 아닙니까? 
  그러면서 이북에서는 한편 매일같이「김대중을 살리라」고 궐기대회 하니까 남한의 정부는 김대중이 살리라는 것 봐라 이는 틀림없이 좌익이다, 이렇게 악용을 했습니다. 그 김일성이가 저 살리려는 것이 아니라 죽여라 죽여라 하는 것이에요. 결과적으로 뻔히 알면서 그랬단 말이에요.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김일성이의 농락, 일부 악랄한 수사기관원들의 농락에 우리가 좌우돼야 하는가 이것을 반성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분명히 얘기해서 저의 사무보조원이었던  李根熙는 간첩이 아닙니다. 간첩연루도 아닙니다. 검찰의 기소장을 보면 이근희는 국방예산개요를 자기 친구에게 넘겨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는 친구가 불순세력인지 모르고 준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얘기해서 검찰의 기소장에도 간첩이라는 말도 간첩동조라는 말도 없습니다. 그럼 이미 다 발표해서 신문에 다 나버렸습니다. 국회의원들에게 전부 다 보내주었어요. 그건 비밀이 그땐 아닙니다. 그런 것 좀 넘겨준 것이 그렇게 죄가 되는가? 저는 모르면 몰라도 이것 재판하면 무죄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저는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 민주당 의원 중에 단 한 사람도 사상이 의심스런 사람이 없다는 것을 제가 하나하나 체크했습니다. 우리 민주당은 이 문제에 있어서는 어느 정당보다도 못지 않게 깨끗합니다. 
  그러나 가령 金洛中씨 같은 사람을 만났다든지 李善實같은 거 만난 것 그런 얘기하면 모르고 만난 사람도 있겠지요. 어떻게 얼굴에 간첩이라고 써 가지고 다닙니까?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지금 與黨이나 정부고위층 주변에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걸 가지고 지금 그 사람들이 좌익이다, 간첩하고 연루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안하는데 우리한테는 그렇게 하는가 나는 이점에 있어서는 여러분께서도 깊이 再考해 주실 것을 부탁드려 마지 않습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깨끗하고 우리는 추호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꺼릴 것이 없습니다』 
 - 〈이광훈〉보충질문을 그 관계로 하나 드리겠습니다. 李根熙 사건이 터졌을 때 민주당에서는 즉각 對국민사과담화가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신문광고에서 우리는 그 간첩단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그 신문광고가 나오고 했는데 지금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렇게 되면 그때 대국민사과를 지금에 와서 취소를 하시는게 옳지 않겠나 하는 이런 생각이 드는데요.  
  『對국민사과는 李根熙가 간첩이기 때문이 사과한게 아니라 부주의하게 그런 유인물을 줘 가지고 물의를 일으킨데서 제가 사과한 것입니다』 
 - 〈정종문〉金후보께서는 중도 우파라고 강조하셨지만 싫든 좋든 김후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중도 좌파적이다, 이런 것은 부인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 왜 이렇게 중도좌파적인 이미지를 갖도록 돼 있는가 하는 설명과 더불어서 김후보의 반공관, 지금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하셨습니다만 정리된 그 반공관이 혹시 있다면 한번 설명해 주십시오.   
  『첫째로요. 공산주의는 저는 이미 37년 전 동아일보와 思想界에 글 쓸 때 공산주의는 필연적으로 멸망한다고 쓴 그 글을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우리가 적어도 정상적인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 매혹될만한 그런 주의가 못됩니다. 그것은 여러분 이제 우리가 공산주의가 멸망한 것으로 보더라도 입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독재가 성행하고 약자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심하고 사회적 부조리가 강화된 데는 공산주의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 사회에 대한 반항과 거부감 이런 것 때문에 가장 철저히 접근하고 선동하고 조직하고 이렇게 투쟁해 준 공산주의가 그들에게는 구세주처럼 보일 때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공산주의는 그렇게 될 수 있는 잘못된 사회, 독재 착취 그리고 부정부패 이러한 사회만 없애버리면 공산주의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쓰레기통을 깨끗이 청소하면 거기서 구더기가 나와 파리가 끓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썩은 쓰레기통에 있는 것이지 파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점에 있어서 서독이 우리에게 대해서 아주 좋은 모범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대로 서독은 자유와 번영과 복지사회를 만들었습니다. 공산당하고 싶은 사람 자유롭게 하라고 해서 서독에서 공산당 간판 걸어 놓고 아무리 해도 국회의원 하나 당선 안됩니다. 동독에 맘대로 갔다와서 공산당 좋다고 아무리해도 공산당 되지를 않습니다. 서독에는 국가보안법도 안기부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서독의 예를 들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예를 들어야 합니다. 1950년부터 53년까지 6․25가 있었습니다. 여기 젊은 분들은 잘 모르시지만 전 압니다. 그때 저는 피난 수도에 있었습니다. 피난수도에 그때 야당이 2/3의석을 점했습니다. 국민방위군 사건 거창사건 등등 문제의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매일같이 국회에서 정부를 규탄하고 그리고 불신임하고 했습니다. 일선에서는 전투에 밀리고 밀고 하는데 그랬습니다. 시민들은 다방에 앉아서 혹은 남포동 거리에 앉아서 자유롭게 누구 눈치도 안보고 정부 비판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에는 안기부도 없었고 국가보안법도 없었고 어떤 향토예비군도 없었고 민방위대도 없었습니다. 오직 경찰 하나만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끄덕없이 우리가 공산당한테 이겨냈습니다. 왜 이겨냈냐? 그때 국민들은 매일같이 타블로이드 신문에 주먹같은 활자로 정부를 때리면서 야당이 얘기하는 것을 보고 공산당한테 어떤 긍지를 느꼈나 하면 봐라 너희들은 이런 자유가 없지 않느냐 우리는 전시에도 이런 자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이런 국민이 긍지를 가졌기 때문에 공산당이 어디 침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반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전시에도 이렇게 자유를 주면서 훌륭하게 자신있게 반공한 나라가 왜 이제는 그렇게 국가보안법 가지고 안기부 있고 향토예비군 있고 온갖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렇게 무섭다 하는가, 그리고 왜 반공하면 반공했지 자기의 정적들에게 누명을 뒤집어 씌워 가지고 용공으로 몰아서 감옥보내고 죽이려 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정종문〉이어서 다소 연관되는 질문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리고 집권을 하신다면 남북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의하시거나 저쪽에서 하자고 제의가 온다면 거기에 응하실 그런 용의가 있으십니까?  
  『김일성에 대해서는 어쨌거나 日帝와 싸운 것 그것은 여러 가지 과정도 있고 한 모양이지만 일단 싸운 것만은 틀림없으니까 그것은 우리가 평가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머지는 평가할 여지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국민을 노예처럼 만들어 가지고 억압하고 자기 한사람은 신같이 숭배하는 그런 사람이 무슨 논평의 가치가 있습니까? 더구나 그 국민들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자기들은 호의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일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논평의 가치가 없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남북회담하겠느냐? 저는 그렇게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안한다고는 안하지만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저는 분명히 남북간에 사전에 따져서 이래가지고 하겠습니다. 
  우리 나라 지금까지 대통령이 북방외교라든가 남북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면 너무 자신이 앞서 나가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카드한번 나와 버리면 다른 사람이 바꿀 수가 없습니다. 지금 소련에 대한 經協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닙니까? 제가 작년 1월에 고르바쵸프 대통령은 절대로 안정하지 않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 러시아는 도저히 돈 빌려줄 나라가 못되니 주어서는 안된다, 그래서 국회에서 반대표결까지 함에도 불구하고 줘 가지고 빈껍데기 말하자면 블랙박스 갖고 농락당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이 실수해 버리고 나면 누가 고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나라 외교가 이렇게 대통령이 제일 먼저 앞질러 나가며 외교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더구나 북한이 노동당 규약에 남한전체를 사회주의화하는 것이 노동당의 목적으로 되어있습니다. 저는 지난번에 연형묵 총리가 재작년 12월에 왔을 때도 회의석상에서 북한의 노동당 규약에 남북한전체를 사회주의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것 놔두고 여러분이 남쪽과 평화공존하자, 같이 협력하자 이것은 거짓말이다, 솔직이 얘기했습니다. 연형묵 총리가 답변을 못했습니다. 그걸 제가 지적하니까. 
  저는 집권하면 북한에 대해서 분명히 따질 것 따지고 짚을 것 짚고 그래가지고 필요하다고 또 그래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남북정상회담을 하겠습니다. 그 가장 전제조건이 노동당 규약을 개정해서 그러한 자세를 우리가 분명히 믿을 수 있게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노동당 규약은 북한에 있어서 헌법 이상이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 〈최청림〉다시 정책질의를 하겠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여소야대 국회 때 농어촌 부채경감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거기에 따른 재정부담이 지금 연간 5천억, 6천억이 되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재정학자들이 말하는 법에 의한 재정의 경직성 구조를 심화시켰다는 얘기가 있고… 
  이번에 다시 정책공약으로서 농가 부채탕감, 농민에 대한 저리융자를 공약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따른 추가적인 재정부담이 1조가 넘을 것이다. 이런 얘기가 있는데 농촌문제를 농촌의 생산성 향상 농업구조개선 이런 문제를 어프로치하지 않고 소득을 보장해준다 그런 인기선심정책으로 인하여 자립자조정신을 훼손시키고 있지 않느냐? 그리고 재정이 언제까지 그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 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UR같은 파고를 농민 스스로가 극복하는 노력을 손상시킬 것이다, 이런 얘기들이 있고 지금 잘 아시겠지만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로 볼 때 경제의 생산성 조화라는 것은 그동안 국민 근로자 농민 군인 재벌 이런 사람의 집단이기주의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런 욕구를 자제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시기다 그런데 자꾸 욕구를 부풀려주는 선심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그런 지적이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한 답변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는 저희가 굉장히 고심을 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비판도 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재정사이드입장에서 보면 말도 안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참 의견이 갈릴 수 있는 문제고 어려운 문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지금 최위원께서 지적하신대로 빚만 감해주어 보았자 이 구조개선이나 생산성 향상을 통해서 수입없이 그렇게 하면 뭐하냐 이건 당연한 얘기입니다. 
  저희들이 농촌을 살려야 하는데는 3가지 방향에서 접근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구조개선해 가지고 좋은 작물을 고르고 하면서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저희들은 심지어 농업보장세까지 만들어 가지고 연간 1조원의 돈을 도시분들한테 갹출시켜 가지고 농촌을 살려야겠다, 이런 생각까지 가지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금융문제입니다. 저리 장기의 금융을 농민에게 주어가지고 이래 가지고 부담을 덜면서 농업을 경영해 나갈 수 있도록 이렇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유통구조를 개선해 가지고 제값을 받게 해주는 것입니다. 지금 김장철인데 금년엔 제가 정확히 가서 검토를 못했습니다만 2~3년 전에 가락시장가니까 배추 한포기에 2천원 하는데 농민들은 3, 4백원도 못받아 가지고 밭에다 내팽개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일을 우리가 자주 봅니다. 만일 이것을 도시와 농촌간의 직거래 제도를 농협같은데서 중심이 되어 했다면 농민은 적어도 5, 6백원 이상 받고 도시민은 천원내외면 살 수 있는 양자가 득이 되는 이런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가 이것을 안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청와대에 갔을 때 대통령께 이것을 건의했어요. 도농간의 직거래를. 대통령이 농업협동조합 회장한테 연락을 했어요. 제가 농협을 또 찾아갔습니다. 그래서 회장한테 얘기를 했습니다. 회장도 좋은 생각이라고 해요. 그러나 그후로 제대로 시행이 안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사실상 이 나라가 포기상태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보십시요. 농촌에 가면 지금 집은 텅텅 비어있습니다. 50세가 말하자면 청년입니다. 학교는 문닫았습니다. 애들 울음소리가 없습니다. 총각이 장가를 못갑니다. 그런데 농촌에 그나마 남아있는 처녀들 얘기를 들어보면 농사지어서 수지만 맞으면 도시나간 청년들이 돌아오고 싶다는 거예요. 아니 도시에 가서 일부 돈벌었다가 돌아오는 청년들도 와가지고 도저히 농사지어 봤자 수지가 안맞고 빚만 늘어나니까 도로 도시로 나간다는 거예요. 이런 극단적인 상황에 있습니다. 
  이제 농촌인구가 6백만 남았는데 매년 50만씩 이농하고 있습니다. 12년 후면 농촌에는 한사람도 남지 않는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농촌은 우리의 뿌리입니다. 2천만이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명절에 농촌 찾아가는 나라는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입니다. 이런데 농촌이 지금 다 망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UR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농민한테 빚탕감 안해주면 어떻게 합니까? 전혀 갚을 길이 없는데 매년 늘어나는데, 그리고 빚갚으라고 하면 도망가는데, 방법이 없어요, 이제. 그런데 제가 좀 야속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몇 년전 한 3, 4년 됐지요. 5공 말기인데 대재벌들은 5~6조원 그때 돈으로 5, 6조라고 하면 지금 한 10조 됩니다. 5, 6조를 탕감해 주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서 말하자면 시드 머니까지 주어서 이래가지고 몇조를 주었는지 모를 돈을 10년 거치 30년 상환, 이렇게 해서 주었습니다. 왜 자기 잘못으로 부채를 진 대재벌로 이리 저리 빼돌린 사람들을 그렇게 봐주고 정부의 시책 믿다 망해 가지고 빚진 농민들을 그렇게 우리가 봐주는데 인색해 하는가? 
  그리고 농촌 망해보십시오. 지금 농촌이 망했으니까 맨날 서울로 들어오니까 그것이 전부 서울로 몰려와 가지고 콩나물 시루 교실, 공해문제 그리고 말하자면 교통문제, 주택문제 온갖 도시병이 이 농촌 농민들이 무작정 들어온 데 있습니다. 앞으로 6백만 더 들어와 보십시오. 어떻게 되는가? 이 나라는 거덜이 납니다. 그래서 이런 점에 있어서 저희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가 결심을 가지고 농촌을 살려야겠다 하는 … 그런 결심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걸려 있습니다. 결심만 있으면 어렵지만 돈은 나올 데가 있습니다. 종을 쳤기 때문에 중단해야겠는데 그런 점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최청림〉보충질의를 드리겠습니다. 농촌문제가 딱하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딱한 입장에 있는 계층이 농촌만은 아닙니다. 도시 근로자도 빚이 많고 영세민들도 어렵습니다. 특히 도시 근로자들은 농촌의 가격지지를 위해 연간 8조원의 추가 부담을 물고 있습니다. 국제시세대비요. 농촌은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렇다면 형평의 원칙에 의해 도시 근로자나 영세민의 부채도 탕감해줄 용의가 있는지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도시 근로자의 부채와 농민의 부채는 성격이 다릅니다. 도시 근로자의 부채는 생활비 때문에 부채를 진 것입니다. 농민의 부채는 정부시책에 따라서 정부가 하라는 대로 농사짓고 특용작물하다가 부채진 것입니다. 어느 나라가 생활비까지 갚아줍니까. 
  그렇지만 제가 최근에도  大田에 가서 어느 봉급자 부인, 4가족이 사는 부인하고 우리가 어떤 모임을 가지고 농촌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그 부인 얘기가 나도 도시 살지만 쌀값이 너무 헐하다 이거예요. 우리 가족이 한달 먹고 사는데 쌀값이 4만원이면 된다,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다, 농민 더 줘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요 너댓 식구가 한달 먹는데 쌀값이 4만원밖에 안듭니다. 그런데 막벌이 노동꾼도 하루 나가서 일하면 3, 4만원 법니다. 우리 역사에 언제 식량값이 하루 벌어서 한달 먹는 식량값을 벌은 일이 있습니까? 쌀값이 너무 헐합니다. 그래서 우리 농민 살려야 합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우리는 좀더 농민문제에 있어서 새로운 각도에서 봐야 합니다. 농민문제를 근대경제의 안목에서 봐서는 안됩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갈브레이스 교수가 여기 와서 한번 이야기한 일이 있는데 농업경제는 근대 경제가 아니다. 농업경제는 전근대의 경제다. 따라서 농업문제에 대해서 자유무역주의를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래서 농업은 근대산업의 압도적인 힘 앞에서 그리고 눈부신 변화앞에서 어쩔 수없이 덜덜떨고 있는 농민들을 국가가 안고 보호 안해주면 이건 완전히 망해버리고 망해버리면 어떤 사태가 나느냐 지금 우리나라 쌀 자급율이 겨우 100%입니다. 전체 식량자급율은 40%도 안됩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안보가 위험한 나라 중에 하나가 우리나라입니다. 식량은 한달도 더 걸려서 태평양에서 실어옵니다. 만일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식량은 끊겠다고 위협을 하면 우리는 손들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은 육탄가지고 되지만은 안먹고는 육탄가지고 안됩니다. 그래서 국가안보의 차원에서 도시의 파멸을 막는 차원에서도 농민을 보호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최청림〉쌀값이 싸다고 말씀하시고 더 올려야 된다는 말씀하신 것 같은데 지금도 우리 나라의 쌀값이 국제시세보다 5배입니다. 미국의 6배이고 그것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식량안보론을 말씀하시는데 식량안보론은 식량의 한 50%를 자급하는 것으로 정설이 되어 있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쌀은 김후보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쌀이 남아 돌아가서 창고에서 썩고 관리비만 엄청나게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쌀값이 국제가격보다 3배라고도 하고 5배라고도 하고 6배라고도 하고 그렇습니다. 또 미국이 지금 한창 신나서 UR 개방해라 쌀 개방해라 미국정부의 쌀 생산농민은 한 2천명밖에 안됩니다. 이런데 지금 우리한테 몰아붙이는데 사실은 지금 어떤 사태가 있냐 하면 중국은 미국에 비해서 쌀 수출 여력이 10배쯤 있습니다. 미국이 이런 개방시켜 놓으면 한국과 일본은 중국 쌀이 막 들어올 것입니다. 미국 쌀보다 싸요. 그래서 미국이 지금 무슨 목적으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여하간 우리는 米價가 국제가보다 비싼 건 사실이지만 우리 노동자부터 도시 모든 사람들이 쌀값 때문에 우리들이 생활상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주부들이 장바구니 물가 얘기할 때 배추, 고추, 쇠고기, 돼지고기 이거 얘기하지 쌀얘기 하는 분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고통을 안느끼면서 농민 도와줄 수 있다면 그거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래야 도시가 부담을 안하게 됩니다. 안그러면 도시로 몰려오면 우리가 그 부담 현재에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쌀이 남는데 이것이 진짜로 남는 것이 아닙니다. 식량 자급도는 5할 이내라고 했지만 전 4할 이내라고 보고 5할 이내면 5할이 모자라지 않습니까? 그런데 쌀 안먹고 밀가루 먹어 가지고 이꼴을 만듭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게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엄청난 외화를 외국에 주고 그리고 미국 밀가루 먹고 우리농촌쌀은 썩히고 내쌀은 썩히면서 남의 밀가루를 먹고 주는 이런 백성들이 어디 있습니까? 세계에. 나는 이것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집권을 하게 되면 어떤 일을 하냐면 국민학교 전면 급식해 가지고 얘들을 전부 쌀밥하고 된장국 먹일 작정입니다. 이래서 우리 음식에 익숙하게 하고 밀가루 안먹일 작정입니다. 이래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쌀 먹는 방향, 군대에서 라면 빵같은 거 전부 쌀제품으로 만들 작정입니다. 막걸리 밀가루로 못 빚게 하고 쌀로 빚게 하겠습니다.
  이래서 우리 쌀 소비시켜주면 이렇게 남아 돌아갈 이유가 없는 거예요. 그래도 남으면 나중에 북한에 값이 헐하게 팔아주면 되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문제 때문에 농민들이 망해 가는 것을 우리가 그대로 볼 수 없지 안느냐 이렇게 생각합니다』  
 - 〈성병욱〉분야를 좀 바꾸겠습니다. 10․26직후 계엄사령관이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기자간담회에서 그 당시 군 지도부는 김대중씨를 군의 통수권자로 모실 수 없다 그런 얘기를 했고 12․12 사태 이후에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또 기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그런 발언에 대해서 진의를 물으니까 그것은 정승화 장군뿐만 아니라 군 지도부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그런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또 군부가 김후보의 집권을 꺼린다는 문제가 지난 87년 선거때도 야당후보 조정 과정에서 제기되었던 것으로 김후보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는데 지금 군 지도부의 김후보에 대한 생각은 어떻다고 보시는지요. 또 혹시 전과 같은 비토분위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아닙니까? 집권하시면 군통수권자로서 군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자신이 있는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점에 대해서 제가 한 가지 얘기하는데 그때 鄭昇和 장군이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그때 정권을 잡기 위해서 잠재적 정적인 저를 매장하기 위해서 그런 짓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그 당시 美國쪽에서 정승화 장군 측에 대해서 우리는 정승화 장군하고 의견이 다르다. 우리는 김대중씨의 사상을 믿는다. 이런 말을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한쪽 말만 우리가 믿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죽하면 80년에 저에 대해서 용공으로 몰아서 사형선고 했을 때 미국정부가 남의 나라 법정의 판결을 가리켜서 이것은 완전히 조작이다 라고 발표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쪽 말만 믿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에 대해서 그렇게 말한 사람도 있지만 저기 와서 앉아 계신 姜昌成 장군 국군 보안사령관을 하고 또 중앙정보부에서 차장보를 해서 사상문제 이런 것을 아주 샅샅이 조사한 분, 朴正熙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저에 대해서도 5개월 동안 조사해 가지고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입증한 장군도 있습니다.  
  사상문제는 정승화 장군이 계급은 대장이지만 소장인 강 장군이 더 잘 압니다. 그래서 이런 점에 있어서는 그런 사람들 말은 잘못 보고 받고 했거나 자신의 정치적 야심 때문에 정적을 몰아붙이는 그렇게 말살하려는 군사 문화 특유의 방법으로 정승화 장군이나 전두환 장군이 그런 짓 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군인들은 국방부장관이하 모든 군 지휘관들이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누가 지금 나온 분들 중에 대통령이 되든지 우리는 충성을 바치겠다, 공식으로 국회에서 속기록에 남기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석에서도 그러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전혀 김대중의원에 대해서의 저의 종교와 사상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가장 국군을 이해하고 건전한 국방정책을 제시하고 있어서 자기들은 참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군인 옛날 군인 아닙니다. 이제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누구도 그런 것 꿈꾼 사람도 없고 국민이 자유롭게 투표한 결정을 뒤집으려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군대 내에서 국민은커녕 군대 내에서도 지지를 못받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은 또 성장했기 때문에 이제 그런 것을 용납할 시대가 아닙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추호도 걱정하고 있지 않다, 이렇게 여러분께 말씀드리겠습니다』  
 - 〈정종문〉군과의 관계를 말씀하실 때 보충질문을 하나 드릴까 합니다. 남의 당의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이야기한다는 게 결례가 되는 줄 압니다만 참 불가피하게 여쭤 보겠습니다. 
  3당 합당을 했을 때에 만일 3黨 합당이 안됐더라면 그 당시에 무정부 상태 이런 것 때문에 헌정중단사태가 왔을 것이다 하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헌정중단이라고 하면 쿠데타겠지요. 실제로 3당 합당 그 당시 여소야대 그리고 무정부상태 이런 현상이 있었습니다만 그 당시 야당의 입장으로서는 과연 헌정중단 상태-쿠데타-가 왔을 것이다 라는 그런 판단에 동의하십니까?  
  『미안하지만 전혀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모순에 찬 이야기입니다. 지금 말씀한 그분은 與小野大의 13대 국회가 나왔을 때 우리 국민의 위대한 결정이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또 그분은 89년 소위 중간평가 문제가 일어났을 때 우리 3당이 그 당시 야당입니다. 공화당,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3당이 합의된 89년 한해를 보고 민주화가 되었느냐 안되었느냐를 보고 중간평가 문제를 결정하자 지금은 정부가 민주화부터 해라 이래놓고 한 달이 못가서 혼자 그냥 우리 합의를 이탈해서 노태우 대통령 이대로 둘 수 없다, 쫓아내야 한다, 중간평가해야 한다, 이래 가지고 막 붙었습니다. 그 정권 가지고는 나라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습니다. 
  3당 합당 선언이 1월에 있었는데 12월 호의 어떤 잡지를 보면 내가 민정당과 통합한다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나는 민주정당이고 그건 군사정당인데 어떻게 해서 내가 통합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1월에 가서는 통합이야말로 구국의 길이다, 안그랬다면 큰일날 뻔했다, 이러니 어떻게 해서 그 말을 믿을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만약에 정말로 그것이 구국의 길이었다면 왜 자기 黨內에서 협의하지 않았는가, 왜 같이 공조체제였던 우리보고 김대중이 보고도 이것이 구국의 길이니까 같이 하자 좀 설명했어야 할 것 아닙니까? 저는 그런 설명들은 일 없습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구체적 자료가 있습니다. 3당이 야당으로서 與小野大의 1년반시절에 국회에서의 의사진행에 과거 全정권보다 훨씬 많은 의안을 처리했고 이중 98%를 여야합의로 통과해 완전히 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3黨 합당 후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국회에서 날치기만 했습니다. 어느 쪽이 안정입니까? 그래서 이런 등으로 봐서 3당 합당한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씀한 고충은 알지만 그것은 옳은 주장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 〈이성춘〉5년 전 이야기를 좀 해야겠습니다. 이것은 金후보의 지금까지의 정치적 자세의 일관성 문제하고 유관되는 건데 지난번 13代 大統領 選擧가 끝난 후에 선거 결과에 대해서 이것은 원천적으로 부정선거다, 컴퓨터 부정이다, 이건 인정 못한다, 재야 민주세력하고 모두 연대하여 이것을 시정하는데 끝까지 투쟁하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5년 전 뿐만 아니라  김후보께서 처음 나오셨던 71년도 4월 27일 7代 大統領 選擧 끝난 후에도 이것은 관권이 총동원되고 그야말로 온갖 금력을 정부가 동원해 가지고 매표를 자행해서 내가 다 잡은 정권을 빼앗기다시피 했다. 이런 얘기를 하셔서 결국 두 번 나오신 선거 모두 인정 못하겠다고 하셨는데 이번은 여하튼 상황이 바뀌어서 중립정부가 선거를 관리하고 있는데 만에 하나 김후보께서 혹시나 실패를 보실 경우에 이번에도 인정을 못하시고 반대투쟁자세로 나가실 건지 우선 여기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71년과 87년이 부정선거라는 것은 野黨전체가 그렇게 규정했던 것입니다. 87년 선거 끝나고 통일 민주당 김영삼 총재는 이것은 완전히 부정선거이기 때문에 정권타도로 나가겠다고 선언한 것을 여러분은 기억할 것입니다. 누구도 이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저만 인정하지 않은 것 아닙니다.  
  그리고 컴퓨터 부정얘기를 마치 제가 허황된, 과장된 주장을 한 것같이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최근에 미국에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컴퓨터 부정이 존재한다 하는 이런 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책 중에 여기에 주재해서 그 당시 밀착 취재했던 기자가 - 이름도 다 알고 있습니다만 - 한국에서 컴퓨터 부정에 대해서 자세히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자는 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준 회사에 가서 취재까지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제가 새삼스럽게 그것 따져 가지고 노태우 대통령 당선무효다 이것 주장할 생각은 없지만 분명히 제가 허황된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얘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앨빈 토플러라는 미래학자가 있는데 그분도 어떤 저서에다가 1987년 한국에서 컴퓨터 부정한 혐의가 있는데 컴퓨터 부정을 하려면 쉽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엉터리없는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까 말씀했는데 일관성없는 말은 적어도 국민앞에서 큰 문제 갖고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결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사람이지만 적어도 국민앞에 거짓말은 안했습니다. 이 많은 분들이 제가 직선제하면 대통령 안나온다 해놓고 나왔지 않느냐 그러니 거짓말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건 전혀 사실이 다릅니다. 제가 직선제하면 대통령 안나온다고 한 것은 1986년 6․29의 7개월 전에 전두환씨가 건국대학 습격해 가지고 만명의 경찰을 가지고 3천3백 명의 학생을 잡아넣으면서 전부 빨갱이다. 빨갱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래가지고 말하자면 친위쿠데타를 하려는 그 위기 속에 있을 때 제가 당신 이거 그만둬라 당신이 국민 뜻대로 직선제 받아들여라 당신이 받아들이면 그것이 나 때문에 문제라면 내가 안나가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래하자, 주고받자 당신이 직선제 받으면 나는 안나가겠다 약속하겠다. 그러니까 전두환씨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차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7개월 싸워 가지고 노태우씨, 전두환씨 항복 받아 가지고 우리가 차지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전투개시전에 서로 이렇게 하면 나는 너를 이렇게 받아주고 너는 이렇게 받아주겠다고 했다가 결렬되어서 싸워서 차지한 것인데 왜 이 약속이 여기하고 관계가 있습니까? 그것은 정말로 이치에 안맞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분명히 얘기해서 87년 선거부정은 극에 달했습니다. 여러분 언론인도 여기 계시지만 그때 자유롭게 야당이야기 보도한 신문사가 어디 있습니까? 야당을 제대로 봐주는 주간지 하나 없는 그런 정도로 여러분들 핍박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공명선거 아니지요. 전 공무원이 총동원되고 통반장까지 동원되고 국영기업체가 동원된 것이 어찌 공명선거입니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71년 대통령 선거 때는 제가 46%를 얻었다고 발표되었지만 그건 저기 계신 강 장군이 그 당시 그 선거에 직접 개입했는데 그 당시 그대로 했으면 박정희씨가 졌다고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얘기하는 분이 이젠 많습니다. 
  그래서 문제는 국민의 생각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노대통령이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고 우리가 다 잘해가는데 무슨 염치로 그것을 인정 안할 수가 있습니까? 저는 분명히 얘기해서여러분과 우리가 다 인정할 수 있는 공명선거를 했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설사 패자가 되었더라도 그 결과를 지지할 용의가 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 〈이성춘〉관련해서 간단히 한가지만 첨언하겠습니다. 김후보께서는 꼭 1년 전인 작년 12월 6일 바로 이 자리 관훈 토론회에서 말씀하시기를 오는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성공하지 못할 경우에는 마땅히 정치의 책임있는 자리에서 앞으로 새로운 분을 추대해서 대비하겠다, 나는 일개 병사로서 당 안이든지 밖에서든지 민주주의를 위해 열심히 헌신하겠다, 그런 말씀 하셨고, 금년도 5월 22일 민주당 후보지명대회 앞서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번 大選결과와 관계없이 당권에서 손떼겠다,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이 부분도 확실히 변함이 없으신지 다시 한번 여쭙고 싶습니다.   
  『전혀 변함이 없습니다』  
- 〈이광훈〉질문을 시작한지 거의 한시간이 되었습니다. 너무 분위기가 딱딱한 것 같아서 부드러운 질문 두어 가지 드리겠습니다. 
  요즘 시중에는「알부남」이라는 말이 유행을 하고 있습니다.「알고 보면 부드러운 남자」다 이것을 약해서「알부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김대중 후보의 이미지라면 강하고 단호한 투사의 이미지였는데 이번 대선을 앞두고는 미소짓는 부드러운, 어제 TV유세에서도 나왔습니다만「부드러운 남자」의 이미지를 풍기고 있는데 이것이 시대상황이 달라진 데서 오는 변화인지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부드러운 모습을 유지하실는지 이것을 묻고 싶고 또 하나는 김후보께서 평소 독서량이 많은 건 다 알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애독하는 서적으로 백범일지하고 황석영씨의 장길산, 박경리씨의 토지를 들고 있습니다.  
  그중 토지는 아직 연재가 계속되고 있습니다만 토지에는 수백명 인물이 등장합니다. 거기에는 1권이 최지수부터 시작해서 서희, 길상이, 구천이 등이 계속 나오는데 그 수백명 인물 중에서 김후보께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 그리고 애착이 가는 이유 한번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부드러운 질문인데요. 여러분도 경험해 보셨지만 강박한 상황 속에서 생명을 몇 번이나 뺏기려고 하고 감옥살이하고 뭐 주위의 동료들은 잡혀가고 있는 상황, 아마 한국사람 누구도 겪지 못했던 세월을 저는 꼭 20년 이상 겪었습니다. 그런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제가 사생결단의 싸움을 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독재가 휘몰아칠 때 누가 싸웠습니까? 싸운 사람들이 없으면 어떻게 오늘날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저 혼자 힘으로 했다고는 하지 않지만 이렇게 오늘을 가져오는데 저도 일비지력(一臂之力)을 한 것 만큼은 틀림없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언제 부드러운 부드러운 남자가 될 여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그때는 부드러우면 안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었고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국민들도 자신이 생겼습니다. 다시는 군대가 정치 못하게 막는 국민의 역량이 커졌습니다. 군대 내부도 이제는 큰 반성이 생겨가지고 변화가 되었습니다. 저에 대해서 거부하던 군부나 재계도 이제는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렇게 하고 국민중에서도 제가 TV에 나오면 TV꺼버리는 분들도 이제는 그래도 들여다 보면서 김대중이도 괜찮은데 이런 사람도 생겨났어요. 그러니까 저도 그것에 맞춰갈 수밖에 없지 않아요?
  그리고 TV문제가 나왔는데 TV가 제게는 문젭니다. TV는요 TV에 잘 나오는 사람은 얼굴이 주먹만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같이 얼굴이 넓은 사람은 이게 잘 안돼요. 가수나 탤런트 보세요. 예쁘게 나오는 사람은 다 얼굴이 적다고요. 제가 지난 27일날 대구 팔공산에 가서 불교신도 수십만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를 오고 가면서 악수하고 뭐하고 했는데 거의 부인들이 빼놓지 않고 하는 소리가 TV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젊고 잘 생겼다,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기분도 좋았지만 TV 때문에 나는 손해를 많이 보는구나 이런 생각을 가졌어요. 그래서 손해 좀 덜 볼라고 열심히 노력합니다. 억지로 웃는 연습도 하고 한까치도 끼어봤다 화장도 해봤다 이런 건데 시대가 바뀌었어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알맹이, 말하자면 민주주의라든가 정의라든가 소외계층에 대한 애정이라든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든가 공산주의에 대한 단호한 반대라든가 이 알맹이는 안바뀌었지만 시대에 따라서 그 방법과 언동과 표정과 이런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토지를 제가 많이 읽었습니다. 저는 좀 문학서적은 많이 읽었는데요. 토지는 참 경상도 하동군 평사리 거기의 모든 모습 이런 것 화개장터 이런 모습 볼 때 저는 전라도에서 자랐지만 말만 경상도 사투리 안쓰고 전라도 사투리 쓰면 꼭 전라도 같아요. 그렇게 박진감있고 실감있더라고요. 그리고 정말 자랑스러운 거작이고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애정이 가는 사람 참 많아요. 무당의 딸 월선이도 있고 월선이하고 비련을 한 용이도 있고 주갑이라고 떠돌이 육자배기 건들어지게 불면서 돌아다니는 주갑이도 있고 이런 사람들을 보면요 정말 우리 한국인 한국인 이것을 느끼게 돼요. 전 그 특히 그 세 사람에게서 한국인을 느꼈습니다. 월선이가 암에 걸려 가지고 용이하고 마지막 비련, 용이는 전형적인 남자다운 남자입니다. 그런 남자로 묘사되어 있는데 용이 무릎 위에 누워서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용이가 너하고 나하고 산 인생 후회없제 네 후회없습니다. 이러고 죽는 대목에서 전 얼마나 거기에서 운지 몰라요』  
- 〈최청림〉저도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얼마전에 김후보께서는 개인재산 43억원을 신고했습니다. 현금 5억, 집, 부동산 이런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국민들이 볼 때는 골동품이나 귀금속, 유가증권이나 서화나 이런 것을 왜 빼고 신고했느냐?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걸 얼마큼 가지고 있는지 답변해 주시고요.
  현금 5억원에 대해서 여러 가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김후보께서는 젊었을 때 사업을 좀 하신 걸로 알고 있지만 그후에는 줄곧 정치, 국회의원밖에 안하셨는데 어떻게 현금 5억을 가지고 있을 수 있느냐? 큰돈입니다. 서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혹시 정치헌금을 받았다면 그것은 정치자금으로 쓸 문제지 김후보의 개인재산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도 있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토론이 좋은 것은 저런 질문 나와서 서로 하고 싶은 말 하니 자기에게도 참 유익합니다. 사실 저는 좀 어수룩해서 이것을 고시가격으로 하지 않고 싯가로 했어요. 그래서 가격이 많아져 버렸어요. 안그랬으면 반으로 주는 건데, 그리고 현금도 있는 대로 얘기했단 말이에요. 사실 이것은 개인으로 보면 현금 5억이면 큰 돈입니다. 그러나 정당의 대표, 대통령으로서 5억 가지고 있는 이 돈은 요새 물가가 얼마나 비쌉니까? 그래서 이외에 당으로 지금 적어도 200억 이상은 써야 선거되는 것 아닙니까? 이런 상황에 제가 특수하게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선거가 끝나면 여러분과 똑같이 검소한 그리고 절약하는 생활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골동품과 서화는 전 없습니다. 그런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 자식들에게 가훈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 좋아하지 말아라, 공인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그런 것 좋아하면 절대로 깨끗한 그런 정치생활을 하기가 어렵다, 유혹을 받는다. 골동품이라는 것은 굉장한 유혹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취미를 붙이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골동품 이런 것이 생기면 모아 두었다가 당에서 무슨 큰 선거나 있으면 전시회를 해 가지고 팝니다. 지난번 광역선거 때도 중소기업은행 자리에서 전시를 했는데 반 이상이 제것이었습니다. 그래가지고 그것 팔아서 아마 몇십억했어요. 그런데 누가 준 것 만도 아닙니다. 어디서 전람회한다고 나와서 사라고 하나요, 안사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면 수가 쌓입니다. 그러면 간혹 그렇게 해서 처리한다, 그래서 하고, 저는 골동품이나 그런 문제에 관심도 없고 욕심도 없습니다. 
  제 재산이 43억원이라는데 개중에는 큰 자식이 살고있는 집값이, 둘째, 셋째 자식이 살고있는 전세금이 있습니다. 아직 두 자식은 집이 없습니다. 그리고 큰 돈이 나간 것은 永登浦  그 땅이 25억이라 해서 그렇게 큰돈이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지금부터 근 30년 전에 아주 헐값으로 샀던 것입니다. 사고싶어 산 것이 아니라 우리 집사람이 무슨 관계해서 조금 저축해서 모아논 것 그걸로 샀어요. 별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그 일대가 롯데 민자역이 개발이 되고 신세계 백화점이 가고 경방이 큰 백화점을 지으려 하고 들으니까 OB도 저쪽에다 지으려 한다 해요. 그래서 값이 올라갔습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다시피 서울이란 곳은 장소에 따라서는 가격이 폭등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전엔 아무 것도 아니었던 것이 지금은 25억짜리가 되었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걸 지금까지 왜 쥐고 있었냐 그랬더니 그동안 돈이 아쉬워서 몇번 팔려고 내놨어요. 근데 살려고 하다가도 제것이라니까 아무도 안사요. 아주 송충이같이 무서워하고 도망가요. 그래서 이것도 사실은 선거에 들어가면서 또 팔아서 선거비용에 보태 써 볼까 남보고 달라고 하면서 내 것 안 내놓는다는게 말이 아니다, 이래 가지고 내놓았었어요. 또 저기 주말농장 몇백평이 평당 백몇십만원 주고 산 것도 지금 몇천만원 되겠지요. 그것도 나 내놨어요. 그런데 하나도 안 팔려요. 그래서 이번에 이것은 하늘의 뜻이었구나 이래서 이것을 저도 장애인이고 해서 장애인단체에 완전히 내놓기로 해서 법적수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이성춘〉저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김후보 개인재산에 대해 유달리 따져보자는 것이 아니라 역시 대통령 선거에 나서신 분이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정확히 알 필요가 있지 않느냐? 두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첫째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지난번 발표하신 43억원이 자녀분들 것이 포함되었다, 그래서 자세히 발표하셨는데 내외분 것을 제가 이렇게 합산을 해보니까 34억 8백80만원으로 나옵니다. 지난번 88년 13대 국회가 구성되어 등원하시면서 모든 국회의원이 국회사무처에 이른바 재산등록을 하고 나서 두 달후에 공개를 하셨을 때는 3억 4천만원으로 나왔습니다. 근 4년 반 정도에 굉장한 차이가 나지 않느냐 하는 점 하나하고 현금 5억 부분같은 거 야당 당수 지금은 야당이 아닙니다만 일개 큰 정당의 당수를 지내신다면 이런 여러 가지 돈도 가질 수 있지 않느냐 선거 끝나면 검소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러시는데 딱 한 가지만 인용하겠습니다. 지난번 부산지역 언론인들 모임인 가야 클럽에서 말씀하실 때 돈은 단순히 정치자금이란 것은 단지 정거장 역할만 해야 된다는데 김후보께서는 개인재산하고 정치자금하고 어떻게 구분하시는지 그 두 가지를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88년 그때에 3억 4천으로 등록했던 건대 그건요 아마 이런데서 온 일 같습니다. 그때는 땅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고 영등포 어디 소재 대지 몇평, 경기도 화성군 어디 소재 임야 몇 평 이런 식으로 등록을 했기 때문에 저희 집만 평가해서 그때는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나도 한 평도 감춘 것은 없습니다. 땅은 평가를 안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고요. 정치자금과 개인재산 이건데 저희는 제 일생의 신조는 자식들에게 아주 문장으로 써주었는데 부자도 되지 말고 가난한 사람도 되지 말아라. 부자도 돈의 노예가 되고 가난한 사람도 돈의 노예가 된다. 이렇게 써주고 있습니다. 
  솔직한 얘기가 저는 대통령이 되어서 좋은 정치를 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부자가 될 욕심은 전혀 없다, 그 점은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리고요. 그리고 저는 돈은 생기면 생기는 대로 당과 정치를 위해 썼기 때문에 저 개인재산이란 것은 현금으로는 사실 없습니다. 생기면 다 쓰고 아까 적은 5억도 다 당으로 쓰는 것이고 저희 집 살림으로 쓴 것은 극히 일부밖에 안됩니다. 아마 그렇게, 여러분 그렇게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 〈성병욱〉96년 15대 총선 때 국민에게 물어서 압도적으로 내각제를 지지하면 잔여임기를 내놓고라도 내각제를 하실 생각이 있다고 하셨는데 만일 96년 시점에 그게 간다면 김후보는 개인적으로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 중 어느 쪽을 선호하시겠다 그런 생각이 혹시 있으신지요?
  그리고 그때 가서 잔여임기를 포기하고 의원내각제를 하겠다고 하면 내각제를 통해서 집권연장을 꾀하는 게 아니냐 그런 오해를 받기가 십상인데 내각제 개헌을 하게 되면 결코 재집권을 시도하지 않겠다 그런 다짐을 하실 수 있겠습니까? 또 이 내각제 실시 용의 발언이 대선후 민자당내 민정계 등 내각제 선호 세력을 끌어들여 제2의 3당 통합같은 정계개편을 염두에 두신 것은 혹시 아닌지 그런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요. 
  『저는요, 이 문제에 대해서 저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저 개인적으로서는 대통령 중심제를 지지합니다. 저는 내각제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까지는 여기서 발표하지 않겠습니다. 발표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동시에 저는 현재의 우리들은 누구도 현 14대 국회에서 내각책임제 한다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정부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국민의 동의없이 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현재의 대통령직선제는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72년 유신이래 87년까지 국민이 15년 동안 싸워서 얻은 것입니다.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이 여기에 배어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감옥가고 했습니까? 그들이 그렇게 해서 얻어놓은 것을 우리가 무슨 권리가 있길래 맘대로 바꿉니까? 이것을 바꾸려면 국민의 동의없이는 못바꿉니다.        
  그런데 이번 14대 국회에서 어느 정당도 내각제책임제를 가지고 나온 일이 없습니다. 선거전에는 바라지 않고 선거끝나면 내각책임제 이게 말이 됩니까? 그래서 이런 것은 말이 안된다 이겁니다. 
  그런데 그러한 원리와 더불어 현실적으로는 내각책임제 문제가 상당수 사람들에 의해서 관심을 갖게되고 논의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면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상당수 사람의 관심이 증가되고 있을 때는 그것을 우리는 국민의 생각이니까 겸허히 경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다가 우리 헌법은 이것이 특히 부산 정치파동이래 그저 뭐만 잘못되면 헌법탓으로 이리 발기고 저리 발기고 이래가지고 헌법 대단히 참 안된 말이지만 누더기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직선제도 아니고 내각책임제도 아니고 이런 헌법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헌법에 대해서는 국민적 심판에 의해서 정리할 때가 왔다. 순수한 내각책임제를 할 것인가 영국이나 일본같이 아니면 순수한 대통령 중심제 삼권분립 이렇게 해서 대통령 부통령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 안하기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국민의 결선투표여야 합니다. 노태우 대통령같이 36% 가지고 어떻게 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대통령할 수 있습니까? 만일 그때 36%밖에 못얻었는데 그때 결선투표했으면 분명히 야당은 하나가 되었을 것이고 노태우 후보는 당선이 못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걸로 보더라도 이것이 안한 것이 얼마나 잘못이었던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두 가지 중에 하나를 분명한 헌법으로 방향을 바꾸는 이러한 작업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은가 이래 생각해서 저는 헌법을 한번 국민의 심판에 붙일 필요가 있다, 그래서 14대 국회 말기에 가서 이런 것을 공론을 일으켜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런 것을 부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원래 자유당치하에서는 열렬한 내각책임제 지지자였습니다. 민주당 정권 때 저는 내각책임제의 총리를 대변하는 여당의 대변인이었습니다. 다만 내각책임제 안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5․16 군사쿠데타 때 윤보선 대통령이 한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되겠다, 이런 국군통수권이 둘로 갈라진 일은 안되겠다, 그런데서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 국민도 그렇게 생각해서 국민은 계속 대통령직선제의 독재를 받으면서도 대통령직선제를 국민은 지지해온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다시피 12대 국회같은 것은 야당은 아무 정책도 없고 오직 대통령직선제하나 가지고 정강정책이 전부 그것이었습니다. 그외에 없었어요. 이러한 정도로 국민의 지지받았는데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 않느냐? 그래서 한번 국민의 여론에 부치는 것이 이것이 우리나라 정치현실로 봐서 필요할 때가 왔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만일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지지하면 내각책임제를 해야하는데 그때 제가 어떻게 할 거냐 저는 그때는 내각책임제를 받아들이면 마땅히 대통령 자리를 내놓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盧泰愚 대통령에 대해서 말한 일이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이 내각책임제 얘기를 할 때 지금부터 2, 3년 전 입니다. 대통령이 무슨 자격으로 지금 내각책임제 얘기합니까, 대통령은 분명히 대통령직선제에 대해서 국민앞에 항복했다고 해놓고 대통령이 어찌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이보다 더 모순인 것은 대통령태도입니다. 그 좋지 않은 제도라고 하면서 그것을 내 임기동안 93년 2월까지는 대통령중심제 하겠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내각책임제를 하자, 그러면 어찌 좋지 않은 제도를 늦게 하고 좋은 제도 그렇게 빨리 안합니까? 대통령이 정말로 내각책임제에 대한 소신이 있다면 대통령은 내가 해보니까 국민한테 약속했지만 도저히 안될 제도다 그러니 바꿔야 좋겠다. 그러면 내가 대통령을 내놓을 테니까, 내각책임제하자 이렇게 말하면 대통령 말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는 이상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제가 그렇게 대통령에게 말한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제 말한 것으로 보더라도 만일 그렇게 받아들이면 그것은 대통령 임기를 포기하면서 하는 것이 옳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성병욱〉보충질문하겠습니다. 제가 질문한 것 중에 대답을 안하신 것이 있는데요. 이제 만일 국민들이 원해 내각책임제를 하게 된다면 그것이 아무래도 96년 선거 끝난 다음에 개헌하는 과정이 시간이 좀 걸릴 테고 하면 대통령이 되시고 난 다음에 4년 정도 임기가 흐르고 난 다음일 겁니다. 그때 그만두시면 1년이 남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만두시고 난 다음에 앞으로 일체 집권을 안하겠다 하면 모르지만 또다시 대통령은 물러났지만 의원내각제로써 내가 총리를 하겠다든가 대통령을 하겠다 그런다면 집권연장을 하기 위해서 이거 하는 거 아니냐 이런 우려를 낳을 염려가 있는데 그 문제에 대해서 내각책임제를 하면 내가 물러나는 것은 물론 물러난다고 하셨으니까 앞으로도 총리고 대통령이고 더 할 생각이 없다든가 그때 가봐야 알겠다든가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요.       
  『걱정을 너무 많이 하시는데 그런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저는 대통령중심제 지지자입니다. 그때에도 대통령중심제를 국민이 지지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각책임제에서 내가 어떻게 할거냐 하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슨 자리에 연연해가지고 집권연장이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 〈이성춘〉아까 김후보께서 제가 일관성 문제를 말씀드리니까 한번도 어긴 적이 없다고 얘길 하셨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조금 생각을 달리 하는 입장도 있다고 봅니다.

  두 가지 경우를 들고 싶은데요. 첫째는 지난 89년 6월에 그 당시에 벌써 봄부터 이른바 밀입국사건으로 공안정국이 형성이 되어 경직된 분위기를 이뤄가지고 정치자체가 빡빡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때 光州를 방문,「光州사건과 5공 비리가 완전히 규명 해결되지 않으면 노대통령의 신임을 연계하는 국민투표를 통해서 이른바 정권종식투쟁을 하겠다」고 선언을 하시고 중요한 것은 6개월 이내에 관련자 핵심인물 6명을 처리하지 않을 경우는 묵과하지 못하겠다, 그리고 8월에는 보라매 공원에서 5공 비리와 광주사태가 완전히 규명 해결되지 않을 경우는 연말까지 중간평가를 하고 그것이 안될 경우는 盧대통령 종식 투쟁을 하겠다, 시일을 설정을 하셨는데 이게 어느 면에서 보면 정치지도자로서 최후통첩 비슷한 아주 마지노선을 그어 놓고 선언을 하셨는데 이것이 그 당시 일부측에서 생각하기는 공안정국을 피해가기 위해서 검찰출두문제도 계시고 해서 이런 것이 단순한 방편인지 아니면 이것이 당론부분하고는 조금 느닷없이 나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습니다. 
  이런 부분하고 또 하나는 중간평가부분에 가서 13대 총선 때 33.9%를 민정당이 받았기 때문에 이제 반드시 재신임받아야 된다고 했는데 그 뒤에 중간평가 문제가 흐지부지되어 안하는 것도 인정하는 그런 식으로 되었는데 이런 부분도 차제에 해명을 하셔야 될 것 아닌가 합니다. 

『光州사태에 대해서는 제가 아까 말씀한 그런 회견한 이후로 국회에서 광주사태를 해명하기 위해서 全斗煥씨도 출석시켰고 鄭鎬溶씨 의원직 사퇴도 시켰습니다. 여러 가지 진전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美國정부가 光州사태에 대해서 정부로서 공식문서를 보내 왔습니다. 그래 가지고 광주에서의 학살 그러한 불행한 사건은 12․12를 일으킨 신군부세력들이 말은 그대로 기억을 못합니다만 의미는 그런 의미입니다. 정권욕에 의해서  다시 말하면 그 당시 신군부들이 말하던 용공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정식문서로 5․17 사태 광주민주화운동사태에 대한 특별위원장 문동환 위원 앞으로 보내온 일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상당히 이 문제에 대해서 밝혔습니다. 
  광주에 대해서 저희들이 목표한 것은 진상규명, 명예회복, 정당한 배상, 기념사업 이 4가지를 걸었는데 결국 진상은 누가 발포명령했나 그것만 몰랐지 나머지는 진상은 거의 다 밝혀져 광주의거는 광주시민들의 폭동이 아니라 광주시민들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이었고 이것을 군부가 진압하는 과정에서 저항하지 않는 국민을 살해한 것이다. 이것은 공식문서로 다 입증이 되었습니다. 저희들이 가장 중요한 문제는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했는데 그 다음에 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려고 했는데 정호용씨가 책임지고 물러나는 선에서 어느 정도 타협을 하고 나머지는 재판해서 명예회복, 배상 보상문제, 기념사업 이런 것이 되는데 기념사업은 상당히 노대통령과 저 사이에 합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갔는데 결국은 90년 1월에 3당 합당사태가 생겨 버렸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아무 것도 안되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盧泰愚 대통령이 못하겠다고 우겨 도저히 같이 싸우던 야당 다 그쪽으로 가버렸고 저희 힘만 가지고 역부족에서 나머지 알을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누구를 처벌하는 것은 바라지는 않지만 사태의 진상만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그리고 명예회복시켜야 한다, 또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기념사업은 반드시 진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따라서 정치상황의 변동으로 인해서 부득이 유보한 것이지 결코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그건 최근에도 제가 광주가서 광주시민하고 다시 한번 다짐한 것을 보더라도 제가 포기한 것이 아니고 말을 바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중간평가도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결국 우리가 마지막에 盧대통령과 협상을 해서 전두환씨가 나와서 증언하고 鄭鎬溶씨 사퇴하고 地方自治制 하기로 합의함으로써 노태우씨의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우리가 그 정도면 인정한다, 이런 입장에서 그 외에 노태우씨가 저희들이 요구한 가족법 개정이라든가 이런 것도 응하고 그때는 많은 협력이 되었습니다. 여소야대 때는 상당한 민주화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청문회도 창설되고 국정감사도 부활되고 전두환씨의 국정자문회의의장자리도 박탈해 버렸고 전두환씨 일족도 그때 감옥에 많이 가지 않았습니까? 5공 청문회 광주민주화운동청문회 해서 수십명 수백명들이 청문회에 나와서 조사도 받고 이런 일들이 과거에는 일찍이 없던 이런 일들이 상당히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농민 어민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혜택, 조합의 직선제라든가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3당 합당 전에는 그래도 비교적 민주화가 진행되고 마지막으로 국가보안법의 개폐, 안기부법 문제, 경찰정비 문제 등이 논의되어 추진되어 이것이다 추진되면 민주화가 어느 정도 되었다, 이렇게 인정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런 과정에 3당 합당되어 좌절되었고 그때부터는 아무 것도 안되고 국회에 나가면 격돌, 날치기만 있고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그 당시의 경위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상황이 그랬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 〈이광훈〉짤막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87년에 정권교체가 실패한 것은 야당단일후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을 우리가 다 아는 일입니다. 당시에 야당단일후보만 이루어 졌더라면 그때 당시 두분 야당후보의 득표가 노태우 당시 민정당 후보의 득표보다 많았던 것은 우리가 다 아는 일입니다. 
  지금 이번 우리 대선은 아까 김후보께서 말씀하셨지만 중립내각이라든가 여러 가지 여건으로 봐서 정권교체의 호기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조금 짓궂은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지금 시간이 촉박하기는 합니다만 야권단일후보라고 하면 어폐가 있고 反民自 단일후보를 위해서 국민당 鄭周永 후보와 후보단일화를 위해 협상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여쭤보고 싶습니까. 
  『과거 87년 얘기가 나왔으니 얘기하겠는데요. 저는 그때 저라도 양보를 안한 것이 지금도 굉장히 후회스럽다 하는 얘기를 여러분 국민 앞에 미안한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이 다 알고 계신 일입니다.  
  다만 그때 저는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가 독일 본에서 말하기를 그게 1986년 말입니다. 김대중씨가 사면복권이 되면 자기는 출마하지 않겠다, 김대중씨에게 양보하겠다, 돌아와서도 그 약속은 지키겠다고 또한 되풀이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면복권이 되었을 때 당내에서 들어오라고 해서 저는 당연히 들어갔습니다. 또 그것을 지키겠다고 해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들어간 후로 그것이 지켜지지가 않았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서로 여러 가지가 변명이 있겠지만 어쨌든 지켜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제는 할 수 없다, 나라도 양보해야하지 않냐 이런 것을 많이 고민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가면 다 알겠지만 그때 제 주변 환경은 굉장한 압력을 받고 또 그러한 (김영삼에 의한)약속위반에 대한 분노하는 분위기가 컸습니다. 그리고 솔직한 얘기가 저는 김영삼 총재의 그러한 태도에 실망을 했습니다. 그건 마치 3당 합당 후에 한 실망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출마를 하게 되었는데 지금 말씀과 같이 나라도 안했어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후회스럽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때 그랬더라도 반드시 부정선거를 안해가지고 쉽게 정권을 내주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 안됩니다. 지금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군부들이 그렇게 내줄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 하나만 되었던들 국민의 분노가 그 억울한 심정이 없고 분노가 그리 집중되지 않았겠느냐 할 때 그것은 분명히 저의 책임질만한 과오였다고 생각하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민자당에 대해서 反민자단일후보를 할 생각은 없냐 그러셨는데 이 점은 두가지 점에 있어서 저희 당에서 아직 논의는 안해봤지만 저는 그런 생각이 별로 필요가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노태우정권이 이제 중립내각을 만들었고 중립을 본질적으로 훼손하고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면 노정권을, 중립을 그대로 유지시킬 때 民自黨을 꼭 여당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과거 정책에서 책임은 있지만, 그 점이 있기 때문에 반민자단일전선을 우리가 필요하나 하는 생각이 있고요. 
  또 하나는 저는 정주영 대표의 국민당은 본질적으로 民自黨과 차이가 없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정당이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 동안에 정주영씨가 현대재벌을 키워온 과정에서 역대군사정권과 아주 밀착되었던 상황으로 보거나 또 정주영씨가 전경련 회장으로서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경제구조를 이렇게 왜곡시켜 빈부양극화, 중소기업과 대기업과의 격차, 지방과 지방의 격차, 도시와 농촌의 격차 이런 것을 만든 경제구조를 만드는데 적어도 대통령 다음으로는 그런 방향에 영향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저희는 본질적으로 이 두 분이 그렇게 차이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꼭 통합할 필요가 있겠냐 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에서 이것하고는 관계없지만 한마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정주영 대표가 요사이 저희들을 막 싸잡아서 비난하고 다니면서 경부고속도로 만든다고 할 때 반대한 무식한 자들이라고 이런 말을 하고 다니시는데 그 점은 그분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한 것이 아니라 경부고속도로 건설문제에 있어서의 도로건설의 우선순위를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점은 청와대에 갔을 때 노태우 대통령도 그 말씀을 했는데 정주영 대표와 똑같은 얘기를 해서 제가 노태우 대통령한테 설명을 했는데 우리는 경부고속도로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먼저 전국의 국도를 고르게 다 포장해야 합니다. 이것은 제가 고속도로 때 심술부리는 것이 아니라 71년 대통령 선거 공약에 전국의 국도포장에 대한 계획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국의 국도를 다 포장해서 자동차가 사통오달로 잘 다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높은 데서 내려 봐 가지고 어디에 하중이 너무 가는가 봐 가지고 그때 그쪽에다 고속도로를 만들게 합니다. 순서가 이것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고속도로는 전국의 국도는 4할 포장도 안됐는데 가장 포장율이 높은 경부쪽에다가 또 고속도로를 만듭니다. 그러면 모든 물동과 건설이 이쪽으로 몰려들어갑니다. 이래야 경제적이니까, 그러면 거기는 더욱 모든 것이 집중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곳과 격차가 더욱 생깁니다. 이래선 안됩니다. 그쪽을 위한 길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그런 결과 지역과 지역의 격차만 난 것이 아니라 지금 부산이나 울산이나 이런 데가 지금 공해니 교통혼잡이니 등등해서 교육, 주택, 모든 것에서 사람 살 수가 없는 지역이 되고 말지 않았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선 순위 잘못된 건설결과는 오늘날 경상도 지역도 큰 피해지역으로 만들게 되었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저는 지금도 그때 고속도로 우선 순위를 바꿔 가지고 국도포장보다도 먼저 한 것은 잘못이었다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다』  
- 〈정종문〉거국내각에 대해 말씀을 하셨는데 2년간을 정치휴전을 하시겠다 했는데 가급적이면 5년간을 정치휴전을 하시지 왜 하필… 그 근거가 있으면 말씀을 좀 해주시고 4․19이후 민주당의 연립내각인지 거국내각인지 그 성격의 차이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시험을 해본 결과 실패하고 5․16 군사 쿠데타를 자초했습니다. 
  과연 거국내각이라는 것이 정치적인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좋은 방법일까 이렇게 생각이 되고요, 세 번째는 대통령중심제하에서 거국내각이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2년간 휴전이라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중요한 것은 정국안정 속에서 경제발전의 기틀을 만들어야 하는데 경제발전의 기틀은 잘 아시는대로 물가안정이 최우선적으로 기초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3%까지 물가안정을 시키려면 제가 볼 때는 2년이 걸린다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하나의 이유고요.
  그리고 또 우리의 정치가 32년에 걸친 군사통치하에서 많은 악법들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얼른 생각하더라도 국회에서 날치기되었건 어쨌건 간에 국회에서 통과된 것 외에 유신 때라든가, 5․16 때라든가 5․16 쿠데타서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만든 법률들 그것은 전혀 국민하고 관계없이 만들었지요. 유신 때 무더기로 만들었지요. 전두환씨가 국보위에서 만들었지요. 이렇게 해서 2, 3천 개의 법률이 국민의 동의없이 멋대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문제를 우리가 처리하는데 굉장히 시간이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민주제도가 제대로 됩니다.
  또 우리가 경제가 제대로 잘 되려면 노사가 안정이 되어야 하는데 노사간에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의 상호 이해하면서 협력체제를 갖추는 데도 한 2년은 걸릴 것 아니냐, 이런 저런 경제안정, 노사간의 안정, 이런 중요한 문제들을 안정시키는데는 한 2년이 걸립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제가 요번에 미국에서 국회의원이 왔었고 미국 민주당 캠프의 중요한 분이 와서 이야기 들어 봤는데 그분들도 얘기가 클린턴이 정권잡았지만 클린턴이 정권을 파악하는데 적어도 반년이상 걸린다고 합니다. 미국같이 완전히 안정된 체제하에서 그저 인계서류만 받으면 그대로 나갈 수 있는 나라도 법 고칠 필요없고 뭐 특별히 할 필요 없는 나라도 반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물론 그쪽은 기구가 큰 면도 있지만 저희들같이 상당부분을 민주화쪽으로 바꿔가고 시장경제 쪽으로 바꿔 가는 지금 이게 시장경제 아닙니다. 사이비 시장경제고 본질적으로는 정경유착에 의한 관치경제고, 특권경제입니다. 이런 것을 바꿔가는 이런 문제 이것이 말이 쉽지 경제에 충격을 안주면서 아무리 좋은 정책도 경제에 충격을 주면 안됩니다. 충격을 안주면서 점진적으로 개혁하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가고 기업인들을 설득시키고 그들이 의욕이 나게 만들고 노동자도 설득해서 갈 수 있는 것, 솔직한 얘기가 앞으로 노사협력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기술자의 협력이 필요한데 적어도 노동자의 협력을 얻어내는데는 저희가 가장 적임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이런 모든 것을 해내려면 2년 정도의 세월이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2년이라고 한 이유는 93년부터 2년이면 95년 6월인데 그 다음에 96년 중반에는 국회의원선거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각 정당도 1년은 선거에 들어가야지 거국내각만 할 수 없는 것이고 저희들도 2년이면 안정과 발전의 기틀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년에 못하면 못하는 거고요. 그래서 그런 건 없다, 더 이상은 꼭 안해도 된다, 물론 필요하면 각 당이 합의하면 못할 것도 없다, 최소한도 2년간은 협력을 받아야겠다, 이런 입장입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말씀을 드렸고요. 
  대통령제하에서 거국내각이 있을 수 있냐, 정말 적절한 말씀인데 우리 제도가 반드시 대통령제가 아니고 헌법만 가지고 보면 오히려 내각책임제 요소가 강합니다. 첫째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지명해 가지고 국회에서 인준을 안하면 임명을 못받지 않습니까? 국무총리가 없습니다. 국무총리가 없으면 내각구성을 못합니다. 국무총리 인준받아도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제청을 안하면 임명을 못합니다. 법대로만 하면 대통령이 달싹 못하게 되어 있어요. 국회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신임할 수 있습니다. 불신임하면 그만두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극도로 얘기하면 국회가 매일 불신임하면 국무위원이 한 사람도 없는 그런 상태가 됩니다. 그런데 반면에 대통령은 국회해산권이 없습니다. 법대로만 보면 오히려 국회독재가 가능한 나라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되어 있는데 실제론 정반대로 이행이 안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아시다시피 국무회의가 부서를 안하면 국가업무가 발효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 해서 내각책임제적 요소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우리가 한다면 거국내각을 이 법 체계가지고도 훌륭히 할 수 있다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 〈최청림〉이 정부가 주택 2백만호 건설을 강행, 인력난 자제난 물가고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빚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민주당이 3백만호 건설을 내세우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답변해 주시기 바랍니다.    
  『주택 3백만호는 문제는 3백만호냐 2백만호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주택크기가 얼마나 큰 것을 3백만호라 하냐 이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몇 년 사이에 짓는다는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지난번에 2백만호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대로 우리나라에 주택건설의 32평기준입니다. 적정규모가 최대로 50만호 정도인데 그냥 2년 동안 마구 몰아붙여서 70만호 80만호 이런 식으로 짓기 때문에 한꺼번에 충격을 주어서 노임이 폭등하고 건축자재가 폭등하는 그런 졸렬한 짓을 가져온 것입니다. 
  모든 경제정책은… 아무리 좋은 경제정책도 충격을 주고 졸속하게 집행한다면 오히려 나쁜 정책의 안정적 집행보다 못하다는 말을 여러분은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점에 있어서 문제가 있다 하는 것이고 저희는 이 주택문제에 있어서 3백만호 발표를 했는데 이것은 5년에 짓는 것이고 우리 정부의 방침도 보면 32평형 중심으로 해서 앞으로 55만호를 짓는다고 했습니다. 우리 경제발전의 규모로 봐서 매년 5만호씩 늘여갈 수가 있습니다. GNP가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하물며 우리는 22평 중심의 서민주택 위주로 60만호를 짓겠다고 하니까 32평형 중심으로 한 55만호보다는 오히려 자재도 남고 돈도 남습니다. 크기가 훨씬 적으니까요. 정부가 잘못한 것은 큰 집만 중심으로 해서 중산층과 상류층만 위하고 오히려 그렇게 주택이 남아도는데 서민주택은 10만여 호나 목표에 미달했습니다. 이런 것이 안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따라서 22평형 중심으로 하면 32평형 55만호 1년에 지을 수 있는 것을 60만호 짓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래서 5년안에 지으면 그 동안의 GNP 성장율에 의해서 더 지을 수 있는 증가율을 빼더라도 3백만호는 충격을 안주고 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국민당에서 말한 아파트값 반으로 준다는 것은 그것에 대해서 의문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설사 그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32평형 이상 사람들의 중산층을 위한 것이지 서민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서민을 위해서 근로자는 7년 근무하면 무조건 80%까지 장기저리로 융자해 주겠다, 그리고 또 서민들의 주택문제 22평 혹은 17평 이런 식으로 하면 이것이야말로 저희가 반으로 지어 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토지개발공사와 각 자치단체가 토지개발에 의한 이윤을 축소시켜서 토지분양가를 하락시키고 국민주택 규모 25.7평과 그 이상의 차등 가격 이것을 풀로하면 큰집 좀 비싸게 하고 상가도 비싸게 하고 국민주택 대지값이 내려갑니다. 
  부동산투기 억제를 위해서 여러 가지 세제방침을 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종합토지세를 과세표준이라든가 세율을 현실화한다든지 아니면 양도소득세를 업무용, 비업무용을 폐지한다든지 이렇게 하면…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면 최하 1년에 5조가 들어온다… 저희들은 구조를 잡았습니다마는 이런 세금이 들어오면 서민들에게 보조하면서 땅값을 내릴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건축분야에서는 건축자재를 규격화하면 가격이 훨씬 내려갑니다. 이렇게 하고 건축의 기계화 자동화를 하면 현재의 인력보다 1/3이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오고 있습니다. 금리전체는 앞으로 인하되어 가는 추세인데 거기다 국민주택기금을 연3% 짜리를 국민주택 쪽으로 준다면 이자에서도 훨씬 내려갑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서 하면 서민주택을 현재보다는 반정도로 줄 수 있는 계산이 나옵니다. 양쪽 半이야기지만 국민당은 32평 이상의 중산층 사람들의 주택을 반으로 주는 것이고 저희들은 국민주택 서민주택을 반으로 주는 것이므로 그 이하는 상대가 그쪽하고 우리는 전혀 다르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습니다』  
- 〈최청림〉지금 방금 김대표께서 2백만호를 2년만에 몰아부쳤다고 말씀하셨는데 3년 10개월 걸렸습니다. 평균 52만호를 건설했습니다. 물론 대형이 좀 많지만요. 그런데 민주당에서 60만호를 건설하겠다는 것이 무리고 과거 우리 주택투자의 추세를 보면 한 GNP의 5%가 정상인데 10%까지 끌어올려서 문제가 생긴 것 아닙니까? 이것도 제가 계산해 보니까 10%가 넘습니다. 그것도 무리다. 이렇게 질문드리는 것입니다.    
  『저희는 그런 계산을 했는데 오해하지 마십시요. 제가 경제에 대한 글쓰는 분 중에 가장 존경하고 그분 의견을 가장 존중하는 분 중의 한 분이 우리 최국장인데 끝나고 한번 공부하겠습니다. 그때 가르쳐 주십시오』  
- 〈성병욱〉이번 대통령 도전이 삼수시고 마지막이라 당락에 상관없이 당권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金후보는 물론 당권에 참여하시지 않을 생각이라고 믿겠습니다만 상당한 국민지지가 있고 특히 호남인들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기 때문에 黨에서 다시 지도자로 추대할 공산이 전 상당히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전당원의 뜻이라고 해서 다시 추대를 해도 끝까지 단호하게 당권에 참여하지 않을 생각이신가요? 그리고 이제 벌써 세월이 흘러서 김후보께서도 이제 우리나이로 하면 70이시고 대통령이 되신다면 임기가 76까지 하는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머리가 그렇게 까만 비결이 있으신지요? 
  『당권에는 여러분이 보시면 물론 알지만 분명히 참여 안합니다. 당락간에요. 제가 항상 마음으로 유의하고 주의한 것은 늙어서 물러설 때 물러서지 않으면 굉장히 추합니다. 국민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저는 나이에 비해서 훨씬 젊어 보이고 건강도 아주 좋습니다. 좋지만 힘있으면 딴일 해야지요. 그래서 나이나 건강보다도 제가 쌓아온 걸어온 야당의 탑(top)자리에서 오는 세월이 너무도 깁니다. 제가 71년부터니까 이번까지 하면 22년이 됩니다. 이것은 어느 나라에서도 깁니다. 다만 그 동안에 15년 동안을 감옥살이하고 연금당하고 했기 때문에 실제로 보면 5, 6년밖에 안됩니다. 안되지만 어쨌거나 문제의 정치인으로서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 국내외에 부각된 것은 오래되었습니다. 
  저는 당락간에 분명히 말씀해서 누가 무슨 소리를 하건 어떤 압력을 가하건 더 이상 안합니다. 이건 분명하고요. 
  건강은 지금도 말씀드렸지만 자동차에 치어서 부상한 저는 좀 보행이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불편하고 책상다리하고 마루에 앉지 못합니다. 71년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국회의원 선거에 유세 다니는데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저를 죽이려고 교통사고를 위장해 가지고 14톤 트럭이 제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런데 운전기사가 기지를 발휘해 가지고 속력을 아주 빨리 내서 뒤에 트렁크만 쳤는데 워낙 큰 차가 들이받았으니까 저희 승용차가 공뜨듯이 떠버렸습니다. 그랬어도 또 누가 받쳐주었는지 오른쪽 논에 사뿐 내렸어요. 나중에 그 차 타고 서울에 올라왔으니까요. 그렇게 했지만 그때의 충격으로 제가 좀 고생을 했습니다. 제 바로 뒤차에서는 세 사람이 즉사했습니다. 부딪쳐 가지고. 그 차는 그때 공화당 전국구 8번을 받은 사람의 차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는데 그것 빼놓고는 건강은 아주 이상이 없습니다. 머리만 왜 하얗냐 머리가 왜 까맣냐? 제가 미국 가서 돌아다니는데 한 100여 군데 연설하고 다녔습니다. 거기서 다니면 거의 빠지지 않고 묻는 말이 당신은 나이도 먹고 고생도 그렇게 했다던데 왜 그렇게 젊으냐? 그러던데 당신들은 밖에서 정상적으로 살았으니까 정상적으로 늙을 책임이 있지만 나는 안에서 인생이 중단되었으니 늙는 것도 중단되어야 할 거 아니냐 그렇게 말했는데 그렇게 답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이성춘〉구총무께서 갈 길이 멀다고 그래가지고… 40개 준비했는데 5개도 못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가지만 짤막하게 여쭤보겠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가부간에 답변만 해주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거두절미해서 6공화국 들어서서 평민당 민주당까지 재벌기업들한테 어느 정도 정치자금을 도움 받았다고 생각하시느냐? 그 중에 現代그룹한테도 받은 적이 있는지 없는지 얘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현재 김후보께서 들어온 정치자금을 당에서 제도적으로 관리하느냐 가족이 관리하느냐?  
  세 번째는 우리나라 대통령 친인척 문제는 여러 가지 국민들의 관심이 많고 때로는 걱정거리가 되고 있는데 앞으로 당선되신 후에 어떤 식으로 관리하실 생각이신지?  
  『재벌기업으로부터 돈을 조금씩 얻어 씁니다. 얻어 쓰지만 큰 액수는 아닙니다. 다만 인격을 걸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단돈 얼마도 어떤 조건이 있는 돈은 받지를 않습니다. 이번 선거때도 온 일이 있지만 안받았습니다. 이점은 참 유의해서 하고 있다는 거 그렇기 때문에  제가 앞으로 정권잡아서 어느 재벌한테든지 묶여 가지고 할 일을 못하는 일은 없습니다 라는 것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당에 전부 들어온 정치자금이 중앙선관위에서 한 5, 60억 그런데 선관위에서 정해준 사용한도액은 367억입니다. 우리는 도저히 그런 돈은 쓸 수 없고요, 선거가 끝나면 공개하겠습니다. 왜 지금 못하냐면 선거전략에 관계가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전투하는데 상대방 부대가 탄약이 얼마 있고 무기가 얼마 있는지 알면 전쟁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좀 어렵고요 끝나면 지난번 광역선거 때 같이 공정하니 선관위에 보고하고 여러분께도 다 공개하겠습니다. 며칠만 참아 주세요. 당으로 들어온 것은 당에서 쓰고 제게 들어온 것은 제가 당으로 이관합니다. 여기에 당에서 받아 가는 우리 총무위원장 이경재 위원이 저기 앉아 있으니까 제가 거짓말 할 수도 없습니다. 당으로 넘겨주고 이렇게 해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친인척인데 사실 좀 유명한 사람의 친인척은 참 불쌍합니다. 뭐 하려고 하면 못하게되고 그리고 구설수에는 오르고 오죽 당했으면 우리가 중국성에 가서 회의까지 하겠습니까? 그날 중국성 주인이 나보고 저도 피해잔데 저보고 이거 좀 해달라고 5년 동안에 얼마를 손해봤다고 얘기하는 것까지 들었는데 그런 점에 있어서 그런데 공인으로서 받아야 하는 제약이라고 생각하고 저희는 이번에도 저희자식들 재산까지 다 공개했는데 앞으로 대통령이 되면 자식뿐 아니라 형제의 재산까지도 그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공개를 하고 이렇게 해서 정말 무소유가 되겠습니다. 이번에 영등포의 땅과 경기도 수원의 땅은 장애인을 위해 내놓았고요 저희 집 현재 살고 있는 것도 가족회의에서 이미 결정이 났습니다. 저희가 살다가 안살게 될 때는 이것은 어떠한 것에 주겠다. 그런데 저희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문화인들을 위해서 주었으면 좋겠다. 맨손으로 왔으니까 맨손으로 가겠습니다.      
  최근에 어떤 노래「사랑이 뭐길래」에서 김혜자씨가 좋아하는 노래 ‘네가 나를 모르는데 내가 난들 알겠느냐’ 하는 그 노래를 보면 알몸으로 왔다가 옷 한벌 입고 가니까 그만큼 이익 아니냐는 의미의 말이 있던데 정말 기가 막힌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무소유 되겠고 대통령하고 나왔는데 나라에서 밥 안먹여 주겠습니까? 무슨 걱정입니까? 그래서 절대로 여러분한테 제가 대통령이 돼서 좋은 정치할지 못할지 그것은 제 능력이 미지수고 여러분은 봐야 알지만 부정한 일만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 그리고 성심성의를 다해서 이 나라의 나아갈 길 즉 민주주의, 시장경제, 정의사회, 평화적이고 민주적이고 점진적인 조국통일 이런 큰 목표를 향해서 후일에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만족과 자랑을 주는 그런 대통령이 되겠고 만일 못되었을 때에는 일개 정치인으로서 이제는 전력을 다해서 후진을 양성하고 그분이 좋은 인재로 커나가는데 도움을 주겠다….
  그 일차의 대표가 이기택 대표최고위원입니다. 그래서 저하고 이기택 대표하고는 완전히 혼연일체가 되어서 선거전을 하고 있고 우리 당은 이상할 정도로 이렇게 될 수 있나 할 정도로 기적일 정도로 융합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잘 저를 도와준 분들에 대해서 김정길 최고위원, 노무현 최고위원은 저 때문에 낙선한 분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15대 떨어져도 좋으니까 정권교체하겠다고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이런 분들의 하늘보다 높고 태산보다 높은 은혜를 갚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락간에 당권에는 절대 손 안대고 당에서 후진양성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오늘 여기서 여러분께서 이런 좋은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제가 질문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의견 말씀을 드려서 여러분의 검증을 받게 해 주신데 대해서 다시 한번 구월환 총무와 모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 〈司會〉참석자 질문이 몇 가지 남아 있습니다. 질문자와의 질의응답으로 시간이 다 갔는데요. 참석자 질문은 시간이 좀 걸리는 질문이 좀 들어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소개를 드린다면 북한에서 김일성이가 사망을 하거나 북한에서 쿠데타가 일어날 경우, 민중봉기가 일어날 경우 한국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질문이 있고요. 통일문제와 관련된 질문인데요. 공화국연방제를 주장하시다가 최근에는 슬그머니 공화국연합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됐습니까? 또 김일성 집단과의 연방제가 가능하다고 보시는지요? 또 이런 질문도 들어와 있습니다.  
  『그럼 통일 문제는 중요한 문제고 하니까 제가 답변을 하겠습니다. 지금 저희는 원칙적으로 단계적 통일을 바라고 있습니까. 여러분도 아시는 대로 독일도 단계적 통일이 목표였습니다. 아니 독일은 단계적 통일조차도 요원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4대국의 견제가 있고 그랬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브란덴부르크에 수십만 노동자들이 모여 가지고 통일하겠냐 안하겠냐 안하면 지금 이대로 서독으로 밀고 들어가겠다. 왜 2차 대전은 다같이 일으켜 놓고 우리만 이렇게 벌을 받아야 하냐, 이렇게 나왔습니다. 제가 빌리 브란트 수상한테도 듣고 대통령한테도 들었는데 할 수 없이 통일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래선 안되겠다,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 그분들이 20년래 말한 3단계 통일방안을 굉장히 격려하면서 꼭 그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질문한 것과 같이 우리는 단계적 통일을 바라지만 북한이 어떤 비상사태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대비해야 합니다. 대비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우리는 흡수통일론 같은 거 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북한을 자극해 가지고 남북관계를 험악하게 만들고 북한내의 군사모험세력들에게 구실을 줍니다. 절대로 해서는 안됩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들은 단계적 통일을 착실히 생각하면서 북한의 만일의 사태가 났을 때 대비해야 하는데 그 대비하는 것은 남한이 서독과 같이 튼튼한 민주기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서독과 같이 민주기지를 만들려면 철저히 민주주의를 해 가지고 자유 번영 복지가 넘치는 나라를 만들어서 먼저 4300만 우리 국민을 튼튼히 단결시켜야 합니다. 단결시킨 힘 가지고 북한문제를 다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상태같으면 풀어놨을 때 그런 사태가 생겼을 때 저쪽 혼란이 아니라 이쪽 혼란이 문제인지도 모릅니다. 빨리 민주정부를 세워 가지고 국민적 단합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말하자면 하나로 민주주의하면 부산에서 피난 때도 아까도 말했지만 국가보안법도 없고 안기부도 없지만 국민이 단합해서 그렇게 했지 않습니까? 빨리 민주주의를 하고 자유경제를 하고 복지사회를 해서 국민이 공산당 하라고 해도 안하는 그런 사회를 빨리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사태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러면 힘은 들지만 극복해 나갈 수 있다, 그렇게 우리 내부의 대화합을 이루어 가지 못하면 저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문제가 됩니다. 일대 혼란으로 들어갈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그렇게 우리 장래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합니다. 
  연방제 통일안 이거는요 슬그머니 들어간 것이 아니고요, 설명하면서 들어갔습니다. 전문가 여기 조승순 의원이 계셔서 자문도 받고 했는데요. 연방제라고 표시를 해 놓은 것이 우리가 말하는 공화국이 현재의 권한 그대로 가지면서 동수의 대표 내가지고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 이런 문제만 취급하는 것으로는 연방이 좀 과하지 않냐 이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방도 여러 가지입니다. 미국도 연방이고 영국같은 거는 영연방이란 것은 연합도 못되는 것인데 연방이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일정한 언어가 딱 규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알기에는 연방이라면 상당히 미국연방을 생각하니까 그것은 아닌데 그것은 안썼으면 좋겠다. 
  그리고 솔직한 얘기가 오해도 겹쳤어요. 북한이 연방쓰니까 동조한다. 굳이 오해받을 이름을 필요도 없는데 쓸 필요가 없지 않냐 그래서 연합으로 바꾸면서 그 이유를 설명을 했습니다. 이것은 알기 쉽게 말하면 일종의 국가연합인데 같은 민족이니까 국가라고 할 수 없고 대신 공화국연합, 독립정부연합입니다. 이 다음 2단계에 가면 연방이란 말을 쓰겠습니다. 1 연방 2 자치정부 그럼 현재 미국같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북한의 연방제도 그때 가서 논의할 성격이 됩니다. 그런데 그때는 저희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있지 않는 것이니까 여러분들이 맡은 그 시대의 문제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참고로 말하면 마지막 단계는 1민족 1국가 1정부 이런 방향으로 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