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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동화

JohnDoe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2월 26일 (수) 11:20 판 (생애)

리동화(1901~1980년 2월 16일[1])는 소련의 고려인으로 만주 빨치산들을 수용한 소련군 88여단의 군의관이었다. 당시 계급은 소좌로 대위였던 1대대 대대장 김일성보다 높았다. 해방 후 김일성과 같이 평양에 와서 김일성 주치의, 군의 총국장 등을 지내다 김일성의 소련파 숙청 때 숙청 당해 1960년 10월 소련으로 돌아갔다.[1]

생애

그의 본명은 "리 와실리 페도로위치(Ли Васили Федорвич, Lee Vasili Fedorvich)"이다. 88여단 출신자들 중 만주 빨치산 경력자들과 달리 리동화 등 소련의 고려인 출신들은 소련파로 분류된다. 이들은 해방 후 초기에는 상당한 대접을 받다가 김일성의 권력기반이 공고해지면서 숙청대상이 된다. 이동화도 북한에 온 지 10여년이 되어도 조선말이 늘지 않고, 문서도 잘 작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아 쫓겨나게 되자 1960년 10월 소련으로 돌아갔다.

  • 장학봉 외, "북조선을 만든 고려인 이야기", 서울: 경인문화사, 2006.

아들 세르게이 리

리동화의 아들 세르게이 리는 88여단이 있었던 뱌츠코예 마을과 평양에서 김정일, 김슈라, 김경희김일성의 자녀들과 어울리며 같이 자랐다. 카자흐스탄 철도대학(교통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1996년과 2012년 두 차례 방한하여 김일성의 자녀들에 대해 증언하였다.[2][3]

김일성 - 김정숙 부부와 자녀 3남매 모두가 나오는 유일한 가족 사진은 그가 1996년 방한 때 제공한 것이다.[4]

김정일 단짝친구 "김정일은 과묵, 남동생은 똑똑했다" TV조선 2012.07.09
[녹취] 세르게이 리 / 카자흐스탄교통대학 석좌교수

"내가 (김)정일보단 좀 크고 좀 힘도 세고, 싸움할 땐 나한테 맞았죠. (그러면 김정숙이 우리 어머니에) 내 아들 네 아들과 싸움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요). 김정일은 소련(바스코예)에서 태어났어요. 조선말도 모르고 소련말만 했어요."

김일성의 주치의였던 리 교수 아버지는 1945년 북한에 들어가 보건성 부상까지 지냈고, 두 집안은 휴가를 같이 갈 정도였습니다.

리 교수는 김정일은 말수가 적었고, 김정일의 남동생은 활발한 성격이었지만 다섯살 무렵, 집안 연못에 빠져 죽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세르게이 리/ 카자흐스탄교통대학 석좌교수 "슈라(김정일 남동생)가 (연못에) 빠진뒤 (김)정일이가 무서워서 다른데 나갔어요. 말도 안 하고. (경비가) 보니까 꺼냈죠. 1시간 뒤에. (슈라는) 우리 노는 데 따라다녔어요. 누나(김경희) 닮았어요."

1949년 어머니 김정숙이 죽자, 김정일은 여동생 김경희에 애착을 갖고 이후 이복동생 김평일을 배척했습니다.

[녹취] 세르게이 리/ 카자흐스탄교통대학 석좌교수

"둘째부인 아이(김평일)는 정일이는 좋아하지 않았어요. 다찌아나(김경희) 일할 때 자꾸만 돌봐 줬어요. (김경희는) 노동당 둘째사람(넘버2)이 됐어요. 똑똑해요."
세르게이 리는 채널A 인터뷰에서는 슈라가 평양 아닌 뱌츠코예에서 익사한 것처럼 말했다.[3] 김경희가 슈라의 누나라는 그의 말은 착오이다.

참고 자료

김정일 단짝친구 "김정일은 과묵, 남동생은 똑똑했다" TV조선 2012.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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