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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동화

JohnDoe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2월 26일 (수) 07:22 판

리동화(Yi, Tong-hwa)는 소련의 고려인으로 만주 빨치산들을 수용한 소련군 88여단의 군의관이었다. 당시 계급은 대위였던 1대대 대대장 김일성보다 높은 소좌였다. 해방 후 김일성과 같이 평양에 와서 김일성 주치의, 군의 총국장 등을 지내다 김일성의 소련파 숙청 때 숙청 당해 소련으로 돌아갔다.

생애

  • 장학봉 외, "북조선을 만든 고려인 이야기", 서울: 경인문화사, 2006.

아들 세르게이 리

리동화의 아들 세르게이 리는 88여단이 있었던 뱌츠코예 마을과 평양에서 김일성의 자녀들과 어울리며 같이 자랐다. 두 차례 방한하여 김일성의 자녀들에 대해 증언하였다.

김정일 단짝친구 "김정일은 과묵, 남동생은 똑똑했다" TV조선 2012.07.09
[녹취] 세르게이 리 / 카자흐스탄교통대학 석좌교수

"내가 (김)정일보단 좀 크고 좀 힘도 세고, 싸움할 땐 나한테 맞았죠. (그러면 김정숙이 우리 어머니에) 내 아들 네 아들과 싸움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요). 김정일은 소련(바스코예)에서 태어났어요. 조선말도 모르고 소련말만 했어요."

김일성의 주치의였던 리 교수 아버지는 1945년 북한에 들어가 보건성 부상까지 지냈고, 두 집안은 휴가를 같이 갈 정도였습니다.

리 교수는 김정일은 말수가 적었고, 김정일의 남동생은 활발한 성격이었지만 다섯살 무렵, 집안 연못에 빠져 죽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세르게이 리/ 카자흐스탄교통대학 석좌교수 "슈라(김정일 남동생)가 (연못에) 빠진뒤 (김)정일이가 무서워서 다른데 나갔어요. 말도 안 하고. (경비가) 보니까 꺼냈죠. 1시간 뒤에. (슈라는) 우리 노는 데 따라다녔어요. 누나(김경희) 닮았어요."

1949년 어머니 김정숙이 죽자, 김정일은 여동생 김경희에 애착을 갖고 이후 이복동생 김평일을 배척했습니다.

[녹취] 세르게이 리/ 카자흐스탄교통대학 석좌교수

"둘째부인 아이(김평일)는 정일이는 좋아하지 않았어요. 다찌아나(김경희) 일할 때 자꾸만 돌봐 줬어요. (김경희는) 노동당 둘째사람(넘버2)이 됐어요. 똑똑해요."
세르게이 리는 채널A 인터뷰에서는 슈라가 평양 아닌 뱌츠코예에서 익사한 것처럼 말했다.[1] 김경희가 슈라의 누나라는 그의 말은 착오이다.
세르게이 리는 88여단 시절 김일성보다 높은 소좌 계급으로 군의관을 했던 리동화의 아들이다. 리동화는 해방 후 김일성과 같이 평양에 와서 김일성 주치의, 군의 총국장 등을 지내다 숙청 당해 소련으로 돌아갔다.[2] 세르게이 리는 1996년에도 방한했다.

각주

  1. 인용 오류: <ref> 태그가 잘못되었습니다; sergey라는 이름을 가진 주석에 제공한 텍스트가 없습니다
  2. 리동화( Yi, Tong-hwa) 전 군의 총국장 : 미 의회도서관 Biographies of Soviet Korean Leaders : 고려인 81명 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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