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번째 줄: 36번째 줄:
== 연관 검색어 ==
== 연관 검색어 ==


다음 표제어들은 ‘[[노무동원]]’과 내용상 서로 동일하며, 현재 표제어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표제어들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내용상 모두 동일하다.  
다음 표제어들은 ‘[[노무동원]]’과 내용상 서로 동일하며, 현재 표제어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 표제어들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내용상 모두 동일하다.  


[[징용]], [[강제징용]], [[강제동원]], [[일제의 강제노역]], [[전시체제기 강제동원]], [[일제의 강제연행]]
[[징용]], [[강제징용]], [[강제동원]], [[일제의 강제노역]], [[전시체제기 강제동원]], [[일제의 강제연행]]

2019년 8월 15일 (목) 04:39 판

이 표제어는 일제 식민지 시기라는 역사의 맥락에서 보면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다음 내용은 ‘노무동원'에서 해당 내용을 옮겨온 것이다.

1939년부터 1944년 8월까지의 ‘모집’과 ‘관알선’

1944년 9월부터 시행된 징용 이전에는 ‘모집’과 ‘관알선(官斡旋)’의 방법을 통해 조선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하였다. ‘관알선’이란 말 그대로 관청의 소개와 지원을 통한다는 뜻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이 징용과 다른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발성’이다. 즉 조선인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렇다고 처벌을 받거나 하지도 않았다.

2차 대전이 시작되자, 일본의 탄광과 같은 근로 현장에서는 젊고 건장한 인력이 대거 전장으로 끌려가면서 노동력 부족 현상이 심각해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전쟁 말기까지 조선인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못하는 ‘2등 국민’이었다는 것이다. 다소 복잡한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일본의 조선에 대한 식민 지배는 필리핀 등의 동남아시아 침략 지배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 조선은 일본의 한 지역으로서 ‘동화’되어야 하는 곳이었고, 따라서 일본의 법률과 체계, 제도 등이 이식되면서 일본과 서서히 동질화되어갔다. 한반도의 물질적 · 경제적 근대화가 시작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본질 때문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조선과 조선인은 1910년 한일병합을 통해 일본의 한 지역으로 편입된 상태였기 때문에 이중적인 지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즉 일본인이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으므로 조선인은 일본 호적법이 아니라 별도의 민족적(民族籍)을 갖는 ‘조선인’으로 규정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를 뒤집어 보면, 당시를 살아가던 조선인들은 병역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었다. 일본군 장교가 되는 것이 조선 청년들의 ‘로망’이었다는 것도 뒤집어 보면 이런 이중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또한 일본 청년들이 전쟁에 동원되느라 비어 있는 자리를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기업과 민간의 노동 수요 즉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일본 정부에서 시행한 것이 모집과 관알선이었다. 민간 수요를 채우기 위한 목적이니 강제성 없이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것은 당연하다.

이문구의 자전(自傳) 소설 즉 실제 체험을 소설적 상상력 없이 거의 그대로 옮기다시피한 《행운유수(行雲流水)》라는 중편 소설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그는 그런 장황한 인사를 하며 벗어 든 찌든 벙거지를 뜰팡에 던지고 엉거주춤하니 서 있었다.

“뵐고가 무고(無故)지…… 어서 그늘루 앉게. 여태두 게 가서 독〔石〕일 헌다나?” “예. 모집(징용) 가서 밴 것이 그 노릇인디 워칙허겄슈. 고연시리 븐다허구 지집 색긔만 고상시키는개뷰.”

(편집자 주: 충청도 사투리를 거의 그대로 옮긴 장면이므로, 이를 알기 쉬운 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별고(別故)가 무고지(별탈없이 잘 살고 있다는 뜻) ······ 어서 그늘에 와서 앉게. 지금도 거기 가서 석공 일 하나?”

“예. 모집 가서 배운 것이 그 노릇인데 어떡하겠어요. 공연히 돈 번다 하고 계집하고 새끼(아내와 자식)만 고생시키는 거죠.”

서술자인 어린 이문구의 어머니와 그 집에서 일을 하는 옹점이를 찾아온 옹점이 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이 장면을 보면, 충청도에 사는 옹점이 아버지는 젊은 시절 모집을 통해 일본에 가서 석공 기술을 배워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돌아와서는 이 기술로 먹고 사는 것이고, 석공이란 게 워낙 집을 비우는 일이라 가족들이 고생한다는, 일종의 겸사(謙辭)다. 못 먹고 살 정도라서 고생한다는 게 아니라 가장이 집을 떠나 있으니 집안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다는 맥락이다. 실제로 소설 속 옹점이의 어머니는 농사도 짓는 일 없이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살림만 하는 사람으로 그려진다.

어쨌든 이 장면 자체로도 모집이나 관알선을 통해 일본에 가서 돈도 벌고 기술도 익혀 왔다는 점, 이에 대해 별 감정이 없었다는 당대의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게다가 이 소설은 1970년대에 발표되었다.

연관 검색어

다음 표제어들은 ‘노무동원’과 내용상 서로 동일하며, 현재 표제어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다음 표제어들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내용상 모두 동일하다.

징용, 강제징용, 강제동원, 일제의 강제노역, 전시체제기 강제동원, 일제의 강제연행

또한 다음 표제어들은 이 내용을 이해할 때 필수적으로 함께 보아야 하는 것들이다.

한일 청구권 협정,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과 역사 왜곡 논쟁, 조선인 임금 차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