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과 창경궁을 일종의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동궐도(東闕圖)’에 묘사된 대보단(大報壇).[1]

대보단(大報壇)은 임진왜란 때 군대를 보내 조선을 구해준 명(明)나라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의 은덕을 기린다는 취지로 1705년 숙종 때 창덕궁 후원에 세운 제단이며, 매년 왕이 직접 제례를 올렸다. 영조는 명 태조 홍무제(洪武帝)와 숭정제(崇禎帝) 의종(毅宗)을 제례 대상에 추가했다. 명을 세운 홍무제는 조선의 창업을 승인하고 국호를 정해준 대조(大造)의 은혜를 베푼 왕으로, 숭정제는 조선 조정이 남한산성에서 위기에 처했을 때 구원군을 보내준 왕으로 추대됐다. 대보단 제례는 갑오개혁(1894~1895)에 와서야 중단됐다.

조선은 삼전도 항복(1637·청 태종에 패한 후의 굴욕적인 항복) 이후 정신적 혼돈에 빠져 있었다. '오랑캐의 나라' 청이 명을 무너뜨리고 새 책봉국이 되었지만 조선 지배층의 의식 속엔 여전히 명이 '아버지의 나라'였다. 유교 질서의 종주국이 사라지면서 조선의 지배 질서마저 흔들릴 참이었다. 목소리만 높았던 북벌론도 기세가 꺾이자, 왕실로서는 존명의리의 이데올로기를 복구할 '상징'이 필요했다. 숙종은 대보단 제례를 주창하면서 '명과의 특별한 군부·신자 관계와 임란 때 나라를 살려준 재조(再造)의 은혜'를 강조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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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