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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전의 북한 [[김일성]]은 1940년 10월 만주에서 일본군에 쫓겨 소련으로 도주하여 [[88여단]]에 근무하며 해방 때까지 5년간 아무런 항일투쟁을 한 적도 없고, 소련군에서 그의 이름은 김일성 장군이 아니라 진지첸(Цзин Жи Чен, Jing Zhichen) 대위였다.
 
해방전의 북한 [[김일성]]은 1940년 10월 만주에서 일본군에 쫓겨 소련으로 도주하여 [[88여단]]에 근무하며 해방 때까지 5년간 아무런 항일투쟁을 한 적도 없고, 소련군에서 그의 이름은 김일성 장군이 아니라 진지첸(Цзин Жи Чен, Jing Zhichen) 대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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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군이 진지첸 대위를 유명한 김일성 장군으로 둔갑시킨 것은 국내 사람들 누구도 그가 어디서 뭘하다 온 인물인지 모를 뿐만 아니라, 국내에 아무 기반도 지지세력도 없다는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다른 저서==
 
==다른 저서==

2020년 7월 1일 (수) 14:34 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1943.09.05 ~ )는 미국의 동아시아역사 학자로 한국의 현대사와 외교관계 전공이다. 시카고 대학 등에서 교수를 지냈다. 소련측 문서가 공개되기 전에 주로 미군정 문서와 일부 한국 기록등을 참고하여 쓴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에서 한반도 분단6.25 남침 전쟁의 책임을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측에 돌렸다. 그러나 공산권 붕괴 후 공개된 소련 문서에 의해 그의 연구는 완전한 엉터리로 판명되었지만, 그는 과거 주장의 오류를 일부 시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과거 주장을 옹호하는 발언들을 하고 있다. 이런 엉터리 주장이 한국학계에 큰 영향을 주어 학계를 좌파들이 장악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개요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

  •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2 vols).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1, 1990.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Vol. 1: Liberation and the Emergence of Separate Regimes, 1945-1947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81 - 606 pp.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Vol. 2: The Roaring of the Cataract, 1947-1950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0 - 957 pp.

이 책은 대체로 미군정이나 이승만 정부가 김일성이 남침하도록 만들었다는 주장을 한다. 좌파들을 탄압하고 친일 전력자들을 대거 기용한 것도 남침의 주요 원인으로 본다. 그러나 소련군정이 북한의 우파들을 어떻게 말살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 조사도 하지 않았고, 언급도 없다. 북한에도 다수의 친일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1]

소련군정과 김일성은 조만식 등 북한의 민족세력과 기독교 세력, 반공세력을 죽이거나 연금하고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등 철저히 말살했다. 반면에 미군정은 많은 좌파들의 정치활동을 허용했다. 다만 박헌영이 이끄는 조선공산당만 여러 범법 행위를 한 관계로 불법화시켰고, 박헌영은 북한으로 도피했다. 나머지 여운형이나, 허헌, 김원봉, 백남운 등등의 많은 좌파들은 남한서 정치활동을 계속했다. 미군정은 이승만이나 김구등 강력한 반공주의자를 제외하고 여운형김규식의 좌우합작 정부를 추진했다. 그러다 여운형이 1947년 7월 암살 당했는데 김일성, 박헌영, 김구 등이 배후로 거론되고 있다.

좌우합작이 무산되고, 미소공동위원회도 결렬되자 미군정은 한국문제를 UN으로 가져가서 UN 감시하의 총선을 통해 국회를 구성한 후 정부를 수립하는 방안을 채택한다. 이에 반대하던 김구, 김규식 등이 1948년 봄 남북협상을 한다며 방북할 때 대다수 좌파들도 동행해서 북한으로 가 눌러 앉은 것이다. 이들은 미군정이 탄압해서가 아니라 분단이 가시권에 들어오자 자발적으로 공산화된 북한을 찾아간 것이다.[2]

뿐만 아니라 김일성은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이 주민들의 지지가 높던 조만식을 강제로 제거하고 해방 전 5년간 88여단에서 훈련시켜 데려와 자신들의 대리인 역할을 할 꼭두각시 지도자로 내세운 인물로, 남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집권한 이승만과는 정통성에서 비교도 되지 않는데도 이런 점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 마치 소련군이 김일성을 택한 것처럼 미군이 이승만을 지도자로 만든 것으로 착각하도록 취급하고 있다.

엉터리 주장들

김석원에 대한 원수갚기가 김일성의 남침 목표?

48년 이승만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승만은 북한에서 내려온 일본군 출신 한국인 장교들을 군 장성으로 기용했다. 이들 중 한명이 김석원이다. 그리고 미국은 48~50년에 500명의 미군 장교들로 이뤄진 자문단을 구성했다. 이 자문단은 김석원과 같은 (일본군 출신들에게) 38선 방어를 책임지게 했다. 이 점에서 소련과 미국이 30년대 일본강점기에서부터 부딪친 양쪽을 각각 지원한 것은 외국이 (한 나라에) 개입한 경우로는 최악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국은 통일됐을 것이다. 김일성은 한국군의 한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일본군과 싸웠기 때문이다. 김석원은 일본 제국주의 아래에서 가장 심한 부역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군이 아니라, 벌을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소련은 북쪽에서 김일성을 지지했고, 미국은 남쪽에서 김석원(과 같은 인물들)을 지지했다. 이는 한국으로선 최악이었다. 49~50년 한국 상황에서 이는 거의 피할 수 없었다.

............

나는 그런(소련) 문서들이 공개되는대로 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을 침공한 첫번째 주동자는 스탈린이 아닌, 김일성이라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김일성은 지속적으로 스탈린에게 지원을 간청했다. 그리고 스탈린은 그에게 제한된 지원을 허락했다. 그러나 김일성은 전면적 침략을 감행했다. 나의 가장 심한 비평가들, 캐서린 위더스비[3]와 같은 사람도 지금은 (나의 견해를) 인정한다. 캐서린은 늘 한국전쟁이 스탈린의 전쟁이었다고 주장했다. ‘이건 스탈린의 전쟁이다. 스탈린이 단추를 눌렀다’라고. 나는 그런 주장에 내 귀를 닫았다. 왜냐하면 그게 사실일 리가 없기에. 그리고 지금 판명됐다. 게릴라 전쟁이 아닌, 국지전이 아닌, 전면적 전쟁을 치르기로 한 결정은 김일성이 내린 것이다. 김일성의 목표 중 하나는 남한을 점령해서 김석원과 같은 사람을 붙잡아 그들의 목을 비틀고 그들이 30년대에 저지른 것을 추궁하려 했다는 것이다. 김석원이 김일성의 첫번째 아내 김혜순을 살해했다는 루머가 있다. 나는 김혜순이 그의 첫번째 아내인지, 그리고 이게 사실인지 모른다. 그러나 김일성과 김석원 사이에 누군가의 죽음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한국전쟁에 대한) 주장이 옳았다고 본다. 김대중은 ‘김일성이 50년대에 한반도를 통일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먼저 한국, 그 다음 일본 식의 세계 공산화 전략을 추구한 게 아니었다.”

김석원(金錫源, 1893 ~ 1978)은 일본 육사 27기로 졸업후 일본군에서 복무하다 해방 후 국군으로 근무한 것은 맞다. 해방전에 북한 김일성과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는 그에 대한 비방이 잔뜩 나온다.[4] 보천보사건 직후 벌어진 소위 간삼봉전투라는 일본군과 동북항일연군 1군 2사, 2군 4사, 6사 연합부대의 전투에서 일본군측 지휘관이 김석원인 줄로 잘못 알고 헛소리를 한 것이다. 간삼봉전투의 일본군 지휘관은 김석원이 아니라 그의 일본육사 동기인 김인욱(金仁旭, 1892 ~ ?) 소좌였다.

브루스 커밍스는 이런 것을 알리도 없으니 김일성 회고록만 보고 이승만이 김석원과 같은 일본군 출신들을 장성으로 기용한 것이 김일성의 남침을 초래했다는 황당한 소리를 하고 있다. 김일성은 이승만이 집권하기도 전인 1946년 연설에서도 남침 적화통일을 공언하고 있었다.[5] 이승만이 누구를 국군 장성으로 기용했든 김일성의 남침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김일성 본인도 일본군 조종사 출신을 공군 최고 지휘관들로 기용했으므로[6] 이승만을 탓할 처지도 아니었다.

커밍스는 한 술 더 떠서 김석원이 김일성김정숙 이전의 처였던 김혜순을 죽였던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김혜순은 김석원보다 훨씬 더 오래 살았고, 김일성이 사망한 직후인 1994년 7월 25일에 찍은 사진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김석원은 해방 전에는 김일성과 전혀 관계가 없었으니 그 처였던 김혜순과는 어떤 연고도 있을 수가 없었다.

김석원과 관련된 사례들만 봐도 김일성 회고록이나 브루스 커밍스의 주장들은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성 회고록에 나오는 김석원에 대해 언급한 한 구절은 이렇다.[4] 완전한 소설이다.

운명의 조화라고 할가. 우리의 숙적이였던 김석원은 해방후 또다시 38선을 사이에 두고 최현과 대결하였다. 최현은 거기서 경비려단을 지휘하였다. 리승만이 김석원을 38선가까이에 밀어보낸것을 보면 간삼봉에서 당한 참패를 만회할 기회를 마련해주느라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북으로 의거해온 《국군》사병들의 말에 의하면 김석원은 38선을 지킬 때 공산주의자들을 두고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을 많이 하였다고 한다. 최현도 그와 맞다들면 혼을 내주려고 별렀다.

전쟁전야에 김석원이 불의에 38선을 넘어 대규모의 기습을 감행한 일이 있었다. 그바람에 송악산에서 싸움이 붙었다. 아마 그는 최현을 혼내우거나 없애치울 작정이였던것 같다. 격노한 최현은 38선을 넘어온 《국군》을 모조리 소멸하고 얼마 안되는 패잔병들을 추격하여 개성까지 따라갔다. 그는 내친 걸음에 서울까지 쫓아가서 김석원을 잡겠다고 하였다.

나는 최현에게 당장 철수하라고 엄하게 명령하였다. 그 사람이 옛날에는 일제놈들의 충견이 되여 싸우러 왔었지만 지금은 미국상전에게 매워있다, 자칫하면 동족끼리 죽일내기를 하게 되고 전면전쟁으로 번져질수도 있다, 김석원도 조선사람이니 언제인가는 자기를 뉘우치게 될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지금은 최현도 김석원도 이 세상에 없다. 그들을 대신하여 오늘은 망국의 설음을 겪어보지 못한 새 세대들이 북과 남에서 총부리를 마주대고 군사분계선을 지키고있다. 나는 북과 남의 모든 새 세대들이 민족의 피줄을 두토막으로 동강낸 인위적인 그 장벽을 하루속히 제거해버리고 자주적인 통일조국에서 화목하게 살기를 바란다. 김석원도 말년에는 이런 념원을 품고있었을 것이다.

박헌영의 외신 인터뷰 논란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 1권(1981)에 나오는 1946년 1월 5일에 있었던 박헌영의 외신 인터뷰에 대한 엉터리 주장은 이후 한국의 좌파 학자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더욱더 엉터리인 연구들을 양산하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 김일성은 가짜가 아니다?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말은 해방 후 김일성 장군을 자칭하며 평양에 나타난 33세의 그가 1920년경부터 유명했던 김일성 장군과 나이가 맞지 않아 동일인물이 될 수 없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하여 나온 것이고 한국에서 한동안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좌파학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진짜로 뒤집어 놓았다. 이들이 온갖 궤변들을 다 동원하였기에 이것들을 일일이 다 반박하자면 몹시 복잡하게 되었다.

영문 위키피디아에는 김일성이 가짜라는 주장과 진짜라는 주장을 다 소개하고 있기는 하지만 진짜 쪽에 비중을 두고 있다.


Wikipedia에서 김일성이 진짜라는 참고문헌의 대표적인 것은 브루스 커밍스의 아래 책에 나오는 주장이다.

여기서 커밍스가 김일성이 진짜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아래 일본 문헌에 1939~1940년 무렵 김일성을 쫓던 일본군들이 김일성이 만주의 조선인들 사이에 대단한 인기를 끌며 영웅이라 칭송을 듣는다고 한 것이다.

「JACAR(アジア歴史資料センター)Ref.C13010013500、満洲に関する用兵的観察 第12巻 昭和27年11月(防衛省防衛研究所)」

위 문헌에 그런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빨치산 김일성이 만주에서 활동할 당시 그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던 만주의 조선인들 사이에서의 일이고, 그 김일성이 당시 조선 국내에서 유명했던 김일성 장군과 같은 인물이라고 볼 근거는 없다.

국내에서 유명했던 김일성 장군은 1920년 경부터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므로 북한 김일성과는 나이가 전혀 맞지 않는다. 해방 직후 북한 김일성이 나타나기 직전에 많이 거론되던 김일성 장군 기록을 보아도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북한 김일성이 아닌 것은 충분히 입증된다.

해방전의 북한 김일성은 1940년 10월 만주에서 일본군에 쫓겨 소련으로 도주하여 88여단에 근무하며 해방 때까지 5년간 아무런 항일투쟁을 한 적도 없고, 소련군에서 그의 이름은 김일성 장군이 아니라 진지첸(Цзин Жи Чен, Jing Zhichen) 대위였다.

소련군이 진지첸 대위를 유명한 김일성 장군으로 둔갑시킨 것은 국내 사람들 누구도 그가 어디서 뭘하다 온 인물인지 모를 뿐만 아니라, 국내에 아무 기반도 지지세력도 없다는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다른 저서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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