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로동당
기본 정보
영어명
南朝鮮勞動黨
러시아어: Трудовая партия южной Кореи
영어: Workers' Party of South Korea
약칭
남로당
이념
공산주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스펙트럼
극좌
당직자
대표
제1대 여운형
제2대 허헌
제3대 박헌영
역사
창당
1946년 11월 23일
해산
1949년 6월 30일
이전당
이후당
조선로동당
기타
주소
대한민국 서울시


개요

남조선로동당 줄여서 남로당은 남한에 있었던 공산주의 정당으로 제주 4.3 사건에 관여했다. 1946년 11월 23일 서울에서 조선공산당, 남조선신민당, 조선인민당의 합당으로 결성된 공산주의 정당이다.[1] 당수는 초대 여운형, 2대 허헌, 3대 박헌영이 맡았다. 기관지노력인민이 있었다.

관련 사건

2·7 파업-


제주 4·3 사건-


여순 14연대 반란사건

남로당의 몰락

6.25 당시 토벌군이 지리산 빨치산들에게 뿌린 전단 "지리산 특보" 제5호 1953년 (단기 4286년) 8월 20일자 : 오호(嗚呼) ! 박헌영(朴憲永) 선생(先生) - 8월 2일자 평양방송에서 외무상이던 박헌영 자리에 남일이 임명됐다고 한 것을 전하며, 박헌영이 숙청되었으니 김일성남로당의 원수라 하고 있다. 빨치산 대장이었던 이현상(李鉉相, 1905 ~ 1953)은 며칠 뒤인 9월 17일 사살되었다.

남로당은 대구폭동, 제주4.3폭동, 여순반란사건, 지리산(智異山) 등(等)의 투쟁(鬪爭)에서 연전연패하면서 1949년 말에는 세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내부에서 박헌영에 반대하는 반당의 움직임도 강해지기 시작한다. 박헌영은 김일성과의 권력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남한에서 다수의 폭력 사태를 일으켰는데,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면서 당내에서도 그에 대한 반감이 커져 전향자도 다수 발생하고, 김일성으로부터도 비판을 받아 궁지로 몰리게 된다.

이런 대남 공작의 실패로 박헌영은 더욱 초조해져 김일성과 경쟁적으로 전면적 남침 전쟁을 주장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남은 남로당 세력은 6.25 때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 투쟁을 벌이지만 휴전 후 얼마 못 가서 완전히 소탕된다. 일부 잔존 세력은 끝까지 전향하지 않고 지하로 잠적했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아무 활동도 할 수 없게 되어 남로당은 사실상 소멸하게 된다.

1949년말 남로당이 처한 상황이 아래 동아일보 기사에 나와 있다. 박헌영이 자신의 권력을 위해 남한에서 다수의 폭력사태를 야기시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박헌영(朴憲永)의 백골(白骨)의 왕좌(王座)"라고 칭하고 있다.


  남로당(南勞黨)의 위기(危機) : 1949년 10월 3일 동아일보 기사 보기

남로당 전향파(南勞黨 轉向派)의 활동(活動)을 여하(如何)히 추진(推進)시킬것인가

정계단층(政界断層)

남로당(南勞黨)의 위기(危機)

확실(確實)히 남로당(南勞黨)과 박헌영(朴憲永)은 고민(苦悶) 하고있고 남한 모지하(南韓某地下)에서 질식(窒息)하고 있는 김삼룡(金三龍)은 불안(不安)에 떨고 있다. 북한국가(北韓國家)에서 공급(供給)하는 자금(資金)과 폭력(暴力)으로 유지(維持)해 오던 박헌영(朴憲永)의 국제노선(國際路線)은 점차(漸次) 조직화(組織化) 되여가는 반당세력(反黨勢力)을 수습(收拾)하지 못하고 백골(白骨) 우에 왕좌(王座)를 쌓을려는 그의 야망(野望)은 이제 중대(重大)한 기로(岐路)에서 회의(懷疑)와 모색(摸索)으로의 전동(轉動)을 여지(餘地)없게 하고만 것이다.
일찌기 제2차미소공동위원회(第二次美蘇共同委員會) 당시(當時) 박헌영(朴憲永)의 국제노선론(國際路線論)에 감동(感動)한 스티코프 중장(中將)은 그때까지 김일성(金日成)에게 주었던 "위대(偉大)"한 칭호(稱號)를 "영명(英明)"한 칭호(稱號)로 바꿀 것을 명령(命令)하는 동시(同時)에 장차 박헌영(朴憲永)에게 "위대(偉大)한 지도자(指導者)"의 영예를 줄 것이라고 결심(決心)하였다는 것이다
박헌영(朴憲永)은 부수상(副首相)이지만 "위대(偉大)한" 공산당(共産黨)의 지도자(指導者)로 자처(自處)하는 그로서 백두산(白頭山)의 일개(一個) "테로리스트" 김일성(金日成)의 이 使(사)를 장기간(長期間) 감수(感受)할 리(理) 만무(萬無)한 것이니 북한(北韓)에 있어서의 그의 지위(地位)를 강화(强化)하기 위(爲)해서 남한(南韓)에서의 희생(犧牲)의 증가(增加)가 필요(必要)하였고 그러기 위(爲)해서 강동정치학원(江東政治學院)을 주재(主宰)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대구(大邱), 제주도(濟洲島), 여순(麗順), 지리산(智異山) 등(等)의 투쟁(鬪爭)에서 박헌영(朴憲永)의 졸도(卒徒)들은 연전연패(連戰連敗)하였고 "혁명(革命)"(?)은 좀처럼 진전(進展)되지 아니하니 도리켜 만신창이(滿身瘡痍)의 남로당(南勞黨)을 볼때 당황한 것은 박헌영(朴憲永)이였다. 김일성(金日成)과 북로당(北勞黨)은 삼팔선경비(三八線警備)라는 명목(名目) 밑에 실력(實力)을 배양(培養)하고 있을따름 무풍지대(無風地帶)에서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아니하고 안한(安閑)히 있지않는가? 박헌영(朴憲永)은 김일성(金日成)의 군대(軍隊)가 삼팔선(三八線)에서 국군(國軍)에게 조전(戰)할 것을 주장(主張)함으로해서 은근히 김일성 세력(金日成 勢力)의 거세(去勢)를 의도(意圖)하리라는 것도 상상(想像)할수 있는 일이다.
박헌영(朴憲永)의 고민(苦悶)은 심각화 일로(深刻化 一路)를 달리고 있다.

서상(敍上)의 남북노동당간(南北勞動黨間)의 감정적(感情的)인 반발(反撥)과 대립(對立)은 남한(南韓)에서의 희생(犧牲)의 증가(增加)와 아울러 남로당내부(南勞黨內部)에 있어서의 반박헌영(反朴憲永) 노선투쟁(路線鬪爭)을 유치(誘致)하는 결과(結果)로 나타난 것이다. 그 일례(一例)로 더월(去月) 서울 시당상임위원회(市黨常任委員會)의 대거(大擧) 반당성명사건(反黨聲明事件)을 들 수 있으니 군사총사령(軍事總司令) 조병수군(趙병水君)이 말하기를 "남로당(南勞黨)은 폭동(暴動)을 일으켜 무고(無辜)한 민중(民衆)을 살상(殺傷)하는데 시종(始終)하고 있다", "완전(完全)히 탈당(脫黨)한 것이 아니고 그대로 당(黨)에 머물러 있으며 그네들의 지시(指示)를 거부(拒否)하는 한편 반대투쟁(反對鬪爭)하겠다"라고 하였다. 오도(誤導)된 공산주의(共産主義) 청년(靑年)은 이상(以上) 고백(告白)에서 전술(前述)한 박헌영살륙정책(朴憲永殺戮政策)의 표면(表面)을 단적(端的)으로 표시(表示)하는 한편 남로당(南勞黨) 고민(苦悶)의 일면(一面)을 암시(暗示)하고 있다.
벌서부터 각 신문광고(各 新聞廣告)에 게재(揭載)되는 남로당(南勞黨) 탈당성명서(脫黨聲明書) 가운데는 권유(勸誘)에 의(依)한 것도 있겠지만 일군(一郡) 혹(或)은 수개면(數個面) 단위(單位)로 수십명(數十名) 혹(或)은 수백명(數百名)의 연명탈당(連名脫黨)은 모다 자발적(自發的)으로 행(行)하여지고 있음을 볼 때 박헌영(朴憲永)의 백골(白骨)의 왕좌(王座)는 바야흐로 붕괴전야(崩壞前夜)에 놓여 있거니와 이들 반당대중(反黨大衆)이 가지는바 정치적 의의(政治的 意義)는 자못 크다할 것이다.
국민보도연맹(國民保導聯盟)은 발족후(發足後) 삼개월(三個月)에 000 만원(萬圓)에 가까운 비용(費用)을 소비(消費)하고 있으나 기백명(幾百名)을 규합(糾合)하였을 뿐 아직 반당대중(反黨大衆)을 당조직선내(黨組織線內)에 집결(集結) 시키기에는 미급(未及)한 상태(狀態)에 있다.

더욱히 전향공산주의자(轉向共産主義者) 또는 반당 공산주의 대중(反黨 共産主義 大衆)의 힘을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테두리 속에서 정치적(政治的)으로 발전(發展)시킴에 있어서 현재(現在)의 구상(構想)에는 허다(許多)한 불비(不備)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들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을 지지 하는것은 사실(事實)이지만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현상(現狀)을 시인(是認)하지 아니하는 것도 또한 사실(事實)인 것이다.
당장 획기적(劃期的)인 조치(措置)가 취해지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목전(目前)의 이익(利益)을 위(爲)해서는 단속기관(團束機關)들이 그들을 이용(利用)하려고도 할 것이고 그들에게 필요이상(必要以上)의 간섭(干涉)도 하려고 하겟으나 그것이 반드시 최선(最善)의 방법(方法)이라고는 할수 없다. 조봉군(曺奉君)의 식지(食指)가 움직인다고도 하나 공판(公判)을 기다리는 현재(現在)의 그로서는 역부족(力不足)의 감이 없지아니하고, 일부(一部)에서는 김규식(金奎植)의 출마(出馬)를 종용(慫慂)하는 편도 있지만 "날개"를 잃은 것처럼 하고있는 옹(翁)으로서는 불가망(不可望)인 것이다.
그러나 확대(擴大) 되어가는 반당투쟁(反黨鬪爭)에 있어서 박현영(朴憲永)의 역공(逆攻)에 대항(對抗)하기 위한 국부적(局部的)인 단결(團結)은 촉진(促進) 되어가고 있다.

한독당(韓獨黨)이나 사회당(社會黨)이나 민련(民聯)보다는 선명한 반남로(反南勞)의 기치(旗幟)를 내걸고 박헌영(朴憲永)의 지령(指令)을 거부(拒否)하고 실력투쟁(實力鬪爭)할 것을 선언(宣言)한 이들의 조직활동(組織活動)에 어떠한 유리성(有利性)이 인정(認定)되는만큼 앞으로 남한정계(南韓政界)에 작용(作用)할 남로반당세력(南勞反黨勢力)의 동향(動向)은 관심사(關心事)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