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부동 전투
Battle of Tabu-dong
다부동에 주둔중인 1사단을 격려하는 신성모 국방장관.jpg
다부동에 주둔중인 1사단을 격려하는 신성모 국방장관
다부동 유학산 전경.jpg

다부동 유학산 전경
기본 정보
날짜 1950년 8월 3일 ~ 8월 29일
장소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결과 대한민국의 승리
북한군 총공세 격퇴
인천상륙장전의 발판 마련
교전국
유엔 기.png 유엔군
지휘관
병력
군사 15,000여명
군사 3개 사단 30,000여명
T-34 전차 34대
피해 규모
10,000명 사상
24,000명 사상
전차 13대 손실
낙동강 방어선.jpg

다부동 전투(多富洞戰鬪)는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전투로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었다.


다부동 전투는 국가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최후의 저지선이다.


개요

작전지역
  • 다부동(多富洞) : 대구 북방 22km
  • 대구와 최단거리로 방어선 붕괴시 대구사수 불가
주요고지
  • Δ328, 수암산(Δ518, 숲데미산), 유학산(Δ839)
  • 가파른 경사, 병풍을 두른듯한 횡격실 능선
기상(1950. 8월 당시)
  • 30여 년만의 가뭄과 무더운 날씨(37℃)
  • 비전투 손실과 기후에 적응되지 않은 미군에게 큰 타격


주요 전투상황

1단계 (1950.8.1~8.12) - 주 저항선(303고지 - 328고지 - 숲데미산 - 유학산)까지의 지연전
  • 1사단 12연대 : 상주 낙정리 일대에서 적 2개 대대 저지 → 다부동전투 첫 교전을 승리로 장식
  • 1사단 11연대 : 해평(현재 구미지역)일대 주둔
  • 1사단 15연대 : 3차에 걸친 적 도하공격 저지, 실패로 369고지 피탈
  • 1사단 12연대 : 369고지 탈환
2단계(1950.8.13~8.30) - 주 저항선 공방전
  • 1사단 : 주 저항선에 3개 연대 배치 → 백병전으로 북한군 저지

북한군 : 837-647고지-진목정까지 진출. 다부동 위협 → 주 저항선 돌파 위기

3ㆍ4단계(1950.8.31~9.24) - 반격
  • 미 1기병사단 : 174고지-180고지-도덕산 방어 중 315고지 (대구 북쪽 12km 지점) 북한군 1개 대대에 의해 점령
  • 미 7기병연대 : 315고지 탈환 → 대구 위기 극복
  • 한국군ㆍ유엔군 : 9월16일, 09시 전 전선에서 총반격 개시, 9월 20일, 대구-김천-대전 축선을 따라 북으로 진격


전투결과

  • 북한군 8월 공세 저지, 대구사수
  • 북한국 전차 30대 격파, 북한군 전사상자 17,500여 명
(아군피해는 전사상자 1만여명)
  • 인천상륙작전(9. 15)의 성공 계기를 마련.
  • 반격(북진)을 위한 여건 조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