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이 준비위원장으로 범조국통일범민족연합[1]이 만들어지고 나서 강희남이 이끌었다.

2009년 6월 6일 자살하였다.

규약 [2]

기사

'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초대 의장이었던 강희남(89) 목사가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유서를 남긴 채 지난 6일 오후 7시45분경 전북 전주시 삼천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강 목사는 유서를 통해 “지금은 민중주체의 시대다. 4·19와 6월 민중항쟁을 보라. 민중이 아니면 나라를 바로잡을 주체가 없다. 제2의 6월 민중항쟁으로 살인마 리명박을 내치자”라고 말했다.
한편 강희남 목사는 유서 외에도 유족들에 따르면, 이글과 함게 지난 5월 1일 유서 성격의 마지막 고별사로 '8천만 동포들' 앞으로 편지를 남긴 것으로 밝혀졌다. 강 목사는 단식에 앞서 쓴 이 글에서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때만 해도 민영환 송병선 등 애국지사 10여 명이 순절했고 송병선 선생이 남긴 '나라는 비록 망했지만 의조차 망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 내 가슴에 사무쳤다"고 고백하면서, "나 자신도 그동안 기막히게 고독하고 서러운 운동의 세월을 살았고 이제 또한 오자서 처럼 양키추방과 련방제 통일만이 이 민족의 살길이라는 신념하나로 멍든 가슴에 안고 내집을 내집을 양키대사관 앞이라 여겨 입대신 몸으로 말하려고 최익현 선생의 뒤를 따라 이 길을 가는 것이다. 조국과 민족앞에 한없이 부끄러운 목숨으로 말이다"라고 맺었다. 
그동안 강희남 목사는 1994년에는 북한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범민련 남측 본부 대표단을 이끌고 방북 조문을 시도했다 구속되기도 했으며, 1970년대에는 유신반대 투쟁으로 구속되고, 1986년에는 국가보안법 위한 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
'고 강희남 목사 장례준비위원회는 7일 오후 '통일민주사회장'으로 5일장을 치르고 영결식은 10일 오후 1시쯤 서울 향린교회에서 열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
'공동장례위원장으로는 강희남 목사의 유지에 따라 '''한완상'''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와 '''변정수''' 전 헌법재판관을 선임할 예정이며, 분향소는 우선 범민련서울사무소에 제 1분향소를 설치하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분향소가 있는 대한문을 비롯해 가능한 대학 및 병원 등에 추가 분향소를 열어 추모객들을 맞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