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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김대중 월간조선 인터뷰
최근 수정 : 2018년 12월 8일 (토) 04:14

김대중의 월간조선 인터뷰

김대중은 1996년 4월 11일에 실시된 15대 총선을 앞두고 월간조선과 인터뷰를 했다. 여기서 김대중은 자신의 도덕적 우위를 강력히 주장했다.


  - 그 연세에 건강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보다 건강한 사람도 많은데… 마음의 평화…, 난 인생의 밝은 면만 보려고 하지요. 대통령에 떨어졌지만, 후보도 못 되어본 사람도 있다, 3등으로 낙선한 것보다 2등으로 낙선한 게 낮다. 수많은 정치지망이 국회의원 한번 못해본 경우도 많은데 난 국회의원도 했다. 이런 식이지요. 최선을 다하다가 안되면 깨끗이 단념합니다. 그래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없지요. 한번은 내가 살아오면서 축복받은 일과 불행한 일을 나눠 써 내려간 적이 있었어요. 축복받은 일이 훨씬 더 많아요. 사람은 어머니 배 속에서 벌거벗고 나와서 한평생 버둥거리다가 죽는데, 지금은 옷 한벌 해 입고 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사는 게 제일 남는 거요. 몇 번 죽으려다가 살아났으니까 그것도 축복이고…. 많잖아요』

  - 연세가 들수록 생각이 깊어집니까, 아니면 판단 능력이 저하됩니까. 

『깊어지지요.「내가 이런 것도 모르고 여태껏 살았구나」라는 경우가 많죠. 나이 들수록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고…. 지금도 어려운 책을 보면서 사색했으면 하고 원해요. 그리고 강단에도 서고 싶고…』

  - 원한다면 그렇게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93년인가 내가 어느 저명한 대학에 석좌 교수로 권유받았고, 또 어느 대학에서 총장 제의도 있었지만 거절했어요. 내가 그 대학에 폐가 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지요』

  - 정치에 남아 있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뜻입니까.

『아니, 한국의 정치 여건에 그 대학이 나를 우대해줄 때 여러 가지 불이익을 볼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거지요』

  - 최근 김영삼 대통령과의 기세 싸움에서 밀리는 듯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그 분이 힘이 더 있으니까 내가 밀리는 것처럼 보이겠죠. 김대통령과 밀고 밀리는 데 관심이 없어요. 문제는 밀었느냐, 밀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누가 더 자기의 인생을 잘 잡았느냐가 중요하지요. 가령 전두환 같은 사람은 미는 데 가장 성공한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 이번 총선에서 국민회의 예상 의석수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1백석을 넘겨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될 것 같아요』

  - 제 1당의 가능성은. 

『제 1당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1백석 이상 하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견제 세력으로 등장할 수 있거든요. 여당 맘대로 헌법을 못 고치게 막는 한편, 임시국회나 국정조사, 탄핵소추를 할 수 있어요』

  - 한 언론인은「그의 지시하나로 거대정당을 만들 수 있는 힘은 카리스마적인 힘이다. 그러나 그 카리스마는 독재주의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는데, 김총재께서는 물론 수긍하지 않겠지요.  

『케네디도 루스벨트도 네루도 카리스마가 있었고 세종대왕도 카리스마가 있었어요. 하지만 이분들은 독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한 인물의 인생 역정에서 비롯된 영향력을 밑에서 지지함으로써 카리스마가 생기는 겁니다. 카리스마는 있을수록 좋은 거요. 가정에서 아버지가 카리스마가 없으면 온전한 가정이 되겠습니까. 다만 카리스마로 자기 뜻만 강요하고 지시하겠다는 권위주의는 나쁜 거요』

  - 김총재께서는 黨 운영에서 독선적이라고 하던데요. 

『그런 선입견을 갖고 우리 당에 와 보면 놀라요. 자유롭게 토론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내 의견이 통하는 게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여러 의견을 충분히 모은 뒤 깊이 생각해서 내 견해를 밝히니까 그래요. 신한국당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대통령의 권한이 있는데도 당내가 저렇게 삐걱거리는데, 내가 권위 하나로 독재할 수 있단 말이오?』

  - 박지원 대변인의 논평도 김총재의 口述을 그대로 받아 옮긴다고 들었습니다.

『그 대목에서는 말 안하겠는데, 대변인의 말은 총재가 책임져야지요』

  - 호남지역에서는 국민회의의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듭니까.  

『호남은 63년부터 88년까지 25년간 여당에 표를 줬어요. 그런데도 계속 호남을 차별하니 이렇게 된 거요. 왜 호남 싹쓸이만 이야기하지, 영남에서 우리에게 한 석도 안 주는 것은 지적하지 않습니까. 지역 감정을 말하는데, 지역 감정도 차별하는 지역 감정이 있고 차별을 거부하는 지역 감정이 있어요. 호남인들은 차별에 반대하는 지역 감정을 갖고 있습니다』

  - 김총재께서는 지역 감정 때문에 스스로 손해보고 있다고 봅니까.  

『나는 지역 차별에 결코 승복하지 않아요. 흑인이 백인의 차별에 싸우고, 우리가 일제의 차별에 맞서 싸운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호남이건 충청이건 강원도이건 자기를 차별한다고 생각하면 싸우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 문제는 득을 보고 손해를 보는 차원이 아니라 원칙의 문제입니다. 차별이라는 건 인간을 소외시키고 국론을 분열시켜요』

  - 우리나라에서는 호남 지역이 특히 소외를 받고 있다고 보는 거지요.   

『당연한 이야기를…. 지방 발전과 인재 등용, 문화 공간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봅니다』

  - 그러면 혜택과 우대를 받고 있는 지역은 어디입니까.   

『지역보다도, 흔히 말하는 TK… 대구 경북지역, 부산 경남지역이지요. 이 곳에서 소박한 애향심을 악용한 특권층이 혜택 보는 것이지요. 그 지역의 일반 주민들이 혜택보는 건 아닙니다. 농민은 영남 농민이나 호남 농민이나 똑같이 못 삽니다. 영남 중소기업이나 호남 중소기업이나 똑같고…. 대구가 6대 도시 중에 국민 소득이 최하입니다. 기업 도산율, 어음 부도율이 최고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이 기본적으로 대기업이나 특권층을 위한 정치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소기업이 넘어가지 않습니까』

  - 지금 말씀대로라면 호남 지역만 소외받았다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인재 등용으로 들어가면, 군인이나 공무원은 계급이 생명 아닙니까. 거기서 차별이 있는 겁니다. 가령 호남 출신으로 육군참모총장이 나왔습니까. 검찰총장, 국세청장을 봤습니까』

  - 그런 식의 논리라면 대통령을 배출하지 못한 다른 지역에서도 다 할 말이 있지 않을까요.  

『호남이 제일 심하게 당하고 나머지도 얼마간 차별을 당하고 있어요. (언성을 높이며) 누구도 차별해서 안되고 차별해도 안 돼요』

  - 이번 총선에서 국민회의는 수도권 지역의 득표에 기대를 많이 거는데, 수도권에서 김총재의 역할은 어느 정도 있다고 봅니까. 

『아무래도 역할을 상당히 하겠지요. 처음부터 나를 지지해온 고정표도 있으니까. 정치적으로 나를 좋아하는 국민도 있고. 내가 지원유세를 다니면 표를 보태줄 겁니다. 그 다음에 자기(국회의원 후보)들이 표를 가져와야 되겠지요』

  - 정계은퇴를 번복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느낍니까. 

『그 점은 모르겠어요.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고,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요. 긍정적으로 본 사람이 있으니까 우리가 제 1야당이 된 것이지요. 우리가 나온 이후로 김영삼 대통령측에서「김대중 죽이기」라는 말이 안올 정도로 몰아붙이지 않았어요. 그건 전화위복이 됐어요. 정계 복귀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사람들도「진짜 야당이니까 저렇게 당하는구나」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 지역 감정을 떠나서라도, 김총재는 신의가 없기 때문에 세간에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조작한 면도 많습니다. 내가 신의 없었던 것을 구체적으로 대보세요』

  - 87년 대선에서도 출마 않겠다고 하다가 번복했지 않았던가요.    

『87년 대선에서 불출마 선언을 한 적이 없어요. 金永三 대통령은 당시 독일 본에서「내가 사면복권 되면 양보한다」고 기자들에게 말했어요. 그런데 내가 사면복권 되니까 양보 안했어요. 신의가 없기는 그쪽입니다. 여러분들(언론)이 자꾸 나에게만 그러니까, 그쪽은 잊어버리는 거에요. 정계은퇴 했다가 돌아온 걸 거짓말 했다고 하는데…, 그건 입장의 변화지, 결코 배신은 아닙니다. 닉슨도 드골도 정계를 떠났다가 돌아왔고, 김영삼 대통령도 정계은퇴 선언(1980년)을 했다가 돌아왔지 않습니까. 왜 나에게만 그러느냐, 불공정하다는 겁니다! 김영삼씨는 괜찮고!』

 - 국민들은 왜 YS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었을까요.

『답변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그 이유에 대한 느낌은 있지만 그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어요. 어쨌든 불공정한 것은 사실 아닙니까』

 - 그러면 국민들이 왜 金총재에 대해서만 소위 불공정하게 대한다고 생각합니까. 

『나를 말살시키려는 공작정치가 그렇게 만들어왔어요. 보세요, 6․25 때 공산당에 잡혀 사형 당하기 직전에 탈출한 사람을 容共으로 몰아붙이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 대선때 김영삼 대통령이 사상 문제로 나를 얼마나 부도덕하게 대했습니까. 안기부와 짜고,「북한에서 나를 지지하라는 방송을 했다」고 허위로 퍼뜨렸지 않습니까, 선거의 당락을 좌우했어요. 공산당까지 이용해 政敵을 때려잡는, 이런 부도덕한 행위에 대해서는 잘 잊어버리느냐는 것입니다』

 - 이왕 말씀나온 김에, 미국의 교포 신문「워싱턴 투데이」와 일본의 주간지「세이까이(世界)」에서 당시 김총재가 공산당 활동가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이 내용에 대해 보고받았겠지요.

『보고받았어요』

 [이 보도에 따르면 김대중은 공산당 세력으로 체포되어서 미 해군에 총살당하기 직전 미국정보부에서 일하던 고향 친구 金鎭夏 씨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 한다]
 - 공산당에 잡혀 곤혹을 치렀다는 김총재의 주장과 상반됩니다.

『6․25 때 난 서울에 있었어요. 大田 이남은 유엔군이 지킨다는 라디오 방송을 듣고, 난 서울 천안 장항을 거쳐 목포로 내려갔어요. 목포는 이미 공산당에 점령된 상태였어요. 난 6․25 직전 목포에서 우익단체인 대한청년단 해상단원이었으므로, 이틀만에 공산당에 잡혀 들어갔습니다. 그러다가 9․28 서울 수복이 되니까 포로 2백20명 중 1백40명을 배에 실어다가 학살해 버렸어요. 나머지 80명은 탈옥해 살아왔어요. 그 기록이 목포 경찰서에 전부 있어요. 내 사상 문제는 5․16 때 이미 스크린됐고, 80년 때도 스크린 당했어요. 그런 이야기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조작이오』

 - 金鎭夏 씨가 왜 그런 증언을 했을까요.

『그 사람이 내게 아무런 원한이 없는데 그런 이야기를 했으리라고는 보지 않아요. 잡지에 글을 쓴 사람이 문제가 많을 거요』

 - 새로 일산에 지은 주택에 대해「돈 버는 직업도 가진 적이 없는데, 어떻게 해서 호화주택을 지을 수 있는가」라는 등 말이 많지요.

『난 일일이 계산서 내놓고 사는 사람이 아니니까, 그 얘기는 할 게 없고…, 일산에 한번 와보세요. 와본 사람들은「왜 이리 집이 작으냐」고 그래요. 일산으로 간 것은 정계은퇴하고 공기 맑고 땅값 싼 데서 조용히 살려고 했던 겁니다』

 - 92년 대선 직전 盧泰愚 대통령으로부터 20억 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김총재의 이미지에 또 하나 오점을 남겼습니다.「위로 명목이고 어떠한 조건도 없었기 때문에 받았다」고 하셨지요.

『예』

 - 지금껏 살아오면서 20억 원이라는 거액을 조건없이 주는 경우가 있었습니까. 

『…盧泰愚씨가 비서관을 통해 돈을 돌렸는데, 비서관은「당신만 주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줬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중립내각을 했으니까, 20억 원이 부정한 돈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20억 원 정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보았어요. 그리고 당시 용공 조작, 지역 감정에 시달려 막판 선거가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盧泰愚씨의 돈을 거절해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고 판단해 받았던 겁니다. 하지만 그 돈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한 월간지와 인터뷰했을 때, 반쯤 시인했습니다. 盧泰愚씨가 구속될 때 지체 없이 그 사실을 밝혔습니다. (언성을 높이며) 받은 것을 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매도당하고, 안 받았다고 거짓말하는 사람은 묵과하고! 2천억, 3천억 받은 사람은 문제삼지 않고! 이렇게 불공정할 수 있습니까 』

 - 누구로부터 받았냐는 것도 중요합니다. 盧泰愚 대통령은 김총재가 주도적으로 제기해온 광주 문제와 관련돼 있지 않습니까.

『지금 따지니까 그렇지요. 당시 정치적 분위기는 盧泰愚씨를 합법적인 대통령으로 받아들이고, 여야가 회담하고 (5共 청산을)합의했기 때문에 그렇게… 또 하나는 그걸 받았다고 해서 다지는 걸 못 따지지는 않잖아요. 광주 문제에서 우리가 가장 적극적으로 이야기했지 않습니까』

 - 김총재께서는 기자들이 촌지 받고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점에 대해 어떻게 봅니까.

『답변할 수 없어요. 계속 어려운 질문만 하는군요』

 - 북경에서 돈받은 사실을 밝힘으로써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됐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남들은 안밝혔는데 나만 괜히 밝혔다」는 후회가 없습니까.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안밝혔으면 거울 속에 비친 내 자신을 볼 수 없을 거에요. 국민들이 그걸 이해 못하고 비난하면, 받아들입니다. 정치인이든 누구든 과오를 범할 수 있습니다. 명예가 떨어지고 비난이 오는 걸 무릅쓰고 과오를 밝혔으면, 인정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 이 문제 때문에 심적으로 위축되고 있나요.

『처음에는 좀 위축됐지만…, 내가 대통령 되려고 몸살 앓는 사람으로 보면 안돼요. 연말까지 국민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지 안하는지 보고 결정할 겁니다. 필요로 하지 않으면 그만이고요』

 - 여론 청취를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들으니 늘 좋은 쪽으로만 듣게 되지 않습니까.

『난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웃음). 우리 당이 제 1당은 몰라도 제 2당은 틀림없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대통령 후보감으로서 내가 리스트에 오르고 있으니, 아직도 지지하는 기반이 있는 겁니다. 하지만 과반수 의석은 얻지 못하고, 대통령 후보감으로 지지한다 해도 그 지지율이 높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걸 알고 있어요. 어떻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겠어요』

 - 김총재께서는 자신의 진면목이 세인들에게 잘못 알려져 왔다고 봅니까.

『언론매체가 공정보도를 안 해주고, 특히 텔레비전은 기회를 안 줘요. 보시오, 내가 언제 텔레비전에 나간 적 있습니까. 텔레비전에 나가 내 억울한 이야기를 한번이라도 했습니까. 서울시장 선거 때는 텔레비전 토론을 네번 다섯번이나 했는데, 92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한번도 못했어요. 어떻게 나를 국민에게 해명할 수 있습니까. 나에 대해 변화된 보도가 없으니, 공작정치에 의해 만들어진 내 이미지가 그대로 갈 수밖에요』

 - 언론으로부터 손해를 많이 받았다는 뜻입니까.

『많이 받았지요』

 - 언론계에서 김총재의 입장을 지지하는 기자의 수가 현직 대통령인 YS를 지지하는 숫자만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나에 대해 좋은 기사가 안 나가고… 텔레비전에도 못 나가잖아요』

 - 오히려 기자들이 알아서 김총재에 대해서는 좋게 써주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요. 강준만 교수가「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을 썼지 않습니까. 나에 대해 잘 서주었다면, 그 분이 특정언론의 이름까지 들먹이면서「김대중 죽이기」를 썼겠어요』

 - 김총재께서는 全․盧 전직 대통령 등 5․18 관련자 처벌에 대해「사람은 처벌하지 않는게 좋겠다」했다가,「전원을 엄중처단해 역사를 바로잡자」고 입장이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도가 정확히 안돼 그렇습니다. 진실은 밝혀야지요. 다만 본인들이 반성하면 관대하자는 겁니다. 그런데 전두환씨가 연희동 골목에서「김대중이가 학생 선동해서 그렇다」는 식으로 엉뚱한 소리를 했어요. 그런 반성없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용서하라는 소리를 합니까. 나는 5․18 검찰 수사에 대해 무척 불만입니다. 피고발자 85명 중 12명밖에 기소 안 됐어요. 광주에서 누가 발포하라고 명령했나? 현장에서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도 밝히지 못했어요. 명령받았다고 무고한 국민을 죽인 것은 죄가 안됩니까. 명령이라고 해서 사람 죽이고 민간인 재산을 약탈하는 게 허용됩니까. 또 이번 조사를 보면「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한 줄도 없어요』

 - 차기에 정권을 잡으면 광주 문제를 다시 원점에서 다룰 계획이 있습니까.  

『차기 정권까지 갈 것도 없이, 이번 국회가 열리면 진상을 밝히라고 문제 제기를 할 겁니다』

 - 컴퓨터를 다룰 줄 압니까. 

『배우려고 했는데 못 배웠어요』

 - 87년 대선 끝난 뒤 김총재가 이끈 평민당은「컴퓨터 부정설」을 제기했지요. 

『지금도 믿고 있고…, 근거도 있어요. 당시 외국기자가 컴퓨터 부정을 조사해 책을 냈어요』

 - 월간조선이 취재한 바로는 당시 개표 및 집계 과정에서 중앙선관위는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컴퓨터가 사용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컴퓨터 조작이 있을 수 있지요. 

『南宮鎭 의원한테 물어보십시오. 그가 전부 다 알고 있어요. 분명히 컴퓨터 부정을 했어요. 증거가 다 있어요. 당시 조셉 맹구노라는 미국기자가 그 증거를 입수해 자신의 아파트에 두었는데, 누군가가 몰래 들어와 훔쳐 갔답니다. 다행히 이 사람이 복사본을 남겨 두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미국 가서「월스트리트 저널」에 기사를 내려고 했으나,「월스트리트 저널」이 한국의 영향을 받아 못 냈다는 겁니다. 그래서 책으로 출간했어요. 천주교 신도들도 그런 자료를 냈어요. (기자의 표정을 살피더니) 언젠가는 진실이 나올 날이 있으니까』

 - 자신의 매력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웃음)잘 모르겠는데요. 그건 남들이 해줘야 할 이야기지』

 - 김총재께서는 스스로『나는 눈물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정말 눈물이 많습니까. 

『눈물도 많고 마음이 약해요. 난 비극 영화를 못 봐요. 영화를 보다가 주인공이 불행에 빠지는 장면을 보면 중간에 꺼버려요. 어렸을 때부터 나는 강한 성격이 못됐어요. 다만 정치에 들어와서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니까, 한편으로 무섭고 두려우면서도 그렇게 했는데, 남 보기에는 강하고 용감하게 비쳤어요. 원래 온건함이 기본 성격입니다』

 -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도 눈물이 납니까.

『그런 때보다는… 시집가서 혼수 적게 해왔다고 두들겨 맞고는 투신자살한 기사를 보면 눈물이 나요. 중소기업 사장이 부도로 자살했다는 기사를 보고도 눈물을 흘렸어요. 내가 젊은 날 사업을 하다가 돈에 쪼들린 기억이 나거든요』

 - 김총재께서는 중앙 일간지를 모두 봅니까. 

『다 보지요. 모두 보긴 보는데…』

 - 출입기자들 사이에 꼼꼼하게 본다고 소문났더군요. 

『꼼꼼하게 보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요』

 - 언론에 대해 너무 잔 신경을 많이 쓴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언론 때문에 자꾸 피해를 보고 있는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습니까』

 - 비록 자신의 뜻과는 맞지 않지만 언론에서 예상 보도하는 대로 움직일 때도 있지 있습니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고…』

 - 예를 들어 언론에서 김총재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게 좋을 듯 하다고 보도되면, 그 보도대로 따라갑니까. 

『나도 생각지 않고 있는데,「김총재가 이렇게 할 것」이라는 해설 기사가 난 것을 보면, 그대로 따르기도 해요. 신문기사는 참고가 돼요』

 - 늘 기자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습니까. 기자들에 대해 어떻게 평가합니까. 

『좋아요. 좋아한다구요』

  - 好不好를 질문 드린 게 아니라 평가를 해 주십시오. 

『말이 통하거든요. 현실감각이 있으니까 말이 통해요. 다만 언론 환경이 자기 뜻대로 안되는 경우가 있어, 안타깝게 생각해요. 개중에는 저 사람이 저래서는 안되는데라고 할 만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언론인 개인에 대한 악감은 없어요』

  - 「저래서는 안되는」사람 속에는 김총재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기자가 들어갑니까. 

『비판적인 것보다도 사물을 올바른 시각으로 보지 않고 어떤 목적에 맞춰서 쓰려는 기자가 있어요. 그러면 결국 내게 불이익도 오는 것이고…』

  - 현대사의 두 거인이라고 할 수 있는 우남 이승만과 백범 김구 중 어느 쪽에 더 호감을 느끼고 있습니까.  

『인간적인 면에서는 白凡을 존경하고, 雩南은 존경 안 해요. 하지만 정치인으로서는 우남이 백범보다 훨씬 더 현실을 요리하는 능력이 앞섰다고 봐요. 백범은 정치인으로는 실패한 대신, 민족의 스승으로는 성공했지요. 그러나 4․19로 끝까지 성공하지는 못했어요』

  - 정치인인 김총재는 우남 쪽을 따르겠다는 겁니까.  

『안 따르죠. 그 분은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을 잘못했어요. 정권을 잡으려고 친일파를 등용하고 그 세력에 의존했어요. 그래서 우리 민족의 정기가 깨진 거요. 친일파들은 과거 죄악을 합리화하기 위해 反共으로 무장했어요. 친일파가 반공 義人이 되어 버린 거요. 나는 아무리 대통령이 못 돼도 그런 방식은 안 취합니다』

  - 유사한 비유가 될지 모르지만, 김총재께서는 혹 정권을 잡게 되면 쿠데타 정권인 5共에 동조한 세력들은 등용하지 않을 것입니까. 

『국민에게 용납될 수 없는 큰 과오가 있는 사람은 물론 안되지요. 그러나 추종했던 사람으로서 과거를 청산하고 국민에게 용납되는 사람은 배척할 수 없지요. 그것이 진정한 화해정신이에요』

  - 차기에 기회가 닿더라도, 김총재의 건강이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이 없지 않습니다.

『정치인이 최고 격무를 할 때가 선거철입니다. 나도 건강에 대해 걱정했는데 해보니까 아직 불편한 게 없어요』

  - 정치 입문이래 4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행장을 꾸리고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듭니까. 

『그래서 나갔지 않습니까. 김영삼 대통령은 아태재단 운영하는 것조차 방해하고, 이기택씨는 내가 총재를 시켜주었는데도 충고도 안 받아들이고 야당을 망치고 있어 돌아온 겁니다』

  - 정계 은퇴를 지켰더라면 김총재께서는 명예를 얻었을 텐 데요. 

『그 문제를 생각했어요. 정계 은퇴를 번복하면 현실적으로 명예에 손실이 있지요. 하지만 진정한 良心이란 설사 비판과 오해를 받더라도「내가 이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면 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용기 양심이지요』

  - 국민들로부터 이미 세 번이나 테스트를 받았는데, 아직도 더 테스트 받을 게 남아 있다고 봅니까. 

『난 한번도 공정하게 테스트를 받아 본적이 없습니다. 언제나 부정선거, 언제나 언론의 편파보도에 시달려 왔습니다. 이제 지자제가 시작됐으므로 관권선거가 어렵게 됐고 그리고 여론도 달라지기 시작했으니 한번 해볼 만하지만…, 그러나 국민들이「이미 세 번이나 테스트를 받았는데 또 하느냐」면 못 나가는 거지요. 대신 국민들이「안됐다, 우리가 판단을 잘못한 것이니까 한번 더 기회를 줘야겠다, 그만한 사람이 더 없지 않느냐」고 생각하면 해볼 수 있는 것이고…』

  - 3김 청산이나 세대교체론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입니까. 

『김영삼씨와 함께「40대 기수론」을 주창했을 때, 대통령 경선에 우리를 끼어달라고 했지, 그 선배들에게 물러나라고 한 적은 없어요. 그런 식은 꿈도 안 꿨어요. 나이나 어떤 조건을 붙여 강제적으로 물러나라고 한 것은 5․16 당시 박정희나 김종필씨가 한 것입니다. 그전에는 세대교체라는 말도 없었어요. 세대교체는 국민의 손에 의해 되는 겁니다. 세대교체를 떠들어대도 지자제 선거를 보면 그 사람들 영향아래 선거가 이뤄지지 않았습니까. 국민들이 그 사람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무조건 물러나라는 주장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지요』

  - 유권자의 연령층으로 보면 중년층에서 김총재에 대한 지지율이 낮거나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봅니까.  

『유신 이후 조작된 제 이미지로 피해를 본 것입니다. 그걸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처럼 처참하게 당하고도 이 정도로 유지한 건 대단한 겁니다. 그 속에서 20년, 30년 이상 버텨왔어요. 언론매체뿐 아니라 향토예비군 훈련장, 관공서 회의, 대기업체 강연회 등에서「김대중은 빨갱이고 거짓말쟁이고 돈에 대해 욕심이 많고 이러쿵 저러쿵」하는데 과연 견뎌낼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나는 아직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고 있으니 기적입니다』

  - 지금까지 그처럼 버텨올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힘들었지요…그러나 성공은 못했잖아요』

  - 버텼지만 성공은 못 하셨다구요?

『대통령은 못 돼보았잖아요! 억울하게 여기거나 슬퍼하진 않아요. 그런 가운데서도 제 소신껏 살아올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억울한 일도 많고…. 나는 우리 국민을 사랑해서 하나밖에 없는 내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내가 사랑하는 국민들로부터 오해에 의해 배척받고, 어디 가서 변명할 기회도 못 얻고, 살아온 것이 억울하지요. 내가 죽은 뒤 나를 오해한 사람들은 나를 제대로 평가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최근 월간조선을 보니, 버나드 크리셔 기자(前 뉴스위크 기자)가 나를 상당히 이해해주었어요. 난 참 억울해요! 제일 억울한 것은 한번 나라를 맡아서, 정말로 잘해 보려고 했는데, 전혀 그런 기회를 못갖고 나이를 먹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 것도 못했잖아요.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확립시키는 일도 못했고, 경제도 중소기업 중심으로 못했고, 중산층과 서민의 권리, 사회보장도 못했고,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의 길도 열지 못했고…, 그래서 미련이 있는 겁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다시피 국회의원도 못해본 사람도 있는데 이 정도면 됐지 않느냐고 스스로 달래요』

  - 일각에서는 김총재의 이러한 처신에 대해「老慾」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건 상관없어요. 내가 노욕에서 했건, 정당한 의무감․사명감에서 했건…, 국민들이 안 받아들이면 그만이니까, 가타부타 할 게 없어요』

  - 김총재께서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게 무엇입니까. 힘입니까, 명예입니까.

『내 양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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