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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 김일성의 생장기》 민생단 사건 전설의 김일성장군 관련 해방전 기록
김일성의 소련 행적 김정일의 출생 소련군 88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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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가초프」호 동진공화국 조각명단 해방정국 지도자 지지율
해방직후 북한 상황 북한 초대 내각 북한의 친일파 청산
남북분단의 현실화 과정 북한정권 감시기구 《특경부》 6.25 남침
《김일성 1912~1945》 (서평) 김일성(金一成, 1888~1926) 김정일 생년
김형직 (부친) 강반석 (모친) 김형권 (삼촌)
김혜순 (전처) 김정숙 (처) 김슈라 (차남)
김영주 (동생) 백두혈통 김일성 영생교

김일성 가짜설의 기원과 배경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말은 해방 후 귀국한 그가 1945년 10월 14일 평양시 민중대회에서 처음으로 대중들 앞에 나서 연설하던 그 장소에서 처음 터져나왔으며, 이러한 말은 월남민들에 의해 짧은 시간에 전국으로 퍼지게 된다.

이로부터 불과 한달 뒤인 11월 중순의 미군정 기록에 벌써 그가 가짜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때는 그가 장차 북한의 지도자가 될지도 불분명할 때이다. 한국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에 이미 많은 문헌에 그가 가짜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이승만이나 박정희 정부가 반공정책 때문에, 또는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폄하하기 위해 그를 가짜로 만들었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해방 당시 북한 김일성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

해방 직후 소련군이 평양에 데려온 진지첸 대위(자칭 김일성 장군)에 대해 대중들은 그가 어디서 무얼 하다 온 사람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가 이전에 김일성이란 이름을 실제로 썼는지 아닌지도 당연히 알 수 없었고, 그가 속했던 만주 동북항일연군이나 소련군 88여단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1937년 6월 4일의 보천보 사건도 오래 전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보천보 사건이 유명해 진 것은 나중에 김일성이 집권하고 난 후 자신의 항일 전공이라며 대대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한 후부터이다.

보천보 사건보다 조금 먼저 비슷한 규모의 동흥사건, 토성사건, 독산사건 등이 있었고, 이때도 신문들이 호외를 간행하며 보도했지만 해방 당시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이들 사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보천보 사건도 해방 당시에는 마찬가지였지만 김일성이 집권하여 선전하는 바람에 알려지게 된 것이다. 보천보 사건 때 동아일보 등이 호외를 간행하여 항일연군의 김일성 이름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는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당시는 문맹율이 80%를 상회하고,[1] 인구 대다수가 사는 농어촌 지역은 교통이 불편해 신문 배달도 쉽지 않아 호외의 영향력은 미미했다.

남한에서 동북항일연군보천보 사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이며 대중들에게까지 알려지는 것은 1990년대에 들어와서이다. 소련군 88여단에 대해 알게되는 것은 1990년 한소수교 이후 소련 문서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김일성의 항일투쟁 경력에 대해서는 수많은 연구가 나온 오늘날에도 명확하지 않아 논쟁 중이므로 해방 당시 사람들이 이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북한에서는 북한정권 공식 출범 후부터 김일성의 항일투쟁이나 보천보 사건에 대해 본격적으로 선전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의 소속부대는 동북항일연군이 아닌 조작된 이름 조선인민혁명군으로 부르고, 소련군 88여단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해방 직후 전설의 김일성 장군에 대한 기록

1945년 8.15 해방부터 10월 14일 평양에 김일성이 출현하기 이전에 김일성 이름이 나오는 기록들은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다. 이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알고 있던 김일성이 어떠한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다.

이런 기록들에 나오는 유명한 김일성 장군은 북한 김일성과는 거리가 멀고, 실존 인물 누구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이름이 1920년 전후부터 알려졌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지만, 왜 유명해졌는지도 불분명하다.

김일성 동생 김영주의 증언

북한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1920~2021)는 해방 직후 중국의 국민당 군대에서 이용상(李容相,1924∼2005) 시인과 9개월 가량 숙식을 함께하며 친하게 지냈는데, 그에게 "어릴 때 부친 김형직(金亨稷, 1894~1926)이 자기 형제들에게 김일성 장군과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는 증언을 했다. 즉 어린 김성주도 김일성 장군 이야기를 듣고 자란 것이 분명하며, 이 때문에 1930년 말경부터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쓰며 유명인 행세를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참고 : 만주의 조선족들은 대부분 북한 김일성이 진짜가 맞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은 만주에 살아 일제시대나 해방 당시 국내에서 김일성 장군의 이름이 어떻게 알려져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항일연군의 김일성이 자신들 지역 인근에서 활동했다면 그의 이름을 자주 들었을 수 있으므로 진짜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국내에서 유명했던 김일성은 달랐다는 것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같은 김일성이 아니다. 조선족들은 중국인들에게 자랑스럽게 내세울만한 조선인 항일영웅을 필요로 하는 것같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항일연군에서 활동했던 북한 김일성으로 보인다. 그가 북한 지도자로 유력인물이 되었으므로 그에게 더욱 집착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가 가짜라는 말에는 화를 내는 사람이 많다.

소련군 진지첸 대위가 김일성 장군을 사칭한 이유

위에서 말한대로 해방 당시 사람들은 평양에 온 진지첸 대위가 어디서 뭘 하다 온 누구인지 전혀 몰랐으므로 당연히 그에 대한 지지세력도 있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그를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듣도보도 못한 온갖 정치공작들이 동원되었으며, 그가 김일성 장군을 사칭하게 한 것도 이런 난관을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었다.

김일성 장군의 이름은 유명하나 실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진지첸 대위가 무명의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그 이름을 사칭할 수 있었다. 김일성 장군이 홍범도(洪範圖, 1868~1943)김좌진(金佐鎭, 1889~1930)처럼 누구인지 분명했다면 이름을 사칭하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설사 유명한 김일성이 실체가 없는 가상인물이고, 진지첸 대위가 김일성이란 이름을 썼다고 해서 그가 진짜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김일성이란 이름이 유명해지는데 진지첸이 기여한 바가 없고, 그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자신이 그 유명한 가상인물인 것처럼 행세하여 지명도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므로 여전히 가짜일 수 밖에 없다.

소련 군정 지휘자 레베데프 소장의 후일 증언

해방 직후 평양에서 김일성을 북한 지도자로 만드는 정치공작을 총지휘했던 레베데프(1901~1992) 소장은 한소수교 직후인 1991년에 모스크바 자택으로 찾아간 한국의 중앙일보 기자들에게 김성주를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유명한 김일성 장군을 사칭하는 방안을 생각해내었다고 증언했다. 이 사안에 대해 그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한다.

레베데프 소장보다 하급자로 당시 평양에서 김일성 수령 만들기 정치공작의 실무를 담당했던 그리고리 메클레르(Grigory Konovich Mekler, 1909~2006) 중좌나 레오니트 바신 (Leonid Vassin, 1915~2006) 소좌도 후일 북한 김일성이 유명한 김일성 장군을 사칭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한국의 대다수 연구자들은 김일성 진짜론에 빠져 이런 증언이 나온지 30년이 넘었지만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김일성 진짜론의 사례

김일성 진짜론은 허수아비 논법

  •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말은 해방직후 그가 평양에 나타났을 당시 33세에 불과하여 1920년경부터 이름이 알려졌던 김일성 장군이 되기에는 나이가 맞지 않아 나온 것이다.
  • 그가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1로군 제6사장이나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맞는지는 1974년 이명영(李命英, 1928~2000)의 《김일성 열전(金日成 列傳)》이 출간 된 후에 나온 새로운 쟁점이며, 김일성의 진위 논란과는 무관하다. 해방 당시 사람들은 동북항일연군도 거기에 김일성이 있었는지도 알지 못했다. 보천보 사건도 잊혀져 잘 몰랐다.
  • 후대의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쟁점들을 뒤섞어서 혼란스럽게 한 후 북한 김일성이 항일연군에서 활동한 김일성이 맞으므로 가짜가 아닌 진짜라고 했다. 이는 "허수아비 논법(straw man argument)"[2]으로 논리적 오류이다.

일제시대에 김일성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해방 후 북한 김일성의 출현을 직접 봤던 세대들은 직관적으로 그가 가짜라는 것을 알았다. 이명영(李命英, 1928~2000)김창순(金昌順, 1920~2007) 등의 1세대 북한 연구자들도 이 세대에 속하며, 자신들의 체험에 근거하여 김일성이 가짜라는 연구를 한 것이다. 이정식과 서대숙 등은 일제시대에 중국에 살았고, 해방 후 한국에 잠간 머물다 미국으로 갔으므로 이러한 내막은 잘 모르기 때문에 일본이나 중국 문헌만 보고 김일성이 진짜라는 주장을 내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 와다 하루키도 비슷한 사례이다. 허동찬(許東粲, 1932 ~ )은 원래 일본의 조총련 소속으로 북한에 가서 김일성도 직접 만나본 적이 있지만 그들의 주장이 허구하는 것을 알고 일본에서 수많은 문헌을 뒤져 그가 가짜인 것을 밝히려 했다. 일제시대나 해방 당시의 일에 대한 직접적 체험이 없는 이종석, 한홍구, 신주백 등 한국의 2세대 신진학자들은 1980년대 들어 노골적으로 친북 좌경화 되어가는 학계 분위기에 편승하여 서대숙, 와다 하루키 등 외국에서 연구한 학자들의 권위를 빌려 이명영, 허동찬 등의 김일성 가짜론을 맹렬히 공격하며 김일성이 진짜라는 주장을 확산시켰다. 체험적으로 김일성이 가짜라고 알았던 세대들이 퇴장하면서 후속세대들에는 김일성이 진짜라는 주장이 대세로 자리잡게 된다.

대다수 김일성 진짜론자들은 북한 김일성이 만주 동북항일연군에서 활동한 그 김일성이 맞으니 진짜가 맞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대표적 오류 논리인 일종의 "허수아비 논법"이다.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말은 해방 직후 평양에 처음 나타난 33세의 그가 1920년경부터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김일성 장군으로 보기에는 나이가 전혀 맞지 않아서 나온 것으로, 그가 항일연군에서 무슨 투쟁을 했든 관계없는 일이다. 김일성 장군의 이름은 항일연군이 생겨나기도 전부터 이미 유명했다. 더구나 해방 당시 사람들은 동북항일연군에 대해 거의 알지도 못했으므로 북한 김일성이 거기서 활동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서 진짜가 될 수는 없다.

대표적 김일성 가짜론자인 이명영(李命英, 1928~2000)이나 허동찬(許東粲, 1932 ~ )동북항일연군 김일성에 관한 연구에 대한 반박이 김일성이 진짜라는 증명이 될 수 없다.[3][4] 더 큰 문제는 최근 발굴된 많은 새로운 자료들까지 종합해서 검토하면 보천보 사건의 주역인 6사장 김일성은 1937년 11월 전사한 것이 맞으므로, 김일성 진짜론자들이 6사장도 북한 김일성이 맞다고 한 것은 오류이고, 이명영이나 허동찬의 연구가 오히려 더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명영의 연구 중 제2방면군장까지 북한 김일성이 아니라고 한 것은 자료가 부족하던 시절에 잘못내린 판단으로 오류로 보인다.

이정식(李庭植)

이정식(李庭植, Chong-Sik Lee, 1931~2021)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 정치학과 교수를 지냈다.

  • Scalapino, Robert A. and Lee, Chong-Sik, 『Communism in Kore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California, 1972.
스칼라피노 · 이정식 지음, 한홍구 옮김, 『한국공산주의 운동사 1』 (서울 : 돌베개 1986)
김일성의 본명은 김성주(金成柱)이기 때문에 그가 이름을 비꾼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한인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선 아주 흔한 일로 거의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한두 개의 가명을 사용했다. 또 다른 김일성에 관한 전설은 아직도 일부 한인들 사이에 서 믿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김일성이란 이름을 사용하여 두각을 나타낸 인물에 대한 기록에 접하지 못했다........ 김일성을 조작해내기 위해서는 그 당시 이래 김일성과 관계를 맺고 있던 다른 사람들을 모두 조작해내야 하기 때문에 이는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 스칼라피노 · 이정식 지음, 한홍구 옮김, 『한국공산주의 운동사 1』 (서울 : 돌베개 1986) p.300

임은(林隱)

임은(林隱)은 허진(許眞, 1928~1997)의 필명이며, 왕산(旺山) 허위(許蔿, 1854~1908)의 3남 허준(許埈, 1895 ~ 1956)의 아들로 본명은 허웅배(許雄培)이다. 부친 허준(許埈)은 연안파로 북한에서 1956년 숙청 당했다. 허진은 소련 유학 당시인 1958년 소련으로 망명하여 소련에서 거주했다.

  • 林隱, 『北朝鮮王朝成立秘史』 (東京, 自由社, 1982), pp.29~57.
임은(林隱), 『김일성정전(金日成正傳)』 (옥촌문화사, 1989년) : 위 책의 한국어판

김일성이 진짜가 맞다는 허진(임은)과 달리 그와 함께 소련으로 망명한 김종훈은 김일성이 가짜라고 했다. 이는 해방 후 북한에서도 김일성이 가짜라는 말이 비밀리에 어느 정도 퍼져 있었다는 증거이다.

  • 소련의 북한 유학생 집단망명 생존자 김종훈 증언 : 1958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김일성이 가짜라는 편지 써 보내
첫 북한유학생 망명자들 RFA 2016-12-27

1957년 11월 27일 모스크바에서 조선유학생대회가 열렸는데 유학생 허웅배가 김일성의 개인숭배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소련으로의 망명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다른 유학생들도 1958년 1월 겨울방학을 맞으며 러시아인 친구의 집에 모여 ‘8월 종파’사건과 김일성의 개인숭배, 숙청에 대한 비판 등 논쟁을 치열하게 벌리던 끝에 집단적인 망명을 결정하였습니다. 그들은 “개인숭배는 헌법과 당내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것이다. 진짜 김일성은 전설적인 독립활동가이며 1930년대 사망하였으나 해방 후 소련이 김성주를 가짜 김일성으로 만들었다. 북한의 삶은 노예의 삶이다. 지금 북한은 종파처형 바람이 불고 있고 먼저 망명한 허웅배를 동조한 우리도 북한에 돌아가면 처형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으로 자신들의 정치적 망명 입장을 밝혔습니다.

(심층취재) 소련 북한 유학생 집단망명 생존자 “6.25전쟁 진실 안 뒤 반감 싹터” VOA 2017.8.4

[녹취: 김종훈 씨] “나는 거기(북한) 가면 제일 먼저 잡혀서 죽어요. ‘아직도’ 가 아니라 영원하죠. 김일성을 건드린 놈인데. 김일성을 살인방조자, 전쟁을 일으켰다고. 가짜 김일성이란 것을 중앙당에 편지를 쓴 게 다 남아 있는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에 보내는 공개서한’ 이라고 해서 김일성이 왜 그런 놈인가 하는 것을 다 적어서 거기 보냈어요.”

서대숙(徐大肅)

서대숙(徐大肅, Dae-Sook Suh, 1931~ )은 정치학자로, 미국 하와이대(University of Hawaii)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과 북한의 현대사 및 정치와 관련한 많은 논문과 저서가 있다.

  • Dae-Sook Suh, 『Kim Il Sung: the North Korean Leader』 NY: Columbia Univ. Press, 1988
서대숙(徐大肅, Dae-Sook Suh, 1931~ ) 저, 서주석 역,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서울: 청계연구소, 1989
남한에서는 현재의 북한주석과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인혁명가가 같은 이름으로 가진 둘 또는 셋의 별개의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더러 있으나 이는 부질없는 추측이다........ 1974년까지도 북한주석 김일성이 가짜라고 주장한 남한연구가가 있었으나 이는 학문적 연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저작이었다. 그 저자(즉 이명영 - 인용지주)는 만주에서 김일성과 싸웠던 전일본군 장교 몇 명을 포함하여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는 등 상당한 연구를 한 것으로 보이며 이 점에서 그 연구는 불운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저자 는 김일성이 가짜라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결론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만을 수집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 서대숙,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서울 : 청계연구소, 1989) p.296
서울大(대)에서 처음으로 북한학을 가르친 감상은?
"한국은 지금 對(대)북한인식을 둘러싸고 혼란상태에 있다. 지금까지 金日成 (김일성)은 가짜라는 등 잘못된 것을 유포시켜왔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말하는 것은 옳은 것이라도 학생들은 신용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매우 정치화 돼있어 바른 인식을 얻기위한 공부에는 커다란 지장이 있다. 미국의 대학생과 비교해도 공부량이 적다. 매우 유감이다"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와다 하루키(和田 春樹, 1938 ~ )는 일본의 역사 학자이자 도쿄 대학의 명예 교수이다. 전공은 소련사와 한국 현대사이다. 아래는 김일성 가짜설에 대한 이명영(李命英, 1928~2000)의 연구서 『김일성 열전(金日成 列傳)』[3]에 대한 비판이다.

그의 전체 입론은.... 관헌자료에 나타나는 어떤 내용의 기술들을 도외시 내지 무시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인데 이 점은 이미 한국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전문연구서[5]에 의해 분명히 지적되고 있다. 이 책은 토벌작전에 참가했던 말단 일본인들이 김일성 부대가 흘린 거짓 정보에 얼마나 현혹되었던가를 전해주는 자료로서 읽혀져야 한다.
― 和田春樹, 《김일성과 항일무장투쟁》, 『사회와 사상』 1988년 11월호 (서울, 한길사, 1998), p.166.
나는 두 번에 걸친 연변 방문을 통해 그 곳 학자들로부터 배운 것과 입수한 자료들을 토대로 65년 논문을 다시 쓴 원고에 가필수정을 해서 91년 말까지 <김일성과 만주 항일전쟁>을 완성했다. 이 책은 일본에선 헤이봉(평범)사에서 92년 3월에 출간했다. 한국어판은 90년 서울 첫 방문 때 친해진 이종석씨가 맡아서 그의 번역으로 92년 8월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했다.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라 만주지역 항일무장투쟁의 중요한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며, 조선인으로는 가장 유명했다는 게 객관적인 자료로 논증됐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중국 조선족, 특히 연변 역사가의 협력 덕분인 만큼 깊이 감사하고 있다.

이종석(李鍾奭)

이종석(李鍾奭, 1958 ~ )

  • 이종석, 「김일성연구의 쟁점(상)」 (『사회와 사상』 1989년 12월 pp.348~375)
  • 이종석,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 (역사비평사, 2000) : 1995년판 『현대북한의 이해』의 증보판,
p.440부터 이명영과 허동찬의 김일성 가짜론에 대한 비판이 나옴.

한홍구(韓洪九)

한홍구(韓洪九, 1959 ~ )

10주기에 되돌아보는 세기의 인간… 민족의 태양일 수는 없었지만 형제들의 수령이었음은 인정해야
김일성은 자수성가한 전형적인 민중 영웅

신주백(辛珠柏)

신주백(辛珠柏, 1963 ~ )은 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이며,[6] 성균관대학교를 사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자들의 주장 요약표

북한 김일성에 대한 논란의 핵심은 그가 진짜냐 가짜냐, 동북항일연군의 제6사장이나 제2방면군장이 맞느냐 3가지로 정리된다.

소련붕괴와 중국의 개방이후 공개된 문헌들과 2000년대 들어 과거문헌들의 인터넷 DB 구축으로 새로 발굴된 자료들을 이전에 알려진 자료들과 종합해서 검토해 보면 북한 김일성은 가짜가 맞다. 또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2사에는 2명의 김일성이 있었는데 그 중 상급자인 2사의 정치위원이었던 사람이 제3사장(제6사장)이 되며, 그는 함남 갑산군 회린면 출신으로 보천보 사건 직후인 1937년 11월 13일 전사한 것이 맞다. 그 후 나타난 제2방면군장 김일성은 북한 김일성이 맞으며,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2사 제1단(제3단)의 단장 방진성 아래에서 참모장, 정치위원, 제3연장 등으로 있었고, 당시 그는 제3사장으로 승진하기에는 직급이 너무 낮았다. 하위 직급에 있던 그가 상관인 단장 방진성을 제치고 3사장으로 승진했을 리도 만무하다. 위계질서를 완전히 깨뜨리는 그런 인사는 있을 수 없다.

각 쟁점에 대한 각종 근거자료들의 자세한 검토는 아래 우남위키 문서를 참고하라.

북한 김일성과 관련한 3가지 쟁점에 대한 주요 연구자들의 입장은 아래와 같다.

연구자 김일성 진위 제6사장 제2방면군장
이명영 가짜 X X
김창순 가짜
허동찬 가짜 X
이정식 진짜
임은 진짜
서대숙 진짜
와다 하루키 진짜
이종석 진짜
한홍구 진짜
신주백 진짜
최종 규명된 사실 가짜 X

김일성 가짜론 연구자에 대한 부당한 비판

  • 이명영이나 허동찬은 김일성을 가짜로 만든 주범이 아니며, 그들의 항일연군 김일성에 대한 연구는 일부 오류도 있지만 일방적인 비판과 달리 상당한 진실을 밝힌 선구적 업적이다.
  • 이명영의 연구가 없었더라도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설은 해방직후부터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으므로 정확한 진상을 밝힐 필요는 있었다.
  • 후대 연구자들이 북한 김일성은 진짜가 맞고, 6사장 김일성은 전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여 김일성 연구를 오히려 퇴보시켰다.
  • 이명영은 기록에 나오지 않는 북한 김일성의 유격대 투신 이전 행적을 당시 생존해 있던 증인들을 통해 상당히 많이 밝혔고, 이는 중요한 업적이다. 일부는 나중에 당시 기록의 발견으로 사실로 입증되기도 했다.
  • 이명영이 아니었으면 6사장 김일성이 전사했고, 북한 김일성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은 영원히 밝혀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6사장의 전사 사실은 당시 신문에도 보도 되었지만 곧 잊혀져서 후대 사람들은 그런 일을 알지 못했다.
  • 김창순은 북한 김일성이 항일연군에서 활동한 6사장 및 제2방면군장이 맞다고 하였다. 하지만 전설적인 김일성 장군이 될 수는 없으므로 가짜라는 입장은 견지했다.
근래 '김일성 연구가‘로 자처하는 정치역사학자들 가운데는 ’북한 김일성이 보천보(普天堡) 습격사건의 주인공이다 아니다‘로써 진짜 김일성(金日成)이다 아니다를 가리려고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북한 金日成은 구전상(口傳上)의 민족영웅 김일성 장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8]
[주] 보천보습격사건의 주인공은 6사장 김일성이다.
그가 북한 김일성이 항일연군의 6사장과 제2방면군장이 맞다고 하고, 김일성이 진짜라고 주장하는데 가장 요긴한 사상휘보 자료를 발굴해낸 때문인지 같은 김일성 가짜론자임에도 비판의 표적이 되지는 않았다.
  • 김창순의 입장에서 보듯이 김일성 진위문제와 6사장 및 제2방면군장 문제는 서로 별개의 것이지만, 이명영이 1974년 김일성 열전에서 이 문제들을 모두 다룬 이후로 후대의 연구자들이 이 별개의 사안들을 구분하지 않고 뒤섞어서 김일성 진위문제를 논하는 바람에 혼란이 일어났다.

반공 때문에 김일성이 가짜라 교육했다는 것은 사실무근

많은 김일성 진짜론자들이 과거 남한 정부가 반공 정책 때문에 김일성을 가짜로 만들고 교육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으로 김일성 미화와 남한 과거 정부에 대한 폄하를 동시에 노린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공교육은 6.25 전쟁 이후에 강화된 것으로, 참혹한 전쟁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때라 북한과 김일성,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 교육을 한 것은 문제될 것이 없다. 하지만 교육의 주된 내용은 김일성이 소련의 괴뢰라거나 남침의 주범이라는 측면에서 비판했고, 그가 가짜라는 말은 당시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다. 아울러 북한이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자유가 없고, 인민들은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는 측면을 강조했다. 이는 상당한 진실을 반영한 것으로 억지 주장이 아니다.

해마다 6월 25일 무렵에는 학교에서 반공 포스터 그리기나 반공 웅변대회 같은 것을 개최하기도했지만, 전쟁 직후이고 냉전시기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판할 일이 못된다.

당시의 반공교육보다는 오히려 오늘날의 김일성 미화와 한국의 과거 대통령들에 대한 지나친 폄하가 문제다. 김일성은 북한이라는 국가를 자기 일족의 사유물로 만들어 인민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지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자유민주 체제로 건국하고 적화를 막아낸 주역이고, 박정희는 경제적 발전의 기반을 닦았으므로 일부 잘못이 있었다해도 그들의 공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각주

  1. 노영택, 日帝時期의 文盲率 推移 國史館論叢 第51輯 (국사편찬위원회, 1994-06-20)
  2. [분수대] 허수아비 논법 중앙일보 2007. 4. 16
  3. 3.0 3.1 이명영(李命英), 《김일성 열전(金日成 列傳)》 - 그 전설과 신화의 진상 규명을 위한 연구》 (신문화사, 1974)
  4. 허동찬(許東粲), 『김일성 평전 (金日成 評傳) - 허구와 실상』, 북한문제연구소(北韓問題硏究所), 1987 / 허동찬(許東粲), 『김일성 평전 [속] (金日成 評傳 [續])』, 북한문제연구소(北韓問題硏究所), 1988년 4월 1일.
  5. 김창순 · 김준엽의 책 『한국공산주의운동사』를 말하는 듯함.
  6.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에 신주백 한림대 교수 연합뉴스 2019. 4. 16
  7. 김창순(金昌順, 1920 ~ 2007), 『중국공산당(中國共産黨)의 만주(滿洲) 게릴라 조직(組織)과 한인대원(韓人隊員)에 관(關)한 연구(硏究)』, 북한학보 제1집 (북한연구소 1977년) p.79
  8. 韓昇助 外共著, 解放前後史의 爭点과 평가. 1 : 獨立 建國運動의 主導勢力은 누구인가? (螢雪出版社, 1990), 제5장 韓國獨立運動史에 있어서의 金日成 / 金昌順 : p.167
    김창순(金昌順, 1920 ~ 2007), (學脈 강연) 口傳上의 민족영웅 金日成 장군은 누구인가? 『북한』 2004년 6월호 통권 제390호 (북한연구소, 2004.06) p.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