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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220918/115510473/1 北 공산주의 운동 연구 1세대 서대숙 박사 별세] 동아일보 2022-09-19
* [https://www.donga.com/news/People/article/all/20220918/115510473/1 北 공산주의 운동 연구 1세대 서대숙 박사 별세] 동아일보 2022-09-19
{{인용문|여러 차례 방북한 그는 북한 고위층과도 친분이 있는데, 특히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 기록은 “처음 만났을 때 비공개하기로 약속했으니 지키고 싶다”며 비공개를 고수했다. 고인은 2018년 평생 모은 독립운동·공산주의 사료 수천 점을 한신대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인용문|여러 차례 방북한 그는 북한 고위층과도 친분이 있는데, 특히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 기록은 “처음 만났을 때 비공개하기로 약속했으니 지키고 싶다”며 비공개를 고수했다. 고인은 2018년 평생 모은 독립운동·공산주의 사료 수천 점을 한신대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그의 김일성 연구 방향은 김일성을 직접 만나보고 북한 고위층과 친분을 맺은 것과 관련이 있을 법도 하다. 일본 조총련 출신이었던 [https://ko.wikipedia.org/wiki/%ED%97%88%EB%8F%99%EC%B0%AC 허동찬(許東粲, 1932 ~ )]도 방북해서 김일성을 직접 만난 적이 있지만 북한과 조총련에 환멸을 느껴 이탈했고, 서대숙과는 전혀 다른 김일성 연구 결과를 내었으며, 서대숙의 김일성 진짜론에도 비판적이었다.
:그의 김일성 연구 방향은 김일성을 직접 만나보고 북한 고위층과 친분을 맺은 것과 관련이 있을 법도 하다. 일본 조총련 출신이었던 [https://ko.wikipedia.org/wiki/%ED%97%88%EB%8F%99%EC%B0%AC 허동찬(許東粲, 1932 ~ )]도 방북해서 김일성을 직접 만난 적이 있지만 북한과 조총련에 환멸을 느껴 이탈했고, 서대숙과는 전혀 다른 김일성 연구 결과를 내었으며, [[김일성 진짜론 반박#서대숙(徐大肅)|서대숙의 김일성 진짜론]]에도 비판적이었다.


* [https://www.yna.co.kr/view/AKR20220117054000505 '가짜 김일성론' 논파해 센세이션…정치학자 서대숙 박사 별세] 연합뉴스 2022-09-17
* [https://www.yna.co.kr/view/AKR20220117054000505 '가짜 김일성론' 논파해 센세이션…정치학자 서대숙 박사 별세] 연합뉴스 2022-09-17

2022년 10월 1일 (토) 16:14 판

서대숙(徐大肅, Dae-Sook Suh, 1931년 11월 22일 ~ 2022년 9월 13일[1])은 한국계 미국인 정치학자로, 미국 하와이대(University of Hawaii) 교수를 지냈으며, 한국과 북한의 현대사 및 정치와 관련한 많은 논문과 저서가 있다.

그는 해방 직후 1945년 10월 14일 평양 대중앞에 처음 출현했던 날부터 가짜 소리를 듣기 시작한 북한 김일성이 진짜가 맞는데도 남한 정부가 그를 가짜로 만들고 교육했다는 주장을 내놓았고,[2] 이후 한국의 신진학자들이 그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오늘날 한국 학계에서 잘못된 김일성 진짜론이 대세로 자리잡는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북한의 소련 군정에서 김일성 지도자 만들기 정치공작을 총지휘했던 니콜라이 레베데프(1901~1992) 소장과 그리고리 메클레르(1909~2006) 중좌, 레오니트 바신(1915~2006) 소좌 등이 한-소수교 (1990.9.30)[3] 직후 해방 당시에 국내 지지세력이 전무한 무명인물에 지나지 않았던 북한 김일성을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한국인들 사이에 항일영웅으로 이름이 유명했던 김일성 장군 행세를 하게했다는 증언까지 내놓았음에도[4] 서대숙은 자신의 잘못된 주장을 바로잡지 않았다.

생애

북한 김일성이 진짜라고 주장

서대숙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에 퍼진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설이 마치 한국 정부가 그를 폄훼하기 위해 만들어내고 교육시킨 것처럼 주장한다. 그의 연구는 김일성이란 이름이 주는 혼란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북한의 주장을 상당부분 검증없이 수용했다. 또 문헌상에 나오는 동북항일연군 내의 다른 김일성 이름들을 구분하지 못하고 모두 북한 김일성으로 간주하였다. 이후 한국의 신진 학자들은 그의 잘못된 주장을 맹신하여 김일성 연구를 퇴보시켰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그의 이러한 잘못된 연구는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북한 김일성에게 큰 도움을 주었고, 과거 한국의 지도자들을 김일성을 가짜로 만들었다며 욕먹게 만드는 주요한 근거가 되었다. 오늘날 한국학계에 김일성이 진짜라는 잘못된 주장이 대세가 된 배경에는 학계가 좌경화되어 그의 연구를 검증없이 받아들인 것과, 이명영(李命英, 1928~2000), 김창순(金昌順, 1920~2007) 등 한국의 1세대 북한학자들의 연구에 대한 무조건적 불신, 외국서 연구한 학자들이 더 권위있다는 잘못된 맹신 등이 한몫 했다.

  • Dae-Sook Suh, 『Kim Il Sung: the North Korean Leader』 NY: Columbia Univ. Press, 1988
서대숙(徐大肅, Dae-Sook Suh, 1931~2022) 저, 서주석 역,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서울: 청계연구소, 1989
남한에서는 현재의 북한주석과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인혁명가가 같은 이름으로 가진 둘 또는 셋의 별개의 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더러 있으나 이는 부질없는 추측이다........ 1974년까지도 북한주석 김일성이 가짜라고 주장한 남한연구가가 있었으나 이는 학문적 연구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저작이었다. 그 저자(즉 이명영 - 인용지주)는 만주에서 김일성과 싸웠던 전일본군 장교 몇 명을 포함하여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는 등 상당한 연구를 한 것으로 보이며 이 점에서 그 연구는 불운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저자 는 김일성이 가짜라는 정치적 의도가 담긴 결론을 입증하기 위한 자료만을 수집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 서대숙저, 서주석 역,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서울 : 청계연구소, 1989) p.296
서울大(대)에서 처음으로 북한학을 가르친 감상은?
"한국은 지금 對(대)북한인식을 둘러싸고 혼란상태에 있다. 지금까지 金日成 (김일성)은 가짜라는 등 잘못된 것을 유포시켜왔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말하는 것은 옳은 것이라도 학생들은 신용하지 않는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매우 정치화 돼있어 바른 인식을 얻기위한 공부에는 커다란 지장이 있다. 미국의 대학생과 비교해도 공부량이 적다. 매우 유감이다"
  • 서대숙은 김일성이 가짜라는 설이 이승만 정부가 만들어낸 것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5]
“모든 학문이 그렇듯 시작은 호기심이었어요. 이승만 정권의 ‘김일성 가짜설’을 비롯해 ‘북한’이란 단어조차 금기가 되는 것을 보면서 객관적 사실을 확인해보고 싶은 욕구가 컸어요. 학문의 목적은 진실 추구이고, 학자는 목을 내놓더라도 진실과 소신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미군정은 북한 김일성이 평양에 나타난 직후인 1945년말부터 이미 그가 가짜라고 기록하기 시작했고, 이승만 집권 이전에 그러한 말을 기록한 문헌도 셀 수 없이 많다.

서대숙은 김일성이 가짜라는 말이 처음에 언제 어디서 왜 나오게 되었는지, 기록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조사해보지 않고, 일본과 중국 문헌만 좀 조사해보고는 북한 김일성동북항일연군에서 상당한 항일투쟁을 한 사람이 맞으므로 가짜가 아닌 진짜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고는 곧장 이승만 정부가 그를 가짜라고 교육시켰다며 근거없는 비난을 하기 시작한다.

그의 명성 때문에 이런 잘못된 주장이 한국에 수입되어 신진학자들이 길을 잃고 김일성이 진짜이고 항일투쟁의 영웅이라며 김일성을 미화하고 대한민국을 폄하하는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짜 김일성 장군 행세는 북한 김일성이 했는데, 그를 가짜로 만들었다며 욕은 이승만, 박정희가 얻어먹는 오늘날의 기막힌 현실은 김일성이 진짜이고 그의 항일투쟁은 칭찬받을 만하다며 면죄부를 준 서대숙의 잘못된 연구의 영향이 크다.

북한 김일성이 가짜 김일성 장군일 뿐만 아니라, 소련의 꼭두각시로 소련군의 일방적 지원을 받아 지도자가 된 점을 외면하고 그의 항일투쟁 경력만 부각시킨 것은 큰 잘못일 뿐만 아니라, 항일투쟁 경력에서도 6사장 김일성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도 밝히지 못하고 북한의 허위 주장을 따라갔다. 서대숙의 잘못된 김일성 연구가 후대에 끼친 폐해는 브루스 커밍스의 잘못된 한국전쟁 연구가 끼친 해악에 비견할만하다.

1980년대 김일성 진위 논쟁

1980년대말 김일성 진짜론을 주장하는 서대숙과 가짜론을 주장하는 학자들 간에 김일성 진위논쟁이 있었다. 당시는 중국과 소련의 자료가 나오기 전이고, 일본과 국내 자료도 충분히 발굴되지 않아 논쟁은 평행선을 그렸다. 하지만 이후 등장하는 좌경화된 국내 대다수 신진학자들이 김일성 진짜론을 추종하면서 학계에는 마치 김일성이 진짜가 맞는 것처럼 잘못된 대세가 형성된다. 그러나 이후 발굴되는 새로운 자료들은 일관되게 북한 김일성은 가짜가 맞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김일성 진위 싸고 시각차 여전
조선인민해방군 부재(不在)엔 접근
위의 글은 이보다 앞서 신동아(新東亞)에 실린 서대숙 교수의 김일성에 대한 서울대학교 강의록 요약본에 대한 비판이다.
서대숙(徐大肅), 《金日成의 抗日투쟁, 사실과 과장》, 신동아(新東亞) 355(1989.04) pp.224-247,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

부음 기사

여러 차례 방북한 그는 북한 고위층과도 친분이 있는데, 특히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 기록은 “처음 만났을 때 비공개하기로 약속했으니 지키고 싶다”며 비공개를 고수했다. 고인은 2018년 평생 모은 독립운동·공산주의 사료 수천 점을 한신대와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그의 김일성 연구 방향은 김일성을 직접 만나보고 북한 고위층과 친분을 맺은 것과 관련이 있을 법도 하다. 일본 조총련 출신이었던 허동찬(許東粲, 1932 ~ )도 방북해서 김일성을 직접 만난 적이 있지만 북한과 조총련에 환멸을 느껴 이탈했고, 서대숙과는 전혀 다른 김일성 연구 결과를 내었으며, 서대숙의 김일성 진짜론에도 비판적이었다.
서대숙이 가짜 김일성론을 논파했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그는 해방 전후의 국내사정에 어두워 애초에 북한 김일성이 가짜라는 말을 듣게되는 배경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그가 진짜가 맞다는 잘못된 주장을 내놓았을 뿐이다. 그는 국내의 김일성 연구가 길을 잃고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게 만든 장본인 중 한 사람이다.

함께 보기

각주

  1. '가짜 김일성론' 논파해 센세이션…정치학자 서대숙 박사 별세 연합뉴스 2022-09-17
  2. Dae-Sook Suh Kim Il Sung: the North Korean Leader NY: Columbia Univ. Press, 1988/1995; [번역] 서대숙 저, 서주석 역,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청계연구소, 1989).
  3. 한-소수교 (1990.9.30) - 국가기록원
  4. 김일성 가짜설#김일성을 수령으로 만든 소련 군정 당사자들의 '김일성 가짜' 증언 우남위키
  5. 서대숙, “통일되면 북쪽 학자들도 찾아와 연구할만한 자료들이죠” 한겨레신문 2018.10.25