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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담화 (전문)
최근 수정 : 2019년 8월 19일 (월) 10:30

햇살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8월 19일 (월) 10:3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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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정식 명칭은 《慰安婦関係調査結果発表に関する 河野内閣官房長官談話(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내각관방장관 담화)》이다.

일본의 78대 수상 미야자와 기이치(宮澤 喜一, 1919~2007, 재임 1991년 11월 5일 ~ 1993년 8월 9일) 내각의 내각관방장관(内閣官房長官, 국무대신)인 고노 요헤이(河野 洋平, 1937~)가 1993년 8월 4일 발표하였다.

아래의 번역문은 통신사인 연합뉴스[1]에 실린 것이다. 이 번역문이 일반 언론사에서도 보도, 공개된 상태이다.

번역문 아래에는 일본 외무성에서 제공하는 원문을 함께 싣는다. 일본 외무성은 이 담화문의 일부를 영문으로 번역하여 공개한 상태이다. [2]

연관 검색어

앞으로 이 담화문의 발표 배경과 관련한 표제어를 설정할 예정이다.


고노 담화 전문 (한국어 번역)

* 편집자 주: 이 담화문에서 ‘정부’는 일본 정부를, ‘우리나라’는 일본을 가리킨다.

1993년 8월 4일, 담화문을 발표하는 고노.
평성(平成) 5년 8월 4일

이른바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정부는 재작년 12월부터 조사를 진행해왔으나 이번에 그 결과가 정리됐으므로 발표하기로 했다.

이번 조사 결과 장기간, 그리고 광범위한 지역에 위안소가 설치돼 수많은 위안부가 존재했다는 것이 인정됐다. 위안소는 당시의 군 당국의 요청에 따라 마련된 것이며 위안소의 설치, 관리 및 위안부의 이송에 관해서는 옛 일본군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이에 관여했다.

위안부의 모집에 관해서는 군의 요청을 받은 업자가 주로 이를 맡았으나 그런 경우에도 감언(甘言), 강압에 의하는 등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모집된 사례가 많았으며 더욱이 관헌(官憲) 등이 직접 이에 가담한 적도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위안소에서의 생활은 강제적인 상황하의 참혹한 것이었다.

또한 전지(戰地)에 이송된 위안부의 출신지에 관해서는 일본을 별도로 하면 한반도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당시의 한반도는 우리나라의 통치 아래에 있어 그 모집, 이송, 관리 등도 감언, 강압에 의하는 등 대체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해 행해졌다.

어쨌거나 본 건은 당시 군의 관여 아래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그 출신지가 어디인지를 불문하고 이른바 종군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해 마음으로부터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다. 또 그런 마음을 우리나라로서 어떻게 나타낼 것인지에 관해서는 식견 있는 분들의 의견 등도 구하면서 앞으로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 역사의 진실을 회피하는 일이 없이 오히려 이를 역사의 교훈으로 직시해 가고 싶다. 우리는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같은 잘못을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시 한번 표명한다.

덧붙여 말하면 본 문제에 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소송이 제기돼 있고 또 국제적인 관심도 받고 있으며 정부로서도 앞으로도 민간의 연구를 포함해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게시된 담화 전문 (일본어)

慰安婦関係調査結果発表に関する 河野内閣官房長官談話

平成 5年 8月 4日

 いわゆる従軍慰安婦問題については、政府は、一昨年12月より、調査を進めて来たが、今般その結果がまとまったので発表することとした。  今次調査の結果、長期に、かつ広範な地域にわたって慰安所が設置され、数多くの慰安婦が存在したことが認められた。慰安所は、当時の軍当局の要請により設営されたものであり、慰安所の設置、管理及び慰安婦の移送については、旧日本軍が直接あるいは間接にこれに関与した。慰安婦の募集については、軍の要請を受けた業者が主としてこれに当たったが、その場合も、甘言、強圧による等、本人たちの意思に反して集められた事例が数多くあり、更に、官憲等が直接これに加担したこともあった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また、慰安所における生活は、強制的な状況の下での痛ましいものであった。  なお、戦地に移送された慰安婦の出身地については、日本を別とすれば、朝鮮半島が大きな比重を占めていたが、当時の朝鮮半島は我が国の統治下にあり、その募集、移送、管理等も、甘言、強圧による等、総じて本人たちの意思に反して行われた。  いずれにしても、本件は、当時の軍の関与の下に、多数の女性の名誉と尊厳を深く傷つけた問題である。政府は、この機会に、改めて、その出身地のいかんを問わず、いわゆる従軍慰安婦として数多の苦痛を経験され、心身にわたり癒しがたい傷を負われたすべての方々に対し心からお詫びと反省の気持ちを申し上げる。また、そのような気持ちを我が国としてどのように表すかということについては、有識者のご意見なども徴しつつ、今後とも真剣に検討すべきものと考える。  われわれはこのような歴史の真実を回避することなく、むしろこれを歴史の教訓として直視していきたい。われわれは、歴史研究、歴史教育を通じて、このような問題を永く記憶にとどめ、同じ過ちを決して繰り返さないという固い決意を改めて表明する。

 なお、本問題については、本邦において訴訟が提起されており、また、国際的にも関心が寄せられており、政府としても、今後とも、民間の研究を含め、十分に関心を払って参りたい。


참고 자료

  • 《慰安婦関係調査結果発表に関する 河野内閣官房長官談話》,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3]
  •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 관련 Q&A”, 외교부 홈페이지 [4]
  • “고노 담화 전문”, 《한국일보》2014년 6월 20일 [5] (연합뉴스의 같은 날 보도는 내용은 같으나 제목이 객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판단, 이 문서의 작성 의도와는 거리가 멀어 제외하였다. 이 문서의 첫 부분에 연합뉴스에서 송고한 기사를 링크한 것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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