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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일본은 장개석의 군대와 난징에서 격돌하여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의 민간인들은 강제로 안전구역(Refugee Safety zone)에 격리되었었고, 난징에 있었던 외국의 국제기관들도 그곳에 위치했었으며, 패배한 중국군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민간인들을 죽이고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했다는 설
# 1937년, 일본은 장개석의 군대와 난징에서 격돌하여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의 민간인들은 강제로 안전구역(Refugee Safety zone)에 격리되었었고, 난징에 있었던 외국의 국제기관들도 그곳에 위치했었으며, 패배한 중국군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민간인들을 죽이고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했다는 설
# 일본이 난징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기 1주일전, 난징의 치안총감 완은 해외 언론에 현재 난징의 인구가 20만명이라고 발표했음, 일본이 난징을 점령한지 5일이 지난 1937년 12월 18일, 민간인 안전구역에 위치해 있던 국제단체는, 현재의 인구가 20만명이라고 발표. 같은 달 21일에는 외국 협회가 현재 20만명이 있다고 발표
# 일본이 난징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기 1주일전, 난징의 치안총감 완은 해외 언론에 현재 난징의 인구가 20만명이라고 발표했음, 일본이 난징을 점령한지 5일이 지난 1937년 12월 18일, 민간인 안전구역에 위치해 있던 국제단체는, 현재의 인구가 20만명이라고 발표. 같은 달 21일에는 외국 협회가 현재 20만명이 있다고 발표
* 일본군인이 민간인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가 크게 왜곡되어있으며, 오히려 중국군인들에게 살해당한 민간인이 대부분이었을 거라는 설또한또한 존재하는 상황
* 일본군인이 민간인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가 크게 왜곡되어있으며, 오히려 중국군인들에게 살해당한 민간인이 대부분이었을 거라는 설 또한 존재하는 상황
 
* [https://en.wikipedia.org/wiki/Michael_Yon 마이클 욘(Michael Yon, 1964 ~ )] 의 주장
: [https://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2878 “위안부 문제 배경에 중국의 한·미·일 이간질 책략”...미국 반공우파의 시각] 미디어워치 2018.01.06
{{인용문|마이클 욘은 “중국이 주장한 난징 학살에 일말의 진실은 있다“며 “단, 우리는 항상 중국의 제시한 숫자에서 10으로 나누기를 해야 된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난징 학살 희생자의 객관적 추정치는 대략 2~3만명이다. 반면, 중국은 늘 3십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클 욘은 난징사건과 관련 일본의 일부 극우세력과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일본의 극우세력은 아예 희생자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학살은 확실히 있었다”면서 “다만 난징사건에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미묘한 논점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난징사건의 미묘한 논점들에는 ▲ 중국인들 사이의 상호 혈투극, ▲ 당시 중국인들의 보편적 관례로 제복 입은 군경들이 신분 노출 위험으로 전투를 회피했던 점, ▲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한 군인들(게릴라)의 전투 참여, ▲ 군복을 착용한 병사는 포착 즉시 사살되었던 점, ▲ 공권력 및 치안 부재 상황 등등이 있음을 전했다.
 
마이클 욘은 “중국은 이러한 역사적 실체 규명에는 관심이 없다”며 “(난징사건과 관련해) 오직 선전선동 도구로서의 활용 가치가 중국의 유일한 관심사”라고 지적했다.
 
마이클 욘은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사 최악의 잔혹한 학살은 독일 나치나 소련이 아닌 중국 내부에서 자행됐다”고 강조하며, “중국에는 그 학살의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 하나 없으며, 오히려 학살을 자행한 실제 주인공(마오쩌둥)의 사진이 천안문 광장 중심에 걸려 있다”라고 중국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각주==
==각주==

2021년 4월 19일 (월) 15:33 판

개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중화민국의 수도였던 난징에서 일본제국에 의해 벌어진 전쟁 범죄

이 학살에서 적게는 수만의, 많게는 30만 이상의 난징 시민들이 학살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담- 중국 공산당은 난징 대학살을 비롯한 일제국주의의 전범행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중국 공산당은 난징 대학살을 일본에 적극 항의해왔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전혀 아니었다.

'모택동 인민의 배신자' 라는 책을 보면,모택동은 집권 당시 난징대학살을 언급하는 것도 금기시했다.

중국 공산당은 반한년(판한녠)이라는 스파이를 보내 국민당의 정보를 캐내 일본 제국에 넘겼으며,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 '공산군의 70%를 세력확장,20%는 반우파(국민당)전투에,나머지 10%를 항일 전선에 투입한다' 라고 훈시했다.

이후 중공이 일본과 수교할때,모택동은 일본 관리에게 '중국을 공격해주어서 고맙다.덕분에 혁명을 완수 할 수 있었다.우리는 일본에 고마워해야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https://monthly.chosun.com/client/news/viw.asp?ctcd=F&nNewsNumb=201907100041


'재해석'

중국의 티베트 점령 및 위구르족 탄압, 천안문 사태 등의 인권 침해 문제들과 함께, 중국의 투자(차이나 머니)를 받은 나라들은 자주성을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으며, 전 세계적 판데믹을 일으킨 우한폐렴 코로나 바이러스의 원흉이 중국의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라는 의혹으로 인해 반중감정이 심해지면서, 난징 대학살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애초에 난징대학살의 피해자는 중공이 아닌 중화민국,즉 현재로 치면 대만이다.위에도 나와있듯이, 중공의 모택동은 오히려 일본 제국의 중국 침략을 고마워하는 입장을 수 차례 밝혔다.대만은 한국 이상의 친미반중반러 성향을 갖고있는 나라이며,한국 혹은 그 이상으로 자유로운 나라이다.만약 동아시아 자유민주국가들의 연대를 원한다면 대만이 겪은 이 비극을 조롱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거짓 의혹

  • 난징 대학살 주장이 거짓이라는 설
  1. 1937년, 일본은 장개석의 군대와 난징에서 격돌하여 전투를 벌였는데, 이때의 민간인들은 강제로 안전구역(Refugee Safety zone)에 격리되었었고, 난징에 있었던 외국의 국제기관들도 그곳에 위치했었으며, 패배한 중국군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민간인들을 죽이고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했다는 설
  2. 일본이 난징을 향해 공격을 개시하기 1주일전, 난징의 치안총감 완은 해외 언론에 현재 난징의 인구가 20만명이라고 발표했음, 일본이 난징을 점령한지 5일이 지난 1937년 12월 18일, 민간인 안전구역에 위치해 있던 국제단체는, 현재의 인구가 20만명이라고 발표. 같은 달 21일에는 외국 협회가 현재 20만명이 있다고 발표
  • 일본군인이 민간인에게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치가 크게 왜곡되어있으며, 오히려 중국군인들에게 살해당한 민간인이 대부분이었을 거라는 설 또한 존재하는 상황
“위안부 문제 배경에 중국의 한·미·일 이간질 책략”...미국 반공우파의 시각 미디어워치 2018.01.06
마이클 욘은 “중국이 주장한 난징 학살에 일말의 진실은 있다“며 “단, 우리는 항상 중국의 제시한 숫자에서 10으로 나누기를 해야 된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난징 학살 희생자의 객관적 추정치는 대략 2~3만명이다. 반면, 중국은 늘 3십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클 욘은 난징사건과 관련 일본의 일부 극우세력과는 선을 그었다. 그는 “일본의 극우세력은 아예 희생자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학살은 확실히 있었다”면서 “다만 난징사건에는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미묘한 논점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난징사건의 미묘한 논점들에는 ▲ 중국인들 사이의 상호 혈투극, ▲ 당시 중국인들의 보편적 관례로 제복 입은 군경들이 신분 노출 위험으로 전투를 회피했던 점, ▲ 민간인 복장으로 위장한 군인들(게릴라)의 전투 참여, ▲ 군복을 착용한 병사는 포착 즉시 사살되었던 점, ▲ 공권력 및 치안 부재 상황 등등이 있음을 전했다.

마이클 욘은 “중국은 이러한 역사적 실체 규명에는 관심이 없다”며 “(난징사건과 관련해) 오직 선전선동 도구로서의 활용 가치가 중국의 유일한 관심사”라고 지적했다.

마이클 욘은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사 최악의 잔혹한 학살은 독일 나치나 소련이 아닌 중국 내부에서 자행됐다”고 강조하며, “중국에는 그 학살의 희생자를 위한 위령비 하나 없으며, 오히려 학살을 자행한 실제 주인공(마오쩌둥)의 사진이 천안문 광장 중심에 걸려 있다”라고 중국의 이중성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