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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29일 (목) 15:33 판

1913년 4월 작성된 함경남도 행정구역 개정안 부도의 갑산군(甲山郡) 지도[1] : 갑산(甲山) 바로 북쪽에 보천보사건 주역 6사장 김일성의 출신지 회린면(會麟面)이 있다. 그 북쪽으로 압록강에 면해서 혜산진(惠山鎭)이 있고, 또 그 북쪽으로 보천보(普天堡)가 보인다.

갑산군(甲山郡)은 조선시대에 함경도(咸鏡道), 1896년부터 함경남도(咸鏡南道)에 속하던 군이다. 북한이 1954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신설되는 양강도(兩江道)에 속하게 되었다. 인접한 서쪽의 삼수군(三水郡)과 함께 삼수갑산(三水甲山)으로 통칭되던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奧地)의 대명사였다. 조선시대에 한번 가면 생환하기 힘들다고 여겨진 악명 높은 귀양지이기도 했다.

조선시대까지는 압록강 남쪽 백두산 서남부의 상당히 넓은 지역을 관할했으나, 일제시대와 해방 후 새로운 군들이 분리 신설되면서 지금은 관할 영역이 상당히 축소되어 있다.

연혁

관할 영역 축소

  • 1914년 남쪽의 웅이면(熊耳面), 이인면(里仁面), 천남면(天南面) 등 3개 면이 갑산군에서 분리되어 신설되는 풍산군(豊山郡)으로 편입됨.[2] 이인면은 풍산면(豊山面)으로 개칭함.
  • 1934년 3월 행정구역이 변경되어 갑산군 보혜면(普惠面)이 혜산읍(惠山邑)과 보천면(普天面)으로 분리됨.[3]
  • 1942년 4월 혜산읍에 갑산군 운흥면(雲興面)·봉두면(鳳頭面)·보천면(普天面)·대진면(大鎭面)과 삼수군 별동면(別東面)이 편입, 혜산군(惠山郡)으로 승격됨.[3]
일제시대 말, 해방 직후의 갑산군 영역 지도. 남쪽은 신설된 풍산군으로, 북쪽은 신설된 혜산군으로 분리되어 나가 군의 관할 영역이 조선말보다 상당히 축소되었고, 더 이상 압록강이나 백두산과 인접하지도 않게 되었다.

해방 후 북한에서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역과 지명이 상당히 달라져 있다.

  • 북한의 잦은 행정구역 개편으로 조선말의 함경남도 갑산군 지역은 현재 양강도(兩江道)[4] 갑산군(甲山郡)[5], 혜산시(惠山市)[6], 보천군(普天郡)[7], 운흥군(雲興郡)[8], 김형권군(金亨權郡)[9], 풍서군(豊西郡)[10], 삼지연시(三池淵市)[11] 등으로 나뉘어 편입되어 있다.

역사

웅이면(熊耳面) 도하동(道下洞)

근대의 고승 경허 성우(鏡虛 惺牛, 1849~1912)가 만년에 행색을 감추고 와서 박난주(朴蘭洲)라는 가명의 선비로 아동들을 가르치며 살다 1912년 4월 25일 입적한 곳이다.[12][13] 도하동(道下洞)은 웅이면 도하리(都下里)로 추정된다.

웅이면은 1914년 갑산군에서 분리되어 신설된 풍산군에 편입되었다가[2] 해방 후 다시 풍산군에서 분리되어 신설되는 풍서군(豐西郡)에 속하게 된다.[10] 풍산군의 남은 지역은 1990년 김일성의 숙부 김형권의 이름을 따서 김형권군(金亨權郡)으로 개칭된다.[9]

동인면(同仁面) 함정포(含井浦)

1921년 9월 23일 밤에 함정포 사건(含井浦 事件)이 일어났다.[14][15] 당시 항간에는 이 사건이 김일성 장군이 한 일로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16]

대한민국 임시 정부 기록에 따르면 1921년 9월 16일에 제1중대 3소대 1분대장 김병묵(金秉默) 등 10명은 장백현의 본영을 떠나 23일 밤 11시 경에 함남 갑산군 동인면 함정포(含井浦)의 일경 주재소를 습격하여 폭파하고 경찰을 사살한 다음, 다수의 무기와 탄약, 현금 등을 빼앗고 무사히 귀대하여 매우 큰 반향을 불러일으겼다. 특히 함정포주재소 전투에서 참교(參校)김형길(金亨吉)과 김병수(金炳洙)는 순사부장 고바야시(小林淸治)를 사살하고 무기를 노획하였으며, 군비단 독립군 부대는 주재소를 불태운 뒤 부근의 영림창도 공격하여 전소시키는 등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구를 파괴하는 혁혁한 전과를 거두어 국내외를 놀라게 하였다.

보혜면(普惠面) 보천보(普天堡)

1937년 6월 4일 밤에 보천보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보천보(普天堡)는 사건 당시는 갑산군 보천면(普天面) 보전리(堡田里)에 속했으나 지금은 갑산군에서 분리 신설된 보천군(普天郡)에 속한다. [보혜면(普惠面)은 1934년 혜산읍(惠山邑)과 보천면(普天面)으로 분리되었다.]

회린면(會麟面) 석우리(石隅里)

각주

  1. 함경남도 행정구역 개정안 부도 : 내고향 옛지도 기록 보기 국가기록원 - 대정(大正) 2년 (1913년) 4월 지도
  2. 2.0 2.1 풍산군(豊山郡)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3.0 3.1 혜산군(惠山郡)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양강도(兩江道)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5. 갑산군(甲山郡)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혜산시(惠山市)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7. 보천군(普天郡)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8. 운흥군(雲興郡)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9. 9.0 9.1 김형권군(金亨權郡)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0. 10.0 10.1 풍서군(豊西郡)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1. 삼지연시(三池淵市)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2. 75대 경허 성우 : 조계종 14대 종정 진제대선사
  13. 한암 중원(漢巖重遠) 찬(撰), 선사 경허 화상 행장(先師鏡虛和尙行狀), 『경허집』 경허화상집 제1권(鏡虛和尙集卷之一)[漢巖 筆寫本];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 조선 34, 동국대학교출판부
  14. 甲山含井駐在所(갑산함정주재소)에 爆發彈(폭발탄)을投擲(투척) 독립단이십명이폭탄을던지고영림창출장소와면소까지방화 駐在所下人一名慘死(주재소하인일명참사) 동아일보 1921-09-27 03면
    甲山敵駐在所 襲擊 詳報 독립신문 1921-11-19
  15. 함경남도 행정구역 개정안 부도의 갑산군(甲山郡) 지도 : 1913년 : 갑산(甲山) 바로 북쪽에 회린면(會麟面)이 있고, 그 인근 북동쪽에 함정포(含井浦)가 나온다. 그 북쪽으로 압록강에 면해서 혜산진(惠山鎭)이 있고, 또 그 북쪽으로 보천보(普天堡)가 보인다.
  16. 이명영(李命英, 1928-2000), "金日成列傳 (新文化社, 1974)" pp.27~29 : 1921년 당시 갑산군 동인면장이었던 김상형(金相瀅, 1889~?)은 그 사건이 김일성 장군이 한 일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