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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강서군 출신으로 고향 마을과 [[김일성]]이 태어난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 마을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한다.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중위로 있다가 해방 후 [[조만식]] 선생의 비서를 지냈다. 평양에 온 소련군 진지첸 대위가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 장군을 자칭하며 대중 앞에 처음 나서던 날의 집회에도 참석했다고 하며, 조만식 선생을 찾아온 김일성을 두어번 보았다고 한다. 1945년 12월 월남했다.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평양으로 이사했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2/2020010200287.html <nowiki>[2020 신년특집] [백선엽과 김형석, 文武 100년의 대화] [1]</nowiki> 이광수, 김일성 그리고 이병철] 조선일보 2020.01.02</ref>. 고향 마을과 [[김일성]]이 태어난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 마을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한다.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중위로 있다가 해방 후 [[조만식]] 선생의 비서를 지냈다. 평양에 온 소련군 진지첸 대위가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 장군을 자칭하며 대중 앞에 처음 나서던 날의 집회에도 참석했다고 하며, 조만식 선생을 찾아온 김일성을 두어번 보았다고 한다. 1945년 12월 월남했다.


==백세 기념 대담==
==백세 기념 대담==
[[조선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창간되던 해에 태어난 100세의 백선엽 장군과 김형석(金亨錫, 1920 ~ ) 연세대 명예교수의 대담을 주선했다. 김형석 교수는 [[김일성]]과 같은 마을 출신으로 어릴 때 김일성 조부모 댁에 들락거리기도 하고 4촌 동생들 공부도 가르쳐 주었다고 하며, 해방 후 고향에 들린 [[김일성]]을 만나 보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창간되던 해에 태어난 100세의 백선엽 장군과 김형석(金亨錫, 1920.04.23 ~ ) 연세대 명예교수의 대담을 주선했다. 김형석 교수는 [[김일성]]과 같은 마을 출신으로 어릴 때 김일성 조부모 댁에 들락거리기도 하고 4촌 동생들 공부도 가르쳐 주었다고 하며, 해방 후 고향에 들린 [[김일성]]을 만나 보기도 했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2/2020010200287.html <nowiki>[2020 신년특집] [백선엽과 김형석, 文武 100년의 대화] [1]</nowiki> 이광수, 김일성 그리고 이병철] 조선일보 2020.01.02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2/2020010200287.html <nowiki>[2020 신년특집] [백선엽과 김형석, 文武 100년의 대화] [1]</nowiki> 이광수, 김일성 그리고 이병철] 조선일보 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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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만나 한미방위조약 필요성 설득"
白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만나 한미방위조약 필요성 설득"
金 "미국보다 중국에 기우는 文정부, 어리석었다는 평가받을 것"}}
金 "미국보다 중국에 기우는 文정부, 어리석었다는 평가받을 것"}}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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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군인]]
[[분류:군인]]
[[분류:6.25 전쟁]]
[[분류:6.25 전쟁]]

2020년 2월 18일 (화) 05:18 판

백선엽(白善燁, 1920.11.23 ~ )은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최초의 4성 장군이다. 6.25 전쟁 때 낙동강 전선을 방어했다.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면 덕흥리에서 태어나 여섯 살 때 평양으로 이사했다[1]. 고향 마을과 김일성이 태어난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 마을과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고 한다.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군 중위로 있다가 해방 후 조만식 선생의 비서를 지냈다. 평양에 온 소련군 진지첸 대위가 1945년 10월 14일 김일성 장군을 자칭하며 대중 앞에 처음 나서던 날의 집회에도 참석했다고 하며, 조만식 선생을 찾아온 김일성을 두어번 보았다고 한다. 1945년 12월 월남했다.

백세 기념 대담

조선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창간되던 해에 태어난 100세의 백선엽 장군과 김형석(金亨錫, 1920.04.23 ~ ) 연세대 명예교수의 대담을 주선했다. 김형석 교수는 김일성과 같은 마을 출신으로 어릴 때 김일성 조부모 댁에 들락거리기도 하고 4촌 동생들 공부도 가르쳐 주었다고 하며, 해방 후 고향에 들린 김일성을 만나 보기도 했다.

"내 친척 할머니가 김일성 젖물려 키워… 두 아들이 공산당에 죽자 통탄"
金 "어릴 때 옆 동네 살던 김성주가 김일성 장군이라고 해 놀라"

白 "김일성 평양 환영회 갔는데 군중들이 말도 안된다며 비웃어"

金 "친일파라는 춘원 없인 독립 못했을 것… 그 덕에 민족의식 키워" 白 "당시 최선 다해 실력 키우려 노력, 일본서 배울 건 배워야 했다"

金 "한국만큼 교육에 열정 쏟은 나라 없어… 그게 발전 거름 됐다

이병철, 사람 키우면 삼성 떠나도 한국에 남을 거니 괜찮다고 해"
총살 열흘 앞둔 박정희 "살려달라" 한마디… 백선엽 "그렇게 해봅시다"
白 "이승만, 美사령관들 불평하면 美 헌법정신 거론하며 꾸짖어"

金 "6·25는 시련이었지만 대한민국이 국제화되는 계기로 작용"

白 "사회주의적 개혁? 자유민주주의를 이길수 있는 것은 없어"

金 "이탈리아 前공산당원이 충고하더라, 절대 북한 믿지말라고"
종교 탄압하던 김일성, 뒤에선 "목사님, 기도해 주십시오… 아멘"
白 "김일성, 만주군관학교 출신 포섭하려 정일권 등에 접근"

金 "함석헌 선생이 하던 학교 맡아 운영하던 중 北압박에 월남"

白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 만나 한미방위조약 필요성 설득"

金 "미국보다 중국에 기우는 文정부, 어리석었다는 평가받을 것"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